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 열전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시작으로 해서, ‘엠마’를 살짝 지나,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거쳐,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다. 지독한 사랑의 대명사,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자기파괴적 사랑의 대표작, 바로 그 ‘폭풍의 언덕’이다.

어째서, 현재까지, 지금까지, 오늘까지 이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을 읽지 않았느냐 물으신다면,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초라하게 대답하련다. 사람들이 그러잖는가. ‘고전이란 모든 사람들이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읽지는 않는 책’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폭풍의 언덕’이야말로 고전 중의 고전이다. 나는 문학동네 판을 선택했다. 최근에 나왔고, 책도 이쁘고.

 

 

 

 

 

“가지 마!” 캐서린이 힘주어 소리쳤습니다.

“가야 해. 갈 거야! 에드거가 나직하게 대꾸했습니다.

“못 가.” 캐서린은 문고리를 잡고 막아섰습니다. “지금 가면 안 돼, 에드거 린턴. 앉아. 그렇게 화내며 가버리면 안 돼. 그럼 나는 밤새 괴로워해야 해. 너 때문에 괴로워하기 싫어!” (115쪽)

린턴에 대한, 정확히는 타인에 대한 캐서린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캐서린은 누구를 위해서든 괴로워지기 싫은 거다. 누구를 위해서든 힘들고 싶지 않은 거다. 누구를 위해서든 아파하고 싶지 않은 거다. 누구를 위해서든 고통 받기 싫은 거다. 캐서린은 자기를,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다른 사람의 자리가 없다. 캐서린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할 뿐이다.

지금 같아서는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나도 천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히스클리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가 알아서는 안 돼. 넬리,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건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어. 린턴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과 다른 것은 달빛이 번개와 다르고, 서리가 불꽃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인걸. (130쪽)

넬리, 나도 알아, 너는 지금 나를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너 이런 생각 안 해봤어? 나랑 히스클리프랑 결혼하면 둘 다 거지꼴이 되겠지만, 내가 린턴이랑 결혼하면 히스클리프가 잘되도록 도와줄 수 있고, 오빠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게 해줄 수도 있어. (132쪽)

오빠의 학대 속에 고통 받는 히스클리프를 구원하기 위해 캐서린은 린턴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내가 린턴이랑 결혼하면 히스클리프가 잘되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정말로 도와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캐서린, 캐서린... 너는 모르는구나.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란다.

같이 있는 것이 사랑이란다.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생수 한 병을 나눠 먹어도, 늦은 밤 라면 한 개를 보글보글 맛있게 끓여 한 젓가락 두 젓가락 나눠 먹어도, 우산 한 개를 나눠쓰고 가다가 쏟아지는 폭우에 한 쪽 어깨가 다 젖더라도.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란다.

같이 있는 것이 사랑이란다.

린턴에 내 사랑은 숲 속의 잎사귀들 같아. 겨울이 나무의 모습을 바꾸듯 시간이 내 사랑을 변하게 하리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 하지만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땅속에 파묻힌 변치 않는 바윗돌 같아. 눈에 뵈는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거니까.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그 애는 내 마음속에 항상, 항상 있는 거야.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을 주지는 않잖아. 그 애는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133쪽)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계속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다.

내가 곧 그이다.

내가 곧 그 사람이다.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아, 개봉한 영화 보고 싶다. 캐서린은 내가 생각한 캐서린 그대로의 모습이다. 히스클리프는 잘 모르겠다. 일단은 영화를 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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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7-1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영화에서도 결혼을 앞두고 고민하며 캐서린이 그래요.
"히스클리프는 미치도록 나와 닮았어."
그리고 나중엔 "네가 날 떠났을 때 내 영혼은 이미 죽었어."라고도요.
님의 페이퍼 제목 "내가 히스클리프인거야"랑 맞아떨어지는 대사에요.^^
히스클리프는 검은 피부의 배우를 기용해 이들 사랑의 장벽을 더 확고히 보이게 했고요.
저는 섬세한 소리로 표현해낸 이번 '폭풍의 언덕'이 좋았답니다.
문학동네 책은 담아두고 있어요.^^

단발머리 2012-07-16 02:20   좋아요 0 | URL
아하, 안녕하세요, 프레이야님. 어설픈 서재 방문해 주셔서 감사해요. 검은 피부의 히스클리프 보고 싶네요. 찾아봐야겠어요. 나랑 같이 '폭풍의 언덕' 볼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비로그인 2012-07-15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폭풍의 언덕. 폭풍의 언덕! 저도 어여 읽어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단발머리님 서재에 흔적 남기는 건 처음인 듯~ ^^;
제인 오스틴과 <제인 에어> 그리고 <폭풍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독서를 저도 비슷하게 따라갈 것 같네요 ㅎㅎ

단발머리 2012-07-16 02:21   좋아요 0 | URL
말없는 수다쟁이님, 안녕하세요. 제인에어 좋아하신다 하셨잖아요. 제 방에 처음 오시는 거 아닌뎅. 제 <오만과 편견> 페이퍼 보시고 댓글 달아주셨잖아요. 엉엉 T.T.

비로그인 2012-07-16 12:55   좋아요 0 | URL
ㅋㅋ 아맞다, 깜빡했어요! 아, 왠지 친숙하다 했더니!
점심 시간에 새로운 글을 읽고 가려고 했는데 남은 시간이 6분 ㅠㅠ

단발머리 2012-07-17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완전 괜찮습니다용. 저는 단발머리예요. 철없고 수줍은 열 일곱, 강풀과 나이가 같네요. ㅋㅎㅎ
계속 친숙해주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