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페이크 리레이션쉽(fake-relationship)이라고 하면, 실제로는 연애 관계가 아니고 감정적 유대가 약한데, 겉으로만 연인처럼 행동하는 관계를 말한다. 서로의 관계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연인으로 소개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킨다고 한다. 하지만, 로맨스 소설에서 fake-relationship이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연인인 척'하는 관계를 말한다. 남녀 주인공들은 자매의 결혼식에 데려온 파트너 역할을 위해서 혹은 헤어진 사이임을 주위에 알릴 수 없어서 여전히 연인'처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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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에서 수행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설명되는 반복성은 fake-relationship 가운데 있는 두 연인의 행동과 유사점이 있다. 젠더의 수행처럼, 연인인 척 행동하기가 반복된다는 것도 그렇지만, 역할극 속 행동들이 자유롭게 선택한 결정이 아니라는 게, 내가 보기에는 중요한 지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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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relationship에 들어가면서 연인처럼 보이기 위해 올리브는 애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커피 타임'을 제안한다. 수요일 오전 10시, 스타벅스에서의 만남이 바로 그것인데, 연인인 척하기 위해 시작한 이 심드렁한 수요일 데이트가 점점 변해가기 시작한다. (이 부분은 영화가 아니라 책에 나온 부분이다) 먼저, 올리브는 애덤이 잘생긴 사람이라는 걸 새롭게 알게 된다. 애덤의 준수함은 숨겨지는 종류의 준수함은 아니지만, 아무튼 올리브는 알지 못했다. 애덤 칼슨이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올리브는 '가짜 수요일 데이트'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질문을 애덤에게 던진다. "좋아하는 색이 뭐예요?" 올리브의 생각은 그렇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면, 서로 사귀는 사이라면, 좋아하는 색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그 사실이 올리브에게는 중요한 것 같다. 애덤을 당황시킨 이 색깔 질문이 상당히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올리브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묻지 않았지만 대답하자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하늘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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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올리브의 관점에서 펼쳐지고, 이탤릭체의 글씨는 올리브의 속마음 토크이기 때문에, 독자는 아무래도 올리브의 시선에서 사건을 관찰하게 된다. 소설 맨 끝에서야, 애덤이 3년 전부터, 그러니까 대학원 입학 인터뷰를 위해 학교를 방문했던 올리브를 처음 만난 그날부터 그녀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그걸 알 리가 없다. 실제로, 이미, 상당히 올리브를 좋아하고 있는 애덤의 질문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애덤은 캐나다에서 자란 올리브가 왜 미국 대학에 진학했는지 묻고(이유: 전액 장학금), 고향에 자주 가는지, 졸업하면 그곳으로 돌아갈지를 묻는다. 그녀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이 연결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가짜 수요일 데이트'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많이 서로의 삶 속으로 초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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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올리브의 베프 안의 강요로 이루어지는 행동들은 올리브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fake-relationship의 수행 중에 강제된 행동들이다. 몇 톤은 나갈 법한 트럭을 밀어서 옮긴 애덤에게 키스를 해준다거나, 학과 체육대회에서 애덤에게 선크림을 발라준다거나 하는 행동들이 그렇다. 올리브는 남자친구에게 할 법한 행동들을 애덤에게 해줄 것을 강요받는다. 두 사람은 외면적으로 연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 특별히 신체적인 접촉은 두 사람 사이에 친밀감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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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지창욱-나나 주연의 <스캔들> 말고 이미숙-배용준-전도연 주연의 <스캔들>에 배용준의 이런 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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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심인 척했을 뿐인데

척하다 보니

결국 진심이 되어 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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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을 사랑하는 척 연기하던 배용준은 전도연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나나를 사랑하는 척 연기하던 지창욱은 나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애덤을 좋아하는 척 연기하던 올리브는 애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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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10-04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설정 나오면 재밌게 보거든요? 설레이기도 하고ㅋㅋ 근데 과연 실제 상황이라면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저는 처음부터 설레이는 관계가 아니라면 아무리 척해야 하는 상황에서 척을 한다한들 그 관계가 연인으로 깊어지지 않을 것 같거든요. 처음부터 친구였으면 계속 친구인거고 계속 옆에 있었더니 정분이 나더라 이런 상황은 제 성향과 경험상 일어나지 않더라고요ㅋㅋㅋㅋ그러니까 척을 해도 애초에 아무 감정이 없진 않았을 거다 라는 뭐 그런 생각.

단발머리 2026-10-04 19:59   좋아요 1 | URL
이런 설정이 유행이긴 하나봐요. 제가 즐겨 읽는 로맨스 소설에서는 더욱 그러기는 한데요.

저는 처음부터 설레이는 관계가 아니라면 아무리 척해야 하는 상황에서 척을 한다한들 그 관계가 연인으로 깊어지지 않을 것 같거든요.

저, 망고님 이 문장 읽는데, 너무 올곧으시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도 그런 스타일이라서 아주 딱 알겠는 것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계속 있다가 정분 나는거는 사실 반칙이죠. 원래 감정이 있었는데, 아닌 척 했다가 나중에는 맞는 걸로 ㅋㅋㅋㅋㅋㅋ그런 생각입니다 : )

다락방 2026-10-05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애초에 그 ‘척하는‘ 계기 자체가 상대에게 호감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가 어떤 사정으로든 가짜 연애를 하게 되었을때, 그것을 내가 정말 너무 싫어하는 사람과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정도 좋아하는 마음, 호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척하다가 진짜가 되어버리는 거고요. 싫은 사람, 꼴보기도 싫은 사람에게 애초에 제안 같은 것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올리브에게 제안하죠. 지창욱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나에게 척하고, 배용준은 전도연에게 척합니다. 모든 척하는 관계가 다 진심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애초에 마음이 없었다면 척하는 것조차 시작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거죠.

하여간, 사랑의 가설 얘기는 재미있어요. 이렇게 풀어도 저렇게 풀어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6-10-05 16:29   좋아요 0 | URL
우아 ㅋㅋㅋ 저 놀랐던게. 다락방님이랑 망고님 댓글이 완전 같은 맥락인데, 저도 그렇게 느끼거든요. 페이크이지만 일단 그 전제가 어느 정도 좋아하는 마음, 호감일 수 밖에 없다고요. 나중에 올리브도 여러 번 속마음 토크에서 이야기하잖아요. 애덤이 성격 나쁜 거 다 알고, 폭군 같고, 재수없게 군다는 거 다 알지만.... 실제로 페이크 연애 중에 사건도 있었구요. 나하고 있을 때는 잘하려고 한다. nice. 나한테는 나이스. 나한테는 착한 남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창욱은 나나에게 돌진하고 배용준은 전도연에게 돌진하고 애덤은 올리브에게 돌진하죠ㅋㅋㅋㅋㅋㅋ 애덤과 올리브의 관계에서 제가 좋아하는 지점은 애덤이 가짜 연애를 제안한건 맞지만 시작은 올리브였고(이 시작이 좀 이상하긴 해요. 급키스라니...) 그 관계를 끝낸것도 올리브(이 지점은 영화에서 잘 표현해내지 못했구요)라는 점이었어요. 올리브의 주도성에, 저는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야 맙니다. 사랑의 가설 좋아요! 하하하! 애덤이 도와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

책읽는나무 2026-10-05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캔들 영화도 예전에 영화관에서 봤었는데…그닥 감명깊단 생각은 안 했었거든요. 근데 이번 스캔들 넷플 드라마 한다기에 응? 하면서 보다가 영화 수위에 쫌 놀랐고…영화 결말이나 등장인물들의 해석이 조금씩 다른 차이가 있더군요. 근데 배용준이나 지창욱은 전도연과 나나를 처음 본 순간 첫눈에 반한 건 똑같았던 것 같아요. 절대 척한 게 아녔을 겁니다. 이미숙이나 손예진 마음 상하게 할까봐 계속 척한 거겠죠. 소설도 이런 맥락인 것 같군요. 물론 이미숙이나 손예진같이 눈치볼 사람은 없겠지만요. 다들 알고보면 첫눈에 반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단발 님이 좋아하는 색은 하늘색!ㅋㅋㅋㅋ 저는 물건마다 좋아하는 색이 다른 것 같아 선뜻 좋아하는 색을 바로 입밖으로 내뱉기가 쉽지 않던데..(생각해보니 모든 면에서 최애를 말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긴합니다. 늘 이것도 좋아보이고 저것도 좋아보여서.^^) 그래서 하늘색 좋아하시는 단발 님이 좀 부럽네요.^^

단발머리 2026-10-05 21:29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이전의 스캔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전도연씨가 너무 연기를 잘하는 거예요. 특히 나중에 배용준이 변심한 것처럼 했을 때 충격받는 모습이 너무 예쁘더라구요. 그 와중에도 이쁨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책나무님 말씀이 맞네요. 배용준이나 지창욱은 전도연과 나나를 처음 본 순간 첫눈에 반한 거요. 그래놓고서 이미숙과 손예진에게 내기를 제안한 거였네요. 아이고, 그러고 보니 나쁜 놈, 아니 나쁜 놈들이네요. 이런...

저는 하늘색, 핑크색, 연보라색, 파란색 ㅋㅋㅋㅋ 아무튼 그 계열을 좋아합니다. 물건마다 좋아하는 색이 달라 고민되신다면 책나무님은 애덤파입니다 ㅋㅋㅋㅋㅋ 올리브도 처음에는 그런줄 알았는데, 나중에서야 깨닫거든요. 그 질문이 얼마나 어려운 질문인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