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생일에 책을 선물해 준다. 나는 어떤 선물보다 책 선물을 좋아하는데, 친구들이 골라서 선물해 준 책도 좋고, 친구들이 골라라~~ 해서 선물 받은 책도 좋다. 문제는 친구들이 생일이 아닐 때도 책을 선물해 준다는 것인데, 그래서 매일은 아니지만, 매우 자주 내 생일이 돌아오는 형국이며. 그 아름답고 예쁜 책들을 요리조리 쌓아놓고 찍은 사진들은 공장 초기화로 모두 날아가 버렸으니, 사건의 여파는 여기에까지 미치는 모양이다.
친구가 선물해 준 『유대인의 역사』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무언가를 외워야 할 필요 없이 저자의 서술과 설명을 순순히 따라가는 이런 책이 좋다. 특히 21일간 열대야가 지속되고 한낮 기온이 평균 32도에 육박하는 한반도 중부지방 생활자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표면적으로 '사건화'된 사건으로는 '드레퓌스 사건'을 꼽을 수 있을 텐데, 사실 그 사건은 반유대주의의 오랜 역사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 반유대주의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에게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 가지는 성경에 근거를 둔다.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던 유대인에게는 자의적 사형 집행이 불허되어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신성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예수의 사형을 로마 관료에게 요구한다. 그에게 죄 없음을 확인한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주려 하지만, 유대 지도자들과 성난 민중의 소동으로 빌라도는 예수를 그들의 손에 놓아준다. 그때의 상황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마태복음 27장 23-25절)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유대인을 가장 강력하게 배척했던 기독교인들이 증오의 근거로 제시하는 본문이 바로 여기다. 하지만, 유럽에서 유대인 혐오는 훨씬 더 오래되고, 훨씬 더 강력하다. 그 이유가 뭘까. 이 책에서 내가 확인한 두 가지는, 유대인의 독특한 식문화를 통한 정결 의식과 유대인의 지나친(?) 똑똑함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폴 존슨의 해석이다. (그러니 그의 책이다) 반유대주의의 근본적 이유, 그 오래된 혐오의 원인.
사회 교류를 막는 주범은 따로 있었다. 유대인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심화시킨 가장 큰 요인은 식사법과 정결법이었다. 유대인의 이런 관습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이상해 보였다. 바로 이 이상하고 생소한 느낌이 고대 세계에 반유대주의를 유발했다. 유대인은 단순한 이주민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민족을 다른 민족과 구별하고 분리시켰다.(231쪽)
음식은 민족 간에 서로를 구별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요소 중 하나다. '무엇을 먹는가' 뿐만 아니라, '무엇을 먹어서는 안 되는지'가 민족의 고유성을 보여준다. 유대인의 극도로 세세한 식사법과 정결법은 이민족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왔다. 식사법과 정결법에 대한 규례는 구약성경에 끝없이 이어진다. 유대인은 이를 철저하게 준행했다. 나는 괜찮은데, 우리는 괜찮은데, 그래서 우리는 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그걸 직접적으로 거부하는 사람, 그 음식들이 부정하다고(다른 말로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건 불편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김치 냄새를 몹시 싫어하는 프랑스인이 있고, 프랑스의 특정 치즈 냄새를 역겨워하는 한국인이 있다. 이는 문화가 접촉하는 상황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이방인이었고, 떠도는 민족이었던 유대인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섞이기를 거부했다는 점은 특이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고수했고, 이는 당연히 그들 전체 집단에 대한 거부감을 강화시켰다.
유대인은 그리스인보다 더 유서깊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이나 몇 가지 분야에서는 그리스인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문학만큼은 모든 양식에서 우월했다. 로마 제국 안에는 그리스인만큼이나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비율은 유대인이 더 높았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문화 정책을 주도한 그리스인은 히브리어와 히브리 문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 그리스인은 이집트 언어에 무관심했듯 히브리어와 히브리 문학, 유대 종교 철학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예 무시하기 일쑤였고 그나마 아는 거라고는 소문으로전해 들은 부정확한 지식이 전부였다. 유대 문화를 멸시하는 그리스인의 태도와 그리스 문화를 대하는 학식 있는 일부 유대인의 애증은 계속해서 긴장을 유발했다. (207쪽)
유대인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기독교는, 정확히 말해서 한국에 전해진 기독교는 이제 유대인들을 또 다른 형태로 이해하고 소비한다. 적은 인구수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세계를 장악하고 흐름을 주도하는 천재적인 두뇌 집단일 수 있는 이유가 그들이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이고, 이는 그들의 학문적 우수성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학문적 우수성의 근거로 사람들은 편리하게도(?) 노벨상 수상자 중 유대인의 비율을 들기도 한다.
저자의 주장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유대인의 비율이 로마 제국 문화 정책의 핵심이었던 그리스인보다 높았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보다 더 유서 깊은 문화, 문학에서의 압도적인 우월성을 가진 유대인들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리터러시'라는 측면에서 가히 전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 똑똑한 사람을, 똑똑한 민족을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물리적으로는 점령당했으나, 정신적으로는 로마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똑똑한 그리스인들에게 자신들만큼 혹은 자신들보다 똑똑한 유대인들은 미움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그리스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끈질긴 긴장 관계가 그리스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 작품 속에 투영되고, 이는 반유대주의가 유럽 문화의 뿌리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오랜기간 지속되어 온 배제의 정서, 세대를 통해 전해져온 혐오의 감정이 동력이 되지 않았더라면, 홀로코스트는 현실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자 지구에서의 처참한 소식이 연달아 전해지는 요즘, 유대인의 괴로운 역사를 추적하는 일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도덕적 상대주의 시대에 홀로코스트는 악의 절대적 기준, 절대 악'(<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86쪽)이라는 시몬 베유의 주장을 읽었을 때, 나는 홀로코스트'만'이라고 말할 수 있나 하고 물었다. 영국에 의해 자행된 범죄들은? 벨기에는? 에스파냐는? 그들에게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은? 그들 역시 국가 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고통당하고,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는데, 어떻게 홀로코스트만 특별하다는 거지? 나는 이제 홀로코스트가 악의 절대적 기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들, 특별히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은 악의 절대적 기준에 부합하는 절대악이라고 생각한다. 피해 사실 자체가 가해자 구성의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웠던 과거가 이 지독한 악행, 절대악의 변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