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아이들은 수영을 다녔다. 큰아이 작은 아이 둘 다 초등학생이었는데, 일주일에 세 번씩 수영을 다녔다. 나는 옹졸하고 편협한 사람이라 당시 정부를 우리나라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라 생각했다. 중동 국가가 아닌데도 엄청나게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격리 중인 환자가 인근의 환자들을 전염시키며 자신도 모르게 슈퍼감염자가 되는 상황에서, 나는 한결같이 정부를 탓했다. 무능한 정부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무능한 대통령 아래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정확히는 애쓰고 있는 공무원들을 쉽게 나무랐다. 저 봐라, 저, 저… 그러고는 일주일에 세번 있는 수영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1도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그 때와는 다른 분위기다. 더 험악하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극장이든, 쇼핑몰이든, 놀이 동산이든 모두 한가하다 못해 적막하다. 내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작년에 앓은 독감 때문이다. 같이 확진 판정을 받은 둘째는 소파에 누워 과자 먹다가 책 읽다가 먹고 자고 먹고 자면서 즐거운 5박 6일 휴가를 보냈는데, 나는 거의 한달을 침대에서만 지냈다. 밥 차리고 약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 다시 밥 차리고 약 먹는 생활을 계속했다. 7-8년간 먹을 만큼의 감기약을 먹었다. 암울한 시대였다. 그랬는데도 작년 가을에 독감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의 신출기묘한 출현에 짐짓 두려운 마음 뿐이다. 옹졸하고 편협한 내게 문재인 정부는 우리나라 정부인지라 엄중한 상황이 더욱 걱정스럽다.
『오릭스와 크레이크』에서는 생명공학의 발달로 새로운 피부, 동물 장기의 이식을 통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돼지와 너구리를 합한 돼지구리(pigoon), 늑대와 개를 합한 늑개(woolvog), 뱀과 쥐를 합한 뱀쥐(snat)등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만들 수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이든 만든다. 가장 끔찍한 장면.
그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점묘법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 엷은 누런색 피부로 뒤덮인 구근 같은 물체였다. 그것에서 스무개의 두꺼운 피부 조직 튜브가 튀어나와 있고, 각 튜브의 끝 부분에는 또 다른 구근이 자라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뭐야?˝ 지미가 물었다.
“닭이야. 닭의 부위들이지. 이것에는 닭 가슴 부위만 있어. 닭 다리만 만들어 내는 것도 있어. 한 성장 단위당 열두 개의 닭 다리가 자라지.”
“그런데 머리가 없잖아.” (345쪽)
그보다 더 끔찍한 장면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장면이 이미 우리네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그걸 모른 척 한다. 모른 척 해야만이 치킨을 먹을 수 있다. BHC 맛초킹 윙.
쾌락을 향한 멈추지 않는 질주는 ‘환희이상’ 알약을 개발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어느 날 갑자기 복용자들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데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봉착한다. 퍽퍽 쓰러지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도 않은 바이러스 앞에 무기력한 사람들의 모습. 소설은 이렇게 현실을 닮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이 이루어지는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니 당연한 일일 테지만, 코로나 시나리오는 언제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모르니, 우리의 미래를 예측조차 하고 싶지 않다. 어제는 뉴스에서 밤낮으로 애쓰는 간호사들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마음이 짠해져 찔끔 눈물이 나고 말았다. 한 고개는 간신히 넘었지만 종편을 비롯한 저질 방송에서 우환 교민들 귀국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쏟아내는 말들은 너무 허망했다. 700여명의 교민 중에 내 가족이 속해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저 난리 통의 우환에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어야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설 연휴 직전에 상하이를 다녀온 사촌동생은 상하이 다녀왔다고 서울 올라오지도 않았다. 그 애가, 내 사촌 동생이 지금 거기에 있다고 한다면 비행기 보내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젖은 머리를 다시 묶고 3교대를 위해 두꺼운 특별 장비를 입고 진료실로 들어서는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들, 소독, 방역 인력, 질병관리본부의 공무원들,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고생을 마다 않는 이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내 식구가 고생하지 않는다고 쉽게 말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내 식구 아니라고 모른 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사는 우리가, 이런 위기와 고통 앞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이 시간들이, 확진자 증가와 동선 공개와 영업장 폐쇄의 이 시간들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의료진들도, 질병관리본부 공무원들도, 공항의 검역관들도 잠시 한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어서 다가오기를 바랄 뿐이다.
지나가라, 어서. 어서, 지나가라.
"내가 이런 말을 듣다니, 정말 어이가 없군! 누가 당신에게 이 런 얘기를 해 준 거지? 당신은 교육받은 사람이고 직접 이런 일 을 하기도 했잖아! 그건 단지 단백질에 불과해, 당신도 알잖아! 세포와 조직에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건 단지……." 97
피와 장미는 모노폴리 게임의 계보를 잇는 상업 게임이었다. 득점을 하기 위해 피의 편은 인간이 저지른 잔학 행위, 다시 말해 방대한 규모의 잔학 행위를 이용했다. 개별적인 강간이나 살인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만 해당되었다. 대학살, 인종 몰살, 그런 종류의 일. 장미의 편은 인간이 이룩한 성취를 이용했다. 예술 작품, 과학적 발명, 주요한 건축물, 유용한 발명품, "영혼의 장대함의 기념비", 이것이 게임에서 통용되는 명칭이었다. 134
눈사람은 나무에 기대서서 점차 사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사랑은 푸른, 푸른 장미와 같네.* 달이 떠오르고 수확물이 빛나네.* * 그래, 크레이크는 뜻대로 해냈군. 그를 위해 만세. 눈사람은 생각한다. 질투도, 아내 도살자도, 남편 독살자도
*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즈의 「내 사랑은 붉은, 붉은 장미와 같네」를 인 용한 것이다. 289
대단하군. 지미는 생각했다. 그들은 몇 번의 시도를 할 것이고, 만일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아이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 아이의 각 기관을 재활용해서 자신들이 세부적으로 명시한 것에 딱 들어맞는 아이를 마침내 만들어 낼 것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아이, 수학 전문가일 뿐 아니라 새벽처럼 아름답기까지 한 아이. 그런 다음에는 이 가설상의 놀라운 수재에게 부푼 기대를 쏟아부을 것이고, 이 가련한 아이는 긴장으로 폭발하고 말것이다. 지미는 그 아이가 부럽지 않았다. 422
하지만 파라디스의 방법으로는 99퍼센트의 정확성이 보장된다. 선택된 특징을 지닌 전체 인류가 창조될 수 있다. 물론 아름다움은 대부분이 요구하는 특징일 것이다. 순종적 기질 또한 세계의 여러 지도자가 그것에 관심을 보였다. 파라디스는 이미 자외선 차단 피부, 신체에 장착된 방충제, 정제되지 않은 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을 개발했다. 병원체에 대한 면역 기능 면을 보자면, 이제껏 약을 통해 이루어지던 것들은 곧 선천적인 특징이 될 것이다. 509
갑자기 그녀는 실제의 삼차원적 존재로 나타났다. 그는 그녀의 꿈을 꾸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한 번의 눈길, 눈썹의 움직임, 팔의 곡선에 그런 식으로 한순간에 사로잡힐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사로잡혔다.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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