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 관하여 ㅣ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도 묻지 않지만 혼자 고백하는 추석 일성.

​



일단 책탑을 보자면, 누워있는 책들은 구입한 아이들이고, 서 있는 파랑이는 선물 받은 책이다. 구입한 책 중 벌써 2권이나 읽었으니 현재로서는 50%의 높은 완독률을. (자랑해도 될까요)

​

원래 이번 추석에 읽으려고 찜콩해둔 책은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 아니면 『영어는 누구의 언어인가』였다. 연휴 직전에 도착한 『The Love Hypothesis』도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물망에 오르고 있었는데 실제로 읽은 책은 손택의 책이다. 추석장 보러 나가는 길에 에코백에 넣어가지고 나갔는데, 짬을 내어 읽은 문장이 쉽고 내용은 한없이 무거워서 정성을 다해 읽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다.

​


<여성이라는 제3세계>는 1972년 7월에 <파르티잔 리뷰>에 게재하기 위해 작성한 글이다. 정치 문학 계간지 <리브레>의 편집자들이 손택, 시몬 드 보부아르, 로사나 로산다 의원 등 5명의 여성에게 보낸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한 글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혁명적 사회주의의 관점을 진지하게 고려하거나 최소한 토론 거리로 삼을 거라는 가정하에 글을 썼다고 한다.

​

손택은 여성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관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업 세계를 조직하는 성 고정 관념을 해체하는 것'(78쪽)이라 주장한다. 남성에게만 허락되었던 다양한 직군에 참여하는 여성의 숫자를 증대시킴으로 성차별적인 직업 체계를 해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존재가 더 이상 눈에 띄는 예외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최초의 여성 장관 후보자,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언론 기사는 사람들의 주위를 끄는 데는 성공했겠지만, 여전히 여성 국회의원 수는 남성 국회의원 수에 비해 현격하게 적은 상태다. 나로서는, 연두색 지선버스가 아닌 파란색 간선버스의 운전자가 여성임을 확인했을 때 놀랐던 것 같다. 운전자 중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비슷해졌지만, 버스를 운전하는, 이렇게 힘든(?) 일은 남성에게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시는 기사님을 보고, 놀랐던 나를 놀라워하는 내가 있었다.

​

섹슈얼리티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섹스는 여성을 해방하지 않는다.(69쪽) 섹스는, 여성을 해방하지 않는다. 해방시킬 수 없다. 순간으로, 찰나의 순간으로 인간은 살 수 없다. 인간에게는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찰나로 이루어진 순간이 존재한다. 섹스가, 섹슈얼리티의 규범이 여성을,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는 이때에, 자유와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속이는 이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손택이 말하는 진정한 여성 해방, 여성의 성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

여성을 해방하는 유일한 성 윤리는 현재 최고 지위를 차지한 생식기 중심적 이성애에 도전하는 성 윤리다. 억압 없는 사회, 여성이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남성과 진짜 동등한 사회는 양성적인 사회일 수밖에 없다. (70쪽)

​

한편으로는 강제적 이성애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과 남성이 진짜 동등한 양성적인 사회로의 추구가 필요하다. 결론이 흥미롭다. 손택은, 그런 사회에서 섹슈얼리티는 지금보다 덜 중요해질 것이라 전망한다. 다른 즐거움 때문에 성적인 관계를 병적으로 갈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는 미친 호르몬의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없을 것이지만,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닐 테고, 전 세계 방송과 연예, 심지어 정치의 영역에서도 '섹슈얼리티'는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이다. 나 역시 이런 현상이 병적이라는데 동의하지만(내가 헤이즐우드 하드커버 산 것도 병증이기는 하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생식기 중심적 이성애가 어떻게 대체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답을 찾을 수 없다. 지금 생각으로는, 고미숙 선생님의 『청년백수를 위한 길 위의 인문학』의 우정 담론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나 자신을 전부 보여주는 우정이, '운명'이라 여겨지는(강요되는)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

​

추석이 지났다. 잠깐 물건 챙기러 집에 들렀던 때를 제외하고는 9개월 만에 첫째 아이가 집에 왔다. 2박 3일 일정으로 주 1회 방문하는 둘째 아이도 같이 왔다. 시댁과 친정의 할머니, 할아버지 방문 일정을 조정하는 데만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첫째에게는 당근 김밥을, 둘째에게는 동서가 고이 재서 보내준 LA갈비를 먹였다. 이런 순간, 이런 시간이 내게 왔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이 순간이 순간이 아닌 '한 시대'가 될 수 있음을, 이미 도래했음을 기억하려 했다. 더 이상 징징거리지 말고, 오두방정 떨지 말고, 빈둥지 증후군 유사 증세 '호소'를 멈출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후진 없이, 빽도 없이. 앞으로, 앞으로.

​

월요일을 기다리는 지금의 내 심정이다.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6-09-28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이 왔습니다, 단발머리 님.
덕분에 손택의 생각을 알고 가네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더 자주,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여성을 보아야 하고, 그래서 ‘오오, 여자네~‘하는 감탄을 더이상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남자들이 그걸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경무용론 같은거 주장하면서요. 여성이 무언가 잘못했다면, 그것을 대표화 시키는거죠. 물론,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잘못했다고 말하면서요. 아 너무 소름 끼치는 일이에요. 우리는 더 자주, 여러 직군에서 보여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직군에서 여성은 보여야 해요.

그리고 저 영어.. 책 뭐죠? 하.. 미쳐버려. 영어 책만 보면 일단 사고 보는 저를 어떡하죠? 일단 검색 들어갑니다.
그리고 살구... 책은.. 구판으로, 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으며, 그거 아세요? 저 영어로도 갖고 있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발 저를 혼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추석 일상을 좀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