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그래픽 노블)>를 리뷰해주세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공보경 옮김, 케빈 코넬 그림, 눈지오 드필리피스.크리스티나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책을 읽는 것이 즐거운 것은 반 정도는 신선함 때문이다. 새로운 내용이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터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게 되었다. 영화가 개봉하면서 유행을 탄 것인지 지나치게 많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함에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여러 번 읽는 것은 꽤 즐거운 편이었다.

제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지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거꾸로 흘러간다. 마크 트웨인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가장 먼저 오고, 최악의 순간은 나중에 온다는 말이 이 단편이 나오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독자는 사상 최대의 허풍이라면서 비난하기도 했지만 시간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만 거꾸로 가는 시간 속에 살게 된 남자의 이야기라니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 소재였다. 다만 소설은 풍자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영화는 애틋한 사랑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했다는 차이점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단편이었는데 심지어 세피아 색으로 칠해진 그래픽 노블이라니 솔직히 반가웠다. 자신의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과 그림을 그대로 보는 것은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주름이 가득하지만 일반적 아기의 체구인 벤자민 버튼이 태어나고 버려진다. 반면 원작에서는 벤자민의 키가 아버지 로저 버튼 보다 큰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을 그냥 상상했을 때와 아기들이 쓸만한 요람 속에 있는 벤자민 버튼의 그림을 직접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아버지보다 큰 키와 발밑에 닿을 것 같은 수염을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로저 버튼이 병원에 도착하자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 '아버지'인 로저 버튼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벤자민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고집으로 가득 찬 표정을 보여준 로저 버튼의 모습은 납득이 갈만도 했다. 지역유지인 자신의 큰 아들이 80세 노인의 체구로 태어났다면 그럴 만도 했던 것이다. 고집으로 가득 찬 로저 버튼은 벤자민을 데려가지만 자신의 육아방식을 고수한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이 약간 특이할 뿐이지 또래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아기' 벤자민이 시가를 피다가 걸렸을 때 그다지 혼내지 못한다. 그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약간 미안해하기도 하고 최대한 달래주려 아버지가 강요한 딸랑이를 무료한 표정으로 흔들면서 지나가는 벤자민의 표정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후 벤자민은 점점 젊어진다. 제목 그대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기 때문이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가 젊어지다 못해 어려지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한다는 것이다. 벤자민의 시간의 방향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에게도 시간은 불가항력인데 사람들은 그가 튀어 보이기 위해서 시간을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것만으로도 평범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던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색다른 것 그 이상이었다. 그래픽 노블로 봐서 더 특별했던 점도 있었다. 그리고 책의 반 분량의 그래픽 노블이 끝나면 원문이 수록되어 있어서 비교하면서 다시 읽는 것도 즐거웠다. 글이 어떤 식의 장면으로 그려져 있었는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평범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나누기 위한 기준이라지만 역시 평범하다는 것이 가장 나을지도 모른다. 색다른 인생은 흥분될지도 모르지만 고난도 그만큼 가득하니까 말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새로운 느낌의 벤자민 버튼을 접할 수 있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문학동네 것이 떠오르네요.
같은 작가가 쓴 다른 단편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점이 좋더군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이나 영화를 접한 사람 혹은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소재를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누구나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므두셀라라고 부르던지"
(P30, 늙은 모습으로 태어난 아들에게 빈정거리는 말)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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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 The SandMan 1 - 서곡과 야상곡 시공그래픽노블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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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린 아이는 많은 시간을 자면서 보내는 반면 어른이 될 수록,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자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한 때는 아무런 의문도 없던 자는 시간에 대한 의문이 생긴 적이 있었다. 언젠가 영원한 잠에 빠질 거라는 당연한 순리를 의식하게 된 탓이었다. 앞으로 계속 잠이 든 채 깨어나지 못하는 날이 올텐데 하루의 삼분의 일을 잔다는 것이 낭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잔다는 것은 깨어 있을때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일이기도 하다. 단백질 구조 이상으로 인해서 잠들지 못하는 유전병에 시달린 이탈리아 일가는 병이 발현되면 1년 이내에 사망하고 말았다.

잔다는 일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숙면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는 동안 꿈을 꾸는 것이 숙면을 방해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품게 되고 자는 동안이나마 누릴 수 있는 꿈의 세계의 무궁무진함에 감탄하게도 된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꿈속에서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그 꿈의 향방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의 꿈의 주인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가 인간에게 펼칠 수 있는 영향력은 분명 거대한 것일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 행복한 꿈을 선사해 평안한 잠이라는 큰 선물을 줄 수도 있고 못된 악당에게 평생 깰 수 없고 반복되는 악몽 속에 빠뜨려 그 인생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픽 노블 '샌드맨'에서는 바로 그런 꿈의 주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평소에는 관대한 면모도 보이는 샌드맨에게 문제가 생긴다. '악마왕'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남자가 자신이 이끄는 단체들과 함께 '죽음'을 잡아두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하지만 붙잡힌 것은 오히려 꿈의 주인인 '샌드맨'이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응축시킨 핏빛 보석, 꿈의 모래, 왕의 투구를 쓰고 있었다. 사악한 원으로 이루어진 흑마술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의 보물 세 가지를 잃어버리고 구속당한다.

사악한 악마왕은 죽음을 잡지 못했지만 꿈을 사로잡은 사실을 깨닫는다. 꿈을 사로잡은 순간부터 기이한 질병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잠들어 있으려 하는 사람, 잠들지 못하는 사람, 지속적인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쓰러지지만 꿈을 사로잡은 남자는 결코 그 기회를 흘려버릴 생각이 없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 꿈의 주인에게 자신에게 세상의 권력을 달라고 요구한다. 변치 않는 생명, 무한한 힘, 복수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꿈의 주인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그는 거절한 채 그대로 시간을 보낸다.

잠든 이들은 깨어나지 못했고 잠들지 못한 이들은 죽어갔다. 꿈의 주인을 사로잡은 흑마술사 단체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그들도 늙어가고 있었다. 포로의 영향력인지 그들도 평안한 잠을 빼앗긴지 오래였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씩 변해간다. 배신자가 나와서 단체의 모든 보물을 훔쳐간 것이다. 그 안에 샌드맨의 세 가지 물건도 들어 있었다. 샌드맨은 그저 기다렸다. 자신을 사로잡은 자가 늙기를, 시간 속에 틈이 생기기를 말이다.

그리고 악마왕이라고 불리던 자가 '늙은' 악마왕이 되고 그의 아들이 샌드맨에게 같은 요구를 한다. 샌드맨은 그 제안도 거절한다. 그렇게 잡힌지 70년이 흐른다. 옛 악마왕이라고 불리던 자의 아들도 늙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얻을 수 있었으나 거절당한 것에 매달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꿈의 주인이 바라던 틈이 생긴다. 샌드맨은 이제 자신의 복수를 행하려 하고, 자신의 권좌를 되찾으려 하며, 자신이 잃어버린 세 가지 보물을 되찾기 위해 나선다.

이때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뜻하지 않은 기회에 꿈의 주인을 사로잡은 인간들의 이야기에서 모든 꿈의 주인인 샌드맨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샌드맨은 모든 상황을 예전으로 돌려놓으려 하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평안한 잠의 기회를 얻는다. 샌드맨은 인간이 아니고 그의 보물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은 음울한 편이었다. 특히 보석을 찾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 이야기는 작가인 닐 게이먼이 말하듯 '정말 끔찍한' 편이었다.

허나 정작 놀라웠던 것은 샌드맨의 태도였다. 1화에 나오는 말을 보면 샌드맨의 시간도 인간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흘러가는 것을 체감하기는 매한가지라고 한다. 시간에 따라 늙지는 않지만 70년을 원 안에서 갇혀 보냈다면 미칠 듯 지루한 것 마찬가지란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정도까지는 관대한 태도를 유지한다. 자신의 보물을 빼앗아 간 자들에 대해서 그리 잔인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모래주머니를 찾는 것을 도와준 콘스탄틴이나 보석을 찾는 일을 도운 예전 저스티스 리그의 히어로들에게 보상을 해준다.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의 감정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투구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대결에서는 샌드맨이 내놓은 누구도 짓밟지 못하는 답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잔인한 부분이 없지 않아서 다크 판타지에 가까운 반면 그와 그의 동족인 '영원'들은 인간이나 다른 존재에 관대한 편이라 어둡게만 흘러가지는 않는 편이었다. 인상적인 이야기와 신선한 존재인 샌드맨을 다룬 '샌드맨 01-서곡과 야상곡' 재미있게 읽었다. 서곡이라는 말에 맞게 샌드맨이 힘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어서 설명적인 부분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색적인 맛이 있어서 좋았다. 저렇게 관대한 꿈의 주인이라면 존재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그를 사로잡아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인간만 없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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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이어 원 세미콜론 배트맨 시리즈
데이비드 마주켈리.프랭크 밀러 지음, 곽경신 옮김, 리치먼드 루이스 그림 / 세미콜론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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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한 일로 인해서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 경우가 있다. 별 생각 없이 시작한 게임의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끊임없는 게임오버 소리를 듣거나 애착을 느끼기 시작한 소설 주인공의 허망한 사망 등이 그렇다. 그 중에 제일 싫은 것은 마음 놓고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실컷 나쁜 짓을 한 악당이 싱글거리면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볼 때 그렇다. 더구나 그 이후도 없이 영화가 끝났을 때는 울화가 부글부글 치밀어 오른다. 현실이 더 영화 같다지만 현실 속에서는 불합리한 일이 너무 많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고 이긴 사람이 정의가 되고 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웅을 꿈꾼다.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누군가 대신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현실이 아니라면 만화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나마 말이다. 사실 진짜 영웅이 존재한다면 그 영웅이 있게 만들 정도의 끔찍한 현실 상황을 한탄해야 하거나 영화 '핸콕'의 주인공처럼 범인 하나를 잡자고 수많은 기물을 부숴 꽤 많은 손해를 안겨 주는 걸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중 매체 속의 악인들이 보였을 때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불안해한다.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나 가족이 저런 사람의 희생자가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영웅을 바랄 수밖에 없다. 위급한 순간에 나타나 구해주는 사람을 싫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덕분에 이야기 속에서는 온갖 맨들이 등장한다. 특이한 거미에 물려 초인적 능력을 가진 스파이더맨부터 태생부터가 이미 인간이 아닌 슈퍼맨까지가 그렇다. 허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은 배트맨이 아닐까 싶다. 사실 박쥐를 형상화한 갑옷을 입고 싸우는 영웅이라니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초인적인 능력 없이 악당들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계속 고뇌하는 영웅이라니 매혹적인 면이 더 크다. 능력으로 치면야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 쪽이 더 크겠지만 어린 시절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 악과 싸운다는 쪽에 더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브루스 웨인은 거대기업 총수이고 상당한 지능, 운동신경을 가진 인물이니 어디까지나 다른 히어로물의 주인공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정작 접하기는 영화로 봐서 몰랐지만 팀 버튼의 배트맨 1만해도 20년 전 영화라 하니 배트맨의 탄생은 이미 오래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인기 캐릭터의 부활을 꿈꾼 회사 측에서 다시 배트맨의 처음을 심도 있게 그리기로 하고 낸 작품이 바로 '배트맨 이어 원'이다. 그런데 좀 허심한 부분이 있는데 배트맨의 탄생을 다시 그리겠다고 자원한 프랭크 밀러가 그림 쪽에서는 손을 떼고 글만 썼다는 부분이었다. 이 사실을 미처 몰랐기에 조금 실망해버렸지만 그래도 소재는 배트맨이고 프랭크 밀러의 깊이 있는 내용은 그대로라 꽤 재미있게 읽었다. 그림도 눈에 익으니 점차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

이 책 '배트맨 이어 원'은 다시 태어난 배트맨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기본은 같지만 세부 사항은 다르다는 느낌이 조금 있다. 이야기는 두 사람이 고담 시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18년 동안의 준비를 끝내고 돌아온 브루스 웨인과 무언가 문제를 일으켜서 다른 도시로 전근을 온 제임스 고든이다. 브루스 웨인은 겉으로야 고담시에서 가장 부유한 미혼 남성이라 그런지 언론에서 그가 돌아왔음을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반면 경찰인 제임스 고든은 비행기가 아니라 기차를 통해 고담시에 들어오는데 그 도시는 혼란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차역으로 마중을 온 형사는 전근을 왔지만 직책이 부서장인 고든에게 지나치게 허물없이 대한다. 형사의 이름은 플래스였고 건방진 태도도 태도였지만 약간 불량한 소년들에게 지나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고든이 눈에 들어온다.

혼란스러운 죄의 도시에 들어 온 두 사람은 저마다 준비를 시작한다. 브루스 웨인은 자신의 부모님이 살해당한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었고 그 이후 18년 동안 단련을 해왔다. 언젠가 세상에 나아가 악과 싸울 그날을 위해서 말이다. 고든은 무슨 문제를 일으켰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강직한 형사인 그는 쓸데없는 문제에 휘말린 것으로 보였다. 부패한 경찰 조직은 그를 반기지 않았고 경찰청장도 그를 눈의 가시로 여긴다. 부서장이 된 그가 자신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자 플래스는 고든을 없앨 계획을 세운다.

상황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는데 두 사람 다 문제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아직 배트맨이 되지 못한 브루스는 변장을 하고 거리에 나갔다가 시비에 휘말리고 그 와중에 창녀인 셀리나와 싸우고 만다. 그 일로 인해서 그는 경찰차에 태워진다. 고든 쪽도 상황이 그리 나은 편은 아니었다. 고든이 퇴근하던 것을 기다려 여러 명의 남자들이 그를 습격해온다. 고든은 반격하지만 예전만한 솜씨를 발휘하지 못했고 엉망으로 맞고 만다. 쓰러진 고든의 위로 그들은 이것은 경고에 불과하고 임신한 아내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어 고든의 귀에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고담 시로 들어오는 처음에서 배트맨이 탄생하기까지 그리고 탄생한 이후의 이야기가 나오는 터라 꽤 흥미로웠다. 팀 버튼의 배트맨 2에서는 악덕 대기업 총수의 비서였지만 살해당해서 캣 우먼이 되는 셀리나가 이 책에서는 원래 창녀였다가 배트맨이 언론의 주목을 받자 창녀에서 도둑으로 직업을 바꾼 여자로 나오는 점이 특이했다. 그러나 가장 특이했던 점은 배트맨의 조력자로 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특히 경찰 부서장인 고든의 경우에는 그와 대등한 느낌이 없지 않았고 하비 덴트 역시 꽤 비중 있게 나오는 점이 신선했다. 고든의 고뇌와 배트맨의 고뇌가 서로 맞물리는 이야기 '배트맨 이어 원' 정말 재밌게 읽었다. 검은 가면으로 정체성을 감춘 고뇌하는 영웅이란 소재는 앞으로도 질릴 일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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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JUSTICE 1 - 정식 한국어판 시공그래픽노블
짐 크루거 지음, 알렉스 로스 외 그림,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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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일상적인 생활을 평탄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반이 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악당은 신념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도 신념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웅들과 달리 그 신념을 드러내는 방식이 사뭇 다를 뿐이다. 악당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신념을 관철시키면서 살아간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데에 다른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조정하는 반면에 악당들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자신과 관계없는 타인이 휘말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다르다. 그렇다면 영웅은 어떨까. 영웅은 보통 사람처럼 신념을 조정하지는 않는다. 오직 자신이 정의라고 믿으면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렇기에 악당과 맞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악당과 영웅은 신념의 방향이나 관철하는 방식이 약간 다를 뿐이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강경책도 불사하는 영웅이 어떤 면에서는 악당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연히 악당과 영웅의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보통 사람들이 불운할 뿐이다. 덕분에 영웅이 악당으로 변하면 정말 무섭겠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이 책 '저스티스'에서는 그 두 가지 부분을 전부 다루고 있다. 악당이 신념을 관철하려고 평소대로 움직이지만 그 방향이 겉으로는 영웅과 같은 측면을 가리킨 경우와 영웅이 악당으로 변해버린 경우를 말이다.

어느 날 전 세계의 악당들은 같은 꿈을 꾼다. 미국을 대표하는 영웅집단 '더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가 지구를 구하는 데에 실패하는 꿈을 말이다. 알 수 없는 공격이 지구를 덮치고 모든 영웅들은 위험을 막아내는데 실패한다. 슈퍼맨은 로이스를 구하지만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녀를 길가에 내려놓는다. 그 판단 착오로 로이스를 잃고 다른 영웅들에게라도 가서 도우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너무 늦어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배트맨조차도 살아남은 아이들 몇 명을 자신의 동굴로 피신시켰을 뿐이었다. 원더우먼, 아쿠아맨, 플래시, 마샨 맨헌터, 그린 랜턴, 호크맨, 호크걸, 그린 애로우 같은 다른 영웅들 모두가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실패한다. 그리고 슈퍼맨은 그 모든 과정을 절망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

슈퍼맨이 절망하는 시점에서 악당들은 매번 꿈에서 깨어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꿈이 계속 반복된다고 해도 오싹해할 뿐이지 어떻게 할 방도를 모르겠지만 악당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절대선이며 절대적으로 옳은 일을 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지구를 위해, 인류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다른 옳은 일을 행하려는 자들과 손을 잡고 적대자를 몰아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즉, 악당들이 영웅들을 퇴치하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성하기로 한다. 그들의 작전은 다방면으로 펼쳐진다. 악당들은 영웅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하기로 한다. 영웅들이 상황을 유지하기만 했었다면 그들은 직접적으로 인류의 삶을 개선시키려고 한다.

가령 포이즌 아이비는 식물을 키워서 식량난을 개선하고 캡틴 콜드는 사막에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서 오아시스를 만든다. 그와 동시에 지구를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계획에 방해되는 영웅들을 하나하나 암살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목표물이 된 것은 아쿠아맨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역에 이물질이 들어왔음을 알고 평소대로 순찰을 나서지만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휘말려 납치되고 만다. 거기에 배트맨은 중요한 데이터가 담긴 CD를 리들러에게 빼앗기고 만다. 점차 악당들에게 영웅들의 위치가 발각되고 영웅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과정에서 영웅들은 여력이 없었고 악당들은 마치 자신들이 인류의 구원자인냥 앞으로 나선다. 이제 사람들도 영웅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에서 목숨의 위기를 맞은 영웅들에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영웅이나 악당이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대립하는 두 집단은 부딪히고 그 결과는 점차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다만 두 집단을 나누는 뚜렷한 경계선은 둘 다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키려는 과정에서 악당들은 영웅들을 죽이려 하지만 영웅들은 악당들마저도 도우려 한다는 것이었다. 원더우먼은 자신을 습격해 온 치타마저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치타는 그런 원더우먼의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해치려 할 뿐이다.

많은 영웅들이 총출동한 것을 볼 수 있어서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그림이 화려하다는 것 이상이어서 어찌나 세밀한지 사진인가 싶을 정도였다. 영웅들의 축은 슈퍼맨과 배트맨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초월자이지만 외계인이고 그의 선한 마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슈퍼맨과 인간이지만 자신이 가진 재력, 기술력을 바탕으로 영웅의 반열에 올라선 배트맨이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영웅들과 악당들로 다소 산만했고 그리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드는 그림과 많은 영웅들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악당들의 연합으로 위기를 맞는 영웅들의 이야기 '저스티스'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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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1 시공그래픽노블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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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울화가 치미는 일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백주대낮에 길을 걷다가 갑자기 삿대질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던지 하는 것 같은 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 정도는 짜증나는 일 정도이지만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있다. 특히 내전 지역에서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더욱 그렇다. 거기에 피해자가 어린 아이일 때는 마음 한켠이 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 히어로에 열광하게 된다. 현실에 있지 않은 영웅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제 끝이구나 하고 포기하게 되는 위험한 순간에 짠하고 나타나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영웅을 말이다.

이 그래픽 노블 '왓치맨'에 등장하는 히어로들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다. 단지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을 구해줄 영웅을 바랐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이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촉발시킨 존재가 바로 '후디드 저스티스'였다. 그는 뒷골목에서 범죄자들을 만난 사람들을 도와주고 홀연히 사라진 히어로였다. 그 과정에서 범죄자들은 큰 부상을 입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자업자득으로 여긴다. 그리고 시민을 구한 정체불명의 인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두건과 목에 감고 있는 올가미에 착안해서 그의 별명이 붙여진다. 언론에서 그에게 붙인 이름은 '후디드 저스티스'였고 이 사건은 영웅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인다.

이어 비리를 폭로한 '더 실루엣'이라는 여성 히어로가 등장하고 경찰관 출신의 '나이트 아울'이 등장한다. 책에 나이트 아울의 자서전이라는 식으로 실린 글에서 나오듯 경찰관 이었던 홀리스는 '후디드 저스티스'의 등장을 보고 자신도 저런 히어로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몸을 단련하고 자신의 신분을 속일 복장을 만들고, 이름을 무엇으로 할 지 고민한다. 그러던 와중에 동료가 빈정거린 '나이트 아울'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정식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사람들을 위협하는 술주정뱅이를 처리하는 것으로.

이쯤 되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책 '왓치맨'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실은 보통 사람이다. 슈퍼맨처럼 외계에서 날아온 초능력자도 아니고 스파이더맨처럼 특이한 거미한테 물린 적도 없다. 단지 영웅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섰고 자신의 신분을 이상한 복장으로 숨기고 있을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배트맨에 가깝다. 신체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장비로 보완하는.

왓치맨 속에서는 히어로의 전성기인 것 마냥 여러 히어로가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냉전시대가 끝나자 경찰들이 반발하고 정부의 허가가 없이는 범죄자를 처단할 수 없다는 법안이 생겨난다. 이때부터 히어로들이 갈 길은 나누어졌다. 신분을 숨기고 있던 복장을 벗어던지고 언론에 본인의 이름으로 나서던지 아니면 복장을 버리고 히어로에서 은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 외는 정부 쪽 사람이 되어서 그 쪽에서 일해야 한다.

결국 히어로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 법안이 통과된 이유도 있었지만 한 때의 유행이었던 히어로에 대한 인기가 사그라든데다가 정말 초능력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미스터 맨해튼'이고 원래는 과학자였다. 허나 실험 중의 사고로 그는 사망했고 그 와중에 독특한 힘을 얻었다. 산산조각이 나서 사망한 그는 자신의 몸을 재구성해서 부활한다.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히어로의 등장에 이미 20년이 흘러 나이가 든 히어로들은 대부분 은퇴를 선택한다.

기존에 있던 히어로 중에 남은 자는 로어셰크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로어셰크가 수배자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정부쪽에서 일하고 있던 기존의 히어로 '코미디언'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그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때부터 히어로들에 대한 위협이 시작되고 그 너머의 진실을 로어셰크가 파고들어간다.

인물 하나하나가 독특하기도 했지만 스마일 배지 위에 흐르는 피로 시작된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단숨에 읽어나갔다. 점차 이어지는 히어로들에 대한 위협과 그들이 실제로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점이 더 흥미를 더했다. 로어셰크의 정체도 궁금했지만 중간에 신문가판대 옆의 아이가 읽고 있는 만화의 내용과 책의 주요 내용이 맞물리면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공을 들인 티가 나고 이야기도 짜임새 있어서 정말 재밌게 읽었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왓치맨' 정말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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