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콜린이라면, 이 콜린이 있고,

 

 

그리고 이 콜린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콜린 매컬로. 책날개 작가 소개를 읽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세 번째 콜린은 ‘여자’였다.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콜린’이라는 이름을 쓰는 여자를 알지 못하는 나의 무식함이 원인이 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최근에 읽은 『행복한 페미니즘』의 한 구절처럼, 전 세계적인 극찬에 이어 한국에 상륙한 이 훌륭한 책의 저자가 ‘여자’일 거라고 생각지 못한 나의 편견이 작용한 경우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결심을 했는데, 이 시리즈에 대한 페이퍼는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각 잡고 하는 것도, 정식으로 하는 것도 아니지만, 여하튼 ‘페미니즘 공부’를 하는 중이고, 어려운 책과 비교적 쉬운 책들을 섞어가며 읽고는 있지만, 간단한 ‘개념’도 정리하는 게 녹록치 않아 말 그대로 끙끙대는 요즘이다. 이 책은 그냥 독서 그 자체로, 읽기의 즐거움 그 자체만을 누리자,고 했다. 하지만, 이런 구절이라면, 간단하게라도 옮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가장 뛰어난 자가 로마의 일인자는 아니었다. 지위와 기회가 동등한 자들 사이에서 제일가는 자가 로마의 일인자였다. 로마의 일인자가 된다는 것은 왕이나 전제군주, 폭군 따위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이었다. 로마의 일인자는 본인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걸출한 자임을 입증해 보임으로써 그 칭호를 유지했다. 또한 그 자리를 뺏으려 혈안이 된 자들, 자신이 지금의 일인자보다 더 걸출하다는 것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합법적으로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 자들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했다. (34쪽)

 

13년 고증, 20년 집필, <필생의 역작>이라는 책광고가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길 때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녀가 보여주는 로마는 생생하다. 검은색 신발 하나, 무쇠 반지 하나까지 고증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정확하게 전해줄 뿐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은 그녀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꼼꼼히 채우고 있다. 토가를 걸친 로마의 멋진 남자들이 금방이라도 책 속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로마의 대로와 원로원과 원형경기장에 들어서게 하며 목욕탕에 몸을 담그게 한다“는 로쟈님의 추천사는 100% 옳다. 마리우스가 카이사르의 초대에 응해 그의 집에서 이루어진 저녁 만찬 풍경이다.

빵, 양파, 정원에서 따온 허브를 간단히 뒤섞어 속을 채운 새 구이, 갓 구운 말랑말랑한 롤빵, 두 가지 올리브, 달걀과 치즈를 넣고 스펠트 밀가루로 빚어 만든 새알심, 저민 마늘을 한 겹 얹고 희석한 꿀을 발라 화로에 맛있게 구운 시골풍 소시지, 상추와 오이와 샬롯과 셀러리를 뒤섞은 싱싱한 샐러드 두 종류(각각 다른 맛이 나는 기름과 식초 드레싱을 사용했다), 그리고 브로콜리, 애호박, 콜리플라워를 부드럽게 찌고 밤을 갈아 기름과 함께 뿌린 훌륭한 야채찜. 처음 압착해낸 올리브유는 고소했고 소금은 잘 건조되었다. (108쪽)

 

화려하지는 않지만, 완벽한 웰빙식, 킨포크 라이프 스타일이다. 싱싱한 야채와 상큼한 소스의 냄새를 전해주는 그녀의 묘사는 정확하고 풍부하다. 하지만, 제일 흥미를 끄는 건 역시 사람 이야기이다. 작가가 제일 좋아했다는 카이사르가 여기저기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내뿜고 있고,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한 장면 중에 하나로서, 카이사르가 마리우스에게 자신의 딸과의 결혼을 제안하는 장면의 대화 또한 일품이다. 조상 대대로, 로마의 건국 초기부터 최고의 귀족 가문이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마리우스의 도움이 절실한 카이사르.

카이사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금 이 순간 나의 관심사는 내 자식들이 처할 운명입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 내 여식들은 결혼을 해도 들고 갈 지참금이 없어요! 적은 돈이나마 긁어모아 딸들에게 보낸다면 아들 녀석들이 더 가난해질 테니까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그 말은, 내 딸들은 같은 계층의 남자와 결혼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혹시 방금 내 말이 당신에 대한 모욕으로 들렸다면 용서하십시오. ... 내 말은 딸들을 내 마음에 차지도 않고, 내가 존경하지도 않고, 나와 공통점도 없는 자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126쪽) 

 

한꺼번에 출간된 것은 아니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한 권, 한 권 경건한 마음으로 통독했지만, 아우구스투스가 최고의 지략가였다는 간단한 사실 이외에는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이 책을 집어들자마자 떠오른 단어는 돈. 원로원 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집정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타고난 혈통 이외에도 필요한 것이 있었다. 재산, 충분한 재산. 돈, 돈이 필요하다.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카이사르 이외에도 엑소, 방탄소년단 저리가라 매력남들이 사방에 포진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술라이다.

술라는 첫눈에 소년에게 반했다. 소년 역시 술라에게 곧장 빠져들었다. 눈처럼 하얀 피부와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나는 머리칼, 희다 싶을 정도로 엷은 눈동자를 사진 사내가 술라 말고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42쪽)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술라는, 재산이 전혀 없어서 인구조사 명부에 그저 카피테 켄시, 즉 머릿수 하나로 기재된 그는 파트리키 귀족이었다. 파트리키 귀족의 아들이고 손자였으며, 로마 건국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그의 조상 모두가 대대로 파트리키 귀족이었다. 술라는 출생과 동시에 정치적 사다리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영예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태생만으로 보면 집정관 자리는 술라의 것이었다.

술라의 비극은 그가 무일푼이라는 것, 그의 아비가 로마의 다섯 경제계급 중 가장 낮은 계급에 등록하는 데 필요한 수입이나 재산조차 물려주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51쪽)

 

고귀한 혈통, 몰락한 집안, 아름다운 외모의 술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다.

 

 

              

저번 주 금요일에는 잠깐이라도 더위를 피하자고 집 근처 새로 생긴 커피숍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 『로마의 일인자』 1권과 바닐라라떼 아이스, 스트로베리 케이크를 앞에 두니 이 세상,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래도 제일 좋은 건 『로마의 일인자』 1권이었다고 쓰고, 투썸의 시원한 공기,였다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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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8-1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분들이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셔서 관심은 있었는데,
오늘 단발머리님의 페이퍼를 보니~ 도저히 이 책을 안 읽을 수가 없네요!^^
고맙습니다~~
새롭고 즐거운 한주 되세요~~*^^*

책읽는나무 2015-08-10 11:06   좋아요 0 | URL
저두 동감이어요ㅜㅜ

단발머리 2015-08-11 09:01   좋아요 0 | URL
applereeje님~~ 저도 그 많은 분들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두께가 만만치 않지만, 즐겁게 달리고 있습니다.
appletreeje님께도 즐거운 독서 여행이 되실 것 같아요.

오늘은 아침부터 28도네요. 헉헉.... 시원한 하루 되시기를 바래요*^^*

단발머리 2015-08-11 09:02   좋아요 0 | URL
책 읽는 나무님께도 사랑 가득한 응원을.... 응원을 보냅니다~~~ ㅎㅎㅎ

해피북 2015-08-10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먼저 동생에게 사줬거든요. 동생이 예전에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를 읽고 나서 부터 <일리아스><오뒷세이아>등 연달아 읽기 시작하더니 로마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 모습을 봤기에 <로마의 1인자> 책이 출간되고 많은 이웃님들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고 옳지 싶어서 동생에게 먼저 보냈답니다(ㅋㅁㅋ)

그래서 지금 애닳고 있답니다. 이런 재미진 소문을 넘어 애정이 담뿍 담긴 글을 읽으면 언제쯤 동생한테서 가져올 수 있을까나 참 괴로운 심정이랍니다 ㅋㅁㅋ,, 그런데 문제는,,, 저는 아직 <로마인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는 ㅜㅜ 그렇다면 이 책을 읽기 힘들까요??

아이스 바닐라 라떼와 스트로베리 케잌 그리고 <로마의 1인자> 궁합은 최고의 궁합인거 같아요 ㅋㅁㅋ~~

단발머리 2015-08-11 09:12   좋아요 0 | URL
오호, 해피북님은 가족이 모두 독서를 좋아하시나 봐요. 그런 서로를 잘 알고, 신간을 사서 동생에게 보내는 언니라니... 정말 멋집니다.

그런데, 이 책을, 금방 읽을 수는 없으니까요. 정말 애타시겠네요. 저도 재미진 소문 때문에 읽기 시작했구요. 저는 <로마인 이야기>를 다 읽었지만, 그 책을 읽지 않아도 이 시리즈를 읽는데는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시오노 나나미랑 콜린 매컬로는 완전히 스타일이 다른 것 같구요. 광고되는 대로 `역사관`에 차이가 많아서요. 저도 <로마인 이야기> 아주 재미있게 읽었지만, 일정 부분 이상이 `승리자의 입장`에서 본 <로아인 이야기>였던 것 또한 사실이구요. 역사관을 차치하더라도, 서술 자체가 너무 흥미로워서.... 동생분도 금방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ㅎㅎㅎ

아이스 바닐라라떼와 스트로베리 케잌 그리고 <로마의 1인자>는 서로 결혼한 사이라고 하네요. ㅎㅎㅎ
Happily ever after네요.

cyrus 2015-08-11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린 파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인물이에요. 킹스맨에 나온 콜린 퍼스는 정말 멋진 `콜린`이에요. ^^

단발머리 2015-08-11 09:14   좋아요 0 | URL
네, 콜린 파월 정말 오랜만이죠. 근데 요즘에는 통 보이지를 않아요.

콜린 퍼스는 정말 멋지죠. 멋진 사진 많아서,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사진 고르느라....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