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획된유치뽕짝영화감상기

  이것이 진짜액션이다. 한국액션영화란 이런 것이다. 뭐 기타 등등의 영화 홍보 문구들. 내가 세뇌당한건지 아니면 정말 영화가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오 의외로 괜찮다. 딱 시작과 동시에 눈 떼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된다. 눈을 뗄 새가 없다. 시종일관 치고박고 싸우는 장면 일색이고, 줄거리도 매우 단순하지만, 정두홍과 류승완의 액션 연기를 보다보면 시간 다 간다. 한국액션영화의 틀을 마련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단순 액션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 영화 괜찮게 봤다면 괜찮은게 아닐까?

  그나저나 포스터 잘 만들었다. 흑백으로 된 잘 그려진 만화책의 한 장면을 떼어다 만든 것같은 색다른 포스터. 그치. 일종의 만화지. 액션만화. 조폭들 등장하고 정의의 사도 등장하고 치고 박고 싸우고 그러다 아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뭐 이런 만화. 이 영화 정말 만화같다. 두 영웅이 등장하고, 강호를 휘어잡는다. 짧은 세라복 조폭녀 한 무리가 골목을 막고, 한 무리의 야구빠따 든 녀석들이 한 골목을 막고, 또 한 무리의 엑스피드 동호회(?) 녀석들 막고 있고, 아 정말 유치했다. 만화의 한 장면이다. 수십명이 되는 이 무리들을 단 둘이서 막으며 절대 지지 않는다. 또 마지막 장면을 향해 가는 그 과정은 또 어떤고. 카지노를 들어서고 식칼 든 요리사들과 한판 뜨고, 일본도(?)든 녀석들 주루룩 앉아있고, 얘네 꺾고 들어가면 더 센놈들이 기다린다. 완전 오락실 스트리트파이터. 철권.

 

  하지만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눈이 즐겁다. 아주 난폭하고 잔인하지도 않으면서 - 그래도 조금 잔인한지라 18세 이상 관람가 - 자로 잰 듯한 정두홍과 류승완의 액숀환타지. 정두홍이야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대표적 액숀감독이니 이해가 되지만서도, 류승완은 언제 그렇게 다 배웠대. 원래 액숀스쿨 출신 아냐? 감독도 하고 액숀도 하고. 그런데 영화를 잘 보고 있으면 눈치 챌 수 있다. 고난이도의 액션은 정두홍이 소화한다. 열나게 맞다가 꼬꾸라지는 장면이나 완전 중국무협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무술은 정두홍이 맞고, 류승완은 옆에서 보조해준다. 그래도 멋져 멋져. 쵝오쵝오.

  아 안길상인가 하는 그 분. 검색해봤더니 나이는 많던데 정말 카리스마있다. 주연은 정두홍과 류승완이었지만 이 아저씨도 멋있었음. 그리고 그리고 이범수 따라다니는 네 무리 중에 한 여자. 정말 이쁘다. 싸움도 잘 하던데. 와 정두홍 액션스쿨에서 데려온 사람인가. 이 영화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두홍 스쿨 소속이라고 들은거 같은데. 끝내 엔딩 크레딧에도 이 여자분 이름이 안나온다. 궁금궁금.



* 여기여기 이범수 바로 뒤에 있는 여자분. 자꾸 시선이 간다. 액숀연기로 봐서는 정말 무술유단자같은데.

    아무 생각 없이 스트레스받고 짜증날 때, 당분간 잊고 싶어, 하는 기분일 때 보면 딱 좋은 영화. 야한 장면도 없고, 이쁜 여자 배우도 안나오지만, 그래도 눈이 즐거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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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11-1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액션도 액션이지만, 개인적으로 이범수의 연기가 돋보이는 건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어요. 충청도 사투리로 느릿느릿 사람 약올리는 걸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부아가 나죠. 류승완의 연출력이 이런 데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 기뻤어요. 하지만, 최근에 개봉한 '잘 살아보세'는 예고편만 봐도 질리더군요. 어쩜 '짝패'에서의 그 말투를 그대로 가져왔는지... 한숨만 푹푹 쉬었어요.

마늘빵 2006-11-1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맞아요. 이범수 연기 짱이었어요. 이범수가 주인공 같아요. 주연은 맞죠. 나쁜놈이라 그렇지. 번드르르 기름 좔좔 흐르는 느끼한 눈빛에 올백 머리하고 하하. 이범수는 이런 연기가 잘 어울려요. 이미지가 안좋아져서 개인적으로는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 스포일러 경고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배우들이 똘똘뭉쳐 또 한번 사고쳤다. <공공의 적2>을 봤을 때의 충격은 <공공의 적1>를 봤을 때의 그것보다는 못하지만, 뭐랄까 가슴 속에서 솓구쳐 오르는 순간적인 분노의 폭발력은 작아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커져만 가는 눈덩이마냥 분노의 감정 또한 커진다. 1편을 봤을 때의 감정이 "에이 XX놈"이었다면, 2편을 봤을 때의 감정은 "뭐 저런게 다 있어"와 같달까. 즉각적이냐 아니냐의 차이랄까. 대개의 시리즈작들이 1편과 2편의 줄거리만 바뀐 채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서술방식은 비슷한 구도를 취하는데 비해, <공공의 적> 시리즈는 그렇지 않았다. 애초 감옥이 1편 제작시 2편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편과 2편은 확실히 다르다.

  매일 같이 출근길에 밀려오는 교통체증과 별 이상한 사람들 보면서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강철중 검사는 테잎에서 시키는대로 치즈~ 스마일~, 하고 웃고 다닌다. 검찰청 최고의 꼴통 검사. 경찰 최고의 꼴통 형사는 후줄근한 추리닝을 벗어던지고 값비싸지도 않고 메이커도 아닌 듯한 하지만 그래도 뽀대 좀 나는 양복에 넥타이로 변신했다. 1편을 봤던 이들은 2편의 그의 모습만 접하고도 웃음이 나올 터.

  나쁜 새끼는 반드시 잡아야 돼, 라는 정의의 신념으로 똘똘뭉친 우리의 강검사. 이번엔 재단 이사장과의 한판 싸움이다. 사회적으로는 좋은 일 많이 하며 호감도 높은 명선재단 이사장 한상우, 딱 보면 안다. 이 새끼 냄새난다. 그런데 어디 검사가 감만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느냐. 증거를 잡아라. 증거를. 재단을 이어받기로 했던 큰아들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 그 사이 둘째 아들인 한상우는 재단을 접수하고 다 팔아넘겨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 아 뭔가 이상하지 않나. 킁킁.



* 호화로운 궁전같은 주택과 시키는대로 뭐든 처리하는 믿음직한 수행비서. 내가 곧 법이다.
   대한민국에 안되는게 어딨어, 돈이면 다 돼. 그의 말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래서 서럽다. 화난다.

  검사실에 조무래기 세 앉아있는 장면으로 시선 전환, 어쩌구 저쩌구 궁시렁 궁시렁 제가 안했다니까요, 뭐 이 새끼야. 검사님 오셨습니까, 도장찍을게요, 찍는다고요, 아 진짜, 제가 잘못한거 맞아요 제가 죽일 놈이에요, 내가 전에 너희한테 네 글자로 뭐라고 했지, 공공의 적이요, 너희는 이제 공공의 적 아니다, 그냥 양아치 그냥 양아치, 양아치가 뭐에요 공공의 적이 더 뽀대나는데, 그러니까 너희는 그냥 양아치야. 이런 조무래기를 가지고 공공의 적이라기엔 '공공의 적'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크다. 이름은 걸맞는 놈에게 달아줘야지, 한상우같은 쓰레기에게. 진짜 쓰레기는 소매치기, 도둑, 그냥 노상강도가 아니다. 바로 이런 놈이 '공공의 적'이다. 지 형 교통사고 내서 혼수상태 만들고 결국 죽게 하고, 재단의 청백리인 선생님을 공갈, 협박하고 두드려 패는 놈, 대한민국 검사를 죽이려고 오토바이 폭주족 풀어 도로 한복판에서 방망이질 하는 놈, 자기 맘에 안들면 부하시켜 손봐주는 녀석, 이런 놈이 바로 우리의 '공공의 적'이다.  그런데 이런 놈들은 또 돈있고 백있고 해서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내가 물고 늘어져야 한다. 검찰청에서도 이런 놈 쉽게 조사 못들어간다. 무서우니까. 위에서 받아먹은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힘들다. 그래도 난 하련다. 물고 안놔주련다. 그게 바로 나 강철중 검사.



* 그랬다. 아끼는 부하직원 저 세상 보내고, 나쁜 놈 수사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그래서 마셨다.  술 진탕 먹고 내가 갈 곳은 이곳 뿐이었다. 부장님. 가정의 안락과 평화를 지키는 것보다 나쁜 놈 하나 더 찾아내 벌주는게 더 중요하다고 말해 가족 다 떠나 호래비 된 부장님, 왜 그렇게 사세요, 왜. 이것이 현실이라면 너무나 슬프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보면 정말 욕나온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싶다. 그런데 그런 새끼 우리 사회에 많다. 단지 우리가 현장 목격을 못했을 뿐. 언론에서 다루지 않을 뿐. 검찰에서 조사하지 않을 뿐. 그런 새끼 많다. 영화는 그런 우리의 '공공의 적'을 향한 목소리다. 너 새끼 이거 봤지. 너 이렇게 된다, 라는 협박... 이면 오죽 좋으랴만, 현실은 영화 속 이상과 괴리되어있고, 현실의 '공공의 적'을 향한 우리의 분노는 영화를 통해 해소된다. 그럼 나쁜 영화잖아. 응 나쁜 영화다. 분노의 대상은 현실에 있는데 우리가 가슴에 담아 쌓아왔던 분노들을 왜 영화를 통해 풀게 해. 나쁜 영화다. 그치만 현실의 '공공의 적'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공공의 적'이란 게 있다, 니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을 보내는 동안 인식하지 못하는 다른 세계에 있는 저런 녀석들이 있다, 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못된 놈 때문에 화도 나지만 또 그놈이 저질러놓은 실수(?) 때문에 슬프다. 나를 대신해 녀석들의 표적이 되어 죽어간 아끼는 나의 부하직원. 그 녀석의 장례식에서 나는 봤다. 영정 사진 속에 웃고 있는 그 녀석의 얼굴을. 언제나 나를 웃겨주려 애쓰던 그 녀석의 얼굴을. 술 쳐먹고 전화했더랬다. 홀로 남은 녀석의 아내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전화기에 대고 울부짖던 강검사의 모습을 보고 뜨겁고 진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이 새끼 너무 멋있잖아, 진짜 저런 사람이 검사가 되어야 돼, 넌 진짜배기야, 그리고 죽어간 부하의 얼굴과 지쳐 쓰러진 그의 아내의 모습이 교차하며, 눈물은 울음이 되었다.

  참으로 진솔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저러 나쁜 놈도 있겠지만 저런 좋은 검사도 있으리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나 검사야, 하고 거들먹거리며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검사들 수두룩 빽빽할 것이다. 그치만 저런 멋진 검사 하나 있으리란 희망으로 살아간다. 그런 믿음 조차 없다면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사회정의를 위해 힘쓰는 어느 한 사람을 위해 마음의 박수를.

  실컷 화내고 실컷 울다가 영화 다 끝난다. 이 영화를 만든 강우석 감독과 주연배우 설경구와 정준호도 뛰어났지만, 화면에 자주 나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강신일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얼마전 <강신일의 진술>이라는 연극을 봤다. 한 마디로 최고.  이 영화가 이렇게 멋있는 것은, 다른 인물들 아닌 강신일이 설경구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 본다.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며 좌절과 분노를 반복하는 그에게 힘이 된 것은, 부장검사 강신일의 한 마디였다.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부장검사는 평검사가 수사의 외압을 느끼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일을 밀어부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 배웠습니다. 쓰러진 그를 일으켜 세울 것은 그 뿐이었다. 주연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주연을 화려하게 만드는 조연이 있다. 강신일이 바로 그런 배우이다. 연극판에서의 그의 모습을 연극에서도,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건 관객의 행운이다. 강신일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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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s678 2006-11-13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놈 역할만 놓고 본다면 1편의 이성재와 2편의 정준호...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셨나요? 전 단연 이성재~ 정준호는 못하는 연기는 아닌데, 감정이입까지 되진 않더라구요. 반면 이성재는 예전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부터 최근의 "홀리데이"까지 보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연기력을 갖춘 듯 해요.

마늘빵 2006-11-1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연 이성재랍니다. 정준호의 나쁨은 이성재의 나쁨보다는 덜 구체적이죠. 두 사람의 연기력을 떠나서 나쁜 짓의 행위 형태가 달라요. 이성재의 범죄가 정준호의 범죄보다 사회적으로 작은 것일지는 몰라도, 더 직접적이라고 봤어요.
 

* 스포일러 경고

  그렇지. 전편에서 이미 죽은 주인공을 부활시키는 방법은, 이런식으로 밖에는 가능하지 않지.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시리즈인지라 더 이상 나올만한 소재와 줄거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가능한 영화였다. 리플리는 에일리언과 자살했더랬다. 그런데 다시 돌아왔다면, 그것은 뛰어난 과학기술에 의한 인간복제이거나, 아니면 로보캅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 뿐. 리플리가 돌아왔다. 그것도 꽤나 강력한 존재로서. 에일리언에 대적하기엔 전투력이 많이 딸리는 그녀는 이제 에일리언 하나쯤이야 하는 정도의 존재로 돌아와 동료들을 도와준다. 게다가 에일리언의 어미라니.

  영화 <에일리언>이 처음 나왔던 때가 1979년이라 한다. 이런 내가 태어났을 때잖아. 그런데 4편이 나온 것이 1997년.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오다니. 띄엄띄엄 냈기 때문이기도 했을테지만 참 오래했다. 리플리 역의 시고니 위버는 49년생. 그럼 지금 몇살? 거진 60이 다 되었다. 그녀의 데뷔작이 에일리언이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그녀의 인생은 에일리언과 함께였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외계생물체와 인간의 대결 영화 중에선 가장 획기적이고 신선했던 시리즈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4편까지 우려먹는바람에 그 신선도가 많이 떨어진 감이 없잖아 있다.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또 <스타쉽 트루퍼즈>도 신선했다는 생각. 외계공중전만을 예상하기 쉬운 우리에게 지상전, 땅굴전을 보여준 영화다.

  에일리언 4편에선 외계생물체 에일리언의 어미로서 리플리를 설정함으로써 모성애까지 자극하려한다. 지구로 탈출하는 우주선에 몰래 탑승한 이전의 에일리언과 달리 인간의 형상을 띤 괴물이 우주선에 난 구멍 밖으로 빨려 나가는 장면이 어찌나 불쌍해보이던지. 슬프지는 않지만 불쌍해보였다. 마치 낙태할 때 의사가 들이댄 흡입구에 빨려나가는 태아의 모습같달까. 아마도 감독은 그 장면에서 낙태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렁그렁하게 눈가에 맺힌 눈물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엄마가, 어떻게. 라는 표정을 지으며 리플리를 바라보는 못생긴 마지막 에일리언은 그렇게 사라지고, 리플리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영화가 나온지 10년이 된 지금 5편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이제 그만두려나보다. 하긴 죽는 리플리  살려내 한편 찍어냈으니 더 이상 나올 소재가 뭐있겠느냐.  1편에서 4편까지 뒤로 갈수록 신선도가 떨어지는 영화지만 외계생물체와의 대결 영화에선 일단 아직까지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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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일러 경고

   이렇게 어설픈 프로포즈가 있을까. 계약하지도 않은 조그마한 아파트로 여자친구를 불러내 꽃 한 다발 내밀며 "사랑해. 나랑 결혼해줄래?" 어쩌면 수줍고 어색하고 어설픈 그의 동작들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러움을 자아냈는지도 모르지. 너무 형식적이고 딱딱한 프로포즈보단 훨씬 낫잖아.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먼저 방송국에 취직해 자기 일이 있는 이 여자는 나를 위해 도서관에도 함께 와 공부도 해줬습니다. 그녀는 책을 보고, 나는 사법시험 공부를 하고. 옆에서 책을 읽다 잠든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나는 사법시험을 합격했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맘좋은 변호사가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결혼 후 들어갈 집에 들여놓을 가구를 보기 위해 그녀와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난 너무나 바빴습니다. 그래서 그녀 먼저 가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가기 싫어하는 그녀를 백화점으로 먼저 보낸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너무나 어설픕니다. 덩치는 커가지고 하는 짓은 완전 미련 곰탱이. 그는 산도 잘 못타고, 움직이기를 싫어합니다. 꼼지락꼼지락. 그래가지고 나랑 어떻게 함께 살아가려고. 그치만 이런 그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그날은 그와 만나 백화점에 가기로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바빴어요. 먼저 가라는 말이 왜 그리 서운했던지 하지만 별 수 있어요? 먼저 백화점에 가 가구를 쭉 둘러보고는 백화점 커피숍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던 그때, 일이 터졌습니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두컴컴해졌습니다. 백화점 안이 너무나 더워 이상하긴 했지만 이런 일이 생기니 더더욱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난 깨어났습니다. 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난 어딘가에 깔려있었고 두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울지 않았습니다. 침착하자. 무너진 벽 너머에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무서웠어요. 나는 백화점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갑자기 쿵 소리가 나더니 무너지고 나는 어딘가에 갇혀있었어요. 너무나 무서웠어요. 그런데 옆에 어떤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어요. 보이지는 않았지만 언니와 대화를 하며 많이 기분이 나아졌어요.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그렇게 언니는 나를 두고 갔습니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들. 이제는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다. 이렇게 웃던 너는 냉정하고 사무적인 검사의 모습이 되어있고, 나는 네 곁에 없다.



* 우리가 신혼여행을 떠날 곳이야. 지도를 그리고 사전답사를 하며 사진을 찍고 함께 느낄 그 감동들을 연필에 담아 전해. 이 길을 걸으며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생각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진 그들을 위해 슬퍼했다. 울부짖고, 땅을치고, 기절했다. 어제까지, 조금전까지 나와 함께 있던 그가, 그녀가 이제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남은 자의 삶은 너무나 가혹하다. 언제나 해맑게 웃던 그의 얼굴은 이제 더 이상 인간미를 찾아 볼  수 없는 차가운 모습의 검사로 변해버렸다. 어느날 배달된 한 권의 다이어리. 민주와 현우의 신혼여행. 피로 얼룩져 더러워진 다이어리. 그렇다. 그녀는 날 위해 십년 전 그날 이걸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가르쳐준대로 이제 그녀 없이 나는 홀로 뒤늦은 신혼여행을 떠난다.

   곳곳에서 그녀의 목소리와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을날의 단풍과 작은 개울가에 졸졸 흐르던 빛 머금은 맑은 물, 바람소리, 새소리, 언젠가 그녀와 함께 와봤던 이곳에서 나는 다리 아프다고 툴툴 댔었다. 민주야. 너를 보낸지 십년이건만 아직 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녀가 안내한 뒤늦은 신혼여행길에 나는 한 여자를 만났고,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네가 나에게 보내준 사람이려니 싶다. 이런 인연이 있을까.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자는 눈물로 하루를 보내고, 떠난 자는 말이 없다. 영화는 가을날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여줬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일까, 사고로 이제 이 곳에 남아있지 않은 그녀와 이곳에 남아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은 더욱 아프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너와 함께 보고, 또 아름다운 숲길을 너와 함께 거닐어야 하는데. 난 홀로 이곳에 발을 디딘다. 한 걸음 두 걸음. 너를 떠올리며. 잔잔하게 가슴을 울리는 영화다. 장난치며 좋아하던 두 사람의 과거를 엿보며 웃다가도, 이내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홀로 남은 자를 대신해 눈물을 떨군다. 울었다 웃었다 울었다 웃었다. 그칠만 하면 또 터뜨리고, 또 터뜨리고. 사랑은 멈췄지만 그리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 영화엔 나오지 않은 장면이지만 참 아름답다.
   이런 곳에 말 없이 서로에게 등을 기대고 자연을, 너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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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1-1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경이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설정은 어설펐지만...

마늘빵 2006-11-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거기에 푹 빠져서 봤어요.

하늘바람 2006-11-12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유지태 좋아하는데^^

마늘빵 2006-11-12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지태도, 김지수도 좋아해요. 그래서 봤어요.
 



 * 스포일러 경고

  이런 영화가 있을까 싶다. 대사는 거의 없고, 영화는 온통 나레이션으로 일관한다. 정말 예의 없다. 관객에 대한 예의. 이러면 재미 없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걸까. 극중 벙어리로 나오는 킬라 신하균 만큼이나 관객도 하고팠던 말들을 나레이션으로 대신 하고 싶었던 걸까. 폼 무지하게 잡아보려고 하지만 폼 안잡히는 영화다. 이건 영화 주인공 신하균 또한 마찬가지다. 검정 가죽 자켓에 검정 선그라스 끼고, 심각한 표정 지으며, 똥폼 무지하게 잡아보지만, 어디 폼이란게 겉모습 번드르하게 꾸민다고 나오는건가. 사진으로는 폼이 나올지 모르지만 동영상으론 안나온다.

  인간백정 킬라 신하균. 그는  어찌하다보니 킬러가 되었고, 손에 칼잡고 폼 잡으며 이 세상의 예의 없는 녀석들만 찾아내 골라 죽인다. 정확히 심장을 찔러라. 단 한방에 단 한방에 해치우는거다. 주저없이. 머뭇거림없이 확실하게. 그래 1억만 모으면 된다. 1억이면 난 수술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젠장. 의사를 죽여야된다니. 별 수 없지. 허 이런 이녀석 약먹었네. 하지만 그래도 정확히 칼은 그의 심장을 향해 꽂힌다.



* 이런 어설픈 킬러 봤냐. 아무리 차려입고 폼을 잡아도 폼이 안나온다. 그런데 칼솜씨 하나는 일품이다.
   내꿈은 투우사. 투우사는 폼이 생명인데. 아 정말 가오 안나와.



* 이 여자. 도대체 어쩌자는걸까. 내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걸까. 말도 못하고, 돈도 없고,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아 실수. 돈은 있구나. 수술하려고 모아놓은 돈. 단, 나는 돈이 없어 보이는데.

  일이 끝나면 나는 가끔 분위기 있는 술집에 가 양주를 시키곤 말 없이(말을 못하는거다) 한잔 들이킨다. 그런데 꼭 나한테 추파를 던지며 추근덕거리는 여자가 있다. 이 여자 나한테 다가오더니 기습키스를 한방 날린다. 헙. 므으으읍. 그리곤 가버린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이 여자 우리집에 왔다. 그녀의 카리스마에 당할 수가 없다. 아예 우리집에서 살겠단다.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 아 난 이 여자 앞에서 너무 작아진다. 이렇게 하는게 아니란다.

 일이 틀어졌다. 나는 이제 죽게생겼다. 이런 젠장. 근데 죽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녀의 나의 그녀였다는 것이. 사랑한다 말하고 싶지만 아 말이 안나온다. 그렇다. 나는 벙어리다. 혀 짧은 소리 내며 칼맞고 누워 피흘리며 마지막 한 마디 내뱉는다. 따. 라응. 햬.

  아 슬픈 영화다. 너무 하잖아. 예의 없는 녀석들만 숱하게 가슴에 칼 꽂는 장면 보여주다 결국 주인공까지 칼 맞고 죽고 어쩌자는거야. 아 슬픈 인생들이다. 그에게 죽임을 당한 자나, 죽은 그나, 그를 떠나보내야하는 그녀나, 이런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이나. 아 정말 예의없어. 자 영화 끝났어. 나가. 빨리 나가. 팝콘은 왜 떨어뜨려 예의없게시리. 니들은 영화관에도 오지마. 다행이다 난 영화관에서 안보고 불법다운씨디로 봐서. 나도 참 예의없지. 돈 주고 봐야지 영화를 다운받아 보면 어떡해. 괜찮아. 예의 없는 영화니깐 나도 예의 없게 대한거야. 다 읽었으면 창 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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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1-11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불법다운해서 보셨군요. 예의없는... ^^ 재미나게 읽었어요. 얼른 창 닫아야지. 안 그러면 예의없는 것들이라고 뭐라할라나~

마늘빵 2006-11-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님은 예의있게 댓글도 달고 추천도 누르셨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