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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1 (완전판) - 헤라클레스의 모험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평점 :
책의 제목이 흥미롭다. 헤라클레스의 모험이라? 무슨 뜻일까? 현대판 영웅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신화 속 이야기? 알고 보니 헤라클레스란 푸아로의 이름 에르퀼을 말하는 것으로, 동일한 철자이지만 프랑스어에서 H가 발음되지 않기 때문에 에르퀼로 읽히는 것이었다. 현재 유럽의 역사는 그리스로마신화와 성경 양 쪽이 바탕이 된 문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의 상당수는 성경의 성인이거나, 신화의 영웅 이름이다. 영국의 고 다이애나비의 이름은 로마 신화 속 사냥의 여신이며,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이름은 바오로 성인, 네덜란드 율리아나 여왕의 이름도 성인 이름 그대로다. 캐나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소설 속 앤은 성경 속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성녀이며, 노르웨이 소설가 요슈타인 가아더가 쓴 여주인공 소피는 성녀 소피아에서 가져온 이름일 것이다. 영국 소설가 아이리스 머독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무지개의 여신이었고, 프랑스 여배우 레아 세이두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이다. 그리고 헤라클레스!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와 인간 여인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우스의 아내였던 헤라의 저주를 받고, 총 12개의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1. 네메아의 사자를 퇴치할 것
화살로도 칼로도 죽지 않는 사자를 몽둥이로 때려 지치게 한 다음 맨 몸으로 덤벼 목 졸라 죽였다. 이때 얻은 전리품인 사자 가죽을 헬멧처럼 머리에 쓰고 다녔다.
2. 레르나의 독사 히드라를 퇴치할 것
목 하나가 잘려나가면 두 개가 솟아나 100개까지 목이 늘어난 히드라의 결코 죽지 않는 진짜 머리를 베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게 했다.
3. 케리네이아의 암사슴을 생포할 것
1년 동안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녀 사슴을 지치게 만든 후 피가 나지 않도록 사슴의 뒷다리 뼈와 근육 사이에 독이 묻지 않은 화살을 쏘아 잡은 후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용서를 구하며 원래 있던 곳에 데려다 놓겠다 약속하였다. 과업 완수 후 헤라클레스는 사슴을 원래 있던 곳에 돌려 놓았고 여신은 그를 용서하였다.
4.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를 생포할 것
1년간 추격한 끝에 눈 속으로 몰아세워서 지치게 한 다음 생포했다.
5.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청소할 것
30년 동안 치우지 않았던 아우게이아스 왕의 3천 마리 황소 우리를 알페이오스와 페네이오스 강물을 끌어들여 단 하루 만에 청소한다.
6. 스팀팔로스의 새를 퇴치할 것
처음에 화살로 새를 쏘았으나, 수가 너무 많자 청동방패를 두들겨 더 큰 소음을 내서 새들끼리 서로 부딪치게 해 혼란스럽게 만들어 추락사시켰다.
7. 크레타의 황소를 생포할 것
크레타의 들판에서 황소와의 씨름 끝에 사로잡았다.
8. 디오메데스의 야생마를 생포할 것
트라키아의 디오메데스 왕은 자신이 기르는 말에게 인육을 먹였다. 여행객을 가장하고 트라키아로 간 헤라클레스는 디오메데스와의 씨름에서 승리를 거둔 디, 왕 자신을 말에게 먹여 버렸다. 그리스로 가져온 이 말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에까지 종마로서 혈통을 이어갔다 한다.
9.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훔칠 것
아마존 족의 여왕 히폴리테와 동침한 뒤 선물로 허리띠를 받는다.
10. 게리온의 황소떼를 데려올 것
게리온은 메두사의 아들인 크뤼사오르의 아들로 몸과 머리가 세 개이며 소리는 사람 1만 명이 내는 소리와 맞먹는다. 그가 소유한 많은 소떼를 비밀리에 몰고 가던 중 게리온이 추격해오자 독이 묻은 화살로 처치한다.
11.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따올 것
헤라클레스는 네레우스를 통해 프로메테우스에게 가고, 그로부터 아틀라스를 통해 사과를 따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틀라스가 황금 사과를 따는 동안 그를 대신해서 하늘을 받치기로 하지만, 막상 사과를 가져온 아틀라스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계속 헤라클레스에게 하늘을 떠받치라고 한다. 헤라클레스는 동의하는 척하다가, 다만 지금 자세가 불편하니 하늘을 짊어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말하고 아틀라스가 넘겨받는 순간,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챙겨 도피한다.
12. 하데스의 수문장 케르베로스를 생포할 것
지옥의 신 하데스의 수문장인 케르베로스는 머리가 셋 달린 개로, 헤라클레스는 완력을 사용하여 한쪽 목을 졸라 놓고 지상으로 잠시 끌고 온다.
네모난방에 네모난 현대 가구들....... 진열되어 있는 조각 작품조차 하나의 정육면체 위에 또 하나의 정육면체가 올라 있고, 그 위에는 구리줄로 기하학적인 배치가 되어 있는 현대적인 작품이었다. 이렇게 훌륭하고 질서정연한 방의 한 가운데 에르퀼 푸아로는 서 있엇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앗다. 그가 바로 현대판 헤라클레스였다....... 물론 울퉁불퉁한 근육질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불쾌한 벌거숭이와는 전혀 달랐다. 그와 반대로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콧수염(헤라클레스라면 그렇게 기를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았을)에 단정하고 세련된 차림을 한 자그마한 체구의 남자였다.
하지만 에르퀼 푸아로와 고전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에게는 한 가지 닮은 점이 있었다. 둘 다 이 세상의 악을 없애는 데 일조했다는 점이다....... 둘 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공헌을 했다고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버튼 박사가 어젯밤 떠나면서 뭐라고 말했던가.
"자네가 하는 일은 헤라클레스의 모험이 아닐세......."
아, 그 친구가 틀렸다. 다시 한 번 헤라클레스의 모험이 부활할 것이다....... 현대판 헤라클레스의 모험이라니 정말 기발하고 즐거운 착상이 아닌가! 은퇴를 하기 전에 열두 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열두 개의 사건만을 맡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열두 개의 사건은 고대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모험과 유사점이 있는 것으로만 선별하는 것이다. 그래, 이건 재미있을 뿐 아니라 예술적이고, 영적인 모험이 될 것이다.
네메아의 사자
"물론이에요, 푸아로 씨. 전설에 따르면 페키니즈는 한때 사자였대요. 그리고 아직도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있답니다!"
"오거스터스는 레이디 하팅필드께서 마드무아젤께 남겨주신 개이고, 마드무아젤께서는 이 개가 죽었다고 신고하셨죠? 오거스터스가 혼자서 도로를 지나 집으로 오는 게 걱정되지는 않으셨습니까?"
"오, 아니에요, 푸아로 씨. 오거스터스는 아주 영리해요. 그리고 제가 아주 신경 써서 훈련시켰어요. 일방통행로가 어떤 건지도 알고 있는 걸요."
"그렇다면 대부분의 인간들보다 더 뛰어나군요!"
레르네의 히드라
"처음에는 그랬죠. 마치 옛날 신화에 나오는 레르네의 히드라 같지 않습니까. 매번 머리 하나를 잘라낼 떄마다 그 자리에서 머리 두 개가 솟아나오니 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문도 점차 자라나서 배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이름이 같은 헤라클레스를 본받아 첫 번째 머리, 즉 본래의 머리를 자르고자 했습니다. 누가 이 소문을 가장 먼저 퍼뜨리기 시작했느냐 이거죠."
아르카디아의 사슴
"총에 맞은 사슴......."
그녀의 목소리는 희망이라곤 없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테드 윌리엄슨의 설명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무언가가 마음이 걸렸어요....... 경쾌한 갈색 발을 하고 숲을 뛰어다니던 당신의 모습말입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마드무아젤? 마드무아젤께서 그래스론에 내려갔을 떄는 하녀가 없으셨을 겁니다. 비앙카 발레타가 이탈리아로 돌아가고 아직 새 하녀를 구하지 못해서 마입니다. 그떄도 이미 병세가 나빠지고 있다는 걸 느끼셨을 테고요."
에리만토스의 멧돼지
야생 멧돼지....... 르망퇴이유는 살인자를 이렇게 표현했다. 정말이지 이상한 우연의 일치였다. 푸아로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헤라클레스의 네 번쨰 모험. 에리만토스의 멧돼지?"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
"저는 먼저 헤라클레스처럼 강줄기를 옮기기 위해 진흙에 손을 집어넣어 댐을 쌓았습니다. 기자로 일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죠. 그 친구가 덴마크에서 대역을 할 만한 적당한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접근해서 의도적으로 《엑스레이 뉴스》라는 이름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그걸 기억했지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진흙....... 엄청난 진흙이 쏟아졌죠! '시저의 아내'는 진흙으로 범벅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정치 스캔들보다 훨씬 더 많으 관심을 가졌고요.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아, 효과가 대단했죠! 고결함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습니다! 여인의 도덕성이 다시 한 번 증명된 거지요! 뜬소문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스팀팔로스의 새
"청동 목걸이를 이용했죠. 현대적인 언어로 얘기하자면 쇠줄이 움직이게 만든 겁니다....... 즉, 저는 전보를 쳤습니다! 무슈, 당신의 스팀팔로스 새들은 당분간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없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경찰들이 수배하고 있는 용의자였다는 건가요? 경찰에 체포된 겁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크레타의 황소
"정말 이해가 안 되십니까? 육체적으로 저는 건강합니다. 황소만큼이나 튼튼하죠. 저는 오래 살 겁니다. 오랫동안....... 감옥 같은 방에 갇혀 살게 되겠죠! 저는 그걸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모두 끝내버리는 게 나을 겁니다....... 방법이 있을 겁니다. '총기 사고'나 뭐 그런 것들이요. 다이애나는 이해할겁니다....... 차라리 스스로 끝내는 게 나아요!"
디오메데스의 말
소녀의 눈꺼풀이 움찔하는 가 싶더니, 곧 눈을 뜨고 놀라고 겁먹은 눈길로 푸아로를 바라보았다.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아 엉클어진 풍성한 암청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려고 고개를 흔들면서도 푸아로를 향한 눈길은 그대로였다. 마치 겁먹은 망아지 같았다....... 낯선 사람이 주는 먹이를 의심하는 야생동물처럼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
히폴리테의 띠
크랜체스터 다리는 마치 마법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 풍부하고 부드러운 색채의 고전적인 풍경 그림이 있었다.
푸아로는 상냥하게 말했다.
"히폴리테의 띠입니다. 히폴리테가 자신의 띠를 헤라클레스에게 주는 장면이죠....... 루벤스가 그린 작품, 위대한 예술 작품이고요....... 투 드 멤(그래도), 마드무아젤의 방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중략)
푸아로가 학교를 나서는 순간 공습이 시작됐다. 푸아로는 뚱뚱한 소녀, 마른 소녀, 까무잡잡한 소녀, 하얀 소녀 등 한 무리의 소녀들에게 둘러싸였다.
"몽 디유(하느님 맙소사)!"
푸아로는 중얼거렸다.
"이거야 말로 아마존 전사들의 공격이군!"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소녀가 외쳤다.
"소문은 들었어요!"
소녀들은 점점 더 포위망을 좁혀왔다. 에르퀼 푸아로는 소녀들에게 온통 둘러싸였다. 푸아로는 극성스러운 어린 소녀들의 물결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스물 다섯 명의 소녀들은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외쳤다.
"무슈 푸아로, 제 책에 사인 좀 해 주시겠어요......?"
게리온의 무리들
"에버릿 양은 궤양으로 죽었고, 의사도 미심쩍은 구석은 전혀없었다고 확신했네. 로이드 부인은 기관지 폐렴으로 죽었고, 레이디 웨스턴은 결핵으로 죽었는데 이 작자를 만나기 오래전부터 앓아 왔어. 리 부인은 영국 북부 어딘가에서 먹은 샐러드 때문에 장티푸스로 죽엇다네. 이 중 세 명은 병에 걸려 자신의 집에서 죽엇고, 로이드 부인은 프랑스 남부의 호텔에서 죽었다지. 이 사람들의 죽음만 놓고 본다면 위대한 목자, 아니 앤더슨 박사와의 연관서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어. 그저 우연인 게지. 한마디로 말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거야."
에르퀼 푸아로는 한숨을 쉬었다.
"몽 셰르(이봐), 하지만 난 이번 사건이 헤라클레스의 열 번째 모험이고, 앤더슨 박사가 내가 없애야 할 게리온의 괴물이라는 느낌이 들어."
재프는 걱정스럽게 푸아로를 바라보았다.
"이봐, 푸아로, 자네 최근에 무슨 이상한 책이라도 읽었나?"
헤스페리데스의 사과
"잔을 만든 장인의 솜씨가 빼어나죠. 이 잔을 만든 장인이 벤베누토 첼리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잔에는 뱀이 또아리를 트고 있는 모습이 보석으로, 나무 위의 능금들은 아주 아름다운 에메랄드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푸알는 갑자기 구미가 당긴 듯 중얼거렸다.
"능금이요?"
(중략)
이제 둘은 수녀원의 담장에 도달했다.아틀라스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했다. 잠시 후, 아틀라스는 낮고 다급한 목소리로 찌그러지겠다며 신음을 내뱉었다!
에르퀼 푸아로는 엄한 목소리로 그를 나무랬다.
"조용히 하게. 자네가 떠받치고 있는 건 지구가 아니야....... 이 에르퀼 푸아로뿐이라고."
케르베로스를 잡아라
작달막하고 깐깐한 남자가 커다랗고 화려한 여자를 동경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푸아로는 자신을 사로잡은 백작 부인의 치명적인 매력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백작 부인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년도 더 전의 일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전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다.(푸아로가 동경하는 여성 베라 코샤코프 부인은 『빅 포(1927)』, 『푸아로의 초기 사건집(1974)』에서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옮긴이)
(중략)
'지옥이요.'
백작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푸아로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백작 부인이 정말 그렇게 말했던 걸까? 하지만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중략)
에르퀼 푸아로는 문구들을 감상하며 중얼거렸다.
"세 비엥 이마지네 싸(그것 참 기발하네)!"
푸아로는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계단의 끝에는 자줏빛 백합이 꽂힌 인공 연못이 있었다. 연못 위에는 보트 모양의 다리가 놓여 있어 푸아로는 그 다리를 건넜다.
왼쪽에 대리석으로 만든 작은 동굴이 보였다. 그 안에는 그가 여태껏 본 중 가장 추하고 사악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개는 아주 꼿꼿하게 앉아 으스스한 모습으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푸아로는 그 개가진짜 살아 있는 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그 순간 개가 새카만 몸에서 흉악한 고개를 들어오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그떄 작고 둥근 강아지용 비스킷이 들어 있는 바구니가 푸아로의 눈에 띄었다. 바구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케르베로스에게 뇌물을!'
은퇴하고 호박을 키우며 살아가기로 마음 먹은 푸아로. 마치 프리마돈나의 고별무대처럼 딱 12개의 사건만 맡기로 결심한다. 기준은 그와 같은 이름의 고대 신화 속 인물인 헤라클레스의 12 모험과의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마치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영국 드라마 '셜록'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셜록 홈즈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그 드라마는 탁월한 연기력을 갖추었지만 영국 밖에서는 유명하지 않았던 배우를 세계적인 톱스타로 만들었다. 잘 알려진 이야기를 가지고 현시점에 맞추어 이야기하는 것. 1947년에 나온 이 작품을 계기로 푸아로가 은퇴했느냐고? 물론 아니다. 어쩌면 마지막 장면, 예상치도 못했던 로맨스의 힘으로 다시 복귀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일주일 뒤, 레몬 양은 자신의 고용주에게 계산서 한 장을 내밀었다.
"실례합니다, 무슈 푸아로. 제계 이 계산서를 처리하라는 말씀이신가요? 플로리스트 레오노라에게서 붉은 장미꽃 구입, 11파운드 8실링 6펜스, 받는 사람은 엔드 가 13번지 WC1, '지옥'의 베라 로샤코프 백작 부인 앞으로 되어 있네요."
푸아로의 얼굴이 빨간 장밋빛으로 물들었고, 곧 귀까지 벌게졌다.
"계산서는 정확하네요, 레몬 양. 그건 특별한 일에 대한 조그만...... 선물이오. 백작 부인의 아드님이 철강 업계의 거물급 회사 사장 딸과....... 곧 미국에서 약혼식을 올린다고 하네요. 붉은 장미꽃은, 내가 기억하기로....... 백작 부인께서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
"그렇군요."
레몬 양이 말했다.
"하지만 매년 이맘때쯤이면 꽃값이 얼마나 비싼 줄 아세요?"
에르퀼 푸아로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떄로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할 떄가 있소."
푸아로는 나지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볍고 아주 활기차 보였다.
레몬 양은 푸아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서류 정리법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오로지 여자의 직감만이 떠올랐다.
"오, 맙소사!"
레몬 양은 중얼거렸다.
"세상에....... 설마 저 나이에? 아닐 거야.......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