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의 책 :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지금까지 제일 좋아했던 정희진 님의 책은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였는데, 올해의 신간 따끈따끈한 이 책이 이제 ‘최애’의 자리에 올랐다. 또 다른 사유, 또 다른 연구가 더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답을 요구하는 현재’적’ 문제들에 대해 나 자신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걸 ‘발견’하는 소중한 순간이 여러 번 이어졌다. 바로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2. 올해의 작가 : 비비언 고닉
1번 책만 아니라면 이 책이 올해의 책이 될 정도로 너무 좋았다. 비비언 고닉도, 이 책의 ‘존재’도 알고는 있었지만, 선뜻 찾아보지 못했는데, 눈밝은 독자 쟝쟝님이 이 책을 강력 추천해 주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이 ‘특별히’ 좋은 책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만났어야 하는 때에 만난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오래 고민하고 궁금해하던 답을 이 책에서 찾았다. ‘논픽션 페르소나’에 대한 글을 머릿속으로 반 정도 써두었는데,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내내 미루고 있다. ‘나는 이 책으로 나를 가르친다’는 이슬아 작가의 말을, 이제는 이해할 것도 같다.
3. 올해의 여성주의 : 여전히 미쳐 있는
여성주의 책들은 모두 애정이 깊다. 어려운 책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책을 구입해서 그런 것도 같고, 알라딘 이웃님들과 같이 읽어서 그런 것도 같다. <여성, 인종, 계급>과 <페이드 포>를 제치고 내가 고른 한 권의 여성주의 책은 <여전히 미쳐 있는>. 실비아 플라스, 에이드리언 리치, 오드리 로드 등 시대의 변혁을 주도했던 이들의 삶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제일 감동 포인트는 닥터 질 바이든의 이야기다.
질 바이든은 노동자계급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그녀는 조 바이든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면서 더 높은 단계의 영문학 학위를 위해 공부했고 지역 전문대학교의 교수로 일했다. 그녀는 남편의 부통령 재직기간 내내 그 일을 계속했다. 친구인 미셸 오바마의 말처럼, 선거 유세 비행기 안에서도 "질은 항상 과제물 채점을 하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보통 '부통령과 바이든 여사'가 아니라 '부통령과 바이든 박사'로 소개되었다. (494쪽)
질 바이든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공부를 계속했고, 학위 과정을 밟았고,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박사가 되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신화 베티 프리단의 주장대로 ‘학교로 돌아가 학위를 취득했다’. 3-4문장 속에 깃든 고단함과 열정, 그리고 끈기가 그대로 전해져 마음이 좀 뭉클했다. 결심이나 도전에 무척 소극적인 나이지만, 앞서 있는 여성들의 투지와 노력을, 그 열정과 끈기를 나도 좀 배워야겠다, 그런 마음이 들기는 했다.
4. 올해의 자랑 : 감시와 처벌
크게 자랑할 거 없는 인생이지만, 이 책 완독한 일은 좀 자랑해도 좋겠다. 많이 힘들었다. 사실 ‘내가 읽고 싶은 푸코의 저작은 <광기의 역사>인데…’ 하는 말을 완독할 때까지 입에 달고 살았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은 나를 칭찬하고 싶다.
5. 올해의 탈식민주의 : 친밀한 적
이런 이야기가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황금 가면보다 얇은 마스크를 쓰고 굳이 이야기하자면, 작년에 알라딘에 올렸던 여러 글 중에, 이 글(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974222)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경험이 일천하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이지만, 지금 내가 만나는 세계, 내가 고민하는 문제, 내 힘이 넘치는 범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사회, 또 다른 세계, 또 다른 우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 더 엄정하게 쓰고 싶다.
6. 올해의 동화책 : 두루미 아내
올해는 어느 해보다 동화책을 많이 읽었다. 동화책의 ‘힐링 효과’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테지만, 동화책을 읽고 더 감동 받는 사람은, 그림을 눈으로 따라 읽으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글자를 읽어주며 그림을 같이 살피는 어른이 아이만큼, 어느 경우엔 아이보다 훨씬 더 감동 받는다. 여러 책을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이 책, <두루미 아내>이다. 최근 <정희진의 공부> 12월호에 선물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정희진 선생님은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선물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 책이 떠올렸다.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선물하지 말자. 주지 말자. 그녀가 정말 소중한 사람이어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도. 주지 말자. 나에게 정말 소중한 그것은, 주지 말자.
7. 올해의 소설 : 고통에 관하여, 재수사
올해의 소설은 우연하게도 모두 한국 소설이다. 제일 재미있게 읽은 건 정보라의 소설이고, 제일 흥미진진했던 건 장강명의 소설이다. 소설을 읽을 때, 나 자신이 부자라고 느낀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그 책들이 모두 내 책일 때, 그리고 새 책일 때, ‘호강하고 있다’고 느낀다. 소중한 호강 타임을 선사해 준 두 분 소설가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8. 올해의 원서 : Lucy by the Sea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순위도 역시나 바뀌고 말았는데, 부동의 1위 <Oh, William!>이 아쉽게도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슬픈 소식이다. 드디어,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디어, 나는 윌리엄과 화해했다. 나는, 아직도 그의 어느 부분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그를 안아주는 루시가 되어 버렸기에, 이제 그를 더는 미워할 수가 없다. 이런…
9. 올해의 로맨스 : Unfortunately yours
이 책의 특장점이라고 한다면 암스테르담에서부터 날아왔다는 점인데, 그냥 날아온 게 아니라, 소중한 친구의 여행 가방 속에 쏙 담겨 날아왔다. 그에 못지 않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표지. 표지의 그림이 예쁘기도 하지만, 컬러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컬러다. 책표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책의 외모에 집착하는 사람인 것이다. 내용 또한 마음에 흡족한데, 네이비 실 출신의 남주와 매력적인 사업가 여주는 만날 때마다 최고의 ‘대화 케미’를 보여준다. 물론, 다른 케미도 보여준다.
알라딘이 소중한 건 알라딘 서재 이웃님들이 화면 저 편에 계시기 때문이다. 눈팅만 하시는 분들께 감사드리고(올해에는 ‘좋아요’ 좀 눌러 주세요), ‘좋아요’ 눌러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고(올해에는 ‘댓글’ 좀 달아 주세요),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께 감사드린다.
읽기와 쓰기는, 언제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고, 다른 취미 생활에 비해 돈도 적게 드는 편이다(예외인 분들, 본인들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ㅎㅎ). 읽고 쓰는 즐거움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
누구도, 내게서 그 즐거움을 빼앗아갈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