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작지 않은 역사 이야기 시리즈는 문학의 역사, 철학의 역사, 과학의 역사, 이렇게 세 권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로쟈님 서재에서 보았고, A님의 방에서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리뷰를 읽은 후에 관심이 생겨 읽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A란, A, B, C, D의 A가 아니라 특정 단어의 첫 음절로서의 A이다.^^)
저자 존 서덜랜드John Sutherland는 런던 대학교 근대 영문학 로드 노스클리프 명예교수이며, 편집자이자 저자로서 20여권의 책을 펴냈다. 2011년에 펴낸 『소설가들의 삶: 소설의 역사와 294명의 삶』이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왜 문학을 읽는가. 첫 번째 질문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문학작품을 읽는가. 그의 답은 이렇다.
문학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절정에 다다른 인간의 정신이다. 우리는 왜 문학작품을 읽을까? 문학작품은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삶을 풍성하게 하므로 읽는다. 문학작품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읽는 법을 더 잘 배울수록, 문학작품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14쪽)
『책 읽는 뇌』의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읽는다는 건 인간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읽는다는 것,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훈련된 뇌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도로 조직화된 정신 작용’이다. 읽기를 통해, 뇌는 새로운 정보를 얻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판단을 하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변한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하고,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게 된다. 읽기는 읽는 사람을 어떤 방향으로든 변하게 하고, 문학작품은, 훌륭한 문학 작품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한다. 그래서 읽는다.
기원전 500년 이전에 쓰인 그리스 비극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아직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비극이 인간 삶의 조건 속의 미스터리와 대결하고, 커다란 의문들을 검토하도록 만들기 때문(41쪽)이라고 말한다. 비극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문, 즉 인생은 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 등의 질문들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살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인생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이러한 질문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스스로를 자각하는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직시해야만 하는 물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은 그런 질문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16장, <가장 예민한 마음, 오스틴>에서 제인 오스틴 작품들이 주로 여성, 그리고 중간계급만의 경험이라는 아주 좁은 범위로 스스로를 제한하고, 세계 역사상 가장 격변기의 미국과 프랑스 혁명 그리고 나폴레옹의 전쟁 등을 다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이 문학사적으로 의미 있고 훌륭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오스틴은 기술적으로 자신의 소설 방식에 아주 통달했는데, 특히 아이러니를 사용할 때 뛰어나다. 둘째, 도덕적 진지함으로, 그녀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온갖 복잡한 문제를 분명하게 표현한다.(149쪽)
독서대중의 탄생과 성장 및 변화에 대한 17장 <독자를 위한 책, 책 읽는 대중의 변화>도 흥미로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읽을거리’를 원했는데, 책 형태의 문학이 무척이나 값비싼 사치였던 시기를 지나면서, 대중은 좀 더 쉽게 문학서적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된 독서 대중은 이제는 오후 2시 이전에 주문하고 저녁쯤에는 당일배송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더 수월하게, 더 많은 읽을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혁신은 두 조건하에서 이루어졌다.
첫째 혁신은 문학의 체재였다. 19세기 중반에는 거대한 메트로폴리탄 상업 도서관이 나타났고, 20세기 중반까지 모든 소읍과 도시에는 모퉁이마다 ‘싸구려’ 도서관이 나타났다. 여기에는 인기 있는 소설들이 담배, 사탕 및 초콜릿, 그리고 신문과 나란히 놓여 있었다. 1950년 영국의 모든 시의회가 법으로 규정한 ‘포괄적인’ 공공 도서관 서비스를 통해 책을 공급했고, 여기에서 책읽기는 무료였다.
둘째 혁신은 저렴한 책이다. 책값은 19세기에 인쇄기의 개량으로 제조비용이 더 낮아졌고, 현대에 가장 영향을 주었던 일은 1960년대 미국에서 급격히 인기를 얻었던 페이퍼백 혁명이다. 21세기는 전자적 공급 수단(전자책들)을 갖고 있으며 인터넷으로 연결된 모든 컴퓨터 스크린은 알라딘의 동굴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159쪽)
알라딘의 동굴로 가는 길에 크레마가 있으면 더 신나는 모험이 되겠지만, 아무튼 컴퓨터 스크린도 알라딘 동굴로 가는 문을 열어주기는 한다.
셰익스피어, 디킨스, 브론테 자매, 테니슨, 하디, 콘래드, 울프, 카프와 보르헤스 그리고 루시디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방대한 독서목록은 끝이 없다. <종이를 떠난 문학 : 영화, 텔레비전 그리고 무대의 문학>은 문학의 변신에 대한 고찰이고, 베스트셀러에 대한 서술 역시 생각할 거리를 준다. 차례를 보고 관심 있는 작가나 주제에 대한 챕터만 뽑아서 읽어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나는 문학사 자체를 좋아해서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었다. 어떤 작품이 왜 좋은가,에 대한 설명과 설득이 이어지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더 큰 관심과 흥미는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아니라, 이미 읽은 책으로 향한다.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마지막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예전에 ‘읽을거리’를 찾았던 독자들은 이제 없다. 뉴욕 항구에서 일하던 부두 노동자들은 『오래된 골동품 상점』이 도착할 즈음이면 책을 싣고 오는 배에 대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녀(리틀 넬)가 죽었나요?”(163쪽) 저자의 친절한 계산에 의하면, 학교에서는 50여권의 책을, 문학 공부를 하는 대학에서는 300여권이 넘는 책을 만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기에 문학 책을 1000권 소비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도 한다.(354쪽)
평생을 읽어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읽기만 해도,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다 읽지 못할 것이다.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로, 앞으로 읽을 책, 읽게될 책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과 통통 튀는 신작들과 의미 있는 작품들의 대홍수 속에서, 선택의 시간만 남아있다.
이미 읽었지만 다시 읽고 싶은 책들과 이제 읽어야할 책들을 꼽아본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이제는 무슨 책을 읽을 텐가.
햄릿, 두 도시 이야기, 오래된 골동품 상점
노생거 수도원, 맨스필드 파크, 레이디수전 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허클베리 핀의 모험, 암흑의 핵심
댈러웨이 부인, 화씨 451, 1984
트리스트럼 샌디, 율리시스, 휴먼 스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