놀라운 크로스 섹션 - 37가지 사물이 만들어지는 놀라운 과정을 본다 한눈에 펼쳐보는 크로스 섹션
스티븐 비스티 그림, 리처드 플라트 글, 권루시안 옮김 / 진선아이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슈퍼맨 드라마를 TV에서 종종 해줬다. 지금이야 슈퍼맨에 대해 먼저 떠올리라면 어쩐지 약점인 크립토나이트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그때는 슈퍼맨이라고 하면 부러운 것투성이였다. 흑연을 손에 쥐고 압축하면 다이아몬드가 번쩍 튀어나오질 않나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오고 심지어 하늘까지 붕붕 날아다니질 않는가. 물론 그때도 쫄쫄이는 안 부러웠지만.

 

그런데 슈퍼맨의 다른 능력 중 하나가 엑스레이 시야여서 건물 안에 사람이 있는 게 다 들여다보이는 거다. 설계도를 보면 대충이야 알아 볼 수 있지만 그거랑은 또 느낌이 다르니까. 그래서일까. 사물이 형성되는 과정을 세밀화로 보여준다고 했을 때 머릿속에서 슥 슈퍼맨의 투시 능력이 떠올랐다.

 

어떤 물건, 건물을 볼 때 사람이 볼 수 있는 건 완성품의 겉면뿐이다. 거리에 널린 자동차를 지나며 TV뉴스에서 파업 관련해서 지나갔던 조립 장면도 머릿속에서 잘 떠올리지 못 했으니까. 그런데 만들어지는 과정을 비롯하여 단면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니 궁금했던 부분은 충족되고 궁금해 할 생각도 못 했던 부분은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자동차 페인트가 잘 붙도록 오븐에 굽는다니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처럼 37가지 사물을 들여다보는 만큼 평소 알고 싶었던 초콜릿이나 만화 '백성귀족'을 보면서 대충을 알게 된 우유, 공룡 모형, 경주용 자동차 같은 것들은 군침을 흘리면서 봤다. 경주용 자동차의 엔진을 한 번 쓰고 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든지 카레이서를 끌어내기 쉽게 옷의 어깨 부분을 보강한다거나 하는 부분이 나올 때는 세밀한 부분이 뚫어져라 빤히 들여다보며 굉음을 내며 달리던 카레이싱을 떠올렸다.

 

반면 보잉 777처럼 평소 딱히 궁금해 하지 않았지만 엔진에 새가 말려 들어가면 당연히 고장 나는 줄 알았던 잘못된 상식은 충격적 사실과 함께 기억 저편으로 처박혔다. 엔진 테스트 실험으로 실제 오리를 던져 넣어 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혹은 엔진 3개 중 한 개 만으로도 비행이 가능하다고 해서 어떻게 거대한 쇳덩이가 날 수 있는지 현대 기술의 놀라움을 실감했다.

 

단지 비행기의 부식이 대체로 화장실 소변 때문이라거나 그냥 그 상태로 튀어나올 거라고 무심결에 생각하고 있던 CD가 원판을 시작으로 아들판, 플라스틱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우주 비행사의 옷이 손바느질로 점차 두툼해진다든지 겉만 봤던 많은 것들이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수많은 사람들의 발명품을 소비하고 살아간다는 걸 이토록 실감하게 된 적이 없었다. 이번 '놀라운 크로스 섹션'을 보면서 조금씩 굳히며 만들어가는 현수교 같은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뭐, 도넛이 롤러에 눌리면서 또 칼날로 모양이 입혀진다는 걸 몰라도 사는데 지장은 없겠지만 알면 아는 대로 또 재밌었달까.

 

단지 이것저것 신기한 게 많아서 두근두근하고 책을 넘기려니 이게 또 크기가 제법 커서 누워서 뒹굴거리며 보기보다 앉아서 보는 쪽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13페이지의 로켓은 안 그래도 큰 책 4페이지를 소요한다. 사령선부터 발사되면 떨어져나가는 부분까지 그려져 있는데 누워서 보다가 고개가 조금은 길어진 느낌이 들 정도였다. 또 한 번에 꼼꼼히 다 보려면 눈이 피곤하니 서너 가지씩 두고두고 골라보면 그것도 나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셸터 - 집으로 쓴 시!, 건축 본능을 일깨우는 손수 지은 집 개론서 로이드 칸의 셸터 시리즈 1
로이드 칸 지음, 이한중 옮김 / 시골생활(도솔)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평소 공포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니기는 하지만 특히 거울이나 휴대 전화처럼 일상생활 속의 소재를 공포의 대상으로 바꾸는 경우 더욱 질색을 하게 된다. 스티븐 킹의 소설 <샤이닝>이 두려운 것은 가족을 지켜야 할 가장이 공격자로 변하고 안전해야 할 집이 공포의 장소로 바뀌기 때문이다. 삶이 피곤한 만큼 사람의 마음속에서 집만은 안락한 장소이길 바란다.

그렇기에 위층에서 소란스럽게 뛰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더욱 짜증스럽고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시간에 초인종을 눌러대는 잡상인이 불쾌하게 느껴진다. 인간이 여느 짐승처럼 굴도 없이 적당한 그늘이 쉼터가 되는 생물이었다면 이런 감성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착하면서 살게 된 인간은 안전한 울타리로 감싸인 안심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침입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었고 비, 바람을 피해 안락한 휴식을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집은 가격대가 부담스러워서 차부터 장만한다는 사람도 있다지만 대개 거액의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집을 사는 일이다. 시끄러운 이웃, 좋지 않은 공기, 때로 부담스러울 때도 있는 가족들을 떠나 나만의 안락한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꿈속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셸터>는 흥미로운 책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집을 언젠가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터라 관심의 대상이 되는 집을, 그것도 세계 각국의 집뿐만이 아니라 짐승들의 셸터, 직접 짓는 집을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 가며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75세의 목수인 저자 로이드 칸은 여러 가지 독특한 집을 소개하는 동시에 비싸지 않은 재료로 어렵지 않게 지을 수 있는 집을 보여준다. 사막 지역 여성들이 다른 집안일을 하면서 어렵지 않게 뚝딱 만들어내는 30분 완성의 천막집이나 초원의 유목민 남자들이 모여서 만드는 유르트까지 이동이 가능한 간편한 집부터 세월이 흐를수록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목조 주택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더구나 마사이 족의 집 같은 경우에는 출입구에서 침실로 쓰는 공간까지 가는 길을 급커브로 만들어서 하이에나나 침입자가 집에 침입하는 속도를 줄이게 만들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머리맡에 항시 칼을 둔다는 부분에 집이 원래 재테크용이 아니라 침입자를 막고 안전하게 쉬기 위한 공간이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 와중에 간단히 지을 수 있는 오두막 투쿨을 보여주니 그때부터 각국의 집이 소개될 때마다 이 집은 어떻게 짓는 것일까 손이 근질근질하게 되었다. 평생 동안 집을 지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읽어 나가다보면 굽지 않고 말려서 벽돌을 만든다는 어도비 집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얼마 전 분쟁 지역에 다른 재료를 들일 수 없어서 흙벽돌로 집을 지었다는 것이 어도비 집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하이힐을 신지 않은 이상 튼튼하게 오래 쓸 수 있는 흙바닥이 흙을 붓고 몇 번이나 진흙으로 틈을 메우고 기름을 바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었구나 하고 감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 쪽으로만 지붕이 기울어진 셰드 지붕 집을 짓는 방법을 알려준 부분이었다. 간단히 지을 수 있고 살아본 이후 계속 새로 붙여서 확장할 수 있다는 말에 마음 내킬 때마다 조금씩 확장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셸터를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거기에 돔이나 다면체 돔인 좀처럼 독특한 양식의 집, 자동차 집 등 온갖 집들을 보고 환경과 집의 진짜 모습을 생각하다보면 있는 줄도 몰랐던 숨은 건축 본능마저 깨어나는 것 같았다. 누구나 바라는 안식처를 자신의 손으로 짓는다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어문법 달인이 되는 법 - 완전개정판
이경수 지음 / 사람in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는 제2외국어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선택지는 세 가지로 일본어, 불어, 독일어였다. 거기에는 제한 조건이 달려 있었는데 문과는 일본어와 불어, 이과는 독일어였다. 이과인 경우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반면 문과였던 나는 일본어와 불어 중에 선택이 가능했다. 어느 쪽도 특별히 구미가 당기지 않았지만 불어가 어렵다고 투덜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별 고민도 없이 일어를 골랐다. 그때 일본어 공부란 내신과 수능에 들어가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학 신입생이 된 여름, 일어로 된 비디오 게임이 생겼다. 궁금한 마음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로 된 게임을 해석하며 게임을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일어에 흥미가 생겼고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반 정도는 게임 탓이기도 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게임을 이해하기 쉽게 대학 교양수업으로 일본사, 일본문화 수업도 수강하게 되었다. 이후 소설, 드라마, 영화까지 보면서 일본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쌓아갔다. 문제는 취미를 소화하기 위해서 무작위로 쌓은 지식이 부족한 일본어의 구멍을 메우고, 글을 읽는 것 자체는 한자를 읽을 수 있어서 대강 이해가 가능했다는 점에 있었다.

덕분에 구멍을 메우는 일을 소홀히 했더니 일본어 실력이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문법지식이나 일본어 실력의 기반이 되어야 할 지식은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쌓았던 기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게 점점 갑갑했던 터라 이 책 <일본어 문법 달인이 되는 법>이 반가웠다. 이 책 <일본어 문법 달인이 되는 법>은 제목대로 달인이 되는 법이라기보다 밟고 올라갈 기반을 다지는 책에 가까웠다. 명사, 형용사, 동사 순으로 차근차근 기본을 '읽고' 지나가면 흩어졌던 지식의 파편이 모여드는 느낌이었다.

이어 두 번째로 MP3 파일로 된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읽으면 앞서 모아만 두었던 지식이 정돈되면서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활용노트를 이용해서 문법 활용을 '쓰고' 그 답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면 지식의 정돈이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간극이 메워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일본어를 쓸 때, 특히 읽을 때 한자어와 한자어 사이를 대강 가늠할 것이 아니라 그 정확한 의미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일본어를 쓸 때 어떤 것이 거친 말투이고 경어인지를 대충은 알고 있으나 정확히는 구분하지 못했는데 각 장에서 예시가 나올 때 대부분 경어표현이 따라 나오고 마지막 장은 경어표현에 할애된 부분이 좋았다. 특히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일본어 경어표현은 틀리거나 과장되기 쉬웠는데 세 가지 예를 들어 실수 할 수 있는 점과 가장 나은 표현이 언급되어 있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도 여성형 표현이나 수를 셀 때 헷갈릴 만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지적해 준 점, 다의적 의미로 쓰이는 동사들을 정리해 준 것, 틀리기 쉬운 유사 표현을 비교를 통해 재인식 시킨 것과 가끔 페이지 측면에 자투리 지식을 소개한 것처럼 궁금했으며 정리해두면 유용한 것들을 조목조목 지적해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으로 반복학습을 하다보면 달인은 몰라도 수제자는 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한 권에 꾹꾹 담은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렇게 반복하고 좀 더 많은 일본어를 접하다보면 언젠가 구멍을 전부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몬스터
정승원 지음, 이창윤 그림 / 삼양미디어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상상력이란 것이 묘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실타래처럼 풀려 나간다. 딘 쿤츠의 소설 <살인예언자 4>에서는 주인공 오드 토머스의 상상력은 그가 궁지에 처할 때마다 발휘된다. 그것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니라 자신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숨은 이야기를 자아냈고 많은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동시에 상상력은 부정적인 면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무 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하게도 하는 것이다.

이제 도시 속에서는 진정한 어둠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인간의 상상력의 증거는 곳곳에 남아 있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있을 다른 존재를 상상했고 그 존재는 때로는 신으로 때로는 인간을 해하는 괴물로 남았다. 이 책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몬스터>는 인간이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물이다. 인간은 두뇌와 손을 사용하는 재주를 제외하면 다른 짐승에 비해서 신체적으로 불리한 편이다. 그런 마당에 어둠 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어떤 것의 눈은 두렵기도 한 동시에 부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상상력은 다양한 괴물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다른 지역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낸 괴물인데도 비슷한 면들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불사조의 경우에는 그리스의 피닉스, 이집트의 베누, 인도의 가루다 등 여러 가지다. 가장 익숙한 것은 역시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에도 나온 피닉스다. 일정 기간 동안의 삶을 누리고 죽음과 동시에 다시 태어나는 존재다. 끝없는 윤회를 반복하고 있는 새를 상상하는 것은 좀 묘했다. 사람보다 하늘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 새여서 일까, 유난히 나는 것들에 대한 신성을 기대한 것이 많았다.

동양의 용만해도 나는 존재이며 그리스의 페가수스는 천마로 불렸으며 벨레로폰이 오만해져 신에게 도전하게 하는 계기이자 수단이 되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몬스터'인 만큼 신성을 가진 존재보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를 위협하는 두 괴물인 세이렌과 스킬라처럼 사람을 유혹하거나 먹기 위해 끌어들이는 존재부터 중국 신화에 나오는 사흉 중 하나이며 오노 후유미의 소설 <십이국기>에 등장한 도철에 대한 것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판타지 소설에서 익숙하게 등장하는 식물인 만드라고라, 동양과 서양의 용을 비교한 것, 싱가포르의 상징물인 머라이언, 끝없이 태양신 라와 싸우며 낮과 밤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뱀 아펩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여러 동물의 몸을 섞은 것으로 보이는 괴물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불상이라는 동물이 나왔다는 점이었다. 뿔은 사슴, 몸은 당나귀, 굽은 소, 얼굴은 말과 비슷한 모습을 한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동물이었다. 그런데 이 사불상이 실재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상상력과 현실을 잇는 다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몬스터'에 대한 것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것은 즐거웠다. 그 몬스터들은 다른 문학 작품에서 등장하기도 한 터라 익숙한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을 비슷한 것끼리 분류해 놓아서 비교하면서 읽는 즐거움도 있었고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산물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할 시간도 되었다. 혹시 사불상처럼 상상이 아닌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답은 어둠 속에 있는 것이고 그리 궁금하지도 않다. 궁금하더라도 공포영화의 주변 인물들처럼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모르는 것이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지하철을 즐겨 이용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 멀미를 해서 차 타는 것을 진저리 친 탓도 있지만 일정한 시간을 유지하는 그 안정감이 좋다. 하지만 그런 지하철에도 복병이 있다. 자리에 앉기만 하면 누군가 슬그머니 다가온다. 심지어 책을 읽느라 모르고 있으면 발을 슬며시 밟으며 쳐다보길 요구한다. 자리 양보를 바라는 것이다. 실제 성격은 그렇지 않은데 인상은 딴 판인지 길을 걷다가도 도움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다. 하물며 갇힌 공간으로 변하는 지하철에서는 일상다반사다. 덕분에 몸이 상당히 안 좋거나 여유로운 시간대가 아니면 자리에 앉는 것을 꺼리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터라 지하철을 탄 시간에도 읽으면서 이동하는데 불편하기는 하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서서 책을 읽노라면 손목이 아파오기도 한다. 눈이 나빠질 수 있다는 위험은 제외하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다가오는 노인을 발견했다. 항상 그렇듯 자리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알고 미리 일어나는데 그 분이 손사래를 치셨다. 앉아서 책을 더 읽으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내게 습관에 가깝다. 그런 행위를 대단한 일인냥 우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결국 자리 양보는 했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다. 그 때 읽었던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책을 읽다보면 의외의 일과 마주치게 되는 일이 많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다음이 너무 궁금해서 걸으면서 읽다가 나무에 부딪힌 적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친구가 실은 같은 책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친해지는 일도 생기고 소설책을 읽다가 얻은 잡다한 지식을 자랑해 해박한 인물로 오인 받는 경우도 있다. 책 욕심에 들어서는 자신이 이렇게 탐욕스러웠구나 하고 놀라게 될 때도 있다. 아직 쌓여 있는 책이 있는데도 새로운 신간이 나오면 눈길이 절로 간다.

그런데 이런 기분을 이해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닉 혼비다. 휴 그랜트가 주연한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동명 원작 소설의 작가로 이름만은 익숙한 작가였다. 그가 <빌리버>라는 잡지에 연재한 서평 칼럼을 모은 것이 이 책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다. 유명한 작가의 독서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만 흔히 생각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할 만한 행동과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서 추천받은 책을 사기도 하고 정말 못 읽겠다 싶은 책은 던져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이 책은 정말 대단할거라고 생각해서 구입했고 산 이후에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읽지 않고 방치한다. 다른 책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쌓인 책들을 읽는 데만도 몇 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책을 사들인다.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평생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하루에 한 권씩 읽고 그 상태로 백 년을 살아도 삼만 육천 오백 권이다. 십만은커녕 사만 권도 못 된다. 책은 계속 쏟아지는데 그 중에서 못 읽은 책들을 생각하면 책으로 가득 채운 거대한 무덤에 안장돼도 눈을 못 감을 것 같다. 아무리 읽어도 읽고 싶은 책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인이 쓴 책은 일 순위로 읽고 평을 해줘야 한다. 결코 좋아하지 않는 분야라도 그렇다.

이처럼 닉 혼비의 책 읽기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금연 관련 서적처럼 현재의 관심사를 반영한 책이 꼬리를 물기도 하고 매제나 친구의 책처럼 지인의 것이라서 읽게 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SF소설에 도전해보겠다고 장담했다가 좌절하기도 한다. 독서애호가가 아니라 문학가의 이름을 짧은 책에서 쉽게 지키려다가 그 내용에 몸서리를 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전부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슬며시 미소 짓게 된다.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예전보다 책을 읽지 않게 변해버렸다. 닉 혼비처럼 열렬한 축구팬은 아니지만 눈을 돌릴 것들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책의 매력만큼은 그만의 고유의 것이다.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전자책이 나와도, 책의 무게에 운동부족을 실감하게 되어도 그렇다. 닉 혼비의 유쾌한 독서일기가 마음에 들은 것은 그런 점이 잘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상에 치여도 읽게 되는 책이기에 그가 읽는 책에 호기심이 더해졌다. 닉 혼비는 잡지 <빌리버>의 편집 방침 때문에 재미없었던 책에 대해서는 제목도 언급할 수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그만큼 읽지 말아야 할 책이 아니라 읽어봐야 할 책 쪽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언급하는 책의 반 수 이상이 아직 안 읽은 책이어서 읽지 않은 책이 크게 늘 위험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