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5 (완전판) - 푸아로 사건집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윤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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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에 나온 이 단편집에는 푸와로의 활약 11편이 실려 있다. 모든 이야기에는 그의 충실한 벗, 아서 헤이스팅스가 함께 한다. 1920년의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1923년 <골프장 살인 사건>에 이은 소설로, 이미 <골프장 살인 사건>에서 헤이스팅스는 결혼하여 남아메리카로 떠났지만, 내용상으로 보았을 때 아직 런던에서 푸아로의 곁에 머물렀던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 틈틈이 써 놓았던 단편들을 모아 1924년에 출간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결혼하기 전, 푸아로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다니던 이 때의 이야기들은 꼭 셜록 홈즈와 왓슨을 보는 것 같아 즐겁다.

 

'서방의 별'의 모험

동방의 별과 서방의 별, 두 개의 보석을 훔치겠다는 편지가 도착하고, 각각의 주인인 귀부인은 푸아로를 찾아온다. '서방'이라고 하면 당연히 '동방'을 연상하게 되지만, 만약 원래 보석이 하나뿐이어다면?

 

마스던 장원의 비극

보험회사의 의뢰를 받은 푸아로. 이때만 하더라도 사건을 가려 받을 처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의문의 죽음, 젊고 아름다운 아내, 사인은 내출혈. 진실은 무엇일까?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하나의 의문. 입청장에 대고 쏴서 총알이 뇌에 박혔기 때무에 의사들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는데, 입 안에 분명이 총상의 흔적이 있었을텐데. 좀 무리한 설정이 아닐까?

 

싸구려 아파트의 모험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아파트에서 거주하게 된 로빈슨 부부. 과연 이 뒤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

까? 로빈슨이라는, 흔하디 흔한 영어권 이름에 착안할 때, 꼭 그 이름이었어야 가능했던 이유. 

 

사냥꾼 오두막의 미스터리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살해당한 사람의 조카가 찾아온다. 조카의 알리바이는 확실한 상황. 조카의 부인은 가정부에 의해 알리바이가 입증되고, 가정부는 곧 실종된다. 크리스티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 곧 힌트가 된다. 가정부와 조카의 부인은 동시에 존재했던 적이 없다.

 

백만 달러 채권 도난 사건

런던에서 뉴욕으로 보내던 백만 달러 상당의 자유공채가 올림피아 호 선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도착하자마자 모든 승객들의 몸수색을 했으나 공채는 발견되지 않았고, 배가 도착한 후 30분 이내에 그 채권이 매각되었기 때문에 배에 숨겨지거나 바다에 던져진 것도 아니다. 여기서 대전제가 뒤집힌다. 애초에 그 배에 채권이 있기나 했을까?

 

이집트 무덤의 모험

이집트 무덤 발굴단의 사람들이 잇달아 사망한다. 심장마비, 패혈증, 권총 자살, 파상풍... 곧 이집트 보물에 얽힌 저주와 연관된 옛 미신이 세간에 오르내린다. 크리스티 소설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결론으로 나올 리는 없다. 누군가의 살인이며,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면 범인은 좁혀지게 된다.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호텔 보석 도난 사건

객실에서 사라진 보석. 객실 담당 하녀와 보석 주인의 하녀는 서로를 의심하고, 보석 주인의 하녀의 침대밑에서 사라진 보석이 발견되지만, 곧 모조품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보석 주인의 하녀가 방을 비운 사이는 단 두 번으로 각각 12초와 15초. 과연 범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이 범죄가 이루어진 것일까?

 

납치된 총리

영국 총리 암살 미수 사건에 이어, 총리가 납치된다. 24시간 후, 총리는 회담에 참석해야 하고, 극비로 정부 인사들이 푸아로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두 사건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능하지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의문인데, 마침내 푸아로가 진실을 밝혀낸다. 영국 총리의 얼굴이 꼭 다쳤어야만 하는 이유. 연합국 회담에 무사히 참석한 총리의 명연설로 국가적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된다. 

 

대번하임 씨의 실종

은행가이자 재무 전문가인 대번하임 씨가 실종된다. 토요일에 한 투자자와 약속이 있었으나 대번하임의 부재로 투자자는 그냥 돌아가야 했다. 일요일에 경찰에 신고되었고, 월요일에 대번하임 씨의 서재의 커튼 뒤쪽의 금고가 부서졌으며 상당액의 무기액 채권과 지폐 뭉치, 보석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정원사는 토요일에 멀리서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그림자가 정원을 통해 서재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며 그 시간은 오후 6시 이전이다. 하녀는 6시 15분 경에 투자자가 정원을 통해 서재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였으며, 그가 대번하임의 아내에게 인사하고 그 집을 떠난 것은 그로부터 10분 후이다. 한편 대번하임씨가 늘 끼고 다니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의 행방이 발견되었는데, 경관에게 행패를 부려 체포당한 한 좀도둑의 말에 따르면, 웬 신사가 몰래 버린 반지를 자신이 주워 전당포에 저당 잡혔다는 것이다. 대번하임씨의 정원에는 호수가 있는데 그곳에서 그의 옷이 발견되었지만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호수 건너편의 작은 문으로 나가면 석회 굽는 가마가 있는데, 가마에서 시체는 태울 수 있지만 반지 같은 금속은 녹일 수 없다는 사실까지 종합해보면, 토요일에 만나기로 한 투자자에게 완벽하게 불리한 정황이다. 이 와중에 대번하임 은행은 도산한다. 대체 이 사건은 어떻게 된 것일까? 푸아로는 묻는다. 그 남자였다면 어디에 숨었을 것 같냐고. 헤이스팅스는 그대로 런던에 있겠다고 이야기한다. 군중 속에 있는 쪽이 안전하니까. 재프 경감은 말한다.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세상에서 제일 외딴 장소로 뜨겠다고. 푸아로는 말한다. 만약 자신이 경찰에게서 도망치고 싶다면 감옥 안에 숨을 것이라고!

 

이탈리아 귀족의 모험

한 이탈리아 백작이 살해되기 직전, 주치의의 집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다. 마침 함께 있던 푸아로와 헤이스팅스는 의사와 동행하나, 그는 전화기를 손에 쥔 채로 뒤통수를 가격당해 살해당한 상태로 발견된다. 그가 있던 방에는 의자 세 개와 커피 세 잔, 시가 하나와 필터 담배 두 개가 발견된다. 하인 겸 집사의 말로는 전날 아침, 이탈리아 신사 두 명이 자신의 주인을 찾아왔으며, 살해당한 그 날 저녁에도 방문하였고, 자신의 주인은 오늘 밤은 아파트를 떠나 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푸아로는 여지 없이 살인자가 저지른 실수를 발견해낸다. 커튼을 치는 것을 잊었다는 것과 쌀을 넣은 수플레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남겨진 커피 세 잔에도 불구하고 백작의 이는 새하얗다는 것.

 

사라진 유언장 사건

막대한 재산을 가진 큰아버지가 사망 후 유언장이 공개된다. 사후 1년 동안 모든 재산은 조카딸의 소유가 되며, 그 사이에 그녀는 자신의 뛰어난 머리를 증명해야 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집을 포함한 모든 재산은 여러 자선단체에 기부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현명한 그녀는 즉시 이 문제를 푸아로에게 상의하며 푸아로는 그녀가 유산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헤이스팅스. 그러나 언제나 최고의 전문가를 고용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녀는 재산을 받을 자격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푸아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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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4 (완전판) - ABC 살인 사건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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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18번째 장편소설이며, 푸아로가 등장하는 11번째 작품이다. 크리스티의 소설이 워낙 많다보니, 그녀의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 탐정에 따라서 분류할 수도 있고, 살인 방식이나 벌어진 장소, 범죄자의 유형 등등 비슷한 그룹으로 묶는 것이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그 중 어느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유일한 소설들이 있다. 이 소설도 그 중에 하나다.

 

이 소설은 1935년 6월, 남아메리카로 이민갔던 헤이스팅스가 영국을 잠시 방문하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푸아로의 초현대식 거처를 보며, 이런 곳에서는 암탉도 사각형 알을 낳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을 하는 부분에서는 <푸아로 사건집>의 '대번하임씨의 실종'이 떠오르며, 네 사람이 브리지 게임을 하다가 한 명이 빠져나와 난롯가에 있던 한 사람을 죽인다면, 누가 범인일 것 같냐는 푸아로의 말은 이 소설 이후에 씌여진 <테이블 위의 카드>와 연결된다. 푸아로의 말처럼, 이상적인 범죄라는 표현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 소설에서 탐정과 용의자는 각각 네 명이 등장하므로 크리스티 입장에서 이상적인 추리 소설로 꽤 많은 시간 고민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ABC라는 것은 살인자가 푸아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계획 범죄를 예고하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기도 하며, 살인 기법이기도 하다. A로 시작되는 도시에서 A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해되고, 그 다음은 B, 그 다음은 C...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18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수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끝내 잡히지 않았던 잭 더 리퍼를 떠올리기도 했고,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던 조디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둘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사실 범인의 이름도 정확하지 않다.

 

이 소설도 마치 이런 살인광의 소행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반전이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그야말로 푸아로의 다른 사건들과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악마스러운 범인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 작가 또한 이 작품이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서언에서 아서 헤이스팅스 대위가 대영제국 제 4급 훈장 수훈자라는 설명까지 덧붙이며 그의 입을 빌려 '푸아로가 이전에 다루었던 것들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말이지 천재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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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3 (완전판) - 할로 저택의 비극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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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 쓰여진 작품이다. 첫 작품으로부터 26년이 흐른 뒤이니, 크리스티의 원숙함이 무르익었을 때의 작품이다. 크리스티의 소설은 젊은 시절에는 아이디어와 패기가 돋보이고, 나이가 들수록 노련함과 교묘함이 엿보이는데, 이건 크리스티 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들의 비슷한 경로일 것이고, 작가뿐 아니라 어느 분야의 예술가든, 아니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바꿔 말한다면, 초기 소설의 경우 누가 범인인지 참 알기 어려운데, 후기로 갈 수록 범인이 누구인지는 생각보다 빨리 눈치를 채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만약 그가 범인이라면, 왜 그랬을까?' 혹은 '만약 그가 범인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탐구인 것이다. 그것도 전자에 방점이 찍힌 경우가 많고, 후자의 경우에는 추리 소설의 작가로서 독자에게 지키기 위한 예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추리 소설의 완결성이라는 문제 때문에 '어떻게'가 중요한 것이지, 사실 크리스티가 작가로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왜'의 문제라는 것이다. 

 

수영장. 무대 장치. 연극 무대.

누가? 누구를 위해서?

터음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에르퀼 푸아로 자신을 위해셔였다고 의심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곧 아주 불쾌한 장난으로 여겼지만.

여전히 불쾌한 일이긴 했지만....... 장난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푸아로는 고개를 저었다. 알 수가 없었다. 조금도.

푸아로는 눈을 지그시 감고 모든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신뢰할 수 있는 대영제국의 공무원 헨리 경, 도무지 종잡을 수 없지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매력적인 레이디 앵커텔. 자기 자신보다 존 크리스토를 더 사랑한 헨리에타 세이버네이크. 점잖고 소극적인 에드워드 앵커텔. 까무잡잡한 피부에 활달한 미지 하드캐슬. 손에 권총을 쥔 게르다 크리스토의 멍하고 당황한 얼굴. 사춘기 특유의 예민하고 적대적인 성격을 지닌 데이비드 앵커텔.

이들 모두가 법의 그물에 걸려 있다. 이 모든 사라들이 갑작스런 죽음의 여파로 한데 묶여 있었다. 이 사람들 각자 자신만의 비극과 의미,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성격들과 감정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어딘가에는 진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에르퀼 푸아로에게 있어 인간에 대한 탐구보다 더 매력적인 단 한 가지는, 바로 진실에 대한 추구였다.

푸아로는 존 크리스토의 죽음의 진실을 알아낼 것이다.

 

존경받는 의사 크리스토가 있다. 그에게는 순종적인 아내 게르다가 있고, 정부인 조각가 헨리에타가 있으며 15년전 헤어진 첫사랑인 배우 베로니카가 있다. 세 여자가 동시에 한 저택에 머물렀고, 살인 사건이 일어나며, 정황상 아내가 가장 유력하지만, 또 다른 증거들이 등장하며 아내는 용의자에서 벗어난다.

크리스티는 첫번쨰 결혼을 남편의 외도로 끝냈고, 두번째 남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했으나 그것은 대외적인 것일뿐, 두번째 남편의 외도로도 마음 고생을 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은 크리스티가 어쩌면 자신의 인생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에 대해 고민한 끝에 나온 흔적이 아닐까 싶다. 추리 소설만의 재미는 다소 떨어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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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2 (완전판) - 다섯 마리 아기 돼지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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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생님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어요. 어떤 사건을 맡으셨는지, 그 사건들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도요. 선생님께서는 심리학에 관심이 있으시죠? 심리학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변하는 게 아니잖아요. 물리적인 것들....... 그러니까 담배꽁초와 발자국, 유리조각은 사라져 버리죠. 더 이상은 그런 것들을 찾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 사건의 모든 증거들을 살펴볼 수 있고, 어저면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모두들 아직까지 살아 있으니까.......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의자에 앉아 생각해 보실 수 있잖아요.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있으시겠죠."

 

20대 초반의 미모의 여성이 푸아로를 찾아온다. 유명한 화가의 딸로, 다섯 살에 사망한 부모의 유산을 최근 상속받았고 약혼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성이다. 걱정거리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푸아로를 찾아올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는 여성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16년 전, 아버지를 독살한 혐의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고 1년 후 감옥에서 사망한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한다. 사망하기 전 어머니가 딸에게 남긴 편지에 자신이 결백하다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재판까지 완료된 사건인데다가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점에서 <누명>이 떠올랐다. 그 작품에서는 크리스티의 어떤 탐정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미 목격자에 의해 알리바이가 입증된 후,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은, 사실 의뢰를 받은 푸아로조차 의뢰인의 어머니가 과연 무죄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 사건의 재구성을 위해 푸아로는 탐문을 시작한다. 탐문의 내용은 목차만 살펴 보아도 알 수 있다.

 

서장 : 칼라 레마챈트

 

제1부

 

피고 측 변호사

검사

젊은 변호사

늙은 변호사

경찰 총경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시장에 갔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집에 머물렀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로스트비프를 먹었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 했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꿀꿀꿀' 울었네

 

제2부

 

필립 블레이크의 이야기

메러디스 블레이크의 이야기

레이디 디티셤의 이야기

세실리아 윌리엄스의 이야기

안젤라 워런의 이야기

 

제3부

 

결론

푸아로,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지다

사건의 재구성

진실

결론

 

칼라 레마챈트는 본명이 캐롤라인 크레일로, 죽은 어머니와 똑같은 이름을 지녔지만 비운의 사건 이후로 캐나다로 건너가 삼촌과 지내며 이름까지 바꾼다. 그녀와의 만남 이후, 푸아로는 당시 재판의 변호사 몬태규 디플리치를 제일 먼저 만난다. 검사였던 험프리 루돌프는 사망했기에, 후임인 포그 검사를 그 다음에 만나고, 그 다음에 젊은 변호사 조지 메이휴를 만난다. 메이휴의 아버지 역시 변호사로, 동료이자 법정에서 꽤 승률이 높았던 디플리치에게 변호를 의뢰했던 것이다. 현재는 고인이 되었기에 아들을 대신 만났지만,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아들은 그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대신 크레일 가 전속으로 일하고 있던 변호사로, 지금은 은퇴한 아버지의 지인 조너선을 만날 것을 추천한다. 조너선이 운영하던 법률 사무소는 한 번도 범죄 소송을 맡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메이휴 변호사에게 일임했고, 메이휴 변호사는 디플리치에게 변호를 의뢰했던 것이다. 디플리치의 변론은 훌륭했으나, 정작 용의자였던 캐롤라인이 재판 내내 마치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패배주의자적 태도를 보였고, 배심원들의 동정을 사는데 실패하여 결국 유죄 선고를 받게 된다. 그렇게 늙은 변호사와의 만남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푸아로는 퇴직한 경찰 총경인 헤일을 만난다.

 

용의자는 총 다섯 명. 용의자 이전에 당시 사건의 수사나 재판과 관련 있던 사람을 먼저 다섯 명 만나는데 그 다섯 명은 직접적으로 사건과 연관이 없는 사람도 있으므로 일부러 숫자를 맞췄다는 느낌이 든다. 용의자의 딸이 등장하며 사건이 시작되고, 당시 사건을 가장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용의자를 제외한 다섯 명과, 용의자 다섯 명, 그리고 마지막의 푸아로의 마무리. 1-5-5-1 의 대형. 수미상관의 구조인 것 같기도 하고, 축구의 포지션 같다는 느낌도 든다. 어쨌든 수학적으로 대칭을 이루는데, 읽어가는 내내 하나하나 블럭을 쌓아서 거대한 건축물이나 선박의 모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느낌이었다. 일단 블럭이 쌓이면, 왠만한 충격에는 분리되거나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며, 모든 낱개의 블럭은 딱딱 아귀가 맞지 않는가.

 

푸아로는 이어서 용의자 다섯 명을 차례로 만나러 간다. 재미있는 것이, 용의자에 대한 설명을 초반에 디플리치로부터 들으면서, 푸아로는 마더 구스의 노래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마더 구스의 노래란, 영어권 국가에서 민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로, 아이들을 위한 자장가, 속담, 술집이나 병영에서 부르는 노래, 행상인이 외치는 소리, 발라드의 단편, 고대 의식에서 기도할 때 부르던 노래등이 전부 포함되는 것이다. 내용이 잔인한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tongue twist라고 해서, 일부러 의미 없는 단어를 운율만 맞추고 단어를 적절히 배열하여 어린 아이들이 낱말을 빨리 익힐 수 있는 의의가 있다고 한다. 이 마더 구스의 노래가 등장한 크리스티의 대표적인 소설에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쥐덫>이 있다. 나는 이 두 편에 나온 마더 구스의 노래를 보고 처음에는 크리스티가 온전히 창작해낸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널리 불리던 노래라고 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섬에 모인 사람과 노래 속 병정은 똑같이 열 명이며, <쥐덫>의 눈 먼 쥐는 세 마리로, 역시 소설 속 특정 상황의 세 명의 인물과 맞아떨어진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 원래 존재하던 마더 구스의 노래와 이 책 속 다섯 용의자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살인 양상이 정확히 마더 구스의 노래와 일치했던 것처럼, 이 소설도 용의자 다섯 명의 캐릭터가 마더 구스의 노래 속 아기 돼지의 캐릭터와 일치한다. 이 소설의 제목이 <다섯 마리 아기 돼지>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다섯 명이 있었다고? 어떤 사람들인가?"

"음, 먼저 필립 블레이크. 그 사람은 크레일과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였지. 사건 당시에 그 집에 머무르고 있었어. 지금도 살아 있고 가끔씩 골프장에서 마주치곤 한다네. 세인트 조지 힐에 살고, 주식 중개인이야. 주식 투자를 해서 재미 좀 본 후 꽤 성공해서 부유하게 살고 있어."

"그렇군. 다음은 누구지?"

"그 다음은 블레이크의 형이야.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지. 집에만 처박혀 있는 그런 사람이야."

순간 푸아로의 머릿속에 노래 가락이 떠올랐다. 그는 억누르려 했다. 항상 동요 가락이나 떠올리고 있으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최근 들어 시도 때도 없이 동요 가락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직도 그 노래 가락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시장에 갔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집에 있네.......'

푸아로는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집에만 있었다고?"

"그런 사람이었어. 이것저것 약이랑 약초를 다루는....... 약사처럼 말이야. 그게 그 사람 취미였어. 이름이 뭐였더라? 무슨 문학가랑 똑같은 이름이었는데....... 아, 생각났어. 메러디스, 메러디스 블레이크. 아직 살아 있는지 어쩐지는 나도 모른다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 모든 문제의 원인인 엘사 그리어야."

"작은 돼지 한 마리는 로스트비프를 먹었네."

푸아로가 중얼거렸다.

디플리치는 푸아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아주 부유한 여자긴 하지. 수완이 좋아서 그 사건 이래로 남편을 세 번이나 갈아 치우면서 이혼 법정을 맘껏 들락거렸어. 그래도 매번 더 나은 상대를 고르긴 하더군. 레이디 디티셤이 현재 그녀의 이름이야. 태틀러 지(영국 귀족 사회 소식지-옮긴이) 아무 거나 펼쳐봐도 그 이름을 발결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한 명은 가정교사야.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꼼꼼하고 유능한 여자였지. 톰슨, 존스,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캐롤라인 크레일의 배다른 여동생이었지. 그 때가 열다섯 살 정도였을 거야. 이젠 유명 인사가 됐어. 뭘 발굴하고 먼 오지로 탐험도 떠난다던데....... 그래 워런, 이름이 워런이었어. 안젤라 워런, 요즘 보기 드문 대단한 아가씨야.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네."

"그렇다면 꿀꿀거리며 우는 작은 돼지는 아니겠군?"

몬태규 디플리치 경은 푸아로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곤 냉담하게 대꾸했다.

"자기 외모 때문에 꿀꿀거리며 울었을지도 모르지! 자네도 알다시피 그 아가씨 외모가 영 볼품없잖아. 얼굴 한 쪽에 길게 흉터가 졌으니. 그 아가씨는....... 아닐세, 자네가 직접 만나보는 게 낫겠지."

 

노래의 순서대로, 용의자를 차례 차례 만나며 그날의 이야기를 듣고, 푸아로는 당시의 일을 종이로 적어 자신에게 줄 것을 부탁한다. 다섯 명의 사람으로부터 푸아로에게 도착한 다섯 통의 편지. 그리고 푸아로는 다시 다섯 명을 차례 차례 찾아가 각각 하나씩 총 다섯 개의 질문을 던진다.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던 사실, 그리고 서로 간에 어긋나는 기억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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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탐정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나중길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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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슨 책들이에요?"

터펜스는 책을 한 권 집어 들며 물었다.

"『바스커빌 가문이 개』....... 아, 이 책은 다음에 한번 더 읽어봐야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어?"

토미가 조심스럽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매일 30분간 이 분야의 대가들을 만난다고나 해야 할까. 터펜스, 아무래도 우리는 이 방면에서 아직 아마추어야. 하지만 아마추어 수준에서라도 소위 말하는 '기술'을 배워둬서 나쁠 건 없겠지. 이 책들은 모두 이 분야의 거장들이 쓴 추리 소설이야. 나는 여러 방식을 시험해보고 그 결과를 서로 비교해 볼 생각이야."

"흠....... 저는 이 탐정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지 종종 궁금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또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당신이 손다이크 박사(영국의 추리작가 오스틴 프리먼이 만들어낸 법의학자 탐정-옮긴이) 흉내를 내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의학적 지식도 없는데다 법률 지식도 그저 그렇고, 과학에 강한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주 멋진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으니까 그것으로 발자국 같을 걸 찍어 사진으로 확대해 볼 생각이야. 이제 몬 아미(친구), 자네의 작은 회색 뇌세포를 사용해 보라고. 저걸 보고 뭐 떠오르는 거 없어?"

그는 책장의 맨 아래쪽 선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최신형 실내복과 터키제 슬리퍼, 그리고 바이올린이 놓여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그럼! 셜록 홈즈 흉내를 내봤지."

토미는 바이올린을 손에 들고 활로 아무렇게나 줄을 켜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터펜스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냈다.

 

<비밀 결사>의 토미와 터펜스가 부부의 연을 맺은지 6년이 지났다. 첩보기관의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토미와, 집안일에만 열중하는 터펜스는 행복하지만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정보부의 옛 '대장' 카터의 제안으로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한편 비밀 작전을 돕게 된다. 위에 인용한 부분처럼, 젊은 부부는 수많은 소설 속 탐정들을 모방하는데, 거의 장마다 새로운 탐정들이 계속 등장한다. 그 부분이 코믹하면서도, 한편으로 당대의 모든 추리 소설을 크리스티가 전부 섭렵했기 때문에 이런 묘사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애 80여편의 소설을 써냈다는 것은 엄청난 양인데, 그 수많은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왔을지 짐작이 되었다.

 

아파트의 요정

카터의 방문. 테오도르 블런트라는 이름으로 국제 탐정 사무소 운영 계획을 세우다. 카터의 지시는 러시아 우표가 붙은 파란색 편지를 찾으라는 것. 몇 해 전 이 나라로 망명한 아내를 찾으려는 어떤 육류 도매상의 편지로 우표에다 물기를 적시면 16이라는 숫자가 보인다고. 또 누군가 사무소를 찾아와 16이라는 숫자를 말하면 곧바로 알리라는 것.


차 한 잔

우유부단한 청년 세인트 빈센트. 사무소의 홍보와 함께 두 남녀를 이어주는 터펜스의 재치.


사라진 분홍 진주

여러 집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도벽을 의심받는 여사. 그리고 하녀. 비누를 반으로 잘라 안을 도려내고 보석을 넣은 다음 뜨거운 물로 접합하여 꺠끗이 봉하는 고전적인 수법.


불길한 고객

러시아 우표가 붙은 파란색 편지 봉투의 발견. 그 직후 등장한 수상한 고객.
 

킹을 조심할 것

'나는 하트 3에 걸겠다. 12점을 딴다. 스페이드 에이스. 킹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신문지 옷을 입은 신사

신문지로 만든 옷으로 피살자는 자신을 찌른 사람을 오해하고 잘못된 다잉 메시지를 남긴 것.
 

사라진 여자

살을 빼기 위해 잠적까지 해버린 여자.
 

장님 놀이

아내를 잃어버린 육류 도매상의 등장. 물론 이 모든 것은 암호화된 내용이다. 제 분을 못 이겨 감전사한 가짜 공작.
 

안개 속의 남자

순경도 똑같은 인간. 사랑도 증오도 결혼도 하는.
 

지폐 위조단을 검거하라

출처를 알지 못하는 돈을 쓰고 다니는 레이들로 부부. 아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위조지폐인 것은 확인하였으나 공급처를 알지 못한다. 아내의 추종자인 행크 라이더는 단순하지만 굉장한 미국 부자.
 

서닝데일 사건

마치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 <골프장 살인 사건>이 연상되는 소설. 그 골프장에 가본 적이 있던 토미의 머릿속 시뮬레이션으로 점심 식사 도중에 바로 해결.
 

죽음이 깃든 집

의뢰인이 사망해버린다. 젊고 미인이며 최근 엄청난 재산을 물려 받은 상속인으로 독살 위험을 가까스로 넘겼지만 의뢰한 날 티타임에 샌드위치를 먹은 모든 사람이 사망한다. 단 한 명만 빼고. 그녀의 팔에는 주사 자국이 있다.
 

완벽한 알리바이

매력적인 여성과의 내기로 찾아온 청년. 그녀가 제시한 완벽한 알리바이를 뒤집으면 청년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한 여성. 결론은? 쌍둥이!
 

목사의 딸

엄청난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숙모로부터 집과 재산을 상속받은 젊은 여인. 알고보니 재산은 보잘것 없었고, 하숙을 치면서 생활비를 그럭저럭 벌어들이던 중, 집에서 폴터가이스트(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나 비명이 들리는 일, 혹은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거나 파괴되는 현상)가 일어나고 연달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레드 하우스

누가 복음 11장 9절,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암호를 풀고 발견한 금화와 진주. 이제 부자가 된 목사의 딸은 알고 보니 터펜스 아버지의 목사보로 일하던 사람의 딸이었다.
 

대사의 구두

똑같은 가방, 똑같은 이니셜. 잠깐 동안 미국 대사와 상원 의원의 가방이 바뀌었으나 정작 나중에 만난 의원은 애초에 그런 가방은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대사의 가방을 왜 몇 시간만 손에 넣으려 했을까? 사실은 원래 가지고 있던 가방을 안전히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었겠지. 외교관의 짐은 세관에서 검사를 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부피가 크지 않은 물건을 밀수하기 위해서? 목욕 소금이 담긴 깡통에 숨어 있는 하얀 가루는 코카인이었다.


16호였던 사나이

러시아 태생으로 영어를 비롯한 6개 국어에 아주 능통한 변장술의 대가. 소련에서 보낸 특수 요원 16호. 대단히 비상한 이 남자의 체포와 함께 터펜스의 임신으로 젊은 부부의 활약의 해피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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