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가 <정체성의 정치에서 횡단의 정치로>인 이 책을 저번주부터 다시 읽고 있다.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책을 야무지게 탁 펼쳐서는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는데 왠지 느낌이 좋았다. 이해가 되는 듯하고,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아, 이렇게 나의 페미니즘 성장판이 열리는구나. 내게도 축복의 시간이 오고야 마는구나. 찰나와 같은 환호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쳐가고 나는 또 다시 묻고야 만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그저께 강연은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라 진행되다 보니 들리는 대로 적고 소리나는 대로 받아 적었다. 집에 돌아와 노트를 펼쳐보니, 이런 메모가 있다.
‘호미 바바’가 뭔지 모르겠다. 사람 이름인가. 포지션에 대해 말한 사람인가. 처음 듣는 이름인데. 다시 <젠더와 민족>을 펼친다. 아직도 44쪽.
세상에. 여기에 호미 바바가 있다. 호미 바바. 누구이며 무엇인지 모르는 호미 바바가 여기에 있다. 그저께 만난 호미 바바가 오늘 여기, 내가 읽는 책에 등장한다. 호미 바바가. 흥분한 나는 읽던 책을 들고 큰애에게 달려간다. 세상에, 호미 바바가 여기에 있다고. 그저께 만난 호미 바바가 오늘 여기 내가 읽는 책에 등장했다고. 존재하지도 몰랐던 사람이, 여기 내 앞에 나타났다고. 우주가 나를 돕는다고. 페미니즘 우주가 내게 오고 있다고 큰애에게 힘주어 말한다. 시크한 큰애의 한 마디가 들뜬 나를 진정시킨다. 엄마, 그냥 검색하면 되지. 모르면 검색하면 돼요. 검색? 큰애는 구글에서, 나는 네이버에서 검색한다. 그리고는 알게 된다. 호미 바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희진처럼 읽기』를 찾아서 목차를 살핀다. 있다.
하이브리디티(hybridity)는 유명한 용어다. 국정홍보처의 정기 간행물에도 남발되는 말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의 핵심 용어로 혼성성, 잡종성으로 번역한다. 이종 식물을 교배하여 제3의 종을 만드는 원예학에서 유래했지만, 호미 바바(Homi Bhabha)의 『문화의 위치』를 계기로 하여 근대성 논쟁의 전환점이 되었다. 사실 이 책은 혼성성 개념만 다루기에는 아쉬운, 한 문장 한 문장이 이론인 당대의 고전이다. (227쪽)
이럴 수가. 아니, 이게 뭐니. 아니, 내 이럴 줄 알았어. 호미 바바는 그저께 내게 온 게 아니었다. 호미 바바는 4년 전, 이미 내게 왔었다. 이렇게.
결론이라고 한다면, 난 『젠더와 민족』 세 번째 도전 중이고, 나의 페미니즘 성장판은 아직도 열리지 않아 이 책은 어려우며, 페미니즘 우주가 나를 돕는 것 같다는 소박한 믿음은 여지 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냥 지나가면 서운하니 관심 가는 문단 하나를 옮겨본다.
계보와 혈통을 민족 집단체의 주요 조직 원리로 주목하는 민족주의 기획은 다른 민족주의 기획보다 더 배타적인 경향이 있다. 오직 출생을 통해 특정 집단체에 들어가야 그 집단체의 완벽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때문에 결혼, 출산 그리고 이에 따른 섹슈얼리티의 통제야말로 매우 높은 수준의 민족주의 안건이 될 것이다. ‘인종’ 구성체들에 공통의 유전자 풀 개념을 첨가하면, 민족주의 담론의 중심은 이종족혼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그 극단에는 ‘열등 인종’ 구성원들의 ‘피 한 방울’이라도 존재하면 ‘우월 인종’을 ‘오염’시키고 ‘공해’가 될 수 있다는 ‘한-방울-법칙’One-Drop Rule이 포함된다. (Davis, 1993) (52쪽)
이제 진짜 읽어야겠다. 오늘의 독서, 『젠더와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