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총 다섯 권 읽었다. 나는 제인 오스틴을 아주 늦게 시작했는데, 이제 그녀의 모든 작품을 읽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맨스필드 파크』가 남았고, 10대 시절에 쓴 서간체 중편소설 <레이디 수전>과 미완성 소설 <왓슨 가족>, <샌디턴>이 한 권으로 묶여 출간된 『레이디 수전 외』가 남았다. 굳이 해보면,의 ‘굳이’를 강조해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순위를 매겨본다.
오늘의 순위 : 오만과 편견 > 노생거 수도원> 설득 > 엠마 >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의 작품 속 여주인공들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역시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다. 당차고 야무진 그녀가 좋다. 잘못을 인정할 때의 쿨한 태도 역시 마음에 든다. 춤 실력, 유머감각까지도 내 스타일이다. 어쩌면 영화 속 키이라 나이틀리의 이미지가 그런 느낌을 가져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서로서로 비슷하다. 남자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화라는 매체의 도움 때문에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가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내가 엘리자베스를 제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여주인공은 노생거 수도원의 캐서린이다.
어릴 적 캐서린 몰랜드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녀가 여주인공이 될 운명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리라. 타고난 신분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인물들, 그녀 자신의 성격과 기질까지 모든 게 하나같이 소설 속 여주인공과는 정반대였다. .... 그녀의 어머니는 현실적이고 평범한 상식을 지닌 여인으로 명랑했으며 무엇보다 튼튼한 체질이었다. 캐서린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들 셋을 낳았는데, 흔히 예상하듯이 캐서린을 낳다가 죽기는커녕 멀쩡히 살아서 여섯 명을 더 낳았고, 여전히 자식들이 자라는 걸 지켜보며 남다른 건강을 과시하고 있었다. (14쪽)
보통의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고귀한 혈통,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 가난한 아버지, 병약한 어머니. 여주인공 필요조건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남자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뭐든지 좋아했는데, 인형놀이뿐만 아니라 겨울잠쥐를 돌보거나 카나리아에게 먹이 주기, 장미꽃에 물 주기와 같이 어린 시절의 여주인공이 즐길 법한 그런 일들보다 크리켓을 훨씬 더 좋아했다. 특히 정원 일에는 전혀 취미가 없었다. 혹시라도 꽃을 꺾거나 한다면, 그건 순전히 장난치는 재미 때문이었다. 적어도 언제나 하지 말라는 짓만 더 기를 쓰고 하는 걸 보면, 그런 짐작이 들 수밖에 없었다.(14쪽)
여성적 취미나 교양을 위한 활동보다 바깥 활동을 더 좋아했다는 이야기인데, 그녀의 이런 면이 마음에 들었다. 크리켓 같은 바깥 활동을 더 좋아하지는 않지만, 장미꽃 물 주기 같은 정원 일에 젬병인지라 베란다 식물들에게 종종 ‘사형’을 언도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일수도.
그녀의 소설은 대부분 비슷하다. 순수하고 똑똑하지만 세상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아가씨가 연애하고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해설, 323쪽) 그 과정에서 오해와 착각에 빠져 실수를 저지르지만, 반성하며 스스로를 고쳐가는 과정을 통해 참된 사랑을 깨닫고 관계를 회복한다. 보통 그 관계 회복은 ‘결혼’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결론지어진다. 그녀 작품의 의미나 한계에 대한 논의는 별개로 하더라도, 일단 그녀의 작품들은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반짝반짝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고, 인간에 대한 세세한 관찰과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가벼운 연애 이야기로 읽힐 수 있고, 그녀 또한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소설’이 가벼운 이야깃거리로만, 읽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숨어서 읽어야할 책으로 인식되었던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과 그 다양성에 대한 가장 훌륭한 묘사, 그리고 재치와 유머가 최고로 엄선된 언어로 전달된 책이 바로 소설이라는 주장이다.
“전 소설 독자가 아니에요.” “소설 따위는 읽지 않아요.” “제가 소설을 자주 읽는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소설치고는 괜찮군요.” 이게 흔히 듣는 위선적인 말들이다. “뭘 읽고 있나요, 아가씨?” 물으면, 젊은 아가씨들은 “오! 그냥 소설책이에요!”라고 대답하고는 무관심한 척하거나 순간 부끄러워하며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는다. “《세실리아》, 아니 《카밀라》든가, 《벨린다》든가 뭐 그런 책이에요. (각주 : 당시 유행했던 소설들로, 세 작품 모두 여주인공의 시련과 낭만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46쪽)” 한마디로 가장 위대한 정신력을 드러내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과 그 다양성에 대한 가장 훌륭한 묘사, 그리고 재치와 유머의 가장 생생한 발산을 최고의 엄선된 언어로 세상에 전달하는 책들인 것이다. (46쪽)
소설에 대한 폄하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위대한 소설과 아름다운 소설 속에서 벅찬 감동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쉽게 쉽게 말해버릴터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자. 그게 그 사람이 받을 벌이다.
나는 한결같은 잘난 척과 거침없는 무례함, 예의를 가장한 거짓말에 능숙한 소프씨 보다는 밋밋하게 느껴지더라도 담백한 느낌의 헨리씨가 좋았다. 모두의 예상대로 캐서린과 헨리 앞의 장애물은 사라지고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미래를 약속한다. 둘은 서로를 아끼고 내내 사랑하며 그리고는 행복할 것이다. 로맨스 소설로서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캐서린의 적극성에 있다.
비록 지금은 헨리가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성품을 좋아하고 그녀의 집안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사실 그의 애정이 고마운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오로지 그를 향한 캐서린의 각별한 애정에 설득당해서 그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로맨스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며, 여주인공의 품위가 끔찍하게 손상된다는 점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만약 이게 평범한 삶에서도 새로운 일이라면, 터무니없는 상상을 펼친 책임은 전적으로 작가인 나의 몫이 될 것이다. (310쪽)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여주인공, 남자 주인공에게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는 여주인공은 현대물에서도 흔하지 않다. <남성 공세 ― 여성 거부 ― 남성의 집요한 공세 ― 남성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여성>이 대체적인 흐름이다. 요즘에도 그러한대, 1800년대에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치는 여주인공이라니. 작가는 시대를 앞서간다, 한결같이.
시대를 앞서가는 작가의 안목을 보여주는 대목을 하나만 더 소개한다. 이건 분명하다. mansplain이라는 단어는 2008년 즈음 레베카 솔닛에 의해 만들어졌다지만 mansplain의 행태는 200년 넘게 지속되어왔다. 한결같이.
“그래도 한번 읽어보면, 《우돌포》는 좋아하실 것 같아요. 무척 흥미롭거든요.”
“절대 아닙니다! 혹시 뭔가 읽는다면, 래드클리프 부인 소설을 읽겠죠. 그래도 그 사람 소설은 꽤 재밌으니까 한번 읽어볼만합니다. 재미도 있고 박진감도 있어요.”
“《우돌포》가 바로 그 래드클리프 부인이 쓴 거예요.” 캐서린이 혹시 그에게 창피를 주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입니까? 이런, 이제 기억나는군요, 맞아요. 다른 한심한 소설로 착각했습니다.... ” (62쪽)
200년 넘는 한결같은 전통이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jtbc <비정상회담> 중 한 장면이다. 캐나다에서는 맨스플레인, 특히 공무원과 판사의 맨스플레인은 절대 금지란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