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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세 편식 걱정 없는 매일 아이밥상 - 성장기 두뇌발달에 좋은 레시피 134
김윤정 지음 / 지식채널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어느 단편 소설에서 남편이 오랜 출장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맑은 국을 내놓는 아내가 등장했다. 여자는 요리를 매우 잘했고 채소만이 들어 있는 맑은 국은 정갈하면서도 시원한 감칠맛이 났다. 그런데 남편은 바람을 피게 된다. 자신을 기다리면서 맑은 국을 끓여 놓은 아내도 소박하지만 그의 입에 맞는 밥상도 전부 잊었다. 아내에게 돌아가 사실을 고백하고 이혼을 요구한 남자는 아내가 군소리 없이 이혼해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순종적인 아내가 그때만큼 만족스러울 때가 없었다. 아내에게 넉넉한 위자료를 주어 죄책감을 털어내고 새로운 여자와의 인생은 순조로웠다. 단 한 가지 불만은 맑은 국이었다.
이전의 아내가 끓여주었던 몇 가지 채소가 들어가지 않던 맑은 국은 어떻게 해도 되찾을 수가 없었다. 같은 재료로 끓여도 그 투명한 국물과 비슷한 것도 만들기가 힘들었다. 맛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남자는 고민하다 전처를 찾아간다. 맑은 국을 만드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남자가 머뭇거리다 요리법을 묻자 여자는 답했다. 남자가 속이 편안하다고 아무렇지 않게 마시던 그 맑은 국은 그가 2~3일 출장을 갔을 때 내내 각종 재료로 육수를 만들어야만 만들 수 있는 음식이었노라고 말이다. 국물을 내는 데에만 통상 이틀, 꼬박 불 옆에 붙어서 끓여야만 하는 국이었다. 남자가 새로 만난 여자가 해줄 리 없는 음식이었다. 남자는 간단해 보이던 한 그릇에 담겨 있던 여자의 애정을 통감하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대부분의 요리는 간단한 것이 없다. 나물만 해도 일일이 손질을 해야 하는데다가 요리의 밑준비부터 정성이 없으면 제대로 되질 않는다. 애정이 없다면 모든 음식은 중노동이 된다. 이 책 <매일 아이밥상>은 그 말을 통감하게 만든다. 아이 기저귀를 가는 것만으로도 식겁했던 사람이라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지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 책은 그런 부모의 노고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 자신의 아이에게 애정 어린 한 그릇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다.
책은 다섯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등 푸른 생선의 유해물질을 예방하려면 녹황색 채소와 함께 조리하라는 기본을 깔아주는 1장부터, 외식하자고 조르는 아이의 입에 몸에 좋은 음식을 쏙 넣어주는 2장, 기본 반찬과 밥, 국, 수프를 가르쳐 주는 3, 4장, 아이에게 먹이고 죄책감을 품지 않아도 될 만한 간식 요리법이 들어 있는 5장이다. 요새 요리책에 몸에 좋은 요리법을 소개해주는 건 많이 나온 편이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아이를 위한' 요리를 그것도 '편식 걱정 없이' 먹일 수 있는 요리를 가르쳐 주는 게 요점이라서 완자가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싫어하는 음식을 애들이 곧이곧대로 먹을 리가 없고 그럼 즉각 밥상에서 내빼는 아이가 생길 확률이 크다. 싫어하는 시금치를 나물로 무쳐서 밥 위에 얹어두고 엄마가 '먹어, 먹어'하는 얼굴로 강요하면 먹고 싶은 아이가 과연 있기나 할까. 그럴 때는 다져서 섞으라는 게 요점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과 섞어서 먹이고 적은 양에서 점차 분량을 늘여서 맛을 들이라고 한다. 어려서 싫어한 음식은 커서도 안 먹는다고 하고 먹여놔서 입맛을 길들여 놓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덕분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완자다. 게다가 아이와 완자를 대량으로 만들어 얼려 놓으면 매번 만들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더 잘 먹게 된다고 한다.
'새우 연근 완자'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새우와 딱딱한 연근으로 아이들의 눈과 혀를 현혹하지만 시금치, 부추, 양배추, 청경채처럼 아이가 안 먹는 채소는 어떤 것이든 다져서 첨가하라고 적혀 있다. 나물로만 주면 안 먹지만 다른 음식에 섞여 들어가면 뚝딱 먹기 때문이다. 또한 '브로콜리 참마 그라탱'에 들어가는 마같이 몸에 좋지만 끈적끈적하다고 아이가 싫어하면 영양소가 다소 파괴되는 것을 감수하고 굽거나 익혀서라도 먹이라 한다. 아예 안 먹는 것보다는 다소의 타협을 하더라도 일단 맛을 보이는 게 낫다는 것이다. 플레인 요거트를 안 먹으려고 하면 직접 만든 귤 잼을 넣으라거나 아이의 입맛에 맞춰서 먹일 수 있는 요리법과 조언이 적혀 있어서 신선했다.
단지 '파양파 수프'처럼 이름만 들으면 단순해 보이는 요리라도 아이가 싫어하는 '파, 양파'를 숨기기 위한 복잡한 조리법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 책 <매일 아이밥상>에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초보자에게 단순한 요리는 들어있지 않다. 한 가지를 먹여도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인지 단순한 반찬의 요리법조차도 몇 단계를 더 첨가해서 아이가 안 좋아할 만한 채소를 숨기는 신기를 선보인다. 더욱이 치킨스톡을 이용해도 된다고 적혀 있기도 하나 1장에서 만드는 법이 제시되어 있는 엄마표 닭육수, 엄마표 토마토소스처럼 작은 부분까지 세세한 공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입이 떡 벌어질 때가 많았다.
그래도 '사과 물김치', '당근 깍두기'처럼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요리가 많고 아이의 편식에 골머리를 썩어온 엄마라면 귀가 솔깃한 요리법이 가득차 있다. 안 먹는 재료들은 갈고, 섞고 숨겨서 먹이느라 공은 갑절로 들겠지만 편식하던 음식들을 어느 순간 아이가 맛있다고 먹고 있으면 뿌듯한 마음을 품게 될 테니까. <3~11세 편식 걱정 없는 매일 아이밥상> 아이의 편식을 고치고 싶거나, 편식의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이 엄마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요리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