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혼자 있을 때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할 때 일어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듯하다. (...)
사람은 한평생을 살면서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의 충동을 느낀다.
다른 이들을 사귀고 사랑을 나누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충동이 그 한 가지고,
또 한 가지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며 독자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충동이다.
- 앤서니 스토(2011), 『고독의 위로』, 책읽는 수요일, 19.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놀고 싶은 마음과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두 가지 다, 둘 다 내 마음이다. 일테면, 어제는 언니들과 만나 아이들 옷을 쇼핑하고, 점심을 같이 먹었고, 오늘은 이렇게 식탁 앞에 혼자 앉아 있다.
보통의 경우, ‘혼자 사는 사람’은 ‘화려한 싱글’ 혹은 ‘외로운 독거노인’, 이 두 개의 범주 중 하나로 정리된다. 하지만, 모든 ‘싱글’이 다 ‘화려한 것’만은 아니기에, 그들도 1인 가구로서의 애로사항이 적지 않다. ‘독거노인’이라 할지라도,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면, ‘외로운 독거노인’이라 분류되기를 거부할 것이다. 결혼한다고 해서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닌 것처럼, ‘화려한 싱글’도, ‘평범한 싱글’도, 그리고 ‘독거노인’도 행복할 수있다.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티가 나지 않는 끝없는 노동이라고 한다. 만일 당신이 남자라면, ‘혼자 산다는 것’은 하지 않으면 티가 나고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시시포스의 운명과도 같은 가사노동에 수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생략)
최악의 것은 청소죠. 그건 정말 끔찍해요. 매일 해봐야 진짜로 알 수 있을 텐데. 이를테면 당신이 금요일 날 무엇을 닦아 놓아도 다음 주 똑같은 시간, 똑같은 곳에 똑같은 먼지가 앉아 있을 거예요. 그러니 지겹지 않겠어요. 최소한 맛이 가게 하는 일임엔 틀림없죠. (...) 이건 거의 바다 한복판에서 걸레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요. (96쪽)
웃음 포인트 1)은 ‘하지 않으면 티가 나고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이고, 웃음 포인트 2)는 ‘시시포스의 운명’이다. 한 번 웃어 주시고~~~*^^*
사회 환경의 변화 속에서 ‘꼭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필수’에서 ‘선택’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이 때, 결혼에 대한 ‘강박’이 더 많이 줄어든 젠더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이 시대에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줄었다 해도 그것이 젠더마다 동일하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할 이유는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더 빠르게 줄어들었다. 벡 부부의 지적처럼 “과거의 여성들은 실망에 부딪혔을 때 자기의 희망을 버렸지만, 오늘날의 여성들은 자기의 희망을 고수한 채 결혼을 버린다.” (127쪽)
현재를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골드미스’의 일원으로서,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여성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하고 후회하는 게 낫는지, 안 하고 후회하는 게 낫는지, 잘 모르겠다.
chapter 5, ‘고독이 필요한 시간‘이 좋았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 역할이라는 가면을 쓴다‘, ’타자지향형 인간‘, ’친구가 많으면 꼭 좋은가?‘, ’집단주의와 자기밀도의 제로화‘, ’의도된 고독과 자기관계의 회복‘, ’고독은 나의 힘 -혼자라는 거대한 전환‘, ’단독 비행의 삶‘. 관심을 끄는 주제다.
타자관계에는 지나치게 민감하지만 그에 비해 자기관계에는 둔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처세의 방법은, 더도 덜도 말고 딱 남들이 하는 것만큼 행동하기이다. 그리하여 수도권의 30평대 아파트에 살며, 소나타를 몰며 4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은 어느 날 나는 누구인가라는 갱년기의 질문에 부딪혔을 때 쉽사리 붕괴될 수 있다. 갱년기를 겪어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사춘기는 연습에 불과했음을. (150쪽)
개인 성격상 내성적 기질이 강한지 약한지와는 상관없이, 관계밀도의 과잉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높은 자기밀도가 가능한 내향적 세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내향적 세계는 반드시 기질상 내성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는 아니다. (181쪽)
타자관계를 지배하는 집단의 힘에 의해 일방적으로 무리에서 밀려나는 배제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세상을 향한 시선을 닫고 있는 은둔자가 되지도 않기 위한 삶의 모델을, 저자는 홀로 서는 사람, ‘단독인’이라 부른다(168쪽). 단독인, 타자관계와 자기관계가 균형을 이루는 사람이다. 진정한 ‘단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저자는 ‘자기만의 방’과 ‘최소한의 소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혼자일 수 있기 위해서 집단으로부터 잠시나마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계층의 하한선은 중산층이다. 적어도 중산층까지는 대로는 자신의 적극적 의지에 따라 일시적이나마 자신의 치타델레에 들어갈 수 있지만, 경제적 자원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그러한 시도조차 해볼 수 없다. (225쪽)
특별한 사람만 단독인이 되지 않고 누구나 다 같이 단독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최소한의 소득이라는 최소조건이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역할 조절을 통해 자신만의 독립성을 옹호한다고 해서(사회적 의미의 홀로서기) 단독인이 될 수 없다. (229쪽)
또한 그는 단독인이 나 홀로 독단인으로 살지 않기 위해,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만의 방’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네트워크를 다른 단어로 ‘연대’라 부르기도 했다.
타자관계와 자기관계의 조화, 진정한 단독인, 행복한 단독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혼자 사는 삶’을 고대하지는 않지만, ‘혼자서 3-4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은 언제나 환영이다.
이 책에서 제일 눈에 띄였던 문장을 옮겨 적어본다. 이역만리 영국으로 유학 온 외로운 유학생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들이 마음에 쏙쏙 박힌다. 마침 현암사에서 그의 전집 2차분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반갑다.
“나는 대학에서 영문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했습니다. 그 영문학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학문입니까 하고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을 3년이나 전공한 나도 뭐가 뭔지 도무지 꿈속일 뿐입니다. ” (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