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은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10 9절과 10절에서 왔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배에는 쓰나 입에는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 10:9-10) 




신학교 교수가 되려 했으나 계획에 없던 일들을 통해 목사가 되고 역시나 우연한 일들을 통해 29 간의 목회 활동을 접고 10여년간의 번역 작업을 통해 『Message』 성경을 내놓은 저자 유진 피터슨은 구절을 이렇게 설명한다. 대부분 성경과의 경험은 달콤하다. 책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에 감동하고, 우리 인생에 대한 충고를 받아들이고, 어둡고 외로운 시기에 위로를 있는 시편의 몇몇 구절을 외우게 된다.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는 책에 있는 전부가 우리 기호에 맞지 않는다는 알게 된다. 시작은 단데, 나중에 보니 받아들이기에 편안하지 않다는 뜻이다. 




성경을 꼼꼼하게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익숙한 것과 얼마나특이하게 다르고 불친절한지 보며 놀라게 된다. 성경은쉽게 읽을 없는책이다. (123)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때까지 읽은 책은 대부분 신앙서적이었다. 성경과 신앙서적. 성경과 신앙서적을 많이 읽었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책을 거의 읽지 않은 그나마 성경과 신앙서적은 계속해서 읽었다는 뜻이다. 성경읽기와 묵상은 내게 최초의 읽기 활동이었다. 나는 성경을 천천히 읽었다. 상상하면서 읽었다. 항상은 아니었지만, 수천년 이스라엘의 이야기와 성경 예수님의 말씀이 나의 현실로 흘러들어오곤 했. 



유진 피터슨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민족이 정착했던 가나안 지역의 다른 민족들과 이스라엘 민족간에 신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설명했다. , 가나안의 다른 민족들이 남신과 여신을 조종하여 선의를 베풀게 하기 위해 주술을 고안하고 사용한데 반해, 이스라엘은 그러한 주술적인 종교 기술을 전부 완강하게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는 모세의 율법, 구체적이고 세세한 규례를 통해 엄격하게 지켜졌는데, 주술적 의도가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일체의 행위가 금지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있기 때문이었다.(267) 



성경 읽기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한다. 생각없이 경건하게 성경을 인용하는 바로 그러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탈육화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201), 성경을 읽을 때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그것이 무엇이라 말하는가?” 아니라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그것을 있는가?”라는 (301). 독서 여정의 최초가 분명한 성경 읽기는 독서 여정의 최후가 것이다. 내가 읽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그것을 속에서 어떻게 이뤄갈 것인가. 





한국에 소개된 유진 피터슨의 단행본들을 거의 대부분 번역한 양혜원님은 엄마와 사모와 번역가라는 3 역할의 풍경을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라는 책에서 그려냈다. 마흔이 넘어 홀로 유학길에 올라 종교여성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의 치열한 과정을 정리해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이라는 책을 묶어냈다. 그녀조차도, 사모이며, 유진 피터슨의 책을 번역했던 그녀조차도 한참 페미니즘을 공부할 때는 성경을 읽지 했다고, 읽을 없었다고 말했다. 
















































먼저는유진 피터슨의 영성 시리즈나머지 4권을 읽고, 이어서양혜원 읽기로 한다. 성경을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걱정스러운 나를 위해. 부제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길이 다른 이유, 알아야 사람이 있다면, 현재까지 내가 아는 사람은 내가 분명하기에. 다시 나를 위해. 




읽는다. 





영적 독서가 정보를 경멸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표는 지혜다. , 단지 인생에 대한 어떤 사실들을 알거나 타이어 교체하는 법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선해지는 목표다. (306) 




내가 특별히 더 즐거워했던 것은 여기에서 ‘으르렁거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하가’, hagah)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을 설명하면서 그들을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2절)라고 한 것처럼 주로 ‘묵상하다’ (meditate)로 번역되는 단어였다. 혹은 시편 63편의 말씀도 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6절, 개역한글). (21쪽)

모든 진지하고 좋은 글은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반추하면서 여유롭게, 정보를 게걸스럽게 취하지 않고 단어를 가지고 유희하듯이 놀며 읽는 것이다.(22쪽)

‘렉티오 디비나’.

텍스트를 질문과 대답, 개념 정의와 교의로 탈인격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독서 방식. (161쪽)

묵상은 성경 읽기를 분해해서 단절된 신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에 대항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묵상은 일관된 하나님의 계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묵상은 텍스트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상상력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을 공상 혹은 환상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 … 묵상은 침입이 아니라 반추다… 참여가 중요하다. 묵상은 바로 참여다. (180쪽)

모든 기도의 기본 전제는 하나님이 언어를 통해서 자신을 인격적으로 계시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신비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말을 들으신다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신비다. (183쪽)

기도할 때 우리는 가장 자기답다. 기도는 우리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그리고 반드시 자기 자신이어야 하는 유일한 행위다. (189쪽)

예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우리 삶과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로 내려오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며 얼마나 공손하게 기도하는지를 보시고 인정해 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우리 삶이 그 하나님께로 올라가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261쪽)

나는 비인격적으로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읽는 사람, 단지 자신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을 살기 위해서 성경 읽기를 배우는 사람들의 무리를 모으고 싶었다. 나는 성경을 스스로 자신의 신이 될 수 있는 종교적인 자료를 모으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준비가 된 태도를 저버리는 소비자의 방식에 대항하고 싶었다.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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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18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셔요 학구열! <물총새 ...>진짜 좋던데...아껴서 읽고 있네요 유진 피터슨의 예레미야 이야기도 좋더라구요 다윗은 당연하고^^

단발머리 2018-12-18 18:56   좋아요 1 | URL
이렇게 격하게 환영해 주시니 너무 좋은데요, 카알벨루치님^^
저도 <물총새.... > 반 정도 읽었는데, 아직 반이 남아 있습니다. 근데, 유진 피터슨의 예레미야 이야기가 뭘까요?
다윗은 저도 읽어봤는데, 예레미야 관련 책이 있는가요?

카알벨루치 2018-12-18 19:05   좋아요 0 | URL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가 있습니다 ㅎ

단발머리 2018-12-18 19:08   좋아요 1 | URL
아하.... 그렇군요. 제목이 참, 아멘이네요.
저도 얼른 찾아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