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공부의 시대’ 시리즈다. 독서와 글쓰기를 다루는 강연을 엮은 것이어서 저자의 기존 책들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는데(7쪽), 중요한 이야기는 반복해서 들어야 하기에, 나로서는 싫지 않았다.
저자가 추천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사피엔스, 코스모스, 담론
맹자, 유한계급론, 토지
자유론, 시민의 불복종, 통섭
그리고, 청춘의 독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라기보다, 계속 마음에 쓰였던 구절을 꼽자면 이렇다.
저는 ‘위인전 인생관’을 버렸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65쪽)
일, 놀이, 사랑과 같이 자기중심적인 활동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살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타인을 위해서 자기의 사적 자원을 기꺼이 내주는 연대활동을 병행해야만 삶의 의미를 느끼는 사람은 그것도 하고, 크게 연대할 역량이 있으면 크게 연대하고, 작게 할 역량밖에 없으면 또 할 수 있는 만큼 작게 연대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을 어디까지 할지는 각자 판단할 수 밖에 없어요.
주체 역량을 과대평가할 경우, 주관적 의도와 달리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 큰 고통을 겪으면서 뜻하지 않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 ... 꼭 하고 싶거나 해야만 한다고 믿는 일을 내가 처한 구체적인 조건과 상황을 고려해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선까지 최선을 다해 하며 사는 것, 이것이 제 인생론입니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124쪽)
나는 ‘행복한 사람’이 주는 힘에 대해 긍정한다. 훌륭한 역할자로서의 엄마보다 행복한 개인으로서의 엄마가 아이들에게 더 큰 행복과 만족감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자주 행복하다고 말하고, 즐겁다고 말하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일, 놀이, 사랑과 같이 자기중심적인 활동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활동만으로 생활을 채워가는 것에 가끔, 아주 가끔씩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힘없는 개인이다. 사회의 부조리, 거대한 벽 앞에서 저항할 수 있는 힘도, 실력도, 지식도, 지위도 없다. 나 스스로 행복한 것 말고, 그것을 넘어서서, 다른 방법으로 내가 사는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마다, 나는 무력감을 느낀다.
1996년. 훗날 연대사태로 불려지는 그 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에, 최류탄 연기에 흠뻑 젖어 온 몸을 바르르 떨며 집으로 돌아왔던 그 날은 내가 데모에 참여했던 첫 번째이자 마지막 날이다. 머리 속으로만 그려왔던, 화면으로만 보아왔던 공포가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고 내게 덤벼들었을 때, 나는 두려웠다. 뼛속까지 무서웠다. 나는 그렇게 겁 많은 사람이고, 용기 없는 사람이다. 이제야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내가 사는 사회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드는데 일정한 공헌을, 아니 확고하고 명백한 공헌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변명이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일과 놀이, 사랑. 정확히는 놀이와 사랑과 같이 자기중심적인 활동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다. 먼저, 나는 이 행복을 누려볼 생각이다. 행복한 개인으로, 금방 웃고 또 자주 웃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혹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타인과 연대해 내가 사는 사회가 조금 더 좋아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보려 한다. 그게 바로 내가 유시민의 이런 말,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를 이해한 방식이다.
물론, 이 말을 내 삶에 적용하기 전에, 이 말의 화자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말을 했던 사람은 엄혹한 현실 속에서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이다. 불법 유인물을 만들고 투쟁하고 구속되고 그것 때문에 고문당했던 사람이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공과 과에 상관없이, 그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 나라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개인으로서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을 희생했던 사람이다. 원치 않게 정치를 하게 됐고, 맨 앞장서서 대통령의 뜻을 전하는 위치에 서면서 욕도 많이 먹었다. 국가를 위한 일,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신념 아래에 보건복지부에서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았고 어렵게 시행했다. 그런 유시민이 말한다.
저는 ‘위인전 인생관’을 버렸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65쪽)
4땡의 시간, 이제 훌륭한 사람이 되기는 어렵겠다고 체념하는 이 시간, 그래도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의 시간. 하지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훌륭한 사람은 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위인전 인생관’을 버린 게 아니라, 당최 가질 수가 없다.
얼마 전, 야나님이 이 책의 저자분과 팔짱끼고 찍은 어마무시한 사진을 공개했다. 팔짱은 아니지만, 내게도 저자와 팬의 다정한 투샷 사진이 핸폰 속 ‘선호하는 사진’으로 남아있으나, 나는야 익명의 시대를 사는 부끄럼 많은 사람인 관계로, 책장 너머 아이컨택을 부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컷으로 대체한다. 로쟈님은 원치 않게 찬조 출연하셔서 결과적으로 두 명의 저자를 한 컷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