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계약의 과거와 현재의 내용은 여자들이 자유롭고 평등하지 않다는 기저에 놓인 가정을 드러낸다. 여자들은 자신의 인신과 능력에서 소유권을 갖는 개인들이 아니며, 따라서 남자들의 권위에 대한 그들의 동의의 문제는 결코 실제로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의 권위에 대한 그들의 겉보기의 동의는 다만 그들의 자연적종속에 대한 형식적 인정이다. 아버지의 권위 하에 있다가 그들은 아들처럼 성숙에서 새로운 지위에 진입하지 않으며, 오히려 아버지가 또 다른 남자에게 줘버리고나면 의존과 예속의 자연상태에 계속 머무른다. (125)



그때는 가부장제라는 단어를 모를 때였다. 00언니는, 언니의 둘째 아들과 우리 집 아롱이가 같은 수업을 듣게 되어 알게 되었다. 시원시원하고 활달한 언니였는데, 수영장 (대기) 의자에 앉아 책을 펴고 신나게 졸고 있노라면 먼저 반갑게 인사해주는 고마운 언니였다. 하루는 언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니의 남편이 언니보다 3살이 어리다는 걸 알게 됐다. ! 언니, 연상연하 커플이네요?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할 거라 예상되는, 나와 다른 커플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물었다. 언니, 그러면, 언니가 누나네요? 그죠? 하하하. 철없는 질문을 이어가고 있는데, 언니가 대답하신다. 자기야, 그런 거 없어. 남자, 여자가 살 맞대고 살다 보면 다 똑같아. (뭐가요?)


그때는 가부장제라는 단어를 모를 때였다. 내가 알고 지내는 대부분의 커플은 남편이 연상이었다. 연상이라는 건, 나이가 많다는 건, 일반적인 경우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남편들은 단순한 연상이 아니다. 남편들은 상사이고, 사수이고, 선배이고, 오빠다. 요즘에는 그런 경향이 많이 없어졌다지만, 아직도 결혼 상대로 남자는 연하를, 여자는 연상을 상상한다. 그런 경우 가정에서 남성의 위치는 가정의 대표자일 뿐만 아니라, 모든 중요한 사안의 결정권자이다.


상대방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나이인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남편이 나보다 연상일 때, 사회적/경제적 자산을 더 많이 소유할 가능성이 많은 경우에, 연상의 남편이 자연스레 가정의 대표가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했었다. 00언니 이야기는 달랐다. 사람 사는 거는 다 똑같다니. 돌이켜보니, 오히려 연상연하 커플은 남편 기죽이면 안 된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말들 때문에 연하의 남편을 극진히 공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건 완벽하게 개인적인 경우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고, 직장생활을 4년 반 했으며, 첫째를 출산한 후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밀한 사람들은 전라도 출신, 경상도 출신, 서울, 경기권 출신 등 다양하다. 여성의 경우만 봤을 경우 고졸, 전문대졸, 대졸, 대학원 졸, 박사까지 다채롭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모든 가정에서, 이 놀라운 사람 사는규칙은 한결같다. 남자는 가정의 주인이고,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며, 최종 결정권자다.



물론 경제 활동이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돈 벌어오지 않는 여성의 지위는 열악하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임금을 산정할 때, 그가 휴식을 취하고 다음 날 업무에 무리 없이 합류할 수 있을 정도, 그가 책임진 (혹은 책임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가족 구성원인 아내와 아이들의 몫까지를 계산하지만,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을 아내의 것이라고 혹은 아내의 몫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계약 관계에 의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아내라는 종족,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팔자 좋은 여자일 뿐이다.


해결책은 오히려 간단하다. 정희진 선생님의 주장대로 하면 된다. 여성이 공적인 영역으로 진출하는 만큼, 아니 그 반의반이라도, 남성들이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오면 된다. ‘의 의미를 확장하면 된다. ‘양육의 정의를 변경하면 된다.  



즉각적으로 실천적인 수준에서 이 요구는 여성주의적 비판의 아마도 가장 명백한 결론 안에 표현되어 있다; 여자들이 평등한 자들로서 사회적 삶에 완전하게 참여하려면, 남자들이 양육과 다른 가정 안에서의 과업들을 평등하게 분담해야 할 것이라는 결론 말이다. 여자들이 이 사적인 일과 동일시되어 있는 한, 그들의 공적인 지위는 언제나 약화될 것이다. 이 결론은 통상 주장되는 것처럼 남자들이 아닌 여자들이 자녀를 낳는다는 자연적인 생물학적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 결론은 여자들이 자녀를 낳는다는 자연적 사실로부터 오직 여자만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음이 뒤따른다는 가부장적 주장을 부인하는 것이다. 공동 육아와 가정생활의 다른 활동 안에의 평등한 참여는 공적인 영역 안의, 생산 조직 안의, 우리가 ‘일’이라고 했을 때 의미하는 것 안의, 그리고 시민권의 행사 안의 몇 가지 급진적인 변화들을 가정한다. (220)





여자들과 남자들이 사적인 삶과 공적인 세계 안에서 구별적으로 위치 지어져 있는 방식은, 내가 앞으로 지적하겠지만, 복잡한 문제이다. 그러나 복잡한 현실 기저에는 여자들이 본성상 남자들에게 고유하게 종속되어 있으며 그들의 고유한 장소가 사적인 가정 영역 안이라는 믿음이 있다. 남자들은 두 영역 모두에 고유하게 거주하며 그 안에서 지배한다. 핵심적인 여성주의적주장은 ‘분리되었지만 평등하다‘ 라는 교설이, 그리고 자유주의 이론이 갖는 표면적인 개인주의와 평등주의가,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의 가부장적 현실과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지배를 흐려놓는다는 것이다. - P193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자본주의 특유의 계급 분업 및 성적 분업 형태가 발달함에 따라 아내들은몇몇 낮은 지위의 고용 영역으로 떠밀리거나, 아니면 경제적 삶으로부터 전적으로 배제되었으며, 사적이고 가족적인 영역 안에 있는 그들의 ‘자연적’이고 의존적인 자리로 좌천되었다. - P198

여성, 혹은 —— 자연, 개인적인 것, 감정, 사랑, 사적인것, 직관, 도덕성, 귀속, 특수한 것, 종속. 남성, 혹은—— 문화, 정치적인것, 이성, 정의, 공적인 것, 철학, 권력, 성취, 보편적인 것, 자유. 이 대립등 중 가장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것은 여자들을 자연과 연관시키며 남자들을 문화와 연관시킨다. 그리고 몇몇 동시대 여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비판들을 이러한 용어들로 틀지어왔다. - P200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2-28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편이 저보다 어려요ㅋㅋ온통 와닿네요! 🤔

단발머리 2021-03-01 19:22   좋아요 0 | URL
그러신가요? 허허허.

라로 2021-03-01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은 제가 주도권을 잡고 있어서 불평등하다거나 페미니즘에 대한 절박한 느낌이 없나봐요.

단발머리 2021-03-01 19:24   좋아요 2 | URL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요. 저도 남편이 가부장적이어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건 아니고요 ㅎㅎㅎ 전 세계 여성들이 비슷한 상황, 환경, 처지에 놓여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더라구요. 이건 인식의 문제니까, 또 다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21-03-01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1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1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1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