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외출한 날은 얼른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 즐거운 자리여도 맘껏 즐겁지 않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가 왜 이 옷을 입고 나왔을까 후회만 머릿속을 뱅뱅 돈다. 신발이 불편하면 더 가관이다. 이 신발이 벗고 싶어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이 신발 때문에 걸음이 늦어진다. 내가 선택한 옷이라도 이럴진대 불편한 옷을 입어야'만한다면.

 


유행의 첨단을 걷는 여성의 코르셋은 내부 장기에 평균 21파운드에 달하는 무게의 압력을 가했고, 극단적인 경우에 그 무게가 88파운드에 이르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여기다 잘 차려입은 여성은 겨울에는 평균 37파운드의 외출복을 입었고, 그중 19파운드는 억지로 조인 허리에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더해보라) 꽉 조이는 레이스가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호흡 곤란, 변비, 허약함, 극심한 소화 불량 징후였다. 장기적 영향으로는 휘거나 부러진 갈비뼈, 간 이탈, 자궁 탈출증이 있었다. (165)

 


이런 옷차림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쉽게 피곤해질 것이다.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모두 불편할 테니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옷차림으로 인한 여성의 무기력함이 여성스러움으로 변신할 때, 중류 계급 여성들은 병을 앓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163) ‘환자 계급으로 탄생한다. 전문적(이라고 주장하는)인 의사 집단이 더 숙련되고 능숙한 민간 치료사, 약제사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질병의 치료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하던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여성은 치료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또 한 번, 여성은 남성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다.  

 


덜 복잡한 형태로부터 현재의 상태로 진화해 왔다는 다윈의 주장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과학자들은 생물학적 연구 결과를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서 존재하는 인간 종은 각각 다른 진화 단계를 대변한다는 주장(175)에까지 이르렀다.

 


1860년대 자연 과학자들은 정밀하게 표시한 진화의 사다리에 여성의 위치를 꼭 집어서 표시할 수 있었다. 여성은 흑인과 같은 수준에 있었다. 예를 들어 명망 있는 유럽의 자연사 교수 카를 포크트 Carl Vogt는 흑인(남성)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성인 흑인은 지적인 특성에서 볼 때 아이, 여성, 노쇠한 백인의 본성과 같다.

 

(다른 인종의 노쇠한여성은 말할 것도 없이 흑인 여성을 어디에 두었을까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176)

 


이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수컷이 변이하며서로 간에 구분되는 것과는 구별되게 암컷은 재생산이라는 오래된 동물적 기능에 집중하게 된다는 주장으로, 여성은 난소의 지배, 자궁의 지배 아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의사들은 독서, 파티, 연애, “뜨거운 음료가 여성들에게 야기한 야한 생각도 생체 기능 전체를 틀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은 로맨틱한 소설을 읽는 것이 어린 여성들에게서 발생하는 자궁 질병의 가장 강력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며 그러한 독서에 반대하는 것을 엄중한 의무로 받아들였다. (187)

 



이를테면, 이런 소설들. 따뜻한 커피 마시며 이런 소설 읽을 때, 여성의 경우 생체 기능 저하되고 자궁 질병의 원인이 된단다.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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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4-14 08: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학창시절부터 로맨스 소설 미친듯이 읽어왔지만(고등학교 수업시간에는 교과서에 감추고 읽다가 선생님한테 걸렸어요..) 자궁 검사에서 자궁도 질도 모두 건강하다는 질단을 받았는데 말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궁이여, 건강하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4-17 11:39   좋아요 1 | URL
놀랍고 신기한 이야기가 뒤쪽으로도 이어져서 참.... 허어참..... 하고 읽고 있어요. 여성할례라는 이름만 없었지, 여성의 질병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얼마나 질기고 강력한지 말이에요. 휴우...
자궁이여, 건강하라!!! 건강하라, 자궁이여!!!

수이 2021-04-14 0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부터 로맨스를 읽기 저어하다가 제가 생애 최초 산부인과에서 자궁이 많이 약해요 자궁 건강에 신경쓰셔야겠어요 해서 얼마 전부터 로맨스를 읽기 시작했는데 자궁이 튼튼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로맨스 읽으러 얼른 소파로 풍덩 날아가야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4-17 11:39   좋아요 0 | URL
자궁은 건강하고 우리의 뇌는 튼튼하고 그래서 우리는 로맨스를 읽고 이 책을 읽네요. 하하하

2021-04-14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7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4-1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파운드면 얼마지 하다가 찾아보니 거의 40kg
거의 쌀 한가마! 죽음이네요.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이 여자들을 폄하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말들은 참....

단발머리 2021-04-17 11:42   좋아요 0 | URL
죽을 각오로 이런 일을 감당했겠죠. 그래서 아플 수 밖에 없었을 테고요. 어제 읽었던 부분에서는 ‘병원 가는 게 일‘이었던 여성들의 일상 나오더라구요.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