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와 크레이크』는 ‘미친 아담 시리즈’ 3부작 중 첫번째 책이다. 2008년 『인간종말 리포트』로 출간되었다가, 시리즈로 나오면서 새로운 제목, 새로운 표지를 입었다. 대출기간 3주는 얼마나 짧은지 펴보지도 못했는데 반납일이 금방 돌아와, 어제는 책 두 권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 가는 길에 첫번째 페이지 읽고는 반납하지 않고 다시 들고 왔다. 죄송합니다, 하루만 연체할께요.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이라면 아무래도 『시녀 이야기』가 제일 유명하다. 2017년 드라마화 되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아직 드라마는 보지 못 했다. 『시녀이야기 그래픽 노블』은 꼭 챙겨서 보고 싶다.
나는 『그레이스』도 참 좋았다. 특히 이 문단. 한 인간을 이해하는 완벽하게 대조적인 두 개의 판단. 그 판단은 물론 여자에게만 적용된다. 성녀와 마녀. 어머니와 창녀. 이런 식으로.
나는 나에 대해 오갔던 이야기들을 모조리 떠올려본다. 나는 잔인한 악마이고, 불한당에게 끌려가 목숨이 위험했던 순진한 희생양이고, 나를 교수형에 처하면 사법 당국이 살인을 저지르는 게 될 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이고, 동물을 좋아하고, 안색이 밝은 미녀이고, 눈은 파란색인데 어디서 말하기로는 초록색이고, 머리는 적갈색인 동시에 갈색이고, 키는 크거나 작은 편이고, 옷차림이 단정하고 깔끔한데 죽은 여자를 털어서 그렇게 꾸민 거고, 일에 관한 한 싹싹하며 영리하고, 신경질적이며 뚱한 성격이고, 미천한 신분인 것에 비해 조금 교양이 있어 보이고,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라 나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고, 교활하며 비딱하고, 머리가 멍청해서 바보 천치와 다를 바 없다. 나는 궁금하다. 내가 어떻게 각기 다른 이 모든 사항들의 조합일 수 있을까? (38쪽)
『눈먼 암살자』는 애트우드의 작품 중에서 제일 어려웠다. 다시 한 번 더 읽을 수 있겠다.
『증언들』은 34년만에 나온 ‘시녀 이야기’의 후속작이다. 『The Testaments』는 출간도 되기 전에 ‘2019년 부커상’을 수상했고, 출간 후에도 영미권에서 큰 관심을 얻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대부분 암울하다. 유토피아 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애트우드는 환경 파괴, 유전자 조작, 복제 생물, 성형 중독이 일상화된 미래 사회를 그려냄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윤리가 실종된 과학 기술에 대해 경고한다. 이야기 속의 미래는 암울하고 잔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내용은 내가 쓰고 있는 동안 점차 현실이 되어 갔다. 나는 그러한 현상이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흔히 그렇듯, 나는 우리 앞에 보이는 그 길을 가지 않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완성했다. 내가 인류의 미래를 비관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나는 낙관주의자다. 희망을 가지자!” –마거릿 애트우드
나도 그러고 싶다. 그녀의 말을 믿고 싶다. 미래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희망적이고, 훨씬 더 나은 미래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내 고민은 그녀가 그려낸 미래가 우리의 현재와 꼭 닮아 있다는 데 있다. 현재의 바보 같은 행태를 멈추지 않는 한, 그녀가 그리는 미래는 바로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들이 처음으로 오릭스를 본 것은 바로 그 사이트에서였다. 그녀는 겨우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여덟 살 정도로 보였다. 당시 그녀가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그들은 결코 알아낼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오릭스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름이 없었다. 포르노 사이트에 나오는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 그들이 하는 행위에는 생크림을 핥는 동작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순수함과 음탕함의 느낌을 동시에 자아냈다. 새끼 고양이 같은 혀와 작은 손가락을 지닌 세 소녀는 남자 위로 기어올라 신음하고 낄낄거리며 남자에게 완전한 성적 쾌락을 안겨 주었다. 웃음소리는 분명 녹음된 것이었다. 세 소녀는 웃지 않았다. 그들은 겁에 질린 듯 보였고, 한 명은 울고 있기까지 했다. (『오릭스와 크레이크』, 15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