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왈, 글에 ’정치‘를 묻히지 말라 했다. 대구전에 밀가루 묻히는 것도 아니고, 자꾸 ’정치‘를 묻히려 한다고. 그런 강박을 버리라고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그 친구는 내 글을 나보다 더 꼼꼼히 읽는 친구라서, 나는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정치 묻히지 마. 정치 섞지 마. 그런데, 이런 건 어쩌죠.
사라 아메드의 <감정의 문화정치>의 5장은 ‘다른 이들 앞에서 느끼는 수치심’이다. 구체적 예시는 과거 호주 정부, 백인 정부가 호주 원주민(조상때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행했던 ‘잔인한 폭력 행위’에 대해 ‘명시적 사과’를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사과, 라고 하면 최근에 우리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사과 이슈’가 있기는 한데. 나는 그 사안이 사과의 문제라기보다는 ‘수사’를 진행할 것이냐 말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언론은 묘하게 ‘사과’로 초점을 모아가는 듯 했다. 녹화 방송 대담에서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때로는 사과가 보상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사과가 느낌을 담은 표현이 아니라 책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353쪽)
사과란 잘못의 인정이고, 그 후에는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떤 행위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한 다음에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사과'가 지닌 힘은 사라질 수 있다.(354쪽)
사과에 뒤따르는 다른 행동을 할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과가 없어야 한다.
결국 사과에 뒤따르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 선택지만 남는다. (357쪽)

우리나라 대통령의 경우,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다른 방법을 택한다. 대통령은, 면담하는 사람이 준비해 간 외국 회사 조그마한 백(우린 보통 명품백이라고 부르는 걸 KBS 간판앵커는 이렇게 부르더라)를 대통령 부인이 박절하게 내치지 못해 생긴 일이라 말했다.
엘리자베스 스펠먼이 지적한 것처럼 안타까움을 표명하는 일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360쪽)
대통령은 사과 없이 ‘국민 걱정하는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국민은 걱정하는 게 아니고, 화가 났는……..
사람 아메드를 읽는 순간, 사과에 대한 모든 문장은 우리의 현실로 날아온다. 사과는 없고 안타까움은 있다. 명품백은 없고 파우치는 있다. 다큐는 있고 대답은 없다. 용산 집무실은 있고 대통령은 없다. 디올백은 없고 디올쇼핑백은 있다.

1차 행사 마치고 가볍게 2차.

3차 행사를 마치고 대망의 4차 행사에 돌입했다. 전을 맡았던 동서가 갈비찜을 해온다고 해서 내가 전을 맡게 됐는데, 동서처럼 맛나게 예쁘게 부칠 자신이 없어 백화점에 갔다. 흐미, 비싸구나. 하지만, 할 수 없으니 저는 구입합니다. 커피를 한 잔 사가지고 집에 돌아와 어제 사 둔 고기와 부침가루, 계란을 꺼냈다. 백종원의 <명절 음식 소고기 육전으로 끝내 드립니다>를 두 번 봤다. 고기에 부침가루 바르고 계란 묻혀 튀기면 맛없기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맛이 없다. 부침가루 쓸 거면 고기 후추 소금에 재어 두지 않아도 된다고 백종원이 그랬는데, 아무 맛이 안 나서, 다시 소금 뿌리고 계란에도 소금 넣고. 그래도 맛이 없다.
사과는 내가 해야 하나 보다. 우리집 비밀 창고에는 디올 파우치도 없는데, 나는 사과합니다.
맛이 없어요. 맛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