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멀쩡함은 얇디얇은 막으로 나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생각을 물에 비유하자면 표면장력보다는 약간 강한 정도의 막에 둘러싸인 상태가 멀쩡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어느 한도를 넘어선 충격이 있다면 그 막은 터지게 된다. 그리고 그 막이 터져 나오면 물이 터지듯 생각이 흘러넘치고 더 이상 그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것이 광기라는 것이다. 이 책 <광기>에서는 일정 한도를 넘어서 광기를 주체할 수 없게 된 여자 아구스티나를 중심으로 4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구스티나 자신이 말하는 그녀의 어린 시절, 남편 아길라르가 아구스티나를 보는 시점, 그녀의 옛 연인 미다스가 말하는 주말 동안 있었던 일, 아구스티나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까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어째서 아구스티나가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그녀의 광기가 어떻게 심화되었는가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4명은 제각기 다른 시점, 다른 시작에서 말하고 있다. 덕분에 이야기는 지극히 혼란스럽다.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 넘어가고 언뜻은 일련성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물살이 하나로 모이듯 이야기가 몰려든다. 그녀의 현재에서 시작해보면 남편 아길라르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들과 주말을 보내고 나니 아내는 낯선 남자와 호텔에 있었다. 남자는 아내를 데려가라고 그에게 연락을 했으며 그는 그 주말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내의 광기가 더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반면 아구스티나의 옛 애인인 미다스는 그 일에 대해서 남편 아길라르가 곤혹스럽게 느끼는 것을 고소하게 생각한다. 그는 그 주말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있는데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 자신이 어째서 파멸하게 되었는지를 아구스티나에게 말하는 식으로 늘어놓고 있다. 자신이 더없이 사랑한 그녀를 붙잡지 못한 이유부터 자신의 몰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간간이 아구스티나의 외할아버지가 광기에 쌓여간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한 아구스티나는 자신의 입으로 어린 시절을 말한다. 미다스의 말에 따르면 세 군데에 저택을 돌아다니면서 살 정도로 부유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의 실상은 처참히 망가진 형태였다. 아버지는 아구스티나의 동생인 비치를 마구 때렸던 것이다. 아구스티나의 오빠는 이기적이지만 아버지와 닮은 데가 많아서 온갖 사고를 쳤어도 넘어갔지만 착하고 순종적인 아들 비치는 남성적이지 못하다고 아버지는 항상 그를 때렸다. 아구스티나는 맞지는 않았지만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아버지를 숭배하기도 하고 버림 받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아구스티나는 그 불합리한 상황에서 그녀 나름대로 동생을 지키려 하지만 어딘가 어긋나있는 가족들 틈에서 그녀의 순수한 영혼은 조금씩 광기에 물들어간다. 그 과정은 4가지 이야기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며 헌신적인 남편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기미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읽으면서 내내 혼란스럽고 생각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광기의 중심에는 아구스티나가 있지만 다르게 보면 화자 전부가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힌 터라 때로는 아구스티나의 광기에 다른 사람이 휘말린 것인지 그 반대인지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기야 광기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