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는 『얼어붙은 여자』 밖에 읽지 못했다. 좋다고 팔짝팔짝 뛰었던 프랑수아즈 사강도 『슬픔이여 안녕』 딱 한 권 읽었고, 올해 상반기의 책인 『어떻게 지내요』의 시그리드 누네즈도 한 권밖에 안 읽은 상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책 딱 한 권 읽은 사람이라 그랬던가. 내가 그런 사람이다. 작가별로 책 한 권씩 읽은 사람.
친구가 읽은 아니 에르노의 『탐닉』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제목의 강렬함은 표지의 강렬함으로 이어지고, 표지가 없는 도서관 책은 더더욱 강렬하다. 눈이 부셔요. 너무 빨개요.
자체 휴가 기간 중이고 주말이라 『탐닉』 들고 집 앞 카페에 나왔는데 다들 휴가 가셨나, 조용하고 선선하다. 같이 빌려 온 책에 정희진쌤의 짧은 글이 있어서 그것 먼저 후루룩 읽었다. 역시나 좋다. 제목은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이고, 부제는 ‘고 장춘익 교수의 <여성주의철학> 교육혁명에서 다음 세대의 페미니즘을 들여다보다’이다. 정희진쌤은 대한민국 인문대학의 현실 속에서 장춘익 교수의 업적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설명하고, 마지막에는 제자에게 전한 그의 당부를 옮긴다.
“ … 페미니즘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이어야 해. 페미니즘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140쪽)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저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는데 - 페미니스트가 지적으로 욕망의 대상이 되고 행복하고 건강하면, 그게 바로 여성운동이 아닐까요 - 이번 기회에 인용할 만한 좋은 텍스트가 생겨서 기쁩니다. (140쪽)
지적으로 욕망의 대상이 될 것. 행복하고 건강할 것. 그게 선생님이 말하는 여성운동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어떻게, 지적으로 욕망의 대상이 될 것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적으로 욕망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안다. 욕망은 해소되어야 하고, 책은 소유를 부른다. 책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