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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JUSTICE 1 - 정식 한국어판 ㅣ 시공그래픽노블
짐 크루거 지음, 알렉스 로스 외 그림,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일상적인 생활을 평탄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반이 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악당은 신념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도 신념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웅들과 달리 그 신념을 드러내는 방식이 사뭇 다를 뿐이다. 악당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신념을 관철시키면서 살아간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데에 다른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조정하는 반면에 악당들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자신과 관계없는 타인이 휘말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다르다. 그렇다면 영웅은 어떨까. 영웅은 보통 사람처럼 신념을 조정하지는 않는다. 오직 자신이 정의라고 믿으면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렇기에 악당과 맞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악당과 영웅은 신념의 방향이나 관철하는 방식이 약간 다를 뿐이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강경책도 불사하는 영웅이 어떤 면에서는 악당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연히 악당과 영웅의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보통 사람들이 불운할 뿐이다. 덕분에 영웅이 악당으로 변하면 정말 무섭겠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이 책 '저스티스'에서는 그 두 가지 부분을 전부 다루고 있다. 악당이 신념을 관철하려고 평소대로 움직이지만 그 방향이 겉으로는 영웅과 같은 측면을 가리킨 경우와 영웅이 악당으로 변해버린 경우를 말이다.
어느 날 전 세계의 악당들은 같은 꿈을 꾼다. 미국을 대표하는 영웅집단 '더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가 지구를 구하는 데에 실패하는 꿈을 말이다. 알 수 없는 공격이 지구를 덮치고 모든 영웅들은 위험을 막아내는데 실패한다. 슈퍼맨은 로이스를 구하지만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녀를 길가에 내려놓는다. 그 판단 착오로 로이스를 잃고 다른 영웅들에게라도 가서 도우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너무 늦어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배트맨조차도 살아남은 아이들 몇 명을 자신의 동굴로 피신시켰을 뿐이었다. 원더우먼, 아쿠아맨, 플래시, 마샨 맨헌터, 그린 랜턴, 호크맨, 호크걸, 그린 애로우 같은 다른 영웅들 모두가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실패한다. 그리고 슈퍼맨은 그 모든 과정을 절망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
슈퍼맨이 절망하는 시점에서 악당들은 매번 꿈에서 깨어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꿈이 계속 반복된다고 해도 오싹해할 뿐이지 어떻게 할 방도를 모르겠지만 악당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절대선이며 절대적으로 옳은 일을 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지구를 위해, 인류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다른 옳은 일을 행하려는 자들과 손을 잡고 적대자를 몰아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즉, 악당들이 영웅들을 퇴치하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성하기로 한다. 그들의 작전은 다방면으로 펼쳐진다. 악당들은 영웅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하기로 한다. 영웅들이 상황을 유지하기만 했었다면 그들은 직접적으로 인류의 삶을 개선시키려고 한다.
가령 포이즌 아이비는 식물을 키워서 식량난을 개선하고 캡틴 콜드는 사막에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서 오아시스를 만든다. 그와 동시에 지구를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계획에 방해되는 영웅들을 하나하나 암살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목표물이 된 것은 아쿠아맨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역에 이물질이 들어왔음을 알고 평소대로 순찰을 나서지만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휘말려 납치되고 만다. 거기에 배트맨은 중요한 데이터가 담긴 CD를 리들러에게 빼앗기고 만다. 점차 악당들에게 영웅들의 위치가 발각되고 영웅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과정에서 영웅들은 여력이 없었고 악당들은 마치 자신들이 인류의 구원자인냥 앞으로 나선다. 이제 사람들도 영웅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에서 목숨의 위기를 맞은 영웅들에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영웅이나 악당이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대립하는 두 집단은 부딪히고 그 결과는 점차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다만 두 집단을 나누는 뚜렷한 경계선은 둘 다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키려는 과정에서 악당들은 영웅들을 죽이려 하지만 영웅들은 악당들마저도 도우려 한다는 것이었다. 원더우먼은 자신을 습격해 온 치타마저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치타는 그런 원더우먼의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해치려 할 뿐이다.
많은 영웅들이 총출동한 것을 볼 수 있어서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그림이 화려하다는 것 이상이어서 어찌나 세밀한지 사진인가 싶을 정도였다. 영웅들의 축은 슈퍼맨과 배트맨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초월자이지만 외계인이고 그의 선한 마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슈퍼맨과 인간이지만 자신이 가진 재력, 기술력을 바탕으로 영웅의 반열에 올라선 배트맨이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영웅들과 악당들로 다소 산만했고 그리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드는 그림과 많은 영웅들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악당들의 연합으로 위기를 맞는 영웅들의 이야기 '저스티스'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