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니의 죽음, 그리고 하루에 한 권
언니가 죽었다.
환하게 빛나는 우상같은 존재였던 언니가 죽었다.
어릴 때부터 언니는 똑똑한데다 직감이 뛰어나서 거짓말과 바보짓을 꿰뚫어보곤 했다. (28쪽)
예쁘고, 똑똑한 언니. 아니, 똑똑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떤 상황이나 문제, 노력의 모든 측면을 편견 없이 보고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희귀한 재능의 소유자(29쪽)였던 사람. 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설계도, 사진, 건축학적 세부 사항을 검토하고, 추리소설을 읽던 사람. 부모님보다 더 인정받고 싶었던, 더 많이 좋아했던 큰언니, 앤 마리.
마흔 여섯에 떠난 언니를 잊으려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던 지은이는 이렇게 해서는 언니를 잊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더 빨리 뛰어가도 공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녀가 선택한 건 책읽기. 하루에 책 한 권을 읽고, 서평을 쓰기로 한다.
다른 설명은 필요없고, 아들이 넷이라는 거, 막내가 막 어린이집에 맡길 나이라는 정도다. 그 정도면 100% 상황 판단이 된다.
2.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
나는 반스가 조용하고 단순한 기쁨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그 구절을 정말 좋아한다. 나는 다시는 갓 태어난 내 아기를 안아보는 기쁨은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 시절은 지나갔다. 하지만 책이나 그림이 주는 즐거움, 공원에서 산책하는 즐거움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온다. (64쪽)
나는 이게 잘 안 된다. 나는 항상, 대부분의 일에서 후회하고, 아쉬워한다. 내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고, 아쉬움이 끌려나오는 모양은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다.
중학교 때는 초등학교 때를, 고등학교 때는 중학교 때를, 대학때는 고등학교 때를, 회사에 들어가서는 대학 때를 그리워한다.
결혼한 후에는 결혼 전을, 퇴사한 후에는 회사 다니던 때를, 아이를 낳은 후에는 신혼인 때를 아쉬워한다.
딸이 네 살 된 해는 딸이 돌쟁이였던 때를, 아들이 네 살 때는 아들이 젖먹이였던 때를,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딸이 아무 기관에도 속하지 않았던 때를,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는, 아침 일찍 아들과 도서관 가던 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서른 여섯에는 서른 다섯일 때를, 다섯일 때는 넷일 때를, 넷일때는 셋일 때를, 이십였던 때를, 십대였던 때를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는 나름 괜찮았다. 학교 가는게 즐거웠다. 학교에 가면 좋아하는 애를 만날 수 있었다. 방학 때는 개학 때를 기다렸고, 학년이 바뀌면 그 애와 같은 반이 되었나 궁금해했다. 행복했다. 내 인생 최고로 순수하고, 최고로 어설펐던, 어설펐지만 어설픈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그런 때였다.
중학교 때는 초등학교 때가 아쉬웠다. 중학교에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애가 좀 더 많았고,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 했다. 등굣길, 양쪽으로 늘어선 노란 완장의 2학년 선도부 옆엔 물이 가득 채워진 양동이가 머리에 무스나 스프레이 뿌리고 온 귀여운 중딩들의 머리를 시원하게 감겨주기 위해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중학교 때가 그리웠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할 게 너무 많았고, 무거운 문제집을 비싼돈 주고 사서 풀고 풀어도 성적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전혀, 완전 전혀 없었다. 매달 모의고사와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성적표. 그래, 성적표가 있었다.
대학에 가서는 고등학교 때가 그리웠다. 교정의 잔디는 푸르렀지만, 잔디의 싱그러움을 함께 나눌 싱그런(?) 남학생이 없었다. (난 여고를 다녔기에 고등학교 때도 남학생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일단 꿈에 그리는 캠퍼스 라이프엔 남학생이 꼭 등장했다. 필수라고나 할까.) 고등학교 때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지만, 이젠 목표가 없었다. 그냥, 그냥 하는 거였다. 전공 공부를 그리고 영어 공부를. 두 개가 사실 같은 건데, 난 두 가지 다 잘 못했다. 아, 아쉽다. 그땐 그랬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대학교 때가 그리웠다. 회사일은 ABC 처음 배우듯,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거였고, 과장님의 빨간 밑줄에 “This refers to your letter of September 1, 2012.”는 ”Thank you for your letter dated September 1, 2012."로 바꿔야했다.
결혼해서는 싱글이 부러웠다. 물론 이 부러움은 32세 이후다. 왜 그렇게 결혼을 빨리 했냐고요? 왜요?
딸아이가 다섯 살이 넘어갈 때부터, 길거리 여자아이들의 프릴 달린 쫄바지만 보면 정신이 없어졌다. “아, 그래, 저걸 입혔어야 했어.”, “아, 저 치마 좀 봐. 저걸 입혔어야 했어.” 아쉬움은 프릴 달린 쫄바지에만 머무른게 아니었다.
아들의 모유수유가 끝나고 난 이후부터 젖먹는 아이들만 보면, 나도 모르게 “폭풍 집중”을 하게 됐다. “아, 저 때가 진짜 좋았지, 젖먹일 때.”
아,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난, 그렇게 후회하며 살았다. 지난날을, 과거를 그리고 또 어제를.
여기 아들 넷을 낳은 여자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천연자원수호위원회 담당 변호사였던 여자가, 줄줄이 낳은 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둔 여자가 있다. 그녀가 말한다.
나는 다시는 갓 태어난 내 아기를 안아보는 기쁨은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 시절은 지나갔다. 하지만 책이나 그림이 주는 즐거움, 공원에서 산책하는 즐거움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온다. (64쪽)
내게 필요한 것은 이거다. 그 시절은 지나갔다는 것. 내 인생의 아름다웠던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 ‘인생의 다른 즐거움’이 있다는 걸 기대하는 것이다. 내게 최고로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은 날이라는 걸 말이다.
3. 서평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도, 하던 그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주말에는 밤중에 읽어야겠지만 그래도 좋다. 피자를 주문해주고, 적어도 식사 한 번은 남편에게 맡길 수 있다. 서평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도 가족을 맞아들이고 운전하고 장을 보고, 식사를 차려주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벗이 되어주고, 조언을 해주고, 규율부장 노릇을 하고 (남편을, 자주는 아니고 가끔씩) 사랑해주고, 전체적으로 이 본부의 지배자 노릇은 할 수 있을 것이다. (68쪽)
물론, 당연히 물론, 책 읽기 계획이 지은이의 예상대로 진행되진 않았기에, 그녀는 매일 밤 늦게까지 책과 노트북과 씨름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제일 필요한 건 역시 체력인가. 어째요, 저는 저질체력도 아니고 바닥체력입니다.
4. 바빠요? 네, 일하는 중이에요.
“바빠요?” 전화 건 사람이 묻는다.
“네, 일하는 중이에요.” 고양이는 가까이 있고, 나는 의자에 앉아 굉장한 책을 읽고 있다. 그것이 금년의 내 일이고, 좋은 일이다. 봉급은 없지만 매일매일 깊은 만족감을 얻는다. (129쪽)
사실, 어제도 그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하시지요~.”
“아, 저.....저는.............. ”
“시간 많잖아요. 집에서 놀잖아요.”
저 안 놀아요. 아, 사실 좀 놀기도 하지요. 하지만, 항상 노는 거 아니구요. 나름 일도 좀 한단 말이에요. 유치원, 학교 다녀온 아이들이랑 이야기 나누는 것도, 사실 일은 아니지만, 제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 그런것도 일로 치면, 저 일 많거든요. 저도 일 많아요.
저도 바빠요! 에잇!
독서가 주는 편안함과 책 한 권을 들고 내 보랏빛 의자에 앉는 즐거움을 고대하고 있었고, 그것을 일이라 규정했다. 일이라 부름으로써 그것을 신성하게 만들었다. (50쪽)
그래, 나도 그렇게 할거야.
(전화 좀 걸어주세요~)
“바빠요?”
“(책을 읽으면서) 네, 일하는 중이에요. (좋~~~~!았어.) 무슨 일인지는 안 가르켜 주~~~지!”
5. 읽고 싶은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