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 - 정신분석과 인간의 잠재의식에 대한 보고서, 3판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4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성표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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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꾸지 않지만 어린 시절 단골로 꾼 꿈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낭떠러지를 떨어지는 꿈이었고 두 번째는 태어나 살았던 언덕 위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꿈이었다. 떨어지는 꿈은 패턴도 다양하게 바뀌며 매번 떨어지는 감각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반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꿈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언덕이 가파르거나 눈에 미끄러져 혼자 낙오되는 내용이었다. 물론 꿈을 꾼 시점에서는 이사를 했고 자란 상태였기에 길이 미끄럽다고 집에 못 돌아갈 염려도 없었고 떨어지는 꿈도 떨어지는 도중에 깨어나지 추락한 이후가 나온 적은 없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꿈을 꾼다. 그 내용은 일견 의미 없어 보이지만 대개는 어떤 의미를 혹은 기억을 품고 있다. 이 책 <꿈의 해석>에 따르면 많은 꿈은 그 사람이 품은 은밀한 소망의 충족이라고 한다. 단지 그 꿈이 왜곡되고 변형되어 해석하지 않으면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알 수 없기에 그저 공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꿈을 생각해보면 나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실제로 언덕 위의 집에 살 때 길이 미끄러워 내가 나동그라진 적이 있다고 한다. 어린 아이의 짧은 다리로 올라가기가 버거워보였는지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달랑 들어서 안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꿈은 내가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그리움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프로이트 적 해석으로 성적인 요소를 넣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또한 프로이트는 사람의 꿈이 그 사람의 육체가 지금 느끼는 바와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꿈속에서 다리가 무거워 도망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깨어나 보니 이불이 엉켜서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흔히 춥게 자면 물에 빠지는 꿈을 꾼다고 하지 않던가.

프로이트가 말하는 사례처럼 실제로 들은 굉음은 꿈속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꿈속의 많은 부분이 실제 자신의 기억과 어느 정도의 연관을 품고 있다는 것은 좀 놀랍기는 했다. 사람이 가진 기억은 그 사람이 쉽게 불러 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쉽게 불러내지는 못하지만 분명 기억하는 초기억을 꿈에서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꿈에는 수많은 내용들이 들어가고 그 사람이 느낀 외부자극, 감정, 욕망, 기억들이 엉켜 들어간다.

그게 다양한 형태로 꽃을 피는데 그 밑바탕에 은밀한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형태로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성공적으로 치룬 시험을 반복적으로 꿈으로 재현함으로써 자신을 독려하기도 한다고 한다. 신선했던 것은 도시괴담처럼 들렸던 사이코패스와 일반인의 차이라며 장례식 꿈을 꾼 여성의 행동에 대한 내용이 이 책 <꿈의 해석>에서 사례로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한 여성이 조카가 죽는 꿈을 꾸고 첫 번째 조카가 죽었던 때를 말한다. 그녀의 꿈은 그녀가 헤어진 연인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장례식이 일어난다면 혹여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카가 죽기를 바란다는 것은 아니었다.

꿈은 압축적인 내용이지만 그 바탕에 깔린 사고는 방대한 것이라서 조각 맞추기 퍼즐을 하듯이 하나하나 읽어나가지 않으면 엉뚱하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았다. 프로이트가 실제로 꾼 꿈에서처럼 환자의 사례가 여러 가지 섞이기도 하고 교수 임용에 대한 불안감이 친구를 숙부로 바꾸면서 모습을 달리 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사람의 무의식이 모습을 달리한다니 신선하기도 했지만 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와 달리 <꿈의 해석>의 내용이 단지 헛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익히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다. 그래도 사람의 꿈이 스러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은 소망이 숨어 있다는 발상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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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진단서 - 요리책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식품의 모든 것
조 슈워츠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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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자면 끝도 없지만 때로 먹지 않고 광합성을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임에도 언제부턴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아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먹었던 음식이 독 취급을 받고, 거들떠도 안 봤던 음식은 명약의 반열에 올라선다. 우유만 해도 그렇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우유급식은 의무적이었고 무조건 마셔야 하는 것이었다.

좋아라 마시기도 했고 키가 크는데 도움이 되었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그것이 전부 낙농업계의 흉계이며 덩치는 키워주지만 몸에는 좋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골다공증을 부추긴다나. 이쯤 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건강에 관심이 가기는 하지만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전부 따르다보면 모순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 <식품진단서>는 그런 정보들의 허와 실을 파헤친다. 저자도 캐나다에서 유명한 화학자라고 하니 꽤 신빙성이 있는 편이다. 단지 수많은 속설들을 2~3장 정도의 분량으로 설명해주니 정보가 꽉 차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단숨에 읽기는 다소 어려운 편이다. 그래도 사과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에 사과 한 알이면 의사를 멀리한다"는 말을 의사한테 사과를 던지면 된다는 식으로 글을 풀어나가니 지루하지는 않다.

책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가득차 있지만 한 마디로 하자면 어떠한 음식도 독이 되기만 하거나 약이 되기만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느 돌팔이가 구기자 주스가 생명연장의 영약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달리 그에 따른 어떠한 검증도 없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걱정하는 것과 달리 색소가 들어간 음료, 음료 속에 들어간 벤젠 성분 같은 것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단지 색소나 설탕으로 채워져 있어 영양학적으로는 빈껍데기이므로 과일이나 야채를 권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최근 올라온 유제품에 대한 논란도 호들갑스럽게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하지 않는다. 유당 소화 장애가 있지 않다면 유제품을 적정량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고 저지방인 것은 권하는 편이다. 모든 근거는 과학적 연구를 따르고 있는 터라 검증되지 않은 것은 믿지 않고 농약 잔류성분 같은 경우에도 씻는 것이 당연히 좋지만 식량 수급을 늘리는데 농약이 도움을 줬던 이야기라든지 요즘 검출되는 양은 대개 기술이 발달해 아주 극소량이라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란 말을 덧붙인다.

내용은 과학적 검증과 약간의 재치가 섞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내용은 없다. 프렌치 패러독스를 말하면서 적당량의 알코올은 나쁘지 않고 당연히 과일과 야채는 하루에 여덟 줌 정도 먹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거기에 효능이 입증된 귀리, 통곡물, 아마씨, 베리 류를 더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조화이지 육류를 먹으면서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균형적인 식사를 하면서 가끔은 맛있게 느껴지는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하고 오히려 하나의 이야기에 집착해서 어떤 음식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능한 다양한 색의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게 좋고 어떤 음식이 몸에 좋다고 해서 그것만 먹어서는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진다고 강조한다. 그와 함께 디톡스라든지 검증되지 않은 속설들을 믿지 말라고 경고한다. 온갖 속설들을 과학자의 입장에서 밝혀주니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과일, 야채, 통곡물을 먹으라거나 양배추 맛있게 먹는 법을 가르쳐주는 등 일반적이라면 일반적인 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먹는 것을 고르는 데에 한층 안심이 되니 번역자의 말대로 귀 얇은 사람들을 위한 똑똑한 음식 책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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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발견 심리학 - 일.연애.인간관계의 성공을 위한
사이토 이사무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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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은 표정이 다양하다. 얼굴에 수많은 근육이 숨어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사이코패스에게는 단순히 일그러진 얼굴로 보여 구분이 가지 않는다지만 그 표정은 행복, 분노,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런데 문제는 표정이 그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사람은 사회성을 발달시키고 다양한 표정만큼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기술을 습득했다. 얼굴에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솔직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집단으로 생활을 하다보면 싫은 일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넘길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덕분에 지긋지긋하게 싫은 사람 앞에서 태연히 웃고 있거나 슬픔을 무표정으로 감추는 일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말 한 마디에 상대는 상처를 입고 적의를 품지만 그 사람이 태연하게 웃고 있어서 상처를 준 당사자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적의를 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더 궁금한 사람의 심리를 이 책 <자기발견 심리학>에서 읽어주고 있다. 행복하면 행복한 표정을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짓는 고양이와 달리 사람은 기분이 나빠도 웃고 있어서 속마음을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이 감정을 숨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 역시 굉장한 힘이 들어가는 일이고 감정을 속이는 일 역시 그렇다. 거짓말을 했을 경우 사람들은 통념과 달리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를 빤히 보게 된다. 상대가 자신의 거짓말을 믿고 속아 넘어가는지 확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입으로는 그렇다고 하면서 동작으로는 고개를 젓는다면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 진심이라고 한다. 말과 행동이 자신도 모르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도 역시 그렇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주먹을 꽉 쥐고 탁자를 내려치는 동작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진심을 다시 읽어봐야 한다고 한다. 그저 박자를 맞추기 위한 습관일수도 있지만 누르지 못한 감정이 표정을 감추느라 전념한 사이에 새어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감정을 제어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얼굴이 아닌 동작을 보면 상대방의 진의를 좀 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한 예로 두 남녀가 앉아 있고 남자 쪽은 여자를 향해 최대한 몸을 내밀고 있는 반면 여자는 곧은 자세로 앉아 있으나 의자에 최대한 깊숙이 앉아 있다면 어느 쪽이 그 관계에 더 안달하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거짓말을 판단할 때 화면으로 상대를 볼 수 있는 경우와 소리만 들을 수 있는 경우에 소리만 듣는 쪽이 거짓말인지를 쉽게 판단하고 감정을 읽을 때도 얼굴보다 그 사람의 몸동작을 읽는 쪽이 진짜 속마음을 읽어내기 쉽다. 이런 다른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는 것부터 사람의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또 변화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내용이 숨어 있는 것도 좋았다. 첫인상에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좌우되는 것,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주변에서 반대할 때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 유독 자신에게만 독특하게 구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터라 좀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심리적 약점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유독 손을 자주 씻는 이유가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거나 실언을 하게 되는 경우가 무의식중에 본심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터라 움찔하게 될 때가 많았다. 광기와 멀쩡함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기왕이면 건강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혹은 자신이 무심결에 흘리는 본심을 읽어내는 데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었다. 결국 사람만큼 알기 쉽기도 어렵기도 한 생물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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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픽 -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진 인간의 비이성적 본성 탐구
톰 밴더빌트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김영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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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다가 차에 치일 뻔한 적이 있었다. 뒤에서 질주해오던 차를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아파트 단지 안은 도로가 아닌 건물에 따른 부속대지로 생각했으므로 방심한 탓도 있었겠지만, 단지 안을 고속도로인 것처럼 질주한 차의 탓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치일 뻔한 것이 놀랍기도 하고 당황해서 잠시 멈칫했더니 운전석의 창문이 내려가고 운전자가 입을 열었다. '잘 보고 다녀!'라는 성난 목소리였다. 이어 창문은 다시 올라갔고 차는 아까 일은 없던 일인 듯 다시 질주해서 사라졌다.

당시에는 운전자가 이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정작 이 책 <트래픽>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많은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으면 평소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인다. 더없이 소심한 사람이 자신의 차 앞에 끼어든 다른 차의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며 기어이 추월을 한 후 그 앞을 느리게 달리려 하거나 신호위반은 예사로 하는 속도광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대학시절 점잖은 것으로 유명했던 교수님조차 자신의 앞에 끼어드는 자전거는 확 받아버리고 싶다는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 했었다.

사람들은 차에 탄 순간 차는 자신인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정작 다른 차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인간 간의 소통 수단 중에 중요한 것 두 가지는 말과 눈빛인데 그 두 가지가 차 안에서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떠들어도 앞 차에 전해지지 않고 눈을 서로 맞추기도 어렵다. 그렇게 되면 다른 차에 대한 비인격화가 이뤄지고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더구나 내 차 앞에 끼어들은 다른 차가 아니라 '저 자식이 내 앞에 끼어들었다'며 흥분하는 운전자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노를 직접 전할 수 없으니 속도를 올리거나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면 조수석이나 뒷자리에 앉는 경우 차를 자신으로 표현한 말을 하는 경우도 없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차가 끼어들거나 추월을 해도 크게 흥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어서 자신이 운전자, 자전거 이용자, 보행자 중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바뀐다고 한다. 운전자가 되면 다른 쪽들이 거슬리고 반대로 보행자가 된다면 자전거와 차가 위협거리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독특했던 것은 사람의 마음의 왜곡이 자신이 평균 이상의 모범 운전자라고 착각하게 만들고 교통사고로 16분의 1명꼴로 사망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것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이 보기에는 위태위태한 운전을 하는데도 자신은 모범 운전자이며 다른 사람들이 운전을 엉망으로 한다고 불평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생각 외로 복잡한 정보를 연이어 처리해야 하는 일인데 사람의 뇌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잘 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고 한다.

로봇도 사람처럼 운전하기 어려워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분석해야 하는 것이 운전이라 그에 따른 집중력은 쉽사리 바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익숙하다고 생각해서 긴장하지 않다보면 어떻게 운전해서 집에 왔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이때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한 길이 안전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온 정신을 다해 운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 외에도 도로를 더 건설해도 교통 정체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라든지 각국의 교통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등 교통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느낌이라 다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학술적인 느낌이 있는데도 읽기가 재미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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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
존 론슨 지음, 정미나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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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분 거리였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와 달리 고등학교에 들어서는 30분,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1시간이 넘는 거리를 통학하다보니 멍한 머리로 엉뚱한 생각을 자주 했었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에 몸을 떨면서 어느 학교에나 늘상 있는 고갯길을 오르다보면 절로 초능력을 갈구하게 된다. 친구들과 자주 했던 말은 순간이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하고 겹쳐서 파리 인간 꼴이 나지 않도록 지정 장소로 이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단순히 통학 시간을 줄이고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 엉뚱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엉뚱한 생각을 미군 내 최고인재들이 했었다고 한다. 벽을 향해 걸으면서 자신의 몸의 원자가 분리되고 벽을 통과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명상을 통한 평정을 유지하면 그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사람은 지금도 버젓이 잘 살고 있는 장군이었다고 한다. 그는 군 특수부대 지휘관들에게 초능력부대를 통한 전장에서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지휘관들은 당연히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장군은 무안해졌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실제로 그 지휘관들은 그 주장을 굉장히 뛰어난 제안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에게 알리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은 기이한 내용의 논픽션이다. 존 론슨이라는 저널리스트는 1970년대부터 30년간 미군에서 진행된 기이한 활동들을 이 책에 담고 있다. 미군 내에는 초능력 혹은 심령을 통한 지원 부대가 있었으며 그들을 제다이 전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명칭만을 듣고도 한참을 웃었다. 스타워즈와 스타트랙 같은 SF물을 보는 사람을 괴짜라고 놀릴 것 같은 특수부대 사람들이 초능력을 익히게 만들고 그들을 '제다이 전사'라고 불렀다니 웃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한 훈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염소를 노려봐서 심장을 멎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단 한 번의 성공을 나았는데 그것을 성공시켰다고 처음 예상되는 사람은 한때 꽤나 유명세를 누렸던 용병이라고 한다. 그는 이미 죽었고 그 죽음에는 찬란한 영광을 유지한 내용과 우스갯소리로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것이 각각 병존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저자는 그 용병의 죽음은 물론이고 염소를 죽였다는 내용조차도 가장 허약한 염소를 노려본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시한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3일을 노려봐야 염소를 죽일 수 있다고 한다.

왜 염소를 죽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고 총을 쏘면 1분도 안 걸릴 일은 3일 동안 노려보면서 죽여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염소 백 마리를 노려보기의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말이다. 염소를 노려보는 것으로 살해할 수 있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 사람은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으며 자신의 초능력을 만천하에 떨치고 싶은 것 같았다. 아직도 키우는 햄스터로 실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하려 들고 여기저기에서 그 기술을 가르쳐달라는 제의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뭐랄까 아무리 들어도 말이 안 되는 내용 같은데 당사자는 더없이 진지하니 점점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기괴한 초능력 연구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에 있었다. 대표적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노래를 통해 포로를 심문하거나 심령을 통한 감시 활동과 암살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웃어야 할지 당혹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졌다. 허나 그런 기괴한 연구의 진행중에 일반 시민을 상대로 LSD를 먹이거나 살해를 하는 등의 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는 점, 계속하여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로 희화화해서 포로에 대한 유린 행위를 덮는 고도의 공작이 진행되었을 가능성, 초능력이 인기를 얻으면서 일어났던 집단 자살 같은 집단 히스테리까지 오싹한 부분도 꽤 되었다. 모두가 미친 가운데에는 미치지 않은 사람이 가장 비정상이라는 말처럼 읽으면 읽을수록 알 수가 없어지는 내용이었다. 초능력 부대 그 이면에는 대체 뭐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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