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는 공적공간일까, 사적공간일까? 지난번에도 한번 전자인간님 서재에서였나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던걸로 기억하는데, 둘 다 맞다. 각각의 개인들은 사적공간으로 애초 블로그를 시작했을 것이니 사적공간이요, 하지만 감추어져있지 않고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공적공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사적공간으로 활용을 할 것이요, 어떤 이는 공적공간으로 볼 수도 있는데, 결국 논란의 시작은 거기에서 비롯되는게 아닐까 싶다. 또 그것이 '블로그'이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고. 개인이 따로 만들어 독립된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공개되어있더라도, 사적영역의 비중이 훨씬 클 것이요, 그렇지 않고 어느 특정 사이트 안에서 계정을 받아 사용한다면 공적영역의 비중이 그보다는 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자가 사적영역으로서의 성격보다 공적영역으로서의 성격이 더 크다는 말은 아니다.

  나 같은 컴맹들은 개인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활용하기란 어렵고, 대개는 홈페이지를 꾸리고 싶은데 못꾸리는 사람들이 블로그에 정착하지 않나 하는 생각. 많은 이들이 뭔가 끄적이고 싶은 공간이 필요한데, 홈페이지를 꾸릴 실력(?)은 못되고, 그러니 활용하기 편한 블로그로 기어들어오는게 아닐까. 그래서 블로그 내에서 어떤 책을 읽고, 혹은 영화를 보고, 자신이 느낀 바를 조용히 서술해나가기도 해보고, 때로는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이번에 책을 몇 권 질렀어요, 이런 책을 읽고 있어요,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요, 보세요 이쁘죠, 나는 이런 상상을 가끔 하곤 해요, 등등의 신변잡기적 글쓰기를 하는거라 생각한다. 개중에는 값비싼 카메라와 고가의 와인을 찍어 올리는게 못마땅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가 감당하기 힘든 야한 페이퍼에 후끈후끈 거릴 수도 있겠다. '쓰는 개인'은 아무렇지 않아도 '보는 개인'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못마땅할수도. 

  이건 나의 생활이니 허용가능하고, 이건 나의 상상이니 허용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나의 생각과 상상은 생활의 일부이므로. 다만 드러나지 않는 무형의 산물일뿐. 생활이냐 상상이냐를 따지는건 별의미가 없어보인다. 값비싼 물건을 사서 찍어 올리는건 일반적인 평균에서 볼 때 벗어나 있는 것이고, 야한 생각을 페이퍼로 작성하는 것 또한 평균에서 볼 때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굳이 평균점을 찾아야할 필요도 없다. 어떤 이들은 비싼 물건이 찍힌 사진을 보고서, 이쁘다, 아름답다를 연발하고, 어떤 이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야한 이야기에 멋지다, 솔직하다, 를 연발할 수도 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사치스럽다거나 돈많다고 자랑한다, 고 볼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너무 노골적이다, 낯뜨겁다, 라고 볼 수도 있다. 느끼고 생각하는 바야 작성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보는 이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불만의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논란의 대상이 된 페이퍼나 서재주인장뿐 아니라 블로그질을 하는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적용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말아라, 할거다, 공방을 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구나 라고 염두에 둔다면 서로를 배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전에 따우님과 KJ님께서 주고 받은 글처럼. 결국은 공자님 말씀처럼 되어버린건가. -_-v


  
p.s. 1. 논란의 페이퍼를 보니, 로그인을 안하고 쓰니 사람들이 눈치 안보고(?) 자유롭고 솔직하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 같기도 한데, 익명성으로 인해 다소 막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로그인하고 쓰는게 낫다고 생각.

p.s. 2. 어떤 논란에 대해 말 할 권리도, 말 하지 않을 권리도 누구에게나 있다. 자주 오가는 사람들은 그걸 볼 수 있을테고, 뜸한 사람들은 못 보고 넘어갈테고. 예전에 초창기에는 적응이 잘 안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 무슨 일이 있구나, 정도만으로 감지 했는데, 오래(?) 정착해 지내다보니 논란이 일면 상황파악이 된다. 아니 그보다 '관심'의 문제인건가.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누구에게나 말 할 권리도, 말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말 하지 않는다 해서 생각이 없다고 봐선 곤란하다. 인터넷 상의 이런 문제들의 결말이 언제나 뻔하지, 라고 생각해서 애써 무심하신 분들도 계시고, 적당히 할 말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p.s. 3. '2'와 관련해서. 그치만 평소에 이런저런 주제에 대해 말씀 많이 하시던 분들이 너무 조용한 것도 이건 아닌데 싶기도 하다. 사회적, 정치적인 큰 주제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애써 무심한 것도 문제가 아닐까. 인터넷상에서의 논란이 언제나 그렇지, 라는 핑계로, 혹은 지저분한 물에 발담그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자기견해를 애써 감추기보다 차라리 대놓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하는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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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4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4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alei 2007-10-04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이 오랫만에 뻬빠 쓰셨넌데 왜 댓글 안달아요?

마늘빵 2007-10-04 21:52   좋아요 0 | URL
엇, 라일라님 뻬빠 아직 못봤어요. 스님은 라일라님 너무 좋아하셔. 질투나. :p

Mephistopheles 2007-10-04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손잡고 긍정적인 양비론자의 길을 걸어갑시다 아프님..ㅋㅋㅋ (농담입니다.^^)

마늘빵 2007-10-04 21:53   좋아요 0 | URL
음 그렇게 된건가요? -_-a 갸웃. 그냥 간단하게 '브리핑 오늘'에 섞어서 한 문단 넣으려고 했는데, 이거 뭐 쓰다보니 길어져서 따로 뺐어요.

antitheme 2007-10-05 00:59   좋아요 0 | URL
양비보다는 양시론이 좋지않을까요?

마늘빵 2007-10-05 01:03   좋아요 0 | URL
양비도 양시도 염두에 두고 쓴건 아닌데... 음. 결론이 그리 되었습니다. 원론적으로는 저는 양비나 양시는 잘 취하지 않는답니다. 주제에 따라 다르겠지만.

2007-10-04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10-04 21:54   좋아요 0 | URL
<28주후>는 봤는데 <28일후>는 못봤어요. 비슷한건가요. -_-a 좀비영화류던데. <28주후>는 제법 재밌었어요. 다른 좀비류에 비해 스케일도 컸고. 파란 하늘 상공에서 바라보는 폐허가 된 도시의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07-10-04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10-04 23:05   좋아요 0 | URL
오홋, 그렇게 되는거군요. ^^ 참고 하겠습니다.

Heⓔ 2007-10-04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하지 마라, 이거 해라, 라고 말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만..
중요한 건 그 대상을 본인에게 적용시켜도 똑같아지는 논리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봅니다.
현재 논란이라고 할 만한 글에 달린 것들을 보면..그렇더라구요...

암튼.. 블로그는 공적이냐 사적이냐....흠..

블로그 주인이 공적인공간으로 활용한다면 공적으로 보면 되고
사적인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사적으로 보면 된다고 봅니다..
흠..자기 마음대로 공적이냐 사적이냐 나눌 수 있으니..
따지고보면 사적인 곳에 가깝겠군요 ^^;
제경우 언제나닷컴은 공적인 곳에 가깝고 서재는 사적인 곳에 가깝군요 -_-aa

마늘빵 2007-10-04 22:04   좋아요 0 | URL
음, 블로그나 홈피에 대해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겠지만, 다음, 네이버, 티스토리, 이글루스, 알라딘, 예스 등의 사이트 안에 들어와있다는 점에서 공적으로 볼 수도 있단 생각입니다. 또 각 사이트마다의 구조에 따라서 조금씩 성격이 다르겠지만요. 네이버 블로그 같은 경우는 거의 사적공간이나 마찬가지인거 같더라고요. 좀 꾸려본 결과 혼자 노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크크. 글쎄 알라딘도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히님도 두 개 운영 중이시죠. :) 전에 한번 가봤습니다만.

Heⓔ 2007-10-04 22:22   좋아요 0 | URL
사적이냐 공적이냐는..그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일 것 같아요..
서비스업체의 관여나 동서비스이용자의 유대감으로 나눈다면..
알라딘서재는 관리자들이 얼마든지 페이퍼를 거를 수 있고..
알라딘마을[현재는 최근서재글]을 통해 연결될 수 있으니 공적인 곳에 가깝고..
글을 쓰는 사람의 메세지에 따라 나눈다면..
사적인 이야기를 쓰는 페이퍼들이 많으니..
사적인 곳에 가깝고..
전 메세지(?)에 따라 블로그를 공적인 곳으로, 서재를 사적인 곳으로 규정(?)했습니다만...
서비스 업체의 관여도에 따라 나눈다면 반대가 되겠구요 ㅎㅎ;


암튼..아프님 말씀처럼..알라딘도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자기 생각이랑 다르다고 날을 세우는 건 알라딘에선 안 보일 줄 알았는데..
흠..역시 사람이 여럿 모이면 다 똑같나봐요 @_@;;
 


  처음 세글자 이름 대신 필명이란걸 사용해본 때가 아마도 98년 무렵이었던거 같다. 인터넷 이란게 생기기 전인 98년에 컴퓨터를 샀더니 유니텔이란걸 한달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줬고, 단순한 이 장삿속에 순진하게 넘어가 유니텔을 한달 써본다고 들어갔다가 내내 사용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달이면 충분히 그 공간에 적응이 되고, 지금같이 블로그를 꾸릴 수는 없었지만, 클럽에 가입해서 나름대로 게시물을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니, 다른 곳을 알았다해도 - 당시엔 너무 어설프게 알았다 -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나는 필명을 여러 차례 바꾸었다. 유니텔에서 처음에 내가 어떤 필명을 사용했는지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나의 기억력이란 이런 식이라니깐. 다행히 전에 이런 주제로 써놓은 글이 있어 살펴봤더니, '머루' '크롬'이라는 필명으로 시작해서, '폐문'으로 한동안 고정해서 사용했다고 되어있다. 가상공간에서의 필명을 만드는 일은 곤혹스럽다. 나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는 생각은 동시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적절한 대답이 나오지 않고 역시 나오지 않는 대답만큼이나 필명을 짓는 일도 어렵다. '크롬'은 우리 마왕님(신해철)이 당시 낸 음반에서의 필명이 '크롬'이었기 때문에 사용했고, '머루'는 그야말로 유치찬란하게도 필통에 써있는 '머루와 다래'에서 따왔었다. 

  이후 고민 끝에 '폐문'이라는 필명을 얻었는데, 마침 힘든 고등학교 생활에서의 방황이 대학에서까지 이어지던 그때의 내 심정과 마음이 닫혀있다는 문과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사용했음에도 '폐문'이란 필명을 포기한 것은, 필명이 나를 더욱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더 어둠의 자식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거기서 '이데아' 란 필명으로 넘어갔는데, 이는 경제학에서 철학으로 전과하면서 철학에 대한 내 애정의 정도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 또 당시에 접했던 플라톤 철학에 매력을 느끼면서 그리된 것이다. 

  그 이후에도 몇 가지 더 있었는데, 건너뛰어 대략 최근 2-3년 정도를 살펴보면, '아프락사스'와 '(트로피컬)빠숑'으로 몇 곳에 정착했다. 알라딘 외의 공간은 모두 '빠숑'으로 알려져있다. 두 가지 필명을 사용했던건, 알라딘 공간은 지인들이 드나들지 않길 원했고 일종의 나만의 비밀공간이고 싶었던건데 이미 몇몇 사람들이 알아버려 지금은 '절반의 비밀공간'이 되어버렸다. 이 곳에서는 나의 실제 세계에서의 사소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공간은 - 네이버, 그래24 (네이버는 쓰다보니 창고가 되어버렸고, 그래24는 활동중단 중이다) - 지인들에게 마음껏 공개해도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곳에 올리는 글과 이곳에 올리는 글을 구별했고, 그곳에 올려도 될 글만을 선별해 올렸던 것이다. 실제세계의 '나'라는 개인에 대해서는 '아프락사스'로 보는게 더 정확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프락사스=빠숑' 임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대외적인 필명은 '빠숑'이다.

 동시에 혹시나 만일 다른 공간으로 내가 숨어버린다면 다른 필명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필명을 바꾼다는건, 스스로 본래 사용하던 필명에 덧씌워진 이미지에서 탈피해 내 껍질을 한 꺼풀 더 벗겨내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가상공간에서의 필명의 변화는 실제세계에서의 나의 변화로 연결된다. 아니 실제세계에서 내가 변화하길 원하기 때문에 실제세계가 반영되는 가상공간에서 필명을 바꾸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내 껍질을 하나씩 벗기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사소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프락사스와 빠숑에 만족하고 있고, 이름을 버리기보다는 좀 더 나아진 '아프락사스'와 '빠숑'이 되도록 노력하련다.

 * 닉네임 = 필명 같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저로선 둘의 차이를 모르겠어서. 사전에 의하면 '필명'은  "글을 써서 발표할 때에 사용하는, 본명이 아닌 이름"으로 되어있고, '닉네임'은 " ‘별명’, ‘애칭’으로 순화" 이라고 풀이되어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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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9-2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명..이라니깐, 엄청 거창한데요? ^^; 나는 닉네임인데, 아프님은 필명인거?

나의 유니텔시절, 첫 닉은 코울필드였어요. 그 다음은 smila

마늘빵 2007-09-23 00:03   좋아요 0 | URL
엇, 닉네임과 필명의 별다른 차이가 있나요? -_- 저는 둘을 같은걸로 간주하는데. 하이드님도 유니텔 했군요. 그땐 블로그가 없어도 첨이라 그랬는지 푹 빠져 살았었어요. 클럽 몇개 가입해서 막 프로젝트 밴드도 하고, 같은 띠, 같은 학번끼리 모여서 놀기도 하고. 대규모 번개를 몇번 갔는데 한번에 50명씩 와요. -_- 어휴.

tonight 2007-09-2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98년도에 삼성컴터 사면서 유니텔 했었어요!! -_-ㅋㅋ
저의 닉네임은 처음부터 그걸 썼었는지 아닌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제일 오래썼던건 꼬마였을거에요.
키 작은 꼬마 앨리스~ 오오~ 내 얘기를 들어보세요오우~ -_-

마늘빵 2007-09-23 00:28   좋아요 0 | URL
유니텔 '족'들 모이는건가요? 하하. 유니텔에 주로 있고, 공동아이디로 나우누리도 잠깐 했었어요. 나우누리가 더 활성화 되어있었고, 당시에 프로젝트 밴드의 멤버 대부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빌려서 들어가곤 했죠. 앨리스님 노래하고 싶으신가보다. 크크.

tonight 2007-09-23 02:29   좋아요 0 | URL
에헤.. 이 노래 일하면서 계속 들어서 그렇습니다. ㅠㅠ
박명수 노래랑 계속 입에서 맴돌아요... -_-;;

마늘빵 2007-09-23 09:58   좋아요 0 | URL
토욜까지 일하시고 수고 하셨어요. 오늘부터 푹 쉬세요. :)

Jade 2007-09-2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8년이면..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땐데..ㅋㅋ

마늘빵 2007-09-23 11:07   좋아요 0 | URL
헙. -_-a

토트 2007-09-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도 유니텔 했었어요.ㅋ
아프락사스님, 추석 잘 보내세요.^^

마늘빵 2007-09-23 23:33   좋아요 0 | URL
크크. 토트님도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송편도 많이 드시고. 깨든걸로. :)

비로그인 2007-09-2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천리안 ^^ 그때는 <수..> 란 닉이었던 듯.

물 흐르는 대로 살고 싶다는 :)

마늘빵 2007-09-23 23:52   좋아요 0 | URL
천리안은 한번도 안들어가봤는데... 천리안이 당시엔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고 오래된 곳이었지. 나중에 유니텔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나우누리는 후발주자로서 꽤나 급속도로 사람들을 끌어모았었고.
 
왜 똘레랑스인가
필리프 사시에 지음, 홍세화 옮김 / 상형문자 / 2000년 12월
품절


<옮긴이 서문>

"견해의 대립을 통해 이성을 눈뜨게 하지 않으면, 인간을 오류와 무지로 몰아가는 자연적 성향이 지체없이 진리를 이기게 된다." (바나주 드 보발) -13쪽

<대담>

사시에 - 똘레랑스한다는 것, 그것은 견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워진 부담을 견디는 것처럼 말입니다. 추상적 의미로서 똘레랑스 한다는 것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을 용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을 바꿀 수도 있지만 그대로 용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똘레랑스는 의도적인 자세입니다. 또한 용인이되 의도적인 용인이라는 점에서, 무관심이나 포기와 다른 것입니다. 앵똘레랑스로 말하자면, 그것은 "네 생각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따라서 네 생각을 파괴하고 네가 쓴 책을 불태우고, 나아가 너를 없애겠다."는 것이지요.-16-17쪽

사시에 - 대화를 위해서는 상대방이 용인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먼저 용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환대'의 사상이 있습니다. 화합되지 않는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최소한의 '접촉'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들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인공적이지만, 똘레랑스란 그런 것 입니다. 그것은 항상 적대하던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모험입니다. 물음은, 그만큼 위험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있습니다. 가령 중동의 예를 봅시다. 중동 평화를 위한 첫번째 조건은 접촉입니다. 벽이 가로막혀 있다면 서로 보지 못합니다. 보지 못하면 항상 가장 나쁜 쪽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서로 볼 때에는 사람들이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똘레랑스의 시작은 서로 같은 걱정을 하고 있음을 의식하면서부터입니다.-20-21쪽

<한국어판 서문>

"그러나 만일 존재의 저 깊은 곳에서 인간이 자유롭다면, 다시말해, 자발성과 무상성의 능력을 갖추었다면, 그 부분이 말하도록 놔두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 자체이며 새롭고 뜻밖인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위하여 이 똘레랑스는 유일하며, 유달리 엄격하면서 복합적인 하나의 한계를 규정한다. 곧 나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된 똘레랑스는 나의 자유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남의 자유도 인정할 때에만 실천될 수 있다. 그리하여, 똘레랑스는 무관심이나 단념과 정반대가 된다. 똘레랑스는 하나의 윤리이며, 각 개인이 보다 우월한 원칙을 위하여 자신의 이해관계에 반하여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덕목이다. 똘레랑스는 투쟁에서의 무기이며, 성숙된 덕목이다." (필리프 사시에)-25쪽

<여기서부터 본문>

'견디다, 참다'를 뜻하는 라틴어 tolerare 에서 온 똘레랑스라는 말은 16세기 초에 처음 등장했다. 그 뒤 5세기 동안 이말의 정의는 끊임없이 확대되었다. 처음에 똘레랑스는 종교에 대한 군주의 구체적인 태도를 가리켰다. 오늘날처럼 남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정신자세를 가리킨 것이 아니었다. 종교개혁 시기, 기독교적 진리의 단일성이 산산조각나고 국가 권력이 확립될 무렵, 신앙의 다양성에 직면한 국가 권력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가 문제로 제기 되었다. 군주는 그의 신민들에게 진리에 동참하도록 강제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놔둘 것인가, 라는 물음에 직면했던 것이다. 당시의 똘레랑스는 공적이 소관 사항으로서, 종교의 진리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탄압하지 않는 정치와 그런 정치를 실행하는 군주의 개인적 태도를 가리켰다. ... 중략 ... 그리하여 18세기 말에 이르면 똘레랑스는 국가의 처신을 계속 지칭함과 동시에 오늘의 "인간 관계의 바람직한 방식"으로서의 개인적 태도로도 지칭하게 되었다.-29-30쪽

행위를 삼가는 것으로서의 똘레랑스는 결국 행위로서의 똘레랑스 이전의 단계, 즉 정신의 행사로서 생각하기를 삼가는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30쪽

볼테르는 앵똘레랑스를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자를 선험적으로 유죄라고 평가하도록 유도하는 정신적 자세로 보았다. 앵똘레랑스를 폭력적 행동 이전에 가장 분명하게 내면화된 것으로 본 사람은 틀림없이 루소였다. "나는 자기가 믿는 모든 것을 믿지 않으면 선의의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또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자들 모두에게 냉혹하게 저주를 내리는 모든 사람을 앵똘레랑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31쪽

에라스무스는 언제나 승리하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열정을 야심에 결부시키면서, 진리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말고 자기애를 버리라고 호소했다. 대체로 인간은 잘못된 견해와 싸우기보다는 자기와 반대되는 견해와 싸운다. 카스텔리옹은 "흔히 우리들과 의견이 같지 않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단으로 간주한다"고 기록했다.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사면을 허용한 앙부아즈 칙령(1563)을 지지했던 어느 팸플릿은 훨씬 더 직설적으로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갖는 사람들한테서만 죄와 악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파성"을 지적하였다. 몽테뉴는 진리를 지킨다고 열의를 보이는 사람들의 "열렬한 자기애"와 "오만"을 비난했다. 그는 앵똘레랑이란 "자기의 견해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그 견해를 위해서는 공공의 평화를 무너뜨리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수많은 악을 가져오고 관습의 무시무시한 타락을 가져오는 것도 [...] 심지어는 국가의 교체까지도 주저하지 않게"된 사람이라고 말했다.-45-46쪽

로크에게 그 이유는 분명한 것이었다. 즉,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자부심과 자만심에서 온다는 것이다. 루소는 다음과 같이 써서 로크의 뒤를 따랐다. "인간을 구원하려는 열정이 절대로 박해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박해의 원인은 바로 자존심과 오만이다." -46-47쪽

루소는 인간에게, 특히 일반 평민에게, 너그러운 자세를 취할 것을 호소했다. 왜냐하면, 평민은 스스로 '숭고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으면 그 진리는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루소에 따르면, 하느님의 존재는 조금이라도 숙고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명백하게 보이는 사실이기 때문에, "무신론의 철학자는 악의적이거나 맹목적 자만심을 가진 논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추방해야 마땅하다. 명백한 것 앞에서 잘못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70쪽

인간이 믿는 진리의 대부분은 가능성에 불과하므로 각자의 무지에 대하여 서로 이해해야 한다고 로크는 결론 내렸다. <백과사전>의 <똘레랑스> 항목에서도 이렇게 추론하였다. 즉, "대립관계가 없는 분명한 진리란 결코 없으며, 인간의 이성은 정밀하고 확정된 척도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의 이성을 잣대로 제시할 수 있는 권리가 없고 또 누군가를 자신의 소신에 따르도록 주장할 권리도 없다." -71쪽

로크는 사법관의 종교 문제 개입권을 부정했다. 종교 문제가 세속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사법관도 "[최상의 선]에 도달하기 위해 이용해야 할 길에 관해 확실하고도 완벽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에 관해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리'란 없다. 루소는 이점을 반복해서 말했다. 종교적인 앵똘레랑스는 종교에 관한 진리가 너무나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73쪽

크렐이나 스피노자는 앵똘레랑스가 견해의 다양성이라는 자연적 질서에 반대된다고 판단하였다. "인간은 전혀 동일한 정신유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견해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79쪽

스피노자는 사상을 탄압하는 법이 평화 대신에 소요를 일으키는 것은 그 법이 '사물의 질서'(당연지사)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인간은 그 자신에 집착하듯이 자신의 견해에 집착한다는 것과 사상이란 본래 다양한 것임에 따라, 그 사상을 좌지우지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폭력과 무질서만 가져올 뿐이다.-81-82쪽

똘레랑스는 세계 질서가 더 이상 이중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순간부터 그 타당성을 잃는다. 하늘늘 믿지 않는 자는 지금 이 땅에서 모든 것을 기대하고 모든 것을 요구해서는 안되는가? 사고가 물질의 단순한 발현으로 이해되거나, 혹은 가장 내밀한 사유가 단지 외부적 영향의 결과에 불과할 때에, 두 세계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하는 똘레랑스는 부질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똘레랑스의 옹호자들은 똘레랑스가 상호간의 무관심 - 이미 부질없는 근거가 된 - 이 아니라, 최상의 목적 - 이 목적이 천상적이든 세속적이든 - 을 달성케 하는 도구임을 입증하도록 권고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제 똘레랑스는 '사물의 질서'(당연지사)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지 않고 유용성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101쪽

똘레랑스의 지지자들은 "가장 정당한 전쟁보다는 가장 부당한 평화를" 선택해야 하며 무질서는 잘못의 지속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반박하였다. -116쪽

스피노자와 바일은 똘레랑스가 보다 깊이 있게 각자의 사고와 행동을 이성에 따르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두려움과 모든 증오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폭력, "분노, 계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내면의 질서를 마음 속에 세울 수 있다. 견해의 자유는 아무 것이나 할 수 있는 면허장이 아니다. (교황의 회칙 <미라리 보스>가 주장하게 되듯이) 견해의 자유는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사회 질서를 이성에 맡김으로써 그 질서를 강화시키자는 것이다.-137쪽

루소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19세기 표현의 자유 옹호자들은 16세기 기독교도의 통일 지지자들과 적어도 하나의 확신을 공유하였다. 즉, 인간은 똑같이 생각할 때만 진정으로 단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된 사회 질서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진리에 재집결시키는 데에 있다. 비종교적 이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을 집결시키는 진리에 도달케 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똘레랑스는 비종교적 이상에 속하는 하나의 기본 요소가 된다. "만일 진리가 보편적이고 우리 모두가 동일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여러 사상 사이의 자유로운 상호침투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과 마음을 통하여 조금씩 서로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 확신은 적절하면서 친밀한 방식으로 밝혀진 진리에 우리의 사고를 일치시키며, 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마음 속 깊이, 그리고 활기찬 방식으로 단결시킨다." -138-139쪽

"개인들이 그들의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지 우리가 모르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에게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게 아주 중요하다. [...] 자유를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이 자유를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함으로써만 자유를 활용할 미지의 사람에게도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이에크, <자유의 구성>) -142쪽

그레구아르와 루소에게 있어서 차이란 차이 그대로 인정하자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 진리가 승리함에 따라 차이를 없애자는 것인데, 이것은 '사회적으로 유익'하려면 더욱 절대적이다. 오늘날도 계속 상대론의 영향을 받은 외형상의 똘레랑스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목소리들은 언론의 자유가 절대로 필요한 까닭은 모든 주장들이 가치가 있다거나 모든 것이 불확정적이라거나 또는 진리가 무수히 많기 때문이 아니라 찾아내야 할 하나의 진리가 존재하기 때문임을 상기시킨다. 마르쿠제에게 "똘레랑스는 목표의 진리이다." 배링턴 무어는 "과학적이기를 바라는 모든 참된 똘레랑스 개념은 하나의 이념의 진실성을 시험하는 데 사용되는 수단들의 개선과 발전을 추구한다." 라고 썼다. 그러므로, 똘레랑스는 진리로 이끄는 단계로써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즉, 진리는 똘레랑스의 "유일한 참조점이자 계류지점"이다. -148쪽

똘레랑이란 우선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삼가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정신에 대한 강제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149쪽

사상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지식은 서로 마찰하면서 서로 비교되고 보충된다. 이제 개인 혼자서 한 시대의 모든 학문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빛'의 교환 개념이 중요성을 갖게 되었고 지적인 전투라는 비유 옆에 자유 거래라는 비유가 아주 넓은 의미의 '교제'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들의 부싯돌은 마찰함으로써 빛이 난다" (볼테르)-167쪽

모를레에 따르면, 토론은 사물을 다른 견지에서 보게 하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견해를 수정, 보완시키는 사상을 탄생시킨다. "검토하고 토의하고 공격하고 방어하면서 우리는 사상과 견해의 충격에서 빛이 탄생하는 것을 본다" 그 점에서 잘못된 사상에게도 자유가 필요하다. 오류의 변태를 감내하고 그 변태를 단계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오류, 체계적인 오류를 거쳐야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모든 의견이 자유로운 순간부터, 즉 참된 의견이 잘못된 의견과 똑같은 자유를 누릴 때부터는, 유일하고 같은 목표인 진리와 행복에 대한 자연적 성향이 인간의 내심에서 "작용하도록 놔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성적이고 가장 총명한 의견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당한 대의를 옹호하려는 학식 있는 사람을 항상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168쪽

"인간 정신의 불완전한 상태 안에서 진리의 이해관계는 다양한 의견을 요구한다." (존 스튜어트 밀)-170쪽

"인간의 권리, 따라서 똘레랑스는 모든 인간 안에 있으며 인간이 되게 하는 자유 속에 뿌리박고 있다. 이 자유는 우리가 어원학적 의미로서는 그 놀라운 성격을 말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모든 사물은 물리적 법칙이 강요하기 때문이거나, [...] 또한 살아 있는 세계에서 우리가 '자연'이라 부르는 것에서 다양한 종들 간에 힘의 분쟁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 가장 강한 자가 가장 약한 자를 잡아먹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 세계는 예외적인 세계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만이 물리적 인과관계 법칙이나 원칙상으로 가장 강한 자의 지배를 통해 [...] 지배당하지 않고 각자 인간은 그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잔느 에르쉬)-178쪽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그 첫번째 권리가 자유인 인간의 영원불멸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으므로, 강제는 오직 자유의 행사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때 그것을 피할 목적으로써만 행사될 수 있다." (로크,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 -180쪽

"인간에게 강제로 믿게 하지는 못할 것인 바,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대로 믿거나 이해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봉신부)-186쪽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복종 가능성으로 규정된다. 존 롤즈가 오늘날 내세우는 것도 이 내면의 강제에 보내야 될 존중이다. 그는 어떠한 유용성의 원칙도 도덕적 의무감을 "절대적으로 구속하는" 성질과 경쟁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똘레랑이 되어야 하는 까닭은, 자기 자신과 마주한 의무 -도덕 - 가 각자 그것에 공존히 복종하도록 놔두어야 할 만큼 충분히 진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똘레랑스는 인간을 그 자신의 내면의 확신에 복종하게 놔두는 것이다. -196쪽

인간은 외부의 모든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 그에게는 오직 내면의 법(양심)으로부터 받을 명령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유일한 법이기 때문이다."(피히테)-196쪽

스스로 결정하기 위하여 인간은 천성적으로 이성의 모든 수단을 행사하기 때문에 똘레랑이 되어야 한다. 칸트는 그 점에서 사고의 스승이다. 즉, 자유는 이성의 행사이며, 이성은 도덕법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 개인의 견해나 행위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그를 그 자신에게 맡겨지게 놔두는 것은, 그의 자유가 모든 인간에게 공통인 이성의 행사와 합류하는 데 따른다. 모든 인간은 이성적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선을 향해 나아간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197쪽

칸트는, 자유란 "이성이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법 이외에는 그 어떤 법에도 복종하지 않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자유롭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자는 모든 이성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그는 자유의 반대인 "동물적 충동"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감각과 열정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기 때문이다.-198쪽

츠베탄토도로프로 말하면, 그는 정당한 제약에 관한 아주 오래 된 기준들과 거의 동일한 기준을 재발견하였다. "무제한인 똘레랑스의 권리는 약자들을 해치고 강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강간범들에 대한 똘레랑스는 여성들에게는 앵똘레랑스를 의미한다. 만일 호랑이가 다른 동물과 한울 안에 있는 것을 똘레랑스한다면, 그것은 후자를 전자를 위해 희생시킬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체력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약자는 무제한적인 똘레랑스의 희생자이다. 약자를 공격하는 자들에 대한 앵똘레랑스는 약자들의 권리이지 강자들의 권리가 아니다." 자유의 원칙이 고발당할 만큼 극단적 한계에 이르러서, 우리는 자유 자체의 이름으로 절대적 똘레랑스의 원칙에 조종을 울려야만 한다. 마르쿠제, 폴랭, 료타르나 토도로프는 각자 그들 방식대로 라코르데르의 불굴의 문구인,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탄압하는 것은 자유이고 자유롭게 하는 것은 법이다."를 다시금 진술하였다.-236쪽

헬베티우스는 앵똘레랑스를 폭행이나 남의 자유에 대한 구체적 침해라는 강력한 의미로 보았다.

오늘날의 앵똘레랑스는 순전히 정신 자세를 말하는 것이어서, 앵똘레랑스에 대한 우리의 앵똘레랑스는 다른 모습을 제공한다. 요컨대 불균등하게 안심시키는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의 앵똘레랑스는 지적인 '항의'에 지나지 않고 틀림없이 매체의 힘을 빌리기 때문에 스스로를 진리 자체로서, 약하기만 하기 때문에 오히려 강하다고 믿을 수 있다. 또 다른 면에서, 그것은 의도와 단념을 탐색하기 위해 정당화되고 있다. 즉, "무관심에 대해서는 앵똘레랑이 되어야 한다. 앵똘레랑스에 앵똘레랑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앵똘레랑스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 앵똘레랑이 되어야 한다." 느긋하게 앉아있는 인간은 싸우는 똘레랑스의 견해 덕분에 '덕목으로서의 앵똘레랑스'가 그것의 참된 이름의 몫을 하기 위하여 애쓰는 것을 발견하는게 분명한가?

아무튼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성을 이루는 것은 다름아닌 "똘레랑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정신이다.-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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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7-09-2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가 많은 걸 보니 무척 괜찮은 책인가 보네요 ^^

마늘빵 2007-09-22 20:04   좋아요 0 | URL
음, 생각만큼은 아녀요. 좀 어수선하달까요. 잘 안들어와요. 어수선한건 대충 술술 넘기고 읽어볼만합니다. :)
 
그래 서점 블로그 순위


  오늘은 테츠님 말대로 페이퍼 풍년이다. 어떤 페이퍼를 써야겠다, 라고 속으로 마음먹고 계획하고 쓰는건 아닌데, 이렇게 한번 자판에 손을 얹어놓으면 쓰고픈 주제들이 떠오른다. 그날 하루의 일상일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와 댓글을 주고 받다가 떠오른 생각일수도 있다. 오랫만에(?) '그래' 서점 블로그에 가봤고, 며칠전까지 없던 별이 닉넴 앞에 달려있음을 발견했는데, 내 블로그 상에서 이 별을 처음 봤을 때는 아, 알라딘의 탑100, 탑50 과 같은 개념이구나 생각했지만, 옆에 내 블로그에 들른 방문객들 닉네임 앞에도 별이 달려있는걸 보고, 또 내 페이퍼에 달린 댓글의 그분들 닉네임 앞에도 별이 달려있는걸 보고 떠오른건, '카스트 제도'다. 어딜가도 따라다니는 그놈의 계급.  

  '그래' 서점의 블로거들을 계급화, 서열화 시키고 있단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래 서점 블로그에 써야 마땅한 글인듯 싶고, 괜히 여기다 쓰면 마치 알라딘에 서재 운영하는 이가 그래 서점의 블로그를 까는 듯이 보일지 모르겠지만, '알라딘'도 '그래'도 모두 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알라딘에 팔아준 게 더 많긴 하지만, '그래'에도 못지 않게 많이 팔아줬고, 오히려 운영진과의 만남의 기회는 '그래'쪽에만 수회 있었다는 과거를 근거삼아, 페이퍼에는 아무런 정치적인(?) 의도가 없음을 미리 밝힌다. '그래'서점의 한 블로거의 말이라고 보시면 되겠다. 이 글을 읽을 땐 제게 부여된 '알라딘' 서재지기 자격(?)을 머리에서 지우시길. 이어서 계속 말하자면, 일종의 인도의 카스트 제도랄까.

  기원전 1500년경 유목 생활을 하던 아리아인이 인더스 강 유역에서 철기문화를 발전시켰고, 이후 그곳의 원주민들을 지배하기 위해 신분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카스트 제도의 기원이라고. 아리아인들은 천둥, 번개, 바람 등을 믿는 브라만교를 믿었는데 그들은 종교의식을 행하는 제사장격인 브라만 계급을 만들고, 이후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 서민계급인 바이샤, 노예계급인 수드라를 만들었다. 이 네 가지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불가촉천민 이라 불렀다. 언젠가부터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가 공식 폐기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관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 서점에서는 이번에 그간의 활동 내용에 따라서 세 가지 계급으로 나누었다. 리뷰, 댓글, 방문객 수, 스크랩 수 등을 따져서 100명까지 수퍼스타, 300명까지 골드스타, 600명까지 블루스타로 나누었는데, 문제는 이게 내 블로그에서만 보이는게 아니라, 어딜가도 계속 따라다닌다는게다. 어떤 블로거의 글에 댓글을 달아도 내 수퍼스타는 닉네임 앞에 따라다니고, 누군가의 블로그를 방문해서 흔적이 남으면 거기에도 역시 최근 방문자 명단의 내 닉네임 앞에 수퍼스타가 따라다닌다. 카스트 제도에 비유하는건 좀 지나치다고, 너무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같은 계급과 별다를 바 없어보이는 이 '스타들'을 어찌할 것인가.

  누구는 수퍼스타, 누구는 골드스타, 누구는 블루스타, 또 나머지 떨거지(?)들은 無스타. 수퍼스타를 달고 있는 사람도, 별이 없는 사람도, 뻘쭘하긴 마찬가지다. 수퍼스타 단 사람이 별 없는 사람의 블로그를 방문하는건 마치 군대에서 투스타가 일개 해안 소초 방문하는 듯 하다. 순위를 보이게 하고 싶으면 그냥 모든 글이 다 모이는 특정한 곳에다,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게 하던가  할 수 있을텐데 이렇게 대놓고 따라다니게 하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래봐야 나는 당장 처해있는 바쁜 상황들이 좀 해결된 뒤에나 예전처럼 이곳과 그곳 두 군데 다 돌아다닐 수 있을테니 당장 내가 그 불편함을 '감수'하진 않아도 되지만, 불편함을 '감출' 수는 없다.  

* 불가촉천민 과 관련된 책은, 읽어본건 아니지만, <암베드카르>라는, 불가촉천민의 해방자 역할을 했던 사람에 관한 평전이 나와있고, 얼마전 '오늘의 관심 도서' 코너에서 한번 찜해놨던, 역시 읽어보지 않은, <신도 버린 사람들> 이라는 책이 있다. 떠오른김에 참고삼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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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신기루 2007-09-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무스타까지는 알겠는데 다음 것들은 모르겠어요-_-a 대스타는 大스타인가..??

마늘빵 2007-09-18 21:59   좋아요 0 | URL
앗, 나의 유머가 먹히지 않다니. -_-

마늘빵 2007-09-18 22:11   좋아요 0 | URL
대스타는 大스타, 뉴스타는 NEW스타, 무스타는 별이 없음, 버스타는 버스를 타라, 가스타는 가스탄다(아 생각해보니 가스는 타지 않고 터지는구나).

푸른신기루 2007-09-18 22:21   좋아요 0 | URL
아~ 별거 아니었구나ㅋㅋ
전 군대에서 주는 음료 중에 X스타가 있다고 알아서 저 중 하나인 줄 알았죠
그래서 다들 뭔가 있는 줄 알고ㅎㅎ

마늘빵 2007-09-18 22:20   좋아요 0 | URL
아하 그것두 있구나. 추가해야지.

비로그인 2007-09-1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태그에 '햄스타'는 뭡니까 =_=
햄이 드시고 싶으신 겁니까, 햄스터를 기르고 싶으신겝니까.

마늘빵 2007-09-18 22:01   좋아요 0 | URL
햄스터인데, 다 '스타'잖아요. 근데 그거만 '스터'라고 할 수 없어서. 긁적. 예전에 햄스터 길러봤는데 아휴 말도 마세요. 하룻밤 자고 나면 하나 먹고 눈알만 남겨놓고, 새끼를 엄청 낳았는데 그 중 절반을 어미가 먹어버리고, 나머지는 좀 크는가 싶더니 어느날 한마리 남았어요. 징그러운 녀석들 밥을 그렇게 줬는데 막 잡아먹어요. 야밤에 어떻게 또 그 조그만 쇠창살 사이로 나와서 집안을 돌아다니는지 밟힐까봐 조심스러워요. -_-

마늘빵 2007-09-18 22:13   좋아요 0 | URL
근데 어미가 새끼만 먹는게 아니라 지 동료도 먹던데. -_- 처음에 세 마리였는데 나중에 두 마리, 그리고는 새끼를 낳고, 다른 큰놈이 또 사라지고, 새끼도 사라지고... -_- 고기맛을 안다... 무섭군. 먹이를 그렇게 줬는데. 결국은 다 잡아먹고 눈알 남더라. (어, 뭐야 댓글 쓰는 사이에 댓글을 지워버렸네. -_- )

* 요 댓글은 엘신님을 향한게 아니라오.

푸른신기루 2007-09-18 22:20   좋아요 0 | URL
징그럽잖아요-_-;; 그래서 지웠는데ㅋㅋ
'햄스터는 고기를 먹으면 맛을 알아서 새끼도 잡아먹는대요'가 원래 댓글이었어요ㅋㅋ

비로그인 2007-09-19 02:08   좋아요 0 | URL
제가 알기로는...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런 자학성이 나온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햄스터나 토끼류는 새끼를 격리해서 키워야 한다더군요.
큰 포유류 동물들처럼 지 새끼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지 않아서 말이죠..
저는..예전에, '새를 잡아먹은 토끼' 이야기도 들었는걸요..=_=
하여간, 알면 알수록 신기한 동물의 세계입니다,그려~ (긁적)

마늘빵 2007-09-19 09:34   좋아요 0 | URL
앗, 토끼도 그러나요? 설마 토끼는 잡아먹고 그러진 않겠죠? 막 할퀴고 그러나. -_- 무섭군요. 애들 스트레스 준것도 없는데 쇠창살에 갇혀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나...

perky 2007-09-18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이런 제도 도입하면 싫을것 같아요.;; 저는 알라딘 서재지수 올라가는 것도 싫어서 글쓰는 거 자제하고 있는데..

마늘빵 2007-09-18 22:22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도 비스무리한게 있긴 하죠. 다만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탑100, 탑50, 탑10 이라는 조그만 태그(?)가 서재에 붙어있고, 잘 찾아보면 명예의 전당 이란 곳이 있죠. 여기까지 찾아가는게 좀 힘들지만. 다행히도 드러내놓고 따라다니진 않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금 달려있는 저 태그들도 못마땅한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정도에는 불쾌감 느끼진 않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제기되었었겠죠.

저는 서재활동 초기, 중기, 중후반기에는 서재지수 올라가면 좋아했는데, 개편 이후 상당수 페이퍼와 마이리스트를 삭제하면서 쫙 내려갔어요. 개편 이후 서재 분위기를 좀 더 진지모드로 바꾸면서.

perky 2007-09-1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딘가에 강하게 소속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좀 싫더라구요. 서재지수가 올라간다는 말은, 그만큼 제가 알라딘에 involve 되있고 의지하고 있다는 거라서 의식적으로 자제하게 되더군요. (좀 이상한 성격이에요.-_-)만약, 예스24처럼 등급까지 나눈다면, 그 적나라함이 싫어서라도 탈퇴해버릴거 같아요.

마늘빵 2007-09-18 22:28   좋아요 0 | URL
전 그냥 개인적인 보람 같은걸로 생각하고 있어요. 지수 상승은. 서재운영자마다 다 다르겠죠. OO에게 있어서 서재지수는. 등급은 참. 그래 서점에서도 며칠 지나면 다시 고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대로 가면 저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거 같은데.

2007-09-18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9-18 23:23   좋아요 0 | URL
아핫, 네 공연히 괜한걸 요구한건가 싶어서 지웠어요. 크크. 들켜버렸군요.

웽스북스 2007-09-18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사실 저 별이 좀 불편했었답니다
저 체계를 보니 꽤 오래 고민했을 것 같은데, 며칠만에 버릴 것 같지는 않고요
보완책을 마련하겠죠- 깜찍하게 소화된 게 아니라 하필 별이라 더 계급장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마늘빵 2007-09-19 09:36   좋아요 0 | URL
그래 서점에서 제가 자주 가는 블로거들이 몇 있는데 그 분들도 이런 이야기를 꺼냈더군요. 오래 고민하고 했을테니 금방 바꾸지는 않겠군요. 나름 회의를 거치고 거쳐서 나온 결론일테니. 따라다니는 것만이라도 없애면 괜찮을거 같은데. 해당 블로그에서만 별을 확인할 수 있게 하면.

바람돌이 2007-09-1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저 제도를 알라딘에서 벤치마킹하지는 않겠죠? ㅎㅎ

마늘빵 2007-09-19 09:36   좋아요 0 | URL
저렇게 해서 매출이 많이 올라간다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봅니다만 그다지 좋은 반응은 없는거 같아요.

프레이야 2007-09-19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랍스타가 빠졌어요,아프님..ㅎㅎ

마늘빵 2007-09-19 09:37   좋아요 0 | URL
아하. 랍스타가 있군요!! 크크.

비로그인 2007-09-1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댓글보다 햄스터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금방 점심먹었는데..

마늘빵 2007-09-19 23:22   좋아요 0 | URL
아핫. -_- 넘 적나라한 댓글이었죠? 점심 드시기 전이 아니라 다행이에요.
 


 요새 논문 관련 서적들을 읽다보니, 읽고픈데 번역서가 없는 책이 많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이런 책도 있었던가 싶어서 인터넷 검색해보면 제목도 안나오고, 당연히 역서가 있을거라 생각했던 책들까지도 외면받고 있었다. 예전엔 찾아 읽는 식이 아니라 찾아 읽긴 읽는데 '국내서적'이란 테두리 안에서 찾아 읽다보니 그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던게다. 시야가 좁은게야. 간혹 헌책들을 뒤지면 최신 번역본은 아니라 할지라도 중요단어는 한자로만 채워진 옛말투의 번역본을 가끔 찾을 수 있기도 하다. 예전에 삼성문고에서 나왔던 헤겔의 <역사철학강의>같은 책은 심지어 세로로 작성되어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어간다. 학부 때 이 책 보느라 눈에 쥐 나는줄 알았다. -_-

  대표적으로 존 로크의 <통치론> 이나 <시민정부론> 은 있는데, 그의 다른 저서 <종교 관용에 대한 편지>(1689년)는 오래된 번역조차도 없고,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으로 유명한, 최근에는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라는 책도 나왔고, <추측과 논박>이란 두 권 짜리 책도 나온 칼 포퍼의, 그의 다른 저서 <관용과 지적 책임>(1987년)은 번역이 안되어있고, 또 코헨이며, 마르쿠제며, 이히하이저며, 프레스톤 킹 등의 책도 역서가 없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은 읽고 싶었는데, 폴커 게르하르트라는 베를린의 교수가 지은 책이 2007년 7월에 나왔다. 근데 이게 저자가 칸트라 아니라 폴커 게르하르트라는건 칸트의 저서를 내놓은게 아니라 새로 저자가 '다시읽기'를 해서 그의 저작으로 내놓은거 같은데.

 역서가 없으면 원서로 보면 되겠지만, 값도 비싸고 읽기도 어려우니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그냥 버려두고 다른 책을 선택하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프레스톤 킹이라는 사람의 책은 이곳 저곳, 이 논문 저 논문에 계속 인용되고 있는데, 굉장히 오래된 책인데 나중에라도 꼭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사람들의 책도 마찬가지지만. 그 외에도 유명한 철학자들의 다른 책들도 변억서가 안나온게 많고 그나마 나온 것도 절판된 경우가 흔하다. 많이들 안사니 값은 값대로 비싸고, 나온지 얼마 안돼 또 금방 사라져버리고. 

  한편에서는 같은 번역서가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다. 유명한 <어린왕자>나 <데미안> 같은 책들이 대표적. 여러 곳에서 내도 꾸준히 많이 팔리는 책이기 때문에 충분히 장사가 된다는거지. 하지만 안 읽어주는 책들은 번역서가 나와도 어느 순간 쑥 들어가버린다. 같은 책은 반복해서 이곳저곳에서 또 내고, 외면 받는 책들은 번역조차도 안되는 현실. 요즘 읽기 어려운 고전을 씹기 좋게 만들어 내놓는 '잘 만들어진' 책도 있는데, 좋은 흐름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도 논술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안타깝다. (그래도 논술 핑계삼아라도 이런 책 읽는게 어디냐) 출판사도 이윤이 남아야 장사를 해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을 출판사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도 않다. 

  궁극적으로는 번역가에 대한 대접 문제가 아닐까. 교수들, 시간강사들, 박사님들 번역한다고 해서 점수 올라가는 것도 아닌지라 - 반영 되어도 얼마 안된다고 들었다 - 번역을 기피하게 되고, 애써 번역해도 오역이라느니 잘못 번역되었다느니 하면서 평단의 돌팔매질이나 당하고 - 물론 번역이 잘 되었느냐 잘못 되었느냐에 대해서 토론하는건 바람직한 현상, 하지만 지금 이 글에선 번역자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봤다 - 6,7년 애써 번역한 제대로 된 책이라 할지라도 그만한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남는건 잘 번역했다, 라는 명예 정도이니 누가 어려운, 봐주지도 않을 철학책들을 번역할까.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힘들어도 열심히 번역할텐데 그렇지 않으니깐. 그렇다고 그런 어려운 책들을 다 봐야하느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나 같이 게으르고 영어 안되는 이들을 위해 많은 번역서가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이는 그 나라 말만 된다면 독일어든 프랑스어든 그리스어든 영어든 원어로 읽는게 가장 정확하고 쉽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말만큼이나 쉬운가. 한국어만 제대로 하기도 힘든 판에 다른 언어까지 머리에 끼워넣고 싶지는 않다. 혹여 조금 오역이 있다 하더라도 한국어로 꾹꾹 눌러 보고픈 - 뭔가 이상하면 원서를 대비해놓고 보면 될테니 - 마음이다. 천병희 씨나, 임석진 교수 같은 분들이 명예로만이 아니라 다른 물적 조건으로도 편안한 환경에서 번역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두 분의 경제적 여건이 괜찮은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일단 생활이 안되는 역량있는 사람이 애써 번역해도 아무 것도 떨어지지 않을걸 알면서 번역작업을 하기란 어렵다는 점에서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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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8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오늘 포스팅의 범람~ ㅎㅎ 아프님 지적대로 번역서가 많으면 정말 좋은데 그러치 못하다는건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고;; 전 원서 딴 것보다 책 냄새(?)가 심하고 종이질이 불량해서 아주 못 읽어주겠어요.하드커브는 옴청 비싸고;;

마늘빵 2007-09-18 19:57   좋아요 0 | URL
원서 혹시나 얼마쯤 하나 그래서점 가서 확인해보고는 걍 약간 있던 마음도 접었습니다. -_- 페이퍼백인데도 가격이 상당하더군요. 어휴. 저희집엔 원서가 단 한 권도 없어요. (자랑이냐?)

비로그인 2007-09-18 19:59   좋아요 0 | URL
아이~ 아프님은 책 그만사고 놀로좀 다니시라니까 ㅋㅋ

마늘빵 2007-09-18 20: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뭐하고 노나. 놀 사람이 없어. 나 왕따에요. -_ㅠ

보석 2007-09-18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출판계가 워낙 영세하다보니...민음사나 시공사, 웅진, 랜덤 같은 큰 출판사에서 일종의 사회환원 차원에서라도 조금씩 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늘빵 2007-09-18 21:06   좋아요 0 | URL
네 큰 출판사들이 믿을만한 역자를 데려다가 좀 힘겹더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길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거에요. 꿋꿋하게 잘 읽히지 않는 책들 번역해주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