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1월에는 꽤 바빴다. 

수지에 사는 친구를 명동에서 만나 파니니를 먹었고, 시부모님 칠순 문제로 폭발해 버린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셨다. 지지난 주에는 엄마가 김장을 하셨다. 내가 한 일은 없었지만, 아무튼 나도 '엄마 김장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지난 주에는 교회에 부흥회가 있어, 저녁마다 온 가족이 출동했다. 


 

 

 

 

 

 

 

 

 

 

 

 

 

 

 

맘 같아서는 이틀이면 강신주님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어렵지 않은데도, 약한 정체 상태다. 마음은 급하고, 책은 쌓여간다.   


2. 대김장 기여도 

'대김장 기여도'라는 게 있다. 내가 지은 말인데, 김장에 대한 기여도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올해로 결혼한지 1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결혼 2년차 정도의 음식 솜씨를 가지고 있다. 엄마와 어머니는 자꾸 늙어가시고, 내 실력은 늘지 않는다. 

예전에 김장에 대한 내 기여도는 2.2 정도였다. (가끔 장 보는 걸 돕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어머니께서 장을 보시고, 어머니께서 배추를 들이시고, 어머니께서 배추를 절이시고, 어머니께서 양념속을 만드시고, 어머니께서 배추를 씻어놓으신 후에 등장해, 배추속을 넣은 배추를 김치통에 넣어 우리집으로 가지고 왔다. 

하지만, 요근래 어머니 허리 통증이 더 심해지셔서, 2.2의 대김장 기여도를 조금 높여보자 생각했다. 모레가 '김장'하는 날이니 어제 저녁쯤에 시댁에 가면 되겠다 싶어, 신랑에게 말했다. 

"내일 오후나 저녁쯤에 (시댁에) 가볼려고." 
"씻는 거 오늘 아침 일찍 하실 것 같은데. 나 내일 일찍 끝나는데. 내가 아롱이 받아줄 수도 있고." 
"그래?

당신, 김장의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 토요일에 '김장'하기로 했으면, 절이는 것은 당연히 금요일 오후인데, 아침 일찍 절이실거라니. 나는, 착한 나는 오전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배추 절이는 거 제가 도우려구요. 언제 하..."
"그래? 그럼 너, 지금 와라."
"에? 네. 그럼 저 좀 준비 좀 하고..." 
"준비할게 뭐 있냐? 얼른 와."

그래서, 시댁에 가서는, 무를 사고, 갓을 사고, 생새우를 사고, 굴을 사고, 떡을 사고(?), 당근을 사고, 대파를 사고, 쪽파를 샀다. 그리고는 양질의 상품, 저렴한 가격 때문에 재래시장을 종횡무진하시는 어머니덕에 이 모든 걸 바퀴 달린 장바구니에 담고 시댁으로 돌아왔다. 너무 무거워 장바구니가 두 번이나 뒤집어졌다. 나는 '어머나' 하면서 웃었다.

그리고는, 갓을 다듬고, 무를 다듬고, 대파를 다듬고, 쪽파를 다듬었다. 배추의 꼭지를 따고, 그리고, 배추를 절였다. 

다음날, 배추를 씻었다. 짬뽕을 먹고, 탕수육을 먹었다. 신문지를 깔고는 배추에 속을 넣었다. 속을 넣은 배추를 김치통에 넣었다. 고추가루, 젓갈로 범벅이된 다라이(다라이~ㅎㅎ)를 씻었다. 어머니께 봉투를 드리고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2013년, 나는 나의 대김장기여도를 2.2에서 4.3정도로 상향조정하려 했는데, 신랑은 6.1 정도 기여할 것을 조심스레 제안했고, 어머니는 7.4 정도를 요청하셨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노동의 범위에서 내 대김장 기여도는 7.8 정도에 육박한다고 감히 단언한다. 

내가 먹을 김치를, 우리 식구가 먹을 김치를, 시댁 가서 한 것 뿐인데, 주위에서는 모두 '수고했다'고 칭찬하셨다. 김장 다음날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하셔서, "너, 몸은 괜찮니?"라고 물으셔서, 나는 어머니의 이 귀한 말씀을 플랜카드로 만들겠다고, 신랑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많이 애썼다니까.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어? 알겠어?" 

3. 아롱이 수영반의 S엄마를 만나 

나의 대김장 기여도를 자랑하려 말을 꺼냈다. 
저번주에 시댁에서 김장을 했거든요. 
응, 그래? 나도 이번주에, 김치 한, 230포기쯤 했지. 
네? 김치 공장하세요? 아니, 누가 김치를, 그렇게 많이? 

알고 보니, S 엄마는 동네에서 일 잘한다고, 손 빠르다고 소문난 알뜰 주부로서, 김장 때가 되면, 같은 빌라 사시는 아주머니들이 손에 손을 부여잡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신다는 거다. 내일 우리 김장이야. 와서 좀 도와줘. 그럼 맘 착하고, 손 빠른 S 엄마는 그 집에 가서는 김치를 착착 해준다는 거다. 이번주에도 40포기쯤의 김치가 남아있다고. 허걱. 

아, 나는 우리집 김치 30포기를 해놓고는 여기 저기 그렇게 자랑을 해대고, 내 사랑하는 알라딘서재에 이렇게 장문의 글을 올리고 있는데, S 엄마는 자기네 김치도 아닌, 남의 집 김치를, 200포기 넘게 해 주고는, 이렇게 환하게, 예쁘게 웃고 있다. 

대김장 기여도 10을 넘어, 14.8을 구가하시는 S 엄마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 나는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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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1-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김장 기여도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단발머리님께서 강신주로부터 배운 단어 '육박하다'를 아주 적절하게 쓰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단발머리 2013-11-28 11:12   좋아요 0 | URL
헤헤, 지금 저 칭찬해주시는 거죠?

여보세요, 여러분~
저는 책을 내신 유명 작가님께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만세^^

노이에자이트 2013-11-28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라이같은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일제잔재라고 하면서...방송에서도 못쓰게 하더군요. 저는 정겹더라고요.이제 우리말 단어로 간주해도 좋을 것 같은데...

단발머리 2013-11-29 11: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노이에자이트님~~
저 사실, 노이에자이트님 방에 자주 갔었는데, 댓글 남길 용기가 없어, 공감만 누르고 퇴장했었는데, 제 서재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이 '다라이'라는 단어가 체화되었나봐요.
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네요. ㅋㅎㅎ
앞으로 자주 뵈어요~~

감은빛 2013-11-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까 김장한 얘기를 쓰다가,
'다라이'에서 딱 막히는 거예요.
이걸 우리말로는 뭐라고 해야하는 거지?
대야? 큰 대야?

애 많이 쓰셨네요!
저는 과연 몇의 기여도를 가질 수 있을지 계산 한번 해봐야겠어요. ^^

단발머리 2013-11-29 12:02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안녕하세요~~
저는 쓸 때는 암 생각이 없었는데, 써 놓고 보니, 좀 웃기네요. 다라이^^

제가 님 글 읽고 대김장 기여도 계산 해 놓았거든요.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김장 하셨으니, 올 겨울이 든든하시겠어요. (이거, 어머니들 멘트인데...쩝)

따뜻한 겨울, 행복한 겨울 되시기를...

박선영 2013-11-28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너무 재미있게 보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무거워 장바구니가 두 번이나 뒤집어졌다. 나는 '어머나' 하면서 웃었다.
여기서 빵터졌어요 .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3-11-29 11:53   좋아요 0 | URL
하핫, 안녕하세요, 박선영님~~

그러게요. 저도 제가 그렇게 웃을 줄 몰랐어요.
사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발목이 좀 아프더라구요. 장바구니 여파가 아직까지...
그런데, 그 때는, 그게 그렇게나 웃겨서 웃었거든요.

박선영님도 즐거우셨다니, 제 맘도 좋아요~~
앞으로 자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