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휴관의 마지막 날 도서관이 선사해준 2월의 희망도서 『다크룸』을 어제밤부터 읽고 있다. 『백래시』를 읽어보면 그녀가 얼마나 정확하고 치밀한 서술을 추구하는 기자인지, 천상 기자인지 확인할 수 있다.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가 이 책의 부제다.
사실 내가 회고록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걸 원해 본 적도 없었다.) 작가로서, 나는 공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만 집중해 왔고, 언제나 언론인으로서의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페미니스트로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의 진실성을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개인적인 것은 … 그냥, 개인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76세에 여자가 되기로 했다는 아버지의 소식을 듣자 그 방화벽은 무너져 버렸다. (13-4쪽)
페미니즘 책을 읽다 보면 내게만 있었던 일이라 여겼던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 사실은 여성이라면 모두 다 겪어냈던 ‘평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여성에 대한 차별, 학교, 직장에서의 성희롱, 성차별적 발언들, 결혼과 출산 이후 경력단절과 시댁갈등이 모두 닮은꼴이다. 몸에 대한 이야기, 성에 대한 이야기 모두 마찬가지다.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고, 그 소설이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그렇게나 많은 남자들이 분노로 폭발해 소설을 읽었다는 아이돌 가수의 계정에 난장판을 벌이고, 여주인공으로 낙점된 여배우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히려 여성들은 담담하다. 다 그런 거 아니었어? 나도 이런 일 있었는데.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 일 있었어. 현실을 그냥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회 전체를 울리는 메시지가 되었다. 남녀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가장 쉬운 증거다.
평생을 남자로 그것도 마초적 남자로 살았던 아버지가 ‘스스로’를 찾겠다며 여성으로 재탄생하는 건 특별한 경우다. 그런 도전을 하는 남성의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 남성이 수전 팔루디의 아버지라면.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수전 팔루디의 아버지라면.
개인적인 것은… 그냥, 개인적인 것이라던 수잔 팔루디에게 이제 극히 개인적인 이 일은 설명을 요하는, 해석을 요하는 또 다른 어떤 일이 되어 버렸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산처럼 쌓인 빨래를 모른 척 하고, 수전과 함께 말레브 헝가리항공 521편에 오른다. 그녀가 말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