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이 시즌인지라 어느 반이든 메리 크리스마스다. 앞과 뒤에 크리스마스 트리. 보통 가정집에 설치하는 것보다 더 큰 트리가 설치된 반이 있는가 하면, 검정 도화지에 눈사람을 꾸미고. 여기 저기 산타 할아버지. 창밖을 보면 흰 눈이 내렸고.

종이접기 수업을 자주하는 1반에서는 지지난 시간에는 초록색, 빨간색 색종이로 작은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었고, 지난 시간에는 금색, 은색 색종이로 눈꽃송이를 만들었다. 교실 뒤쪽 검은색 바탕에 크리스마스 리스와 금색 은색 눈꽃송이가 예쁘게 장식될 모양이다. 삼각형 모양으로 세 번 접어서 가위질 세 번 하고 나면 만들어지는 간단한 과정이지만, 야무진 아이들 사이사이로 '선생님~!'을 부르는 아이들이 있어서 한 시간 내내 나는 참 바빴고, 더웠다. 그 날 아침, 비상 계엄이 해제된 아침에, 눈꽃송이의 '자르는 선'을 그려주는 사이 사이, 내 마음은 얼마나 고요했던가. 색종이의 끝부분을 뾰족하게 맞추고, 접은 선을 꼭꼭 눌러주고. 그리고 '끝까지'가 아니라 접어둔 선까지만 가위질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시간들은. '선생님, 망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아, 이 끝까지 잘랐네. 괜찮아, 다시 해보자. 이 색종이로 다시 해보자.'고 말할 때의 나는 오로지 종이접기에만 집중했다. 간밤의 일들을 말할 필요가 없는 시간들.

나는, 무엇보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 나에 대해 생각한다. 상황의 변화나 조건의 변동이 아니라, 그냥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상황의 변화와 조건의 변동에 대한 나의 생각. 나의 반응, 나의 감정, 나의 분노, 나의 억울함, 나의...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나는 과한가. 나의 정치몰입은 과한가. 나는 과한가.

민주당의 폭거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비상 계엄을 선포했다는 대통령과 그 대통령의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여당을 보면서, 나는 내 기도의 방향을 바꿨다. 하나님,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해 주세요, 에서 하나님, 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주세요, 라고. 북한군 관련 작전인줄 알고 출동했던 특전사 군인들이 헬기에서 내려보니 국회이고, 뉴스 듣고 뛰쳐나온 시민들을 마주해서 당황해 뒤로 밀려나는 장면들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이 순간에. 나는 기도를 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우리가 그 파국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기를.


행복한 일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침 라디오에서 강아지와 산책나왔던 애청자가 신해철의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신청하고 그 노래를 같이 듣는 그런 일상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길을 걸어 왔네

조금은 야위어진 그대의 얼굴모습

빗길 속을 걸어가며 가슴 아팠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얼마나 아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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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12-06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망하지 않았어요, 다시, 다시해보자, 다시 또 다시.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

단발머리 2024-12-08 07: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망하지 않았어요.
‘망~~‘을 못하게 하던 나였는데.... 다시 시작해봅시다. 처음이라 생각하고 지금부터 다시...

독서괭 2024-12-06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이접는 아이들, 이 혼란한 시국에 더욱 소중한 존재들이네요. 쏟아지는 속보 속에 너무 피곤합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4-12-08 07:56   좋아요 1 | URL
소중한 아이들은 마냥 행복하다고 합니다. 체육관 수업에 점심 시간에 특히 행복해하고요.
저랑 비슷하네요. 저는 국어시간이랑 점심 시간에 행복해요. 쏟아지는 속보에 피곤한 와중에도 우리 잘 챙겨먹으면서 힘 내자고요!
독서괭님! 저 원래 비타민 안 먹는데 요즘에 비타민이랑 농축액(?) 같이 들어있는거 하나씩 챙겨 먹어요. 독서괭님도 겨울 잘 보내셔야 하니 밥이랑 비타민(영양제, 홍삼 기타등등) 잘 챙겨드세요~~~

독서괭 2024-12-08 08:3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단발님😍😍😍

단발머리 2024-12-08 08:4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독서괭님!😘😘😘

그레이스 2024-12-09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인인 아들에게 전화하는 아버지의 울음섞인 당부의 말때문에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픈 시간들입니다.

단발머리 2024-12-10 10:48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영상 듣고 울었습니다 ㅠㅠㅠㅠㅠㅠ 자기 자식만 걱정하는 게 아니라, 부대원들이랑 시민들까지 생각하는 그 마음을 알것 같아서요.
언제쯤 끝날까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