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배우들이 똘똘뭉쳐 또 한번 사고쳤다. <공공의 적2>을 봤을 때의 충격은 <공공의 적1>를 봤을 때의 그것보다는 못하지만, 뭐랄까 가슴 속에서 솓구쳐 오르는 순간적인 분노의 폭발력은 작아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커져만 가는 눈덩이마냥 분노의 감정 또한 커진다. 1편을 봤을 때의 감정이 "에이 XX놈"이었다면, 2편을 봤을 때의 감정은 "뭐 저런게 다 있어"와 같달까. 즉각적이냐 아니냐의 차이랄까. 대개의 시리즈작들이 1편과 2편의 줄거리만 바뀐 채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서술방식은 비슷한 구도를 취하는데 비해, <공공의 적> 시리즈는 그렇지 않았다. 애초 감옥이 1편 제작시 2편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편과 2편은 확실히 다르다.

  매일 같이 출근길에 밀려오는 교통체증과 별 이상한 사람들 보면서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강철중 검사는 테잎에서 시키는대로 치즈~ 스마일~, 하고 웃고 다닌다. 검찰청 최고의 꼴통 검사. 경찰 최고의 꼴통 형사는 후줄근한 추리닝을 벗어던지고 값비싸지도 않고 메이커도 아닌 듯한 하지만 그래도 뽀대 좀 나는 양복에 넥타이로 변신했다. 1편을 봤던 이들은 2편의 그의 모습만 접하고도 웃음이 나올 터.

  나쁜 새끼는 반드시 잡아야 돼, 라는 정의의 신념으로 똘똘뭉친 우리의 강검사. 이번엔 재단 이사장과의 한판 싸움이다. 사회적으로는 좋은 일 많이 하며 호감도 높은 명선재단 이사장 한상우, 딱 보면 안다. 이 새끼 냄새난다. 그런데 어디 검사가 감만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느냐. 증거를 잡아라. 증거를. 재단을 이어받기로 했던 큰아들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 그 사이 둘째 아들인 한상우는 재단을 접수하고 다 팔아넘겨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 아 뭔가 이상하지 않나. 킁킁.



* 호화로운 궁전같은 주택과 시키는대로 뭐든 처리하는 믿음직한 수행비서. 내가 곧 법이다.
   대한민국에 안되는게 어딨어, 돈이면 다 돼. 그의 말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래서 서럽다. 화난다.

  검사실에 조무래기 세 앉아있는 장면으로 시선 전환, 어쩌구 저쩌구 궁시렁 궁시렁 제가 안했다니까요, 뭐 이 새끼야. 검사님 오셨습니까, 도장찍을게요, 찍는다고요, 아 진짜, 제가 잘못한거 맞아요 제가 죽일 놈이에요, 내가 전에 너희한테 네 글자로 뭐라고 했지, 공공의 적이요, 너희는 이제 공공의 적 아니다, 그냥 양아치 그냥 양아치, 양아치가 뭐에요 공공의 적이 더 뽀대나는데, 그러니까 너희는 그냥 양아치야. 이런 조무래기를 가지고 공공의 적이라기엔 '공공의 적'이라는 이름은 너무나 크다. 이름은 걸맞는 놈에게 달아줘야지, 한상우같은 쓰레기에게. 진짜 쓰레기는 소매치기, 도둑, 그냥 노상강도가 아니다. 바로 이런 놈이 '공공의 적'이다. 지 형 교통사고 내서 혼수상태 만들고 결국 죽게 하고, 재단의 청백리인 선생님을 공갈, 협박하고 두드려 패는 놈, 대한민국 검사를 죽이려고 오토바이 폭주족 풀어 도로 한복판에서 방망이질 하는 놈, 자기 맘에 안들면 부하시켜 손봐주는 녀석, 이런 놈이 바로 우리의 '공공의 적'이다.  그런데 이런 놈들은 또 돈있고 백있고 해서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내가 물고 늘어져야 한다. 검찰청에서도 이런 놈 쉽게 조사 못들어간다. 무서우니까. 위에서 받아먹은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힘들다. 그래도 난 하련다. 물고 안놔주련다. 그게 바로 나 강철중 검사.



* 그랬다. 아끼는 부하직원 저 세상 보내고, 나쁜 놈 수사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그래서 마셨다.  술 진탕 먹고 내가 갈 곳은 이곳 뿐이었다. 부장님. 가정의 안락과 평화를 지키는 것보다 나쁜 놈 하나 더 찾아내 벌주는게 더 중요하다고 말해 가족 다 떠나 호래비 된 부장님, 왜 그렇게 사세요, 왜. 이것이 현실이라면 너무나 슬프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보면 정말 욕나온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싶다. 그런데 그런 새끼 우리 사회에 많다. 단지 우리가 현장 목격을 못했을 뿐. 언론에서 다루지 않을 뿐. 검찰에서 조사하지 않을 뿐. 그런 새끼 많다. 영화는 그런 우리의 '공공의 적'을 향한 목소리다. 너 새끼 이거 봤지. 너 이렇게 된다, 라는 협박... 이면 오죽 좋으랴만, 현실은 영화 속 이상과 괴리되어있고, 현실의 '공공의 적'을 향한 우리의 분노는 영화를 통해 해소된다. 그럼 나쁜 영화잖아. 응 나쁜 영화다. 분노의 대상은 현실에 있는데 우리가 가슴에 담아 쌓아왔던 분노들을 왜 영화를 통해 풀게 해. 나쁜 영화다. 그치만 현실의 '공공의 적'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공공의 적'이란 게 있다, 니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을 보내는 동안 인식하지 못하는 다른 세계에 있는 저런 녀석들이 있다, 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못된 놈 때문에 화도 나지만 또 그놈이 저질러놓은 실수(?) 때문에 슬프다. 나를 대신해 녀석들의 표적이 되어 죽어간 아끼는 나의 부하직원. 그 녀석의 장례식에서 나는 봤다. 영정 사진 속에 웃고 있는 그 녀석의 얼굴을. 언제나 나를 웃겨주려 애쓰던 그 녀석의 얼굴을. 술 쳐먹고 전화했더랬다. 홀로 남은 녀석의 아내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전화기에 대고 울부짖던 강검사의 모습을 보고 뜨겁고 진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이 새끼 너무 멋있잖아, 진짜 저런 사람이 검사가 되어야 돼, 넌 진짜배기야, 그리고 죽어간 부하의 얼굴과 지쳐 쓰러진 그의 아내의 모습이 교차하며, 눈물은 울음이 되었다.

  참으로 진솔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저러 나쁜 놈도 있겠지만 저런 좋은 검사도 있으리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나 검사야, 하고 거들먹거리며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검사들 수두룩 빽빽할 것이다. 그치만 저런 멋진 검사 하나 있으리란 희망으로 살아간다. 그런 믿음 조차 없다면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사회정의를 위해 힘쓰는 어느 한 사람을 위해 마음의 박수를.

  실컷 화내고 실컷 울다가 영화 다 끝난다. 이 영화를 만든 강우석 감독과 주연배우 설경구와 정준호도 뛰어났지만, 화면에 자주 나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강신일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얼마전 <강신일의 진술>이라는 연극을 봤다. 한 마디로 최고.  이 영화가 이렇게 멋있는 것은, 다른 인물들 아닌 강신일이 설경구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 본다.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며 좌절과 분노를 반복하는 그에게 힘이 된 것은, 부장검사 강신일의 한 마디였다.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부장검사는 평검사가 수사의 외압을 느끼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일을 밀어부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 배웠습니다. 쓰러진 그를 일으켜 세울 것은 그 뿐이었다. 주연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주연을 화려하게 만드는 조연이 있다. 강신일이 바로 그런 배우이다. 연극판에서의 그의 모습을 연극에서도,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건 관객의 행운이다. 강신일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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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s678 2006-11-13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놈 역할만 놓고 본다면 1편의 이성재와 2편의 정준호...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셨나요? 전 단연 이성재~ 정준호는 못하는 연기는 아닌데, 감정이입까지 되진 않더라구요. 반면 이성재는 예전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부터 최근의 "홀리데이"까지 보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연기력을 갖춘 듯 해요.

마늘빵 2006-11-1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연 이성재랍니다. 정준호의 나쁨은 이성재의 나쁨보다는 덜 구체적이죠. 두 사람의 연기력을 떠나서 나쁜 짓의 행위 형태가 달라요. 이성재의 범죄가 정준호의 범죄보다 사회적으로 작은 것일지는 몰라도, 더 직접적이라고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