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일부터 『Eat pray love』 읽기를 시작했다. 친구가 운영하는 단톡방이라 살그머니 발을 담갔다. 그간의 학습과 경험과 실패를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외국어를 마스터하고 싶다면, 하루 18시간씩 6개월 이상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밀도있고 집중적인 학습, 그리고 어마무시한 학습량만이 눈에 띄는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 하루 15분씩, 가랑비에 옷 젖는 방식의 학습 방법에 극히 회의적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하루에 한 챕터씩 오디오북을 듣고, 따라 읽고, 단어를 찾아보고, 문단을 따라 써보는 공부방에 들어갔다. 지금 당장은 하루에 18시간씩 6개월, 영어를 공부할 의지도 열정도 없지만, 언젠가 갑자기 내게 그런 필요가 생겼을 때, 그렇게 해야만 할 때, 냅다 뛰어나가기 위해서. 낡았기는 했어도 제일 편한 운동화를 일단 신고, 신발끈을 묶고 있는 정도의 준비로서.
월요일의 단어는 androgynous였다. 발리의 심령치료사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에게 건넨 종이를 묘사할 때 나온 표현이다.
Ketut said he could answer my question with a picture. He showed me a sketch he’d drawn once during meditation. It was an androgynous human figure, standing up, hands clasped in prayer. But this figure had four legs, and no head. Where the head should have been, there was only a wild foliage of ferns and flowers. There was a small, smiling face drawn over the heart. (29)
습관대로 사전을 옮겨 적었다.
그 날의 공부를 마치고는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을 읽었다. 지난주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친구들과 페미니즘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정리한 책은 어떤게 있을까 댓글을 주고받다가 이 책을 추천했는데, 다시 펼쳐보니, 이번이 세 번째인데 그래도 재미있는 거다. 차근히 따라 읽다가, 이런 문단을 만난다.
… 결국 그(파이어스톤)가 지향하는 바는 재생산을 중심으로 성차를 나누는 방식 자체를 소멸시킴으로써 여성해방을 이루자는 겁니다. 성차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면 더 이상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응시나 그에 의거한 문화제도적 제한과 억압이 사라질 테니까요.
저는 이런 입장을 ‘안드로지니'(androgyny) 즉 동일한 인간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분류했어요. 우리가 지렁이도 아니고 ‘자웅동체’라고 번역하는 것은 부적절하겠죠? ‘양성적 인간’이라고 하자니 성을 둘로’만’ 나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제일 적합한 말로 ‘동일한 인간성’이라는 말을 골라 봅니다. (63쪽)
또 나왔다. 안드로지니.
잠자기 전에는 요즘 우리집에서 가장 핫한 책,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를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만난 놀람 포인트는 사제지간이자 연인관계였던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 두 사람 중에 루스 베네딕트가 연상이자 스승이었다는 점. 이 책의 제목이 왜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가 아니라,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인지 나는 아직 확인하지 못 했다. 두번째 놀람 포인트는 루스 베네딕트의 놀라운 미모. 사진으로 풍겨나오는 지적이고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한참이나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다.
글자를 어깨너머로 던지지 않고, 조용조용 따라 읽는다. 36쪽 그리고 37쪽.
잡지와 기타 저술을 물론이고, 베네딕트와 미드가 1922년부터 서로에게 보낸 수십 통의 편지 어디를 보더라도 두 사람은 자신이나 상대방을 ‘레즈비언’(lesbian)이라는 용어로 지칭하지 않는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미드가 가끔씩 ‘레즈비언’이라는 말을 사용해 다른 여성들을 지칭하기는 했지만 베네딕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동성애자’(homosexual)와 ‘이성애자’(heterosexual)라는 말을 썼다. 두 사람은 가끔씩 ‘도착자’(invert)와 ‘변태’(pervert)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물론 베네딕트가 변태라는 말을 대개 반어적으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1935년 미드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 자신을 ‘남녀양성’(androgyne)이라고 칭했다. (36-7쪽)
또 나왔다. androgyne. 한 단어의 세 가지 변형.
나는 그냥 운동화를 신고 신발끈을 매었을 뿐인데, 사방에 널린 영어단어들은 각각 이런 저런 모양으로, 이 책 저 책에서, 화려한 몸짓과 신나는 음악으로 나를 맞이한다. 뭐든 ‘열심히’ 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인데, 운동화를 신고 신발끈을 맸을 뿐인데, 이제 이 세 단어들은 어쩔 수 없이(?) 확실히 알아버렸다. 하루에 세 번 만났는데도 모른 척 하면, 그건 인간의 도리도 아닐 성 싶고.
그래서, 월요일의 단어는 androgynous, androgyny, androgy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