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성장이 멈춘 시점에서 나이를 세는 게 때로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육체가 크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세는 관념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많다. 십 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생각하는 법이 크게 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동안의 봤던 것들, 그것에 대해 느낀 생각들로 인해서 사물을 보는 시각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라난 주관은 그리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있어야 세상도 있는 것이다. 죽음은 어떨까. 누구나 죽음이 오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전혀 모르는 타인이 죽었을 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죽음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 죽음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머리로는 성장이 멈춘 육체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노화가 진행되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이 한 줌 재가 되리라 실감하기는  어렵다.

이 책 <죽기 위해 사는 법>은 큰 사고를 겪고 생사의 고비를 오갔던 기타노 다케시의 에세이다. 사실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이 가진 생각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라 그 생각에 거부감을 느끼면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죽기 위해 산다는 말, 삶과 죽음을 성찰한 50대 남자의 말은 내심 호기심이 생긴다.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호기롭게 삶이 짐이고 벗어버리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삶의 언저리에 도달하면 그만큼 살고 싶기 마련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오토바이 사고를 겪고 자신이 보기에도 참혹한 사건 사진을 보면서 당시를 떠올린다. 그 얇은 거죽 밑에 어찌나 많은 피가 쏟아졌는지 자신이 보기에도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이 '그 노인에게 그렇게 많은 피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말하는 식으로 자신의 사고를 담담하게 회상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수혈을 받지 않고 살아난 자신을 약간은 우쭐해하는 것이 느껴지니 정말 묘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스쳐지나간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어느 순간에 확 닥쳐오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겨질 사람이라든지 정리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고 죽는 것은 뻔뻔스럽다고 말하니 인간은 죽음조차도 자연스럽지 않게 된 것 같다. 갑자기 죽음이 왔을 때 남겨 놓은 것이 있으면 싫다고 전에는 속 터지게 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어 주었지만 이제는 후에 그 사람들이 죽음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동정심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는 데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딱히 기타노 다케시의 광폭한 화법을 따라가 볼 생각도 없지만 타인의 죽음 직전과 회생, 그 사고로 남은 상흔 없이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에는 나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지를 막연히 그려보게 되었다. 과연 어느 순간에야 후회가 없을 수 있을까. 죽음 앞에 나는 떳떳할 수 있을까. 죽음 이후가 있어도 없어도 지금의 인생은 지금뿐인데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병상에서의 에세이는 가볍게 읽히지만 삶과 죽음을 말하고 있는 만큼 가볍지 않고, 사고 전에 썼다는 몇 편의 독설은 가볍지 않게 읽히지만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의 글이라는 점에서는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 사람이 언젠가 죽기 위해서 산다면 지금은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을 쳐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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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10-01-1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말 저도 어젠가 했는데...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삶에 유한성을 인식하면 더욱더 삶이 값지죠.^^* 이 아침 에이안님의 좋은 리뷰를 읽게 되서 행운이네요. 잘읽었어요.^^*

에이안 2010-01-15 09:36   좋아요 0 | URL
메멘토 모리, 듣고도 계속 잊게 되는 말이에요. 값진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네요. 칭찬 감사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