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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행운이라고는 별로 따라다니지 않는 나에게도 행운이 왔다.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이런 행운이 내게도 찾아온다. 연극 '미롱'과 영화 '스쿨 오브 락' 시사회가 당첨된 것인데, 연극표는 다른 이에게 넘기고, 부대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휴가를 나와서 이 놈과 함께 영화 '스쿨 오브 락'을 봤다.

'스쿨 오브 락'에 대한 다수의 평론가들이 평이 그렇듯, 이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재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두 영화는 너무나 닮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키튼선생이 전자기타를 메고 돌아왔다고나 할까? 다소 서정적이고 조용하게 감동이 밀려오는 '죽은 시인의 사회'와는 달리 '스쿨 오브 락'은 매우 떠들썩하고 시끄럽고 정신사나운, 하지만 이것 역시 서서히 밀려오는 감동에 희열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눈물의 감동이라면, '스쿨 오브 락'은 희열의 감동이다.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듀이핀(잭 블랙 분)은 무대에서조차 자신의 열정을 자제하지 못해 20여분이나 되는 기타솔로와 온갖 '쌩쑈'로 밴드 멤버들에게조차도 별로 달갑지 않은 친구다. 결국 밴드에서 쫓겨난 듀이, 보결교사를 나가는 친구 네드의 집에 얹혀살며 방세도 내지 않는 그야말로 실업자이자 빈대다. 네드의 여자친구는 그를 내쫓으려하고 네드 역시 이런 듀이가 못마땅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느날 걸려온 한통의 전화. 그린 초등학교에서 임시 보결교사를 뽑는데 네드를 찾는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것은 듀이. 듀이는 네드의 행세를 하고 그린 초등학교에 보결교사로 취직한다. 듀이는 첫날부터 기타만 가지고 놀고 수업은 뒷전이다. 아는 것이 없으니 가르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따분한 교사생활에 유일한 낙은 수업이 끝나는 순간. 이렇게 따분하게 학교를 오가며 우연히 음악시간에 합주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헉! 이럴수가. 아이들의 연주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듀이는 아이들을 밴드로 만들어 경연대회에 나갈 계략을 짜는데...

아이들은 다음 학기 수업을 미리하는 것인줄로 믿고 듀이를 따라 록의 역사와 음악을 배운다. 클래식 기타와 콘트라 베이스, 그랜드 피아노는 저리가라. 소위 '칼기타'라 불리우는 일렉기타와 4현 베이스기타, 신디사이저가 이를 대신한다. 역시 음악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답게 듀이가 가르치는대로 잘 따라한다. 점점 반항적이 되어가는 아이들. 결국 나중엔 듀이가 네드를 사칭하고 거짓 교사행세를 한 것이 들통나지만 아이들에겐 이미 록의 정신이 깃들어있는 상태다. 아이들은 버스를 대절 집에서 자고 있는 듀이를 깨워 경연대회에 출전한다. 그 어떤 밴드보다도 열정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그들은 비록 1등은 아니지만 앵콜곡을 받기에 이른다. 듀이와 아이들의 돌발적인 행동에 불구하고 아이들을 찾으러 공연장에 온 학부모와 교장선생은 이들에게 감동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놀라운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어린 꼬마들이 실제로 곡을 연주하고 공연했다는 사실이다. 잭 블랙이야 락커로써 유명하지는 않지만 밴드를 하고 있는 엄연한 락 뮤지션이라 하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정말 놀랍다. 아기때부터 클래식 기타를 배워 베이스를 연주하고, 기타를 연주하고, 그리고 또 드럼을 연주하고, 건반을 연주하는 이 꼬마들은 정말 뛰어난 실력을 지닌 아이들이다. 어릴때부터 악기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미국 환경이 부러운 동시에, 이 땅에서 음악한답시고 끼니 굶어가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록 뮤지션들이 가엾게 느껴지는 것은 왜인가?

록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 영화를 본 후 실망하지는 않을터이다. 혹 댄스음악 애호가이고 평론가들의 댄스음악에 대한 비판이 영 못마땅한 분이라면 이 영화를 봐도 별다른 감흥을 못느끼리라. 이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제도권 교육을 탈피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교육을 실험하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말해주지만(물론 그것이 의도되었건 그렇지 않건간에), 무엇보다 '록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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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 두명의 웬수들'은 전형적인 가족코미디다. 결론이 뻔한 '가족애'를 그리고 있는 영화이지만, 우리는 결론을 알고 있음에도 영화를 보며 살짝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족'을 주제로 하는 영화는 항상 결론이 뻔하다. "가족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뻔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들이 항상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남녀간의 사랑을 그린 영화들이 결코 흥행에 실패하지 않는 이유와도 같다. 아주 근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사랑', '연인' 의 단어들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며 잠시 활동을 멈추고 있는 휴화산과도 같은 것이다. 언제 다시 타오를지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힘겨운 일상속에 이런 감정을 파묻어놓고 있다가 영화를 통해 끄집어내는 것이다.

낳고 낳다보니 어느덧 열 두명이나 되는 아이들. 시골의 풋볼감독인 아버지와 글을 쓰는 어머니 사이에 아이는 열 둘이나 된다. 큰 딸아이는 뉴욕에서 애인과 함께 살고 있고, 큰 아들은 풋볼선수다. 셋째는 자칭 얼짱이라는 소녀. 그리고 나머지는? 아직 한참 어린 꼬마들이다. 이들을 모두 관리하기는 쉽지 안다. 어느날 아버지는 대학친구로부터 모교 풋볼감독 스카웃을 받고 이사를 결심한다. 시골에서 뻑쩍지근한 도시로... 게다가 이사한 뒤 엄마의 책이 출간되는 운이 잇따라 터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불행하다. 이사전 행복을 보장한다던 아빠의 말은 아이들에겐 거짓이다. 아빠와 엄마 자신의 욕심은 채웠을지 몰라도 아이들은 그전보다 불행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엄마, 아빠를 포함한 열 네명의 가족은 이기주의적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꼬마 마크의 가출로 인해 가족이 다시 뭉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큰 딸은 수많은 개구진 동생들을 싫어하는 애인을 차고 가족에게 돌아오고, 아빠는 사표를 낸다. 자신의 욕심을 줄이고, 가족을 선택한 것.

이미 우리가 예상했던 결론이다. 하지만 감동이 밀려온다. 왜냐면...
당신에게도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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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대한 유산'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을 영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가 1998년에 나왔으니 나는 그로부터 6년뒤에야 이 영화를 접한 꼴이 되었다. 비디오 가게에서조차 오래된 영화라고 검색을 해서 찾을 정도였으니... 그러나 그다지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듯 보인다. 영화에 대한 평도 그다지 좋지 않고, 관객들도 잘 이해하지 못한 분위기다.

하지만 찰스 디킨스의 원작 '위대한 유산'을 읽고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 소설을 읽을 때의 감동이 다시 재현되는 느낌이다. 소설 속의 대장장이인 핀이 영화에서는 화가로 직업을 바꿨지만, 소설에서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감동은 영화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단지 디킨스의 원작에서는 다소 어둡게 느껴지던 분위기가 영화에서는 밝은 느낌으로 바뀌었다는 것뿐.

젊은 날의 시련의 상처가 너무나 큰 나머지 그 복수를 조카딸인 에스텔라를 통해 하려는 노라와, 노라의 "그녀를 사랑하면 너만 상처받을 거야"라는 충고를 거부하고 에스텔라를 사랑하는 핀, 그리고 노라의 기대와는 다르게 핀을 알게 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되는 에스텔라. 참으로 기묘한 사랑의 끈으로 묶여 있는 이들이다.

핀은 어느날 뉴욕으로 부름을 받고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화가로써 성공을 한다. 그는 이 성공이 늙은 갑부 노라의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끝에가서 극적인 반전을 이루며 산산이 무너진다. 그를 지금껏 뒤에서 도와줬던 것은 어린 시절 해변에서 단 한번 도움을 주었던 탈옥수 루스티그였던 것. 그는 다시 잡혔지만 탈출해 돈을 많이 벌었고 그 돈을 핀을 위해서 썼던 것이다. 후에 그는 그에게 원한을 가진 동료들에게 쫓기며 핀의 품에 안긴 채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다른 남자와 결혼했던 에스텔라 역시 이혼 후 이쁜 딸 아이를 데리고 옛 집인 플로리다로 돌아온다. 결국 핀은 화가로써의 성공도, 사랑도 이루는 것(이후에 에스텔라와 다시 결혼했는지는 모르지만)으로 끝난다.

이 영화가 말하는, 원칙상 찰스 디킨스가 말하는, 위대한 유산이란 무엇인가? 핀에게 있어 위대한 유산이란 지긋지긋한(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지만) 플로리다 해안에서의 생활을 버리고 뉴욕에서 화가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그곳에서의 성공, 부, 명예 등이 애초 그가 기대했던, 그가 원했던 위대한 유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위대한 유산은 에스텔라를 향한 자신의 진심어린 마음과, 루스티그를 통한 애정깊은 은혜일 것이다.

첫번째 위대한 유산. 핀은 스스로 화가로서의 성공후 에스텔라의 집 앞에서 그녀를 부르며 "지금껏 나의 노력은 너를 향한 것이었다"라고 말하듯 핀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언제나 도도하고 거만한 그녀 앞에서 당당하게 서는 길은 그 자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성공은 했지만 노라의 말에 따라 사랑의 결실을 맺는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혼후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두번째 위대한 유산. 노라라고 생각했던 후원자의 힘에 입어 대도시 뉴욕에서의 상류사회에 적응하고 신사로서의 자질을 갖춰가던 핀은 갑작스레 찾아와 실수를 해대는 죠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자신은 이제 플로리다의 핀이 아닌 촉망받는 화가라고 인식한 것이다. 핀은 이렇듯 상류층의 사람들과 만나며 자신 또한 그 사람들과 동일한 인물이 되어갔고, 어느날 불쑥 들어온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죄수 러스티그는 이미 성공한 그에게 그다지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떨쳐버리고픈 사람이었다. 하지만 "래그노가 그동안 수고했다"라는 러스티그의 말에 핀은 뭔가 다른게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를 쫓는 동료들로부터 도망치도록 도와준다. 결국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 죽어가는 러스티그는 핀의 품에 안겨 그동안 그를 도와줬던 후원자가 자신임을 밝힌다. 그의 고백 앞에 핀은 혼란스럽다. 후원자가 누구건 상관없이 그저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달려왔던 그가 오래전에 줬던 작은 도움을 이렇게 크게 갚은 러스티그에게서 핀은 깊은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위대한 유산이란 러스티그의 은혜였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당신에게 있어, 우리에게 있어서 '위대한 유산'은 무엇인가?




<참고>

알폰소 쿠아론 Alfonso Cuaron / 감독/각본/편집/제작

멕시코, 1961-11-28
http://us.imdb.com/Name?Cuar%F3n,+Alfonso


Filmography Biography News + Trivia

각본
이투마마 (Y tu mama tambien, 2001)

감독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2004)
이투마마 (Y tu mama tambien, 2001)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1998)
소공녀 (A Little Princess, 1995)
러브 앤 히스테리 (Love And Histeria, 1991)

제작
이투마마 (Y tu mama tambien, 2001)

편집
이투마마 (Y tu mama tambien, 2001)


멕시코에서 태어난 알폰소 쿠아론은 Mexicos National Autonomous University에서 영화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데뷔작은 <솔로 콘 투 파레자>라는 블랙 코미디로 이 영화는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믿는 한 남자에 관한 영화이며 다니엘 기메네즈 카초가 연기를 했다. 이 영화는 1992년 멕시코 흥행 1위작이자 멕시코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영화이기도 하다. 쿠아론은 TV 시리즈인 Showtime시리즈 를 감독했고 이 작품으로 그는 1993년 Cable Ace Award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그는 헐리웃으로 진출하여 <소공녀>를 감독한다. 이 영화로 비평가들 뿐만 아니라 대중들로부터환영과 지지를 얻으며 로스앤젤레스 비평가 협회로 부터 The New Generation Award를 받았다. 이후 디킨스의 고전 소설을 각색한 <위대한 유산>을 감독, 일약 세계적 감독으로 부상했다. <이투마마>는 자신의 동생 카를로스 쿠아론과 공동집필한 작품.

카를로스 쿠아론은 최근 <아모레스 페로스>를 감독했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을 위해 "Vasectomy"라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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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랫만에 이 영화를 접해본다. 비디오 대여점에서조차 오래된 영화라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더니 그렘린 1편은 없지만 2편은 있다고 하여 첫 편부터 순서대로 보려던 계획을 접고, 그나마 있는 2편이라도 빌려왔다.

어릴적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참 귀엽다, 저런 동물 있으면 키우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역시 조금 나이먹은 지금에 와서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평소 개인적으로 동물 인형을 좋아하는지라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나이에도 가끔씩 강아지 인형을 껴안고 자곤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을 맡고, 조 단테가 감독을 맡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야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이고, 조 단테는 누구인가? 예전에 이 영화를 접했을 때는 감독이 누군지, 배우가 누군지는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 기준이 되지 않았고, 지금에 와서도 외국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그것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기왕 영화를 본 것 감독이 누군지는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조 단테의 영화로는 가장 최근의 것으로 '루니툰: 백 인 액션' (Looney Tunes: Back in Action, 2003) 이 있고, 좀 된 것 중에는 '스몰 솔저' (Small Soldiers, 1998), '세소녀이야기' (Runaway Daughters, 1994), '마티니' (Matinee, 1993) 정도 이다. 그 외에도 다수의 작품들이 있지만 더 언급해봐야 봐도 모르는 작품이라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겠다. 그의 영화의 공통점들은 모두 어린이용 만화식 영화라는 것이고,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하는 짓이 귀엽다. 루니툰의 벅스바니도 그러했고, 소몰솔저의 장난감 병정같은 작은 군인들도 그러했다. 물론 조 단테를 유명하게 만든 '그렘린'속의 '모과이'는 말할 것도 없다.

빌리의 고향 킹스턴 폴즈를 아수라장으로 만든지 6년. 빌리와 여자친구 케이트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 뉴욕에 있는 클램프 빌딩에 취직한다. 빌딩의 주인 클램프는 뉴욕의 허름한 중국인 마을을 쓸고 그 위에 새 건물을 지으려한다. 결국 포크레인이 마을을 휩쓸고 한 중국인 노인과 함께 살던 기즈모(착한 모과이)는 무너지는 건물을 피해 뉴욕의 거리로 나왔다 클램프 건물의 유전공학 연구실로 잡혀간다. 이 사실을 안 빌리는 연구소에서 기즈모를 꺼내와 책상서랍에 숨기나 늦은 밤 청소부 아저씨의 실수로 기즈모의 머리위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기즈모의 등 뒤에서는 자가번식이 일어나 못된 모과이들을 만들어낸다. 기즈모의 주의사항(밤 12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이지 말 것, 물이 닿지 않게 할 것, 햇빛을 조이지 말 것)을 어겼기 때문. 결국 번식한 모과이들은 수백마리로 불어나 건물을 장악하고 빌리와 클램프를 비롯한 주위 동료들의 노력으로 못된 모과이들은 전기를 받아 녹아버린다. 물론 착한 기즈모는 살았다.

이 영화는 귀엽고 깜찍한, 때로는 못생기고 징그러운, 다양하게 생긴 모과이들을 구경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줄거리도 내용도 없다. 선과 악이 대결해 선이 이긴다는 정도를 시사해준다고 할까. 하지만 애써 교훈을 만들어내자면 영화의 배경이 최첨단 인공지능 시스템을 갖춘 건물이라는 점을 동기로 삼아 "지나친 문명의 추구는 부작용을 낳는다"라는 정도의 교훈과 "착한 애완동물도 잘못 다루면 주인을 문다"는 정도의 교훈이 도출되겠다.

그는 이런 류의 평범하고 단순한 교훈을 의도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영화 '스몰 솔저' 를 보면 이런 비슷한 교훈을 도출해낼수도 있다. 귀여운 장난감들이 나중에는 전쟁무기로 돌변 사람들을 공격하니 말이다. 교훈은 "장난감 함부로 다루지 말라" 정도.

어쨌든 영화 그렘린은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귀여운 기즈모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은 행복하다. 인터넷 검색창에 '그렘린'을 검색해보면, 영화를 보고난 팬들이 그렘린 어디서 살 수 있느냐, 그렘린 사진 구할 수 없겠느냐, 인형은 없느냐, 는 등의 오직 '그렘린'의 캐릭터에 열중하고 있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기즈모 인형을 팔면 꼭 사서 잘 때 껴안고 자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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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이게 뭔 영화인가? 혹 거지들 나오는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요상한 제목의 영화. '70년대 고등학교 액션로망'이라고 하는데,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한편 다 본 후에 자막이 올라가며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감동적이어서도 아니고, 굉장한 교훈을 주어서도 아니고, o.s.t 가 죽여줘서도 아니다. 내가 자리를 뜨지 못하는 순간, 나를 부여잡고 놔주지 않는 그것이 뭔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관을 벗어나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횡단보도를 건너 술집을 찾아가면서도 난 어떤 것에 사로잡혀있었고 별 말도 꺼내지 않았다. 흔히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함께 간 친구에게 말하는 "야 이 영화 재밌지 않냐?" "감동적이다" 라는 말조차도 입에서 떼지 않고, 그 친구나 나나 그저 조용히 걷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걷던 중 그 친구의 감성과 나의 감성이 일치함을 느꼈고, 이내 그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감정이입!

극중 권상우의 한가인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싹틈, 그리고 부끄러움, 절망, 용기. 그런 것들이 친구와 내게 감정이입되면서 우리 둘은 영화를 보고 난 뒤 권상우가 되어버렸다. 권상우의 몸매와 무술실력은 배제하고 그의 한가인을 향한 마음, 그것은 너무나도 우리 둘과 비슷했던 것.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도 쉽게 말을 떼지 못하고, 멀리서 그저 바라볼 뿐. 그러다 혼자 아파하며 스스로 포기하고... 그런 나날들의 연속... 훗... 순수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이들은 이 마음을 알까.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다른 관객들의 마음속에는 우리와 다른 여운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내가 한때 날렸었는데 하면서 잘나가던(?) 한때를 기억하기도 할터. 그러나 우리 둘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그 마음뿐이었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리려고 한 것도, 슬픈 사랑이야기를 그리려고 한 것도 아닌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그 감정은 마치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나 '봄날은 간다'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그 간절함, 아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했다. 감독의 의도와 다르게 우리는 그런 느낌을 간직하며 아쉬운 그 자리를 술로 해결했다. 술을 마시며 서로의 추억을 떠올리고, 다시 한번 가슴아픔에 깊은 한숨과 한탄, 후회, 술로 마무리를 지었다.

당신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본 후 우리와 같은 감성을 지니게 됐다면 당신 역시 권상우에 감정이입된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기전 당부하건대, 감정이입되면 눈물 지어질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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