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22 예스24 영화

http://movie.yes24.com/movie/movie_memwr/view.aspx?s_code=SUB_MEMWR&page=1&no=14446&ref=33&m_type=1




* 스포일러 경고

  그냥 이렇게 묻혀지기엔 아까운 영화다. 상영하는 곳이 전국에 몇 군데 없는데다가, 그마저도 언제 간판을 내릴지 모르는 비주류 영화인지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접하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보고 후회하지 않는 영화.  내 인생의 영화 5편 안에 까지는 아니더라도 10편 안에는 포함시킬 수 있는 영화.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했었고, 사랑할 사람이라면, 또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뭐 이런 영화를 추천하고 그래, 라고 툴툴 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 '비포 선라이즈' 보다 솔직담백하고, '비포 선셋' 보다 가벼운 영화' " 

  <낯선 여인과의 하루>와  <비포선라이즈> <비포선셋>은 분위기가 너무나 다르지만 통하는 면이 있다. 분명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확실히 <비포 선라이즈>보다는 솔직담백하고, <비포선셋>보다는 가볍다. 동시에 두 영화와 비교할 수 있다는 건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에서부터 <비포 선셋>에 이르기까지의 9년의 공백 후의 만남과 헤어짐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말. 



 

  작년 한해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이 사람들에게 꽤나 인기를 끌었더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와 <우리는 사랑일까>는 그의 작품 중 탁월하다. 에세이라 보기에도 어렵고, 연애소설이라 보기에도 어려운, 또 철학서라고 보기는 더더욱 어려운, 이 셋의 어느 중간즈음에 위치한 책인데, 에세이나 연애소설이나 철학서, 셋 중 '두 가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셋 중 어느 '한 가지만' 좋아하는 독자라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알랭 드 보통 이야기를 꺼낸 것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두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들을 두고 전자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이 읽었음 좋겠고, 후자는 20대 중후반즈음의 나이에 어느 정도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고, 이별의 쓴 맛을 경험한, 연애의 시작과 끝이 어느 정도 익숙한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슷하게,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은 실제로 9년간의 텀이 있는 만큼, 전작을 본 후 9년 뒤에 다시 보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배우들도 9살을 더 먹었고, 9년 만에 다시 만나 연기를 했으며, 영화 속 설정 또한 9년 뒤의 모습이다. 20살과 29살은 매우 다르다. 좋아하지만 좋아한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 혹은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20살과,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있고, 사랑을 표현할 줄도 아는, 그리고 만남에서 헤어짐의 과정이 반복되는 학습효과로 인해 더이상 생소하지 않은 29살은... 다르다.  한편, <낯선 여인과의 하루>는 <비포선셋>보다 조금 더 세월을 타고 간다. 그것은 영화의 주연배우의 물리적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 사랑의 느낌이 지니는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 분홍색 꽉끼는 신부 들러리복 입고 삐딱하게 외딴남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와 잘입은 양복 주머니에 손 꾹 찔러넣고 삐딱한 외딴녀를 바라보는 남자.


  영화는 어느 결혼식 피로연 파티장을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랑과 신부에게로 집중되어 있는 이때, 카메라는 외딴 두 남녀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훤칠하게 잘 생긴 외딴 남자가 핑크색 들러리 드레스를 입은 외딴 여자에게샴페인 한잔과 말을 건넨다. "고맙지만 됐어요" "담배는 하면서 술은 싫다?" 친절한 사양과, 작업과 딴지의 어느 중간쯤 있는 멘트로 시작된 두 외딴 남녀의 대화는 우리를 어느 호텔방으로 안내한다. 그래 원나잇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흔히 20대에는 사랑을 배우고, 30대에는 사랑을 안다고 말하던가. 그것은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하느냐, 섹스를 하고 키스를 하느냐의 차이가 아니다. 사랑은 섹스가 아니고, 섹스도 사랑이 아니다. 스킨쉽의 농도를 가지고 사랑을 배운다, 사랑을 안다고 말하는 건 너무나 차원 낮은 사고방식이다. <낯선 여인과의 하루>는 30대 중후반의 남녀의 사랑을 그려내지만, 사랑을 배우는 20대와 사랑을 아는 30대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외딴 남녀 간의 쉴새없는 수다는 피로연장에서 호텔방으로 우리를 안내했고, 장소의 바뀜에 굴하지 않고 수다는 끊임없이 지속된다.  



* "고맙지만 됐어요" 하던 여자와 "담배는 하면서 술은 싫다?"고 하며, 재치넘치는 대화를 수고 받던 두 사람은 이제 온힘을 다해(?) 키스하고 있다. 


  "당신 피부 푸석푸석해" "당신은 냄새나. 그리고 배도 나왔네?" 아니 이게 처음 만난 외딴 두 남녀가 호텔방에서 섹스를 하며 나눌 말인가. 서로의 신체에 대해 칭찬을 퍼부으며 서로의 몸을 탐닉해야 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비방 아닌 비방을 하고 있다. 아니 원나잇하러 호텔방 들어왔는데 하겠다는거야 말겠다는거야. (뭘?) 두 사람의 대화는 너무나 솔직하고 꾸밈없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를 서로에게 내뱉는 두 사람은, 어느새 나의 과거에 대해, 당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 그날 우리의 만남과 첫 키스, 사랑, 첫 섹스, 그리고 갑작스런 이별. 모든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떠났다. 남은 자는 놀랐고 울었으며 괴로웠다. 떠난 자도 남은 자도 상처를 안은 채 살아왔고, 현실을 받아들였으며, 각자의 인생을 걸었다.

  그 남자는 옷 잘 차려입은 변호사이고, 뮤지컬(?)을 하는 이쁘고 아름답고 나이 어린 여자친구가 있으며, 그 여자는 능력 좋은 심장전문의를 만나 결혼했고, 그의 아이를 키우며 그럭저럭 인생을 살아왔다. 그 남자는 전보다 배가 나왔고, 긴 머리는 짧은 머리로 변했으며, 여전히 열정을 가진 매력남이었고, 그 여자는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빠꾸놓은 8명의 예비들러리들을 제치고, 9번째 들러리로 식장에 들어선, 담배 뻑뻑 피워대고 피부는 윤기를 잃었지만 여전히 도도하고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서 외로운 남녀가 뭘할까" 하고 작업을 걸줄도 아는 용기(?)도 가졌다.   

  <비포선라이즈>와 같은 원나잇이지만, 그들의 어색함과 풋풋함이 아닌, 농후하고 진하며 어색하지 않고 가볍다. 원나잇을 처음 해보는 자와 원나잇을 여러본 해본 자의 경험상의 차이는 절대 아니다. 제시와 셀린이 각자 원나잇을 몇번해봤는지, 이름없는 이 두 남녀가 각자 원나잇을 몇번해봤는지는 나는 모른다. 모두가 경험자일수도 모두가 초짜일수도 있다. 무엇이 이름없는 두 남녀의 호텔방을 그리 만들었을까. 서로에게 농을 던지고, 솔직하게 못난 신체에 대해 말할 줄도 아는, 위트와 재치가 어우러지는 이들의 대화 아니면 수다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만났고 사랑했고 함께 했지만 헤어진 남녀는, 만났고 대화를 나눴고 하룻밤을 함께 했다. 그리고 여자는 집으로, 남자도 집으로. 헤어진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해뜬 아침 서로의 자리로 돌아간다. 공허한가. 허무한가. 왜, 라고 질문하고 싶은가. 모든 의문을 참아주기 바란다. 그것이 사랑했다 헤어진, 지금은 각자의 자리를 가진 남녀의 사랑일지니. 세월은 그와 그녀에 대한 기억력을 훼손시켰고 우리는 서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짜맞추며 만남에서부터 헤어짐까지의 일치된 줄거리를 만들어냈다. 그건 파란색 땡땡이 원피스였어, 아니라고 나는 검정색 나비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고.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줄무늬면 어떻고 빨간색이면 어떻고 니트면 어떻고 일반 넥타이면 어떠랴. 내가 사랑한건 너였고, 니가 사랑한건 나였잖냐. 그럼 됐잖냐. 영화를 통해 당신의 헤어진 그 혹은 그녀와 만나기 바란다. 그리고 현재 당신이 사랑하는 그 혹은 그녀와 만나기 바란다. 남은 것은 그것뿐. 여기까지.  
 
 

* '칼럼'이라고 붙여져있지만, 형식에 얽매이는 글을 쓰진 않습니다. 칼럼이면 칼럼이고, 리뷰면 리뷰고, 것도 아니면 아닌거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02-2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보고싶었지만,,,흐흑

마늘빵 2007-02-23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몇 군데 안해요. 아직도 하나 모르겠습니다.

백년고독 2007-02-25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선셋, 비포선라이즈를 재미있게 본 저로서는 이 영화 무조건 봐야겠네요. 게다가 알랭드보통 책과의 비교가 마음에 와 닿네요. 좋은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

마늘빵 2007-02-2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선셋/선라이즈 와는 느낌이 많인 다를거에요. ^^ 나이먹은 유부녀, 유부남들의 원나잇인지라. 풋풋함보다는 농후함이죠. 둘 다 아주 능수능란해요.
 



* 스포일러 경고

  봉태규표 코미디란 이런 것. 봉태규 주연이 아니었다면 망할 수도 있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본 뒤 봉태규를 쏙 빼버리는 남는 것은 없다. 그를 제외하고는 출연진이 죄 신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금은 이제 조금 유명해진 하석진의 경우 봉태규와 동갑내기이고, 한명은 SBS 웃찾사 코너 중 '단무지 아카데미' 를 진행하는 개그맨이다. 여주인공도 모델로 깜짝 활동했던 신인이고. 그러니 연기력을 기대할 수 있는건 '검증된' 봉태규 뿐이고, 그가 제외되었다면 주목도 받지 못할 영화다. 솔직히 봉태규 없으면 이 영화 보지 않았다.

  이렇게 어느덧 봉태규는 서서히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명지전문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타이틀로 먹고 들어가는 우리나라 연예계에서도 그의 프로필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순전히 봉태규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연기력으로 승부를 봤다고 봐야지. 2000년 <눈물>로 데뷔하여, <정글쥬스> <굳세어라 금순아> <품행제로> <튜브>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광식이 동생 광태> <가족의 탄생>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대략 지금의 그를 만든 이미지는 <광식이 동생 광태>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그의 캐릭터가 가장 빛을 발한 영화가 그것인지도.

  능글능글 거리면서 대담하고 엉뚱하고 막무가내인 그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건, 봉태규 캐릭터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해도 싫지 않으니 어쩌랴. 남자인 나도 이런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솔직히 이런 캐릭터가 지금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가 아닌가. 배우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볼따구 넙적하고 눈은 찢어지고 입은 헤벌쭉.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이런 특이하고 개성있는 외모는 배우로서의 그를 만드는데 자연스럽게 일조하지 않았을까.



* 능글능글, 귀엽게, 헤벌쭉, 시선은 야릇하게. 무슨 상황일꼬.

  영화는 진짜 별거 없다. 왕따의 천성을 타고나 가는 곳마다 괴롬힘을 당하는 이 녀석은 2년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만, 다시 왕따당하고 맞을 것을 우려하여 어머니께서는 10만원짜리 수표 한장을 건넨다. 역시나 첫 학교였지만 이미 이상한 애라는 주위의 시선, 그리고 그를 죽어라 패주었던 예전의 친구가 정문에서 기다린다. 좆됐다. 나름 왕따교실의 친구였다 적응한 녀석의 도움으로 온전한 학교 생활 해볼까 해보지만 될리가 만무하지. 하필 또 이 학교 짱에게 대들건 뭐람. 얼굴 반반하게 생긴 우리반 반장 구한답시고 나는 이제 죽게생겼다.   “너, 오늘 나랑 붙는다! 방과후 옥상이다! 도망가도 죽는다! 안나와도 죽는다! 어차피 넌 죽는다!" 너무나 무섭습니다. 아 나는 이제 어쩐답니까.

  방과 후 옥상까지 7시간 남았다. 자 피할 방도를 생각해보자. 권투부 친구에게 돈을 먹여 대적하게 하기도, 눈을 찔러 눈병인 척하기도, 유통기한 며칠 지난 우유를 먹어볼까 생각하기도 해봤지만, 아 대책이 안섭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다들 내가 대단한 녀석인 줄 알고 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내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과 같다니. 은근 기분 좋은걸. 우쒸 덤비기만 해봐. 다 죽었쓰. 그런데. 그런데. 그럼 뭐합니까. 이따 붙으면 다 뻔히 드러날텐데.

  싸움의 결과는 안봐도 뻔하지만, 어디 이 영화가 그걸 노리고 영화를 만들었겠는가.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싸움이겠거니. 영화 중반 쯤 넘어서면 대략 결과가 어떻게 날지는 예상가능하지만, 남은 데드라인까지의 봉태규의 대처방법이 궁금해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다. 예상을 넘어서는 행동과 웃기는 이 캐릭터, 꼬봉이며 꼬봉이었지 결코 왕따일 수 없는 이 녀석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을꼬.



* 이쁘지는 않지만 신비한 매력이 있다. 뒷조사 결과 숙명여대 디자인학과생이라 하던데. 에꼴로 데뷔했다지.

  <방과 후 옥상>은 의외의 어떤 영화와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말.죽.거.리. 잔.혹.사. 분위기도 완전 다르고, 영화 장르, 캐릭터 하며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어보이지만, 대략 진행되는 상황이 비슷하다. 위험에 처해있는 친구 구하다가 일짱한테 찍혀서 학교 옥상에서 한판 붙게되는 줄거리하며,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녀석이 일짱한테 개기는 것하며, 교실에서 웬놈하나가 선생님에게 찍혀 죽어라 맞는 장면하며, 이런 상황들이 큰 줄거리가 되어 맞물리는 상황들이 비슷하다. 그러나 어떤 과거의 시대상을 보여주려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왕따가 일짱한테 개기고 맞붙게 되었고, 데드라인 얼마 안남았다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웃고 즐기는 영화로 봐야한다. 킬링타임용 유치코믹영화이지만 약 100분 가량의 러닝타임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봉태규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스포일러 경고

  별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가끔은 필요하다. 각자의 취향과 스타일에 따라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 기준이 있겠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선택 기준으로 이렇게 네 가지를 언급해 볼 수 있다. 첫째, 내 돈 투자해가며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 둘째,  비디오가 나오면 볼 영화. 셋째, 편히 쉬다가 티비 켜고 채널 돌리는데 우연히 마주친 영화. 넷째, 우연히 마주쳐도 보지 않을 영화. 영화에 대한 만족도와는 달리 이와 같은 기준은 영화를 보기 이전에 이루어진다. 선택한 영화가 내게 얼마만큼의 만족를 주는지는 알 수 없다.

  근래 1년에 90여편의 영화를 보는 나로서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쉬는 동안에 케이블 티비 영화 채널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영화들이 상당수다. 이 영화를 봐아겠다 하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보는 것이 아니라, 밥먹다가 쇼파에 앉아 쉬다가 리모컨으로 깔짝깔짝 채널 돌리다가 만나는 영화들이다. 이런 나날이 많아지면 가끔 예기치않게 보고 싶었던 영화를 접하기도 하고, 전엔 몰랐는데 참 괜찮은 영화를 접하게 되기도 한다.

  영화 <미이라>는 뇌 비워놓고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영화들에 큰 가치를 두지 않고, 어쩔 땐 그런 영화를 본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휴식'이라 생각하면 그런대로 썩 괜찮은 시간이다. 쉬고 싶은데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영화나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볼 순 없지 않은가. <미이라>는 그런 영화다. 머리 비우고 즐길 수 있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세티 1세의 아내 앙크수나문과 승정원 이모텝이 사랑에 빠졌고, 잉크수나문은 자결했으며, 이모텝은 홈다이에 처해졌다. 산채로 석관에 갇힌 채 조금씩 살을 갉아먹는 풍뎅이들과 함께 영원히 산채로 살아야 하는 형벌이 홈다이다. 그리고 3천년이 지났다. 황금이 묻혀있다고 전해지는 하무납트라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오로지 한명이 살아남았으며, 몇몇이 다시 뭉쳐 하무납트랄의 보물사냥에 나선다. 이후의 사건이야 말하지 않아도 예상되는 일.

  고대 이집트, 미이라, 피라미드, 잉카문명 등등 고대문명의 중심지를 배경으로 놓고 만들어지는 영화의 주인공들의 목적은 보물사냥이다. 고고학자와 고대어 전문가, 그리고 돈에 눈먼 몇몇이 한팀이 되어 온갖 현대판 화기로 무장하고 흙먼지 뒤집어 쓴 채 보물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원래 목적과는 달리 고대 문명의 희귀한 문화재를 발견하고, 이것이 또 열쇠가 되어 결국 보물이 있는 곳을 찾게 된다. 그러나 이런 어드벤쳐 영화에 꼭 첨가되는 것은, 장소는 찾되 보물은 손에 쥐지 못한다는 교훈이다. 욕심 부리지 말지어다. 벌 받는다. 그래서 꼭 팀원 중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자는 안에 갇혀 못나오고, 욕심을 버린 자들은 살아 나온다. 또 빠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지. 욕심을 버리고 살아 남은 자들에겐 그들이 챙기지 않은 보물이 하나씩 들어있다는 것.



* 앙크수나문을 부활시키기 위해 그녀를 제물로 삼았다. 자 이제 마지막 단계. 주문을 외워라. 야발라야히야. 야발라바히야.

  대개의 뇌 비우는 영화들은 스토리가 정해져있고 영화 포스터만 봐도 결론을 알 수 있다. 거꾸로 스토리가 정해져있고 영화 포스터만 봐도 결론을 알 수 있는 영화들은 뇌 비우는 영화다, 라는 명제도 성립한다. 대개 생각거리를 던져주거나 머리 복잡하게 만드는 영화들은 - 예를 들면 메멘토나 나비효과 같은 - 한 장면 뒤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이야기가 어디로 어떻게 전개되어가는지도, 뭘 말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관객은 눈 부릎뜨고 머리칼 쭈뼛 세우고 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 영화들은 뇌를 비워놓을 수 없다. 반대로 모든 것이 예상가능한 영화들은 헤벌레 입 벌리고 드러누워 어디 어떻게 결론에 도달하나보자 정도의 생각을 하거나, 혹은 이 정도도 부담스럽다면 그냥 눈만 뜨고 화면만 보고 있으면 된다.

  <미이라>는 뇌 비우고 즐길 영화 중에서는 꽤 괜찮은 영화였고, 스릴도 있고, 볼거리도 있으며, 흥미롭기도 했다. 특히나 지하동굴(?)의 고대 유령들과 풍뎅이 등의 CG효과는 칭찬할 만하다.감독 스티브 소머즈는 영화를 만들 때 "더 크고 더 재미있게"를 자신의 모토로 삼는다 한다. <미이라>는 이런 신조로 만들어진 영화이고, 이는 후속편과 <반헬싱>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모든 이들이 신나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 그것이 뇌 비우기 영화의 진실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7-02-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 장면, 넘 무서웠어요. 그놈의 풍뎅이들 하고...^^

가넷 2007-02-1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뎅이들... 소름이...;ㅁ;

마늘빵 2007-02-1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뎅이. 무섭죠. 이 영화에서 제일 무서운건 풍뎅이에요.
그늘사초님 아직 안보셨나요?

가넷 2007-02-13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1,2 다봤어요. 명절때가 되면 매번 방영되니까요.--;

전호인 2007-02-13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 다 봤는 데....... 징그럽다 였습니다. ㅎㅎ

마늘빵 2007-02-1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늘사초님 / 전 1편 밖에 못봤는데 이거 3편까지 있나요? 그렇게 본거 같은데.
전호인님 / 징그럽다. 정답입니다. ^^

이매지 2007-02-14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OCN에서도 정말 자주하는 듯. 티비 자주 안 보는 제가 틀 때마다 하더군요-_-;;

마늘빵 2007-02-1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방학땐 오씨엔 즐겨보는데 미이라는 저한테 처음 걸렸어요. 전 씨에스아이 할 때가 젤 좋던데. 언제언제 하는지는 몰라요. 걍 틀어서 나오면 봐요.
 



* 스포일러 경고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만 이 영화에 대한 평 중 다수가 "원작과 다르지만 재미있다"로 요약된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7권을 쓰고 있고, 조앤롤랑에 의하면 마지막편에서 두 주인공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고 하니,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과감히 주인공을 '죽여버리는' 결단을 주저하지 않는구나. 주인공의 죽음이야 말로 정말 시리즈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이니. <터미네이터> 처럼 주인공이 다시 되살아난다거나 하는 일은 해리포터에선 없을 듯 하다. 사이보그와 인간의 차이.

  원작은 어떤지 모르지만 재미있는건 사실이다. 한번 첫편을 놓친 이후부터 후속편이 줄줄이 나와도 읽지 않고 보지 않은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는데, 마음먹고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시리즈를 빌리지 않는 이상 그럴 기회는 오지 않을 듯 해서 그냥 먼저 다가오는 순서대로 봤다. 1편, 2편 숫자를 붙여놓은 것이 아닌지라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지도 헷갈리고, 아무거나 먼저 봐도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결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세 학교의 교수와 학생이 모인 가운데 불의 잔은 트리위저드 대회 참가자 명단을 발표한다.

  트리위저드 마법경연대회. 인근의 명문 세 개 학교에서 트리위저드 컵을 놓고 대결을 펼친다. 지원자는 불의 잔에 이름을 집어넣고, 추첨을 통해 자동으로 참가자가 결정된다. 각 학교에서 세 명의 참가자가 나오게 되는데, 당연 해리포터는 나이제한으로 참가자격 미달이다. 그러나. 역시 일은 예정대로 진행되면 재미없다. 덤스트랭 학교의 빅터 크룸(스타니슬라브 이아네브스키)과 보바통 마법아카데미의 플뢰르 델라쿠르(클레멘스 포에시), 그리고 호그와트의 케드릭 디고리(로버트 패틴슨). 불의 잔은 마지막으로 한 명의 참가자 더 추가하는데, 자격미달인 해리포터의 이름이 호명된다.
 
  모두들 어이없어하고 심지어는 해리포터에게 불의 잔에 이름을 넣었냐고 캐묻지만 그건 애초 불가능하다. 자격미달인 자가 이름을 넣게 되면 불의 잔은 벌을 주게 되었었으니까. 어쨌든 이미 호명되었으니 되돌릴 순 없다. 네 명의 참가자는 주어지는 과제를 수행하고 다음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 귀여운 꽃미남 해리포터와 이쁘장한 그의 단짝 헤르미온느

  영화는 마치 어드벤처 컴퓨터 게임과 같다. 우리가 직접 조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 게임에서 진행되는 상황과 다를 바는 없다. 마법을 사용하고 아이템을 얻고 동료를 구출하고 적을 물리치고 시간의 문을 넘어 어딘가로 빠져들고 함정에서 나와야 한다. 때로는 죽을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정해진 규칙대로 하지 않았더라도 '희생정신 발휘'를 통해 보너스 점수를 획득한다.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함정과 적들, 그리고 믿어도 될지 모르는 주변 사람들을 의심해가며 주어진 임무를 달성했을 때의 쾌감. 게임에서나 영화에서나 다르지 않다. 단지 내가 직접 화면을 보며 조작하느냐 아니면 조작된 화면을 눈으로 보며 즐기느냐의 차이일 뿐. 때로는 조작된 스토리가 직접 자판을 치는 것보다 흥미로울 때도 있다. 역시 게임과 마찬가지로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영화는 종료된다. 다음 임무는 5편에서. 다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게임 추가 확장판을 사야하듯 다음 영화표를 구매해야 한다.

 p.s.

해리포터로 일약 스타가 된 이제 18살이 된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연극 '에쿠스'에 출연하며 누드를 감행했다. 그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어린 아이들이 다수 있는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연예인이니 공인이냐 아니냐의 차원으로 번질 수도 있는 문제라 생각된다. 공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지켜달라, 당신은 많은 이들의 우상이다, 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나는 내가 갈 길을 간다, 작품은 내가 선택하고, 노출의 수위도 내가 결정한다, 라고 말 할 수도 있는 형편.

국내 아역배우들 중 상당수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출연기를 감행한 것과 비슷하지 싶다. 김민정과 이재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영화에 출연해 떴으니 아이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되었을 것이고, 이를 없애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최근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내 안의 일부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인식을 바꾸라고 요동을 친다”며 “연극 출연은 나를 일깨우는 일이고, 대중이 ‘해리포터’보다 더 나은 뭔가를 연기할 수 있구나’ 평가해 주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전히 '액션'만 있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몇몇 좋아하는 시리즈 물이 있는데, <다이하드> 편과 <리셀웨폰> 편이 그렇다. 둘 다 굉장히 오래된 영화들인데, <다이하드>는 88년에 1편이 나오기 시작해 4편까지 있고, 리셀웨폰은 3편까지 나왔던가. 뭐 검색해보면 금방 나오겠지만 귀찮아.  

  순수 액션 영화인 다이하드의 주인공은 언제나 존 맥클라인 경사. 브루스 윌리스. 이 사람 나온 영화들은 거의 다 좋아한다. 특별히 매력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브루스 윌리스는 나오는 영화마다 거의 이런 식의 액션영화들인데 출연작도 엄청 많고 대개 흥행했다. 비슷한 이미지로 이렇게나 오래 읅어먹는 사람도 많지 않을텐데, 게다가 이렇게 또 오래도록 사랑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 참 멋있게 늙었다. 저 나이(55년생)에 몸매도 저 정도면 잘 빠졌고.

  언제나 살짝 벗겨진 이마에 인상 잔뜩 지푸린 얼굴로 피를 흘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브루스 윌리스. 영화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올시다. 탐크루즈가 나오는 액션도 좋아하지만 대개 탐크루즈의 액션은 액션도 액션이지만 영화에 메세지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출연작은 그렇지 않다. 나름 스타일이라면 스타일. 두 사람 다 온몸을 내던지며 열연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은 안쓰럽다. 맨날 많이 당하고 주먹구구식 싸움인 경우가 많다. 탐 크루즈 처럼 최첨단 무기도 사용하지 않으며 기교를 부릴 줄도 모른다. 그냥 냅다 몸만 던진다. 이제 나이 생각도 하셔야지. 88년 첫 작품이면 거의 20년 세월이다. 대단하다.

   역시나 <다이하드> 1편에서도 홀로 독일 우익 테러범들과 맞서 고군분투 하며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맨발의 청춘으로 계단을 이리저리 뛰댕기고, 엘리베이터 안에 위에, 옥상에, 책상 밑에 여기저기 안다니는 곳이 없다. 그러다 결국 발바닥에 유리 잔뜩 찔리고, 근육질 어깨는 피투성이다. 아 그냥 얼굴만 봐도 아프겠다 싶다. 수고했다 존 맥클라인 경사. 당신이 수고한 만큼 20년 뒤에도 이 영화를 사랑하는 나같은 이가 있으니. 이 영화를 내가 대여섯번은 본 거 같은데 봐도 봐도 다음에 무슨 장면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재밌다.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에 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