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이렇게 어설픈 프로포즈가 있을까. 계약하지도 않은 조그마한 아파트로 여자친구를 불러내 꽃 한 다발 내밀며 "사랑해. 나랑 결혼해줄래?" 어쩌면 수줍고 어색하고 어설픈 그의 동작들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러움을 자아냈는지도 모르지. 너무 형식적이고 딱딱한 프로포즈보단 훨씬 낫잖아.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먼저 방송국에 취직해 자기 일이 있는 이 여자는 나를 위해 도서관에도 함께 와 공부도 해줬습니다. 그녀는 책을 보고, 나는 사법시험 공부를 하고. 옆에서 책을 읽다 잠든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나는 사법시험을 합격했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맘좋은 변호사가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결혼 후 들어갈 집에 들여놓을 가구를 보기 위해 그녀와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난 너무나 바빴습니다. 그래서 그녀 먼저 가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가기 싫어하는 그녀를 백화점으로 먼저 보낸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너무나 어설픕니다. 덩치는 커가지고 하는 짓은 완전 미련 곰탱이. 그는 산도 잘 못타고, 움직이기를 싫어합니다. 꼼지락꼼지락. 그래가지고 나랑 어떻게 함께 살아가려고. 그치만 이런 그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그날은 그와 만나 백화점에 가기로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바빴어요. 먼저 가라는 말이 왜 그리 서운했던지 하지만 별 수 있어요? 먼저 백화점에 가 가구를 쭉 둘러보고는 백화점 커피숍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던 그때, 일이 터졌습니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고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두컴컴해졌습니다. 백화점 안이 너무나 더워 이상하긴 했지만 이런 일이 생기니 더더욱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난 깨어났습니다. 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난 어딘가에 깔려있었고 두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울지 않았습니다. 침착하자. 무너진 벽 너머에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무서웠어요. 나는 백화점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갑자기 쿵 소리가 나더니 무너지고 나는 어딘가에 갇혀있었어요. 너무나 무서웠어요. 그런데 옆에 어떤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어요. 보이지는 않았지만 언니와 대화를 하며 많이 기분이 나아졌어요.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그렇게 언니는 나를 두고 갔습니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들. 이제는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다. 이렇게 웃던 너는 냉정하고 사무적인 검사의 모습이 되어있고, 나는 네 곁에 없다.



* 우리가 신혼여행을 떠날 곳이야. 지도를 그리고 사전답사를 하며 사진을 찍고 함께 느낄 그 감동들을 연필에 담아 전해. 이 길을 걸으며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생각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진 그들을 위해 슬퍼했다. 울부짖고, 땅을치고, 기절했다. 어제까지, 조금전까지 나와 함께 있던 그가, 그녀가 이제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남은 자의 삶은 너무나 가혹하다. 언제나 해맑게 웃던 그의 얼굴은 이제 더 이상 인간미를 찾아 볼  수 없는 차가운 모습의 검사로 변해버렸다. 어느날 배달된 한 권의 다이어리. 민주와 현우의 신혼여행. 피로 얼룩져 더러워진 다이어리. 그렇다. 그녀는 날 위해 십년 전 그날 이걸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가르쳐준대로 이제 그녀 없이 나는 홀로 뒤늦은 신혼여행을 떠난다.

   곳곳에서 그녀의 목소리와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을날의 단풍과 작은 개울가에 졸졸 흐르던 빛 머금은 맑은 물, 바람소리, 새소리, 언젠가 그녀와 함께 와봤던 이곳에서 나는 다리 아프다고 툴툴 댔었다. 민주야. 너를 보낸지 십년이건만 아직 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녀가 안내한 뒤늦은 신혼여행길에 나는 한 여자를 만났고,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네가 나에게 보내준 사람이려니 싶다. 이런 인연이 있을까.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자는 눈물로 하루를 보내고, 떠난 자는 말이 없다. 영화는 가을날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여줬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일까, 사고로 이제 이 곳에 남아있지 않은 그녀와 이곳에 남아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은 더욱 아프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너와 함께 보고, 또 아름다운 숲길을 너와 함께 거닐어야 하는데. 난 홀로 이곳에 발을 디딘다. 한 걸음 두 걸음. 너를 떠올리며. 잔잔하게 가슴을 울리는 영화다. 장난치며 좋아하던 두 사람의 과거를 엿보며 웃다가도, 이내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홀로 남은 자를 대신해 눈물을 떨군다. 울었다 웃었다 울었다 웃었다. 그칠만 하면 또 터뜨리고, 또 터뜨리고. 사랑은 멈췄지만 그리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 영화엔 나오지 않은 장면이지만 참 아름답다.
   이런 곳에 말 없이 서로에게 등을 기대고 자연을, 너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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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1-1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경이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설정은 어설펐지만...

마늘빵 2006-11-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거기에 푹 빠져서 봤어요.

하늘바람 2006-11-12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유지태 좋아하는데^^

마늘빵 2006-11-12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지태도, 김지수도 좋아해요. 그래서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