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대기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화성 연대기』화씨 451』 함께 레이 브래드러리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힌다. 1999 1월부터 2026 10월까지 인간이 화성을 정복하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그려내었다. 원래는 장편소설로 집필된 것이 아니었고, 1940년대 후반에 여러 잡지에 발표된 화성 관련 단편들을 연대기 형식으로 묶은 것이다. 이른바픽스업장편으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완결성을 갖는다. (‘옮긴이의 ’, 402) 



지구인과 화성인의 만남을 그린 <2002 8, 한밤의 조우> 화성으로 이주하려는 흑인들과 이를 막는 백인들의 갈등을 그려낸 <2003 6, 하늘 한가운데 길로> 좋았지만, 제일 좋았던 작품은 <2005 9, 화성인>이라는 에피소드다. 




라파즈 부부는 오래전에 죽은 아들 톰을 잊기 위해 지구를 떠나 화성에 정착한다. 내리는 , 라파즈는 어둠 속에 있는 작은 사람의 형체를 발견하고, 아이가 톰처럼 생겼다고 생각한다. 라파즈의 아내는 사람 형체의 존재를 쫓아내려 하지만, 라파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 네가 맞다면, 만에 하나 네가 진짜 톰이라면 말이다, 내가 빗장을 지르지 않을 테니까, 추워서 몸을 녹이고 싶거든 이따 들어와서 난로 옆에서 자도록 해라. 거기에는 털가죽 깔개도 있어.” (269) 




아침에 세수할 물을 길으러 운하에 가려고 밖으로 나가려던 라파즈는 물통 가득 물을 길어오는 톰을 만난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지?” 톰이 돌아왔다. 톰이, 죽었던 아들, 죽었던 아들 톰이 돌아왔다. 라파즈의 아내 역시 놀라지도 않고 돌아온 톰을 스스럼없이 대한다. 톰이 들어왔다. 



며칠이 지나고, 라파즈 부인은 시내에 나가보고 싶다고 한다. 톰은 시내가 무섭다고, 사람들이 무서워 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도, 라파즈 부인의 고집에 어쩔 없이 같이 시내에 가기로 한다. 라파즈는 보트에서 잠든 아들을 쳐다본다. 




대체 아이는 누구이고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처럼 사랑에 굶주린 아이는 누구일까? 고독을 참지 못해 외계인 캠프로 들어와 우리 기억 속에 있는 목소리와 얼굴로 변장을 하고 아내와 사이에 불쑥 나타나, 우리에게 받아들여지고 비로소 행복해진 아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떤 아이일까? 어느 산에서, 어느 동굴에서 왔을까? 지구에서 로켓이 왔을 세계에 남아 있던,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작은 종족에서 것일까? (277) 




시내에 들어섰을 술에 취한 남자 셋과 부딪혀 피하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 라파즈는 톰이 사라진 알게 된다. 라파즈는 아내를 진정시키고 톰을 찾아 헤매다가 스폴딩의 딸아이 러비니아가 그날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 행방불명되었다가 바다 밑바닥에서 몹시 부패한 시체 상태로 발견되었던 아이, 아이 러비니아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라파즈는 스폴딩의 집으로 찾아가 러비니아를 만나 그녀에게 애원한다. 




하지만 엄마 생각을 해봐. 엄마가 받을 충격을.” 

사람들의 의지가 너무 강력해요. 그래서 마치 감옥에 갇힌 느낌이에요. 마음대로 예전 모습으로 바꿀 수가 없어요.” 

너는 톰이야. 톰이었고. 그렇지 않니? 노인을 놀리면 . 너는 진짜 러비니아 스폴딩이 아니잖아?”

나는 누구도 아니에요. 나는 다만 나일 뿐이에요.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나는 어떤 존재예요. 그리고 지금의 나는 당신을 어떻게 도울 없는 존재예요.” (284)  




결론은 너무 슬프다. 아무의 얼굴도 아니며 모든 이의 얼굴이었던 그녀/그는 사라진다.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이렇게 불행에 맞닥뜨려져 묻는다. 라파즈 부인은 톰을 억지로시내에 데리고 갔을까.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아들이 싫다는 일을 강요했을까. 죽었던 아들이 살아왔는데 시내 구경에 집착했을까. 톰의 정체를 불안해하던 라파즈는 아내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을까. 라파즈 부인의 고집은 죽었다가 돌아온 아들 톰을 바꿀만한 것이었을까. 지극히 작은 사소함이 부른 엄청난 비극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변신의 의무가 누구에게 있는가, 소설이 주는 질문 중의 하나다. 화성을 침략한 지구인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지구인이고 화성에서조차 떠나온 지구를 실현한다. 하지만 침략 당한 화성인은 예전의 모습으로 없다. 화성인은 변신해야 하는데, 침략자인 지구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지구인이 원하는 목소리로, 지구인이 원하는 얼굴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래야만 생존할 있다. 변신은 침략 당한 화성인들만의 몫이며, 변신을 요구하는 지구인들의 목소리가 끝없이 높아질 , 화성인은 파멸을 피할 없다. 침략 당한다. 그들의 행성 화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누구도 아닌, 다만 나일 뿐이라는 화성인의 말이 무겁게 들린다. 어디에 있든지 나로서 존재하고 싶고 또한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받고 싶어하던 화성인은 결국 누구도 되지 , 그렇게 지구인들에게서 멀어져 간다. 소리치는 지구인들의 욕망에 그녀/그는 아무도 되지 한다.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린다. 



어젯밤에는 오랫동안 라파즈에 대해 생각했다. 돌아온 톰이 톰이 아니란 알아챘던 라파즈에게 톰의 정체가 밝혀진 현실은 어떨까. 남겨진 그가 사는 세상을 어떠할까. 톰이 톰이 아닌 알고 있지만, 톰을 톰으로서 믿고 사는 편이 나았을까. 아니면 톰은 톰이 아니니, 톰이 아니란 알게 현재가, 진실이 드러난 현실을 사는 것이 그에게는 나을까. 어느 편이 행복할까. 어느 편이 참을 만할까. 어느 편이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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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9-03-02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책이예요. 읽었는데도, 단발머리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단발머리 2019-03-02 08:04   좋아요 1 | URL
저는 이제서야 레이브래드버리를 알게 된 사람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안 그래도 책 찾아보다가 보슬비님 리뷰도 보았구요.
이 리뷰 올렸더니, 알라딘이 <보슬비님도 ‘화성연대기‘를 재미있게 보고 리뷰를 남기셨다>고 알려주세요.
친절한 보슬비님, 친절한 북플^^

책읽는나무 2019-03-02 0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과 보슬비님 댓글의 일치된 조화!!
ㅋㅋㅋ
영광이겠습니다^^
저도 어떤 작가님이 추천한다는 말을 들은후,읽고 싶어요!에 기록한후,쭉쭉 밀려나버려 잊고 있었네요.
아쉽게도 저희 도서관엔 없더라는...ㅜㅜ
희망도서 신청이라도 해야겠어요.

단발머리 2019-03-02 08:06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오늘 아침에는 북플과 보슬비님이 모두 레이브래드버리를 응원해 주시네요.

희망도서 신청하신다는 생각에는 엄청 찬성합니다만,
아쉽게도 이 책이 절판이라서요 ㅠㅠ
저도 책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책으로 읽었지만, 그래도 이게 웬떡이냐! 하면서 감지덕지 읽었습니다.
근처 다른 도서관에서라도 책나무님도 이 책을 만나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