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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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말하고 싶은 건 번역이다. 일본어에서 한국어로의 번역이라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번역가의 솜씨 덕분일 테다. 한글로 된 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술술 읽힌다. 소설 속 사건을 끌고 가는 의문은 한 가지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 문장은, 괴테가 한 말이 맞을까. 학자적 양심으로 성실하게 그 답을 찾아가는 도이치. 소설은 도이치의 뒤를 따라가며 답을 찾으려 하지만, 그가 찾은 실체는 사실과 거짓, 확신과 오해 속에 혼연일체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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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당신이 왜 베버 씨 사이트를 보고 있어?"

어리둥절해진 도이치는 잠시 침묵한 끝에 상황을 이해했다. 베버는 아키코가 좋아하는 유튜버라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의 명언 찾기는 결코 의미 없는 짓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이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언가로부터 생겨났고, 우리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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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극찬이 많았던 건, 소설 속 스즈키 유이가 인용한 작품들에 대한 찬탄으로 들린다. 어? 네가 이걸 알아? 이게 이거야?를 넘어서서 자신이 읽어왔던, 자신이 사랑하는 그 어떤 '작품'에 대한 애정과 외경심이 이 작품과 겹쳐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지돈의 <창백한 말>과의 어떤 유사점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계속 그 단편이 생각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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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둔갑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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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은 이 책이다. 수학 시간인데 책 읽는 묘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어 잘해야 수학 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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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세고 제 맘대로인 서 첨지는 손톱 발톱 깎다가 만난 쥐가(일단 쥐를 만났는데 왜, 안 쫓아냄?) 손톱, 발톱을 잘 받아 먹는 것을 보고(아니 그걸, 쥐한테 왜 주나), 손톱 발톱 깎을 때마다 쥐랑 조우했는데, 그렇게 서 첨지 손톱 발톱 먹고 자란 쥐는, 측간 가면서 벗어놓은 서 첨지의 옷을 입고 서 첨쥐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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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의 저주. 서 첨지와 가짜 서 첨쥐가 대면하는데, 가족들로서는 육안으로 두 사람 중 누가 진짜인지를 판별할 수 없다. 집안의 농기구 수를 묻는 것도 어려워 죽겠는데, 마누라는 한술 더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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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간에 장독들은 어찌 되오?

마누라 물음에 진짜 첨지 황당하고 답답하여

붉으락푸르락 이마 주름만 꿈틀거리는데

가짜는 희희낙락 잘도 주워섬기는구나.

'큰 장독이 일곱인데

간장독이 둘이요, 도니장 독이 둘이요,

고추장 독이 하나요, 나머지는 김칫독이요,

작은 항아리는 뚜껑이 깨진 것까지 다섯이니,

모두 열둘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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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에는 이 동화의 교훈을 이렇게 적고 있다. '가장이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역할을 해내지 못한 가장에 대한 비판이며, 가부장제도에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재치가 이야기 속에 묻어나고 있다.' 만약, 그 해석이 맞다면 서 첨지가 깊은 산속 스님에게 전달(?) 받은 고양이를 데려와 서 첨쥐를 물리친 건 백래시로 보아야 하나.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서 첨지가 부인과 자녀들에게 퍼붓는 저주의 말은 또 어떠한가. 아무래도 그 해석에는 동의하지 못할 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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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히려, 서 첨쥐를 인공지능으로 읽었다. 나를 대신하는 척, 나인 척, 하는 이 묘령의 존재가 정보의 양과 접근성, 그리고 활용성을 무기로 '나'인 척할 때, 누가 나를, 나로 믿어줄 것인가 하는 걱정. 우리 집에는 장독대가 없고, 장독들도 없지만(김치냉장고는 있음), 신용카드 이용내역과 네이버 검색어, 시청한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내'가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가지고 있고, 가지고 있지 못한지는 10분 안에 확연히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동화에서는 깊은 산속 암자의 스님이 키우던 고양이가 답이었다. 우리에게는 답이 있는가. 우리에게도 답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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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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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읽기가 지지부진할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더블에서 오디오북을 산다. 오더블 무료 한 달 이용에서 결제로 넘어가 여러 권을 사고, 멤버십 해지하고, 다시 오더블 멤버십 신청하고, 오디오북 몇 권 사고 서너달 뒤 멤버십 해지가 반복되는데, 이번에도 진도가 지지부진해서 오디오북을 샀다. 좋은 점은 미셸 본인이 읽어준다는 점인데, 딕션도 좋고 발음도 듣기에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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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는 비빔밥 먹으면서 오디오북을 들으며 눈으로는 책을 읽었다. (책 속에서) 오바마는 멋진 사람 같다. 하와이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하와이에서 온 사람다운 느긋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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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 voice climbed in intensity as he got to the end of his pitch. He wasn't a preacher, but he was definitely preaching something a vision. He was making a bid for our investment. The choice, as he saw it, was this: You give up or you work for change. "What's better for us?" Barack called to the people gathered in the room. "Do we settle for the world as it is, or do we work for the world as it should be?"(1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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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삶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그쪽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오바마에게서, 정치, 혹은 역사의 운명이, 결국 한 사람으로 집약되어 나타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 속에서, 획기적이고 커다란 변화는 여러 사람들의 힘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 맞겠지만, 그 힘과 에너지는 종국에는 한 사람에게로 모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노무현과 이재명이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미국 사회에서 흑백 갈등이 옅어졌다거나,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일본에 한없이 우호적인 오바마 때문에 남북 관계가 기한 없는 교착 상태에 빠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상징하는 것, 그의 존재 자체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한 지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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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미셸 검색하다 보니, 예전에 보았던 오바마 퇴임 연설 영상이 뜬다. 오바마는 미셸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희생한 것에 대해 언급하는데, 연설하는 오바마와 미셸 옆의 큰딸, 그 옆에 사람들이 기립하고 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리는데 반해 세상에나ㅋㅋㅋㅋㅋㅋ 미셸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서는 가볍게 미소만 짓고 있다. 아하하 ㅋㅋㅋㅋㅋㅋㅋ미셸은 이런 사람인 것이다. 그런 찬사와 기립 박수를 받을만한 사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바마 찍은 사람들은 다들 고마워해야겠다. 오바마를 공공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통 큰 미셸이 양보해 주었다. 희생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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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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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재미난 책은 이 책이다. 예전에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이라고 나왔을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두께에 압도당해 앞부분 읽다가 반납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개정판 나와서 살까 말까 하는데 앞의 띠지가 황정은 작가의 말이었다. "철학책을 읽다가 내릴 정거장을 놓친 건 처음이다" 책 읽다가 정거장을 놓치는 건 얼마나 흔한 일이던가. 지난주에도 간만에 멀리 나갔다가 한참을 돌아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철학책을 읽다가'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듯싶기는 한데. 하여 좋아하는 작가의 말을 믿고 이 책을 구입하기에 이르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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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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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의 살아낸 사상에 대한 신념과 아이리스 머독의 "거주하는 철학"에서 얻은 영감과, 내 발자취를 되짚으며 느낀 기묘한 감정에 이끌려 나는 실존주의와 현상학의 이야기를 철학과 전기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탐색해 보고 싶다. 철학과 전기를 조합하는 것은(이를 완전히 거부했던 하이데거를 제외하곤) 실존주의자들과 현상학자들이 매력을 느꼈던 방식이기에 더욱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철학이 삶이라는 형태로 빚어질 때 더욱 흥미로워진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개인적 경험 또한 철학적으로 고찰한다면 더욱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한다.(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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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전기를 조합하는 방식에서 당연히 떠오르는 한 사람은, 역시나 마리 루티다. 마리 루티만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은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개인적 배경과 함께 풀어가는 철학, 이론,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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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페미니즘 학자들은 일부 인종· 민족 학자들처럼 개인적이고 일화적인 집필 방식을 끈질기게 고집했지만, 포스트휴머니즘 이론에선 자서전체는 한심할 정도로 순진한 의미 창출 양식으로 소외됐다. 개인적인 경험은 소위 '고급 이론high theory' 영역에서는 유효한 토대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바뀌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 이론 집필의 정당한 요소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남근선망과 내안의 나쁜 감정들』,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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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거실 책상 위를 치웠다. 사놓고 책장에 꽂지 못한 새 책들, 바디워시, 머리띠, 밀크티, 작은 가방, 모자, 전등까지 이런저런 살림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일단 여기저기에 집어넣어 반을 비웠다. 일전에 건수하님이 형광펜도 보여달라 하셨는데, 요즘에는 이쪽(?) 형광펜을 많이 쓰고 있다. 예전에는 스타빌로 형광펜을 많이 쓰기도 했지만, 아무튼 제일 애용하는 건 역시나 연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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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엔 (항상) 간식이 필요하고, 줄은 연필로 그어야 제맛이다.



Keep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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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10-05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커밍 오더블 샀는데.. 하.. 쩝.. 샀다고요. 사기만 했습니다. 완독 한 달 뒤로 미뤄지니 또 읽기를 게을리 하게 되네요. 발등에 불떨어져야만 읽는 것인가. 하여간 다시 열심히 읽어야겠지요.
단발머리 님, 사진 속의 컵 너무 예쁘네요!

저 살구 철학자 책 구판으로 가지고 있는데(심지어 원서도 있다능.. 이 얘긴 전에도 했죠? ㅋㅋ) 재미있다고 하시니 너무 좋습니다. 읽을 의욕이 생겼지만, 언제 읽을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언제 보아도 참으로 정갈하고 깔끔한 단발머리 님의 독서풍경 입니다.

** 그런데, 쥐한테 손톱 발톱은 왜 먹인대요? 으.. 너무 싫어.............

단발머리 2026-10-05 21:16   좋아요 0 | URL
저는 오더블 없으면 못 읽었을 거 같아요. 계획 다시 세우고 열심히 읽어야 하는데 ㅠㅠㅠ 암튼 오늘 30쪽은 읽은 거 같아요.
오더블 사랑합니다. 소듕해요~~~
사진 속 컵은 버틀러 컵입니다. 버틀러 책 [비폭력의 힘] 사면서 받은 사은품입니다. 책은 아직도~ 지만 제게는 컵이 남았네요^^

칵테일 책 읽다가 너무 괜찮아서요. 저도 원서 폭풍 검색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쪽수를 더할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서요. 저는 원서는 포기하고 일단 이 책을 재미있게 읽어보려고 합니다.

프레임 안의 깔끔함이지만, 다락방님 정갈하다고 하셨으니깐 ㅋㅋㅋㅋㅋㅋㅋ 그 정갈함은 즉시 접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