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소설을 먼저 읽고, 그 소설가를 좋아하게 되서 소설가의 에세이나 전기 등을 찾아보는 게 일반적인 순서다. 로맹 가리의 작품을 한 권도 읽지 않았는데도 그의 개인적 독백 내 삶의 의미를 먼저 집어든 것은 도서관 신착 코서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이 작은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리뷰를 너무 많이 읽어서 읽은 걸로 착각하게 하는 자기 앞의 생도 한 몫 했고, 최근에 자주 올라오는 게리 쿠퍼여 안녕도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북돋았다.

 

[내 삶의 의미]

 

 

 

 

 

 

 

 

소설 속 작중화자 혹은 소설 속의 가 소설을 쓴 작가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듣고 또 들어도, 나는 서투른 독자라 자꾸 소설 속의 와 작가를 관련해 생각하고, 연관시키고, 결혼시키고, 이혼시킨다. 로맹 가리는 친절한 사람이라 소설 속에 그려진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직접 소설의 제목을 말해주기도 했다.

로맹 가리의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는 그의 어머니진 세버그가 아닐까 한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자신의 삶의 이유가 자식 그 자체인 이 유대인 아주머니를 이해하기 쉬운 건, 내가 필립 로스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넌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프랑스 대사가 될 거다.” 이따금은 몹시 곤혹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분이라 계단에서 이웃과 말다툼이 벌어질 때마다 여덟 살인 나를 데려가 밖에 나와 있던 이웃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요.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거예요. 위대한 프랑스 작가가 될 거라고요.” 나는 창피해서 죽을 것만 같았지요. 우리가 아직 폴란드 동부의 작은 마을에 살 때의 일이니 이런 일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 삶의 의미, 18)

 

'폴란드인도 러시아인도 리투아니아인도 유태인도',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프랑스인도 아니었던 로맹 가리의 개인사적 특수성은(가면의 생, 알라딘 책소개) 방랑자로서 어울리는 그의 외모와 함께 그의 삶을 조금 더 설명해준다.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 뒤에 숨었을 때 쏟아지는 대중의 환호, 스스로의 이름을 버리면서 얻게 된 알 수 없는 쾌감. 거짓말과 연극, 진 세버그와의 숨 가쁜 사랑(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그리고 자살.

말하고자 했던 것을 모두 말했던가. 모두 다 말했기에 그는 침묵하기로 선택한 것인가.

그의 말을 들어야 해서, 그의 책을 골라 본다.

 

[새벽의 약속], [유럽의 교육],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마지막 숨결], [하늘의 뿌리], [흰 개]

 

 

 

 

 

 

 

 

 

 

[그로칼랭], [레이디 L], [여자의 빛]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밤은 고요하리라], [인간의 문제]

 

 

 

 

 

 

 

 

 

[별을 먹는 사람들], [게리 쿠퍼여 안녕]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다. 나도 최근에야 알았다.

[자기 앞의 생], [가면의 생], [솔로몬 왕의 고뇌]

  

  

 

 

 

 

 

 

 

 

어제는 결석률이 자그만치 40%로 결석생이 많았다. 지난주에 써 갔던 시를 다듬어서 들고 갔는데, 선생님은 한 연 또는 두 연을 더 써오면 좋겠다고 하셨다. 마지막에 한 단어만 잘못 써도 폭싹 망하는게 시인데, 두 연이나 더 써야 한다니, 머리가 띵하니 아파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수업 마지막에는 5월쯤 창비에 연재하실 거라는 선생님의 미발표 시 두 편을 들을 수 있었다. 진지한 선생님의 시세계와 청소년시가 과연 어울릴까 의문스러웠는데, 나지막한 목소리에 실린 시어들이 그 모든 생각들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줬다.

<독서실><안녕, 옆구리>. 좋은 시 두 편에 우리는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의 간절함으로 다같이 좋아요~’를 연발했다. 할 수 있는 말이 좋아요~ 밖에 없나. 좋아요~와 정말 좋아요~ 뿐인가.

경복궁 채부동 잔치국수와 굴전, 굴무침과 소주와 생수를 먹고 마시며 건배, 또 건배하느라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아쉽다. 굴전은 바삭했고, 굴무침은 주인공인 굴보다 무가 더 맛있었다. 웃고 말하고 떠들고 그리고 또 웃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선생님과 둘이 걸었다

선생님은 키가 커서

한국 여성 평균키보다 10센티나 키가 큰 나는

허리를 쭉 펴고 걸을 수 있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걸어 내려와

이런 저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며

3호선에 올랐다

 

시인은 시인의 집으로

나는 우리집으로 돌아왔는데

시인과 돌아오는 그 길이

내내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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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4-22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내,
내내,


뭡니까?!


내내
내내


로 끝내놓으니 한 편의 시네요, 단발머리님!


참고로 저는 로맹 가리의 작품을 여러권 읽었고 다 좋아하는데 [새들은 페루에가서 죽다]를 그중 가장 추천합니다. 단편들이 하나같이 주옥같아요. 와- 진짜 대박이에요!!

단발머리 2016-04-22 11:2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궁금하죠?

저번주에 시수업에서 제가 쓴 시 (시라 부르면 시라 할 수 있지만, 시도 아닌 것을 시라 하기 뭣하지만) 아무튼 제가 쓴 시를 보시고는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기승전결로 안정적 구도를 가지고 있고, 무난한 마무리를 하고 있지만... 있지만
결론에서 긴장감이 확 떨어지고 쉬운 결론으로 마무리가 된다.
`마무리`에 대한 강박을 버려라....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써봤어요.

내내
내내

저는 참... 잘 따라가는 학생이네요. 다락방님이 궁금했다면 성공입나당!!

저는 로맹 가리 작품 이제 시작할려구요. 일단 추천하신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부터요.
다 읽고 또 물어볼꼐요. 대박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내내
내내

ㅎㅎㅎ

blanca 2016-04-2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낭만적이네요.

단발머리 2016-04-22 13:16   좋아요 0 | URL
지하철역으로 걸어가 카드를 태그하고 3호선을 타고 집으로 오는데 그 길이, 그렇게 낭만적이더라구요.
시인과 함께해서랄까요? ㅎㅎㅎ

다락방 2016-04-2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 큰 단발머리님 너무 멋져요! >.<

단발머리 2016-04-22 15:57   좋아요 0 | URL
아하하... 내가 다락방님 좋아해요. >.<

제가 멋짐을 맡을께요.
다락방님은 예쁨 담당인거 알죠? ㅎㅎㅎ

2016-04-22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움... 마구마구 막 상상됨요 (^-^)v

단발머리 2016-04-22 16:00   좋아요 1 | URL
가는 길에 말이지요.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하면서 신호등 건너서 반대쪽으로 걸어가는데
J님이랑 ㅆ님 안 계셔서 아무도 선생님을 쟁탈하지 않으려 해서...
은근 심심했어요.
이 장면도 그려주세요. 마구마구.... ㅎㅎㅎ

건조기후 2016-04-2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 세버그!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나오는 그 배우가 로맹 가리의 모친이었다니... (왠지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듣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 막 혼란스러운 와중에ㅎ) 놀라워요. 대학시절 프랑스문화 수업 때 저 영화로 발표도 했었는데.. 로맹 가리를 낳고 키운 사람이 그 사람이라니. ㅎ

안녕, 옆구리 라는 시 제목이 인상적이네요. 요새 제 옆구리의 존재감이 너무 격렬해서 감당을 못 하고 있는데 ;; 저 안녕이 만남의 안녕이 아니라 헤어짐의 안녕이었으면 좋겠어요. 안녕... 옆구리.

로맹 가리의 에세이를 읽고 시 수업 듣는 평균키보다 10센치나 더 큰 단발머리님은 정말 좀 많이 멋지네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4-22 16: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건조기후님^^

저... 지금 댓글 달다가, 건조기후님 댓글 2번 보고있어요. ㅎㅎ

<안녕, 옆구리>의 시적 화자는 고딩 여학생이라고 할 수 있는대요. 한국에서 입시를 준비하며 옆구리가 늘어나는 경험을 했던 모든 여성이 이해하고 공감할 만합니다. 아주 좋아요.

멋지다고 해주시니, 부끄러워요.
부끄럽지만, 전... 사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멋진 사람^^

건조기후 2016-04-2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어쩐지... 뭐가 계속 이상한데 내가 정말 모자관계인줄을 몰랐던 건가 싶어서 그것만 계속 생각했는데. 어머니`와` 진 세버그를 어머니`인` 진 세버그로 잘못 읽은 거였네요. 하... 어이없음이여 ;;; 진 세버그가 어머니면 숨가쁜 사랑은 뭐가 된단 말인가요 ; 아이고 이 정신머리... ㅜ

단발머리 2016-04-22 16:06   좋아요 0 | URL
급하게 읽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ㅎㅎㅎ
전 그런 일이 숱하게 많아요.
특히 알라딘, 제가 좋아하는 알라딘 서재에서요... ㅎㅎ

숨가쁜 사랑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입니다.
언제나요~~~~~~~~ forever love!!!

수이 2016-04-22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러울 줄 알았는데 내 질투심이 다 사그라진걸 보니 선생님에 대한 애정도가 0으로 ㅋㅋ
즐거운 시간 보내셨다 하니 다행 :)

저는 저를 포근히 안아주는 남자의 품에 안겨서 걸었으니 코코_


단발머리 2016-04-22 16:11   좋아요 0 | URL
이러면 안 되죠~~

굳은 사랑의 맹세와
환호와
미소를...
어떻게 할려구요.

그리고 `선생님, 사랑해요~`를
어찌할려고요.

수이 2016-04-22 16:14   좋아요 0 | URL
사랑해_라고 하면 묵묵부답인 선생님을 계속 사랑할 인내심이 제게는 없어요. 저는 표현하는 남자가 좋아요. ㅋ

단발머리 2016-04-22 16:15   좋아요 0 | URL
선생님께 전할께요~~*^^* ㅎㅎㅎ
선생님~~~~~~~~~~~~~
야나님이요~~~~~~~~~~

2016-04-22 16:18   좋아요 1 | URL
모든 선생님은 나쁜 듯 합니다ㅎ

수이 2016-04-22 16:20   좋아요 0 | URL
전해봤자 소용없어요_ 그분의 마음은 돌과 같아서 변하지 않을 테니 ㅋㅋㅋㅋ

수이 2016-04-22 16:21   좋아요 1 | URL
쑥님_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어쩔 수 없이 모두 나쁜 선생님이 될 수밖에 없나봐요. 만일에 제가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제자와는 사랑할 수 없을 거 같아요. 그러니 저절로 쌀쌀맞아질 수밖에_

단발머리 2016-04-22 16:42   좋아요 1 | URL
쑥님/ 우리 선생님 빼고요. 선생님은 나빠요. ㅎㅎㅎ
야나님/ 아무렴요. 제자와의 사랑은 아니되죠. 우리, 선생님의 행복을 두 손 모아 빌어보아요.
선생님 팬 중에 어여쁜 처자와의 .... 띠로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