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학자이신 김시덕 작가의 글을 좋아합니다. 임진왜란을 ‘근세 일본’의 시각에서 바라본 그의 글은 신선했고 그래서 그의 다른 저서도 더 읽고 싶었습니다.
김 작가가 쓴 ‘그들이 본 임진왜란 (학고재,2012)’의 일독을 권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조선 중기에 발생한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전쟁사보다는 서울의 현대도시개발사를 더 주력으로 읽고 있는데 ‘서울선언 ( 열린책들, 2018)’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서울 답사기’입니다. 현대 서울이 답사할 곳이 어디있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그건 이 분들이 자신들이 매일 보는 풍경에 무관심해서 하는 질문일 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기본적으로 저자와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저자가 4장에서 언급한 대로 저 역시 ‘ 백년 전 망한 조선왕조의 유적을 복원하자고 근현대 서울의 유산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합니다.

10여년 전 부터 사진 찍으러 서울 시내를 다니면서 ‘서울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느꼈고, 왜 모든 건물들과 경관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것’에 집착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가 우스운 것이 일상의 경험이 묻어있는 소소한 공간이나 사람들이 살아왔던 골목길의 살림집은 ‘보전 가치’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왕조 시대 양반들의 흔적은 가치가 있고 서울에 사는 보통 사람의 인생의 흔적은 부정하는 것으로 보여 황당했습니다.

오세훈 시장 시절 사진 찍으러 다니며 보았던 청진동 골목길과 피맛골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황당하고 허망했습니다.

재개발의 민낯을 처음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이제 일제시대 이후로 내려오던 청진동의 분위기는 다 사라져 버리고 어디에나 있는 고층 빌딩으로 구역 자체가 변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일반 서울시민들이 살아온 건물들과 구역들이 돈을 쫓아 무지막지하게 재개발 되는 것도, 일제시대와 해방구 현대 한국의 모습을 증언하는 옛 콘크리트 건물들이 ‘조선시대 유적’을 복원한다는 명분아래 파괴되는 것도 반대합니다.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책의 3장 ‘1925년 을축년 대홍수의 문화사’와 4장 ‘최초의 강남을 걷다: 영등포에서 흑석동까지’ 두 글입니다.

우선 ‘을축년 대홍수’에 대해 여러 책에서 언급되는 경우를 봤지만 별도의 장으로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한 글은 이 글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글은 이 대홍수가 영등포의 공단지역과 잠실섬 주변과 현재 강남의 한강변 그리고 현재 이촌동 지역에 얼마나 피해를 입혔는지 당시의 기록과 피해상황을 담은 지도를 가지고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저는 단행본 한권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을축년 대홍수’에 대한 저서가 없다는 점은 정말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4장의 ‘최초의 강남 ‘에 대한 글로 식민지 시대 현재의 영등포 공단지역과 노량진, 흑석동 일대를 일제가 최초의 ‘강남’으로 건설한 내력이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노량진과 흑석동 일대는 일제에 의해 개발된 유원지였고 당시 조성된 전원도시와 베드타운이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아는 현대의 강남이 왜 개발 초기 ‘영동’즉 영등포의 동쪽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연원을 알 수 있습니다.

을축년 대홍수로 수 많은 이재민들이 생기자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마포 일대에 일제는 신시가지를 조성했고, 용산지역도 일제가 조성한 신시가지 였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용산에 미군이 들어오기 전 일본군이 주둔했었고 일제는 청계천의 남쪽인 명동에서부터 남산 주변의 용산과 이촌동 주변을 개발했고 경인 지역과 연계해서 영등포 지역을 공단지역으로 조성했습니다.

이 책이 답사기이지만 특히 강남 개발 이전 서울의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고 설명해 준다는 점이 강점인 것 같습니다.

건축적입자이나 도시계획을 입장이 아닌 근현대 역사가의 입장 또는 문헌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설명 내용 역시 신선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서울 사대문 밖’에서 살아온 서울시민들을 대변해서 하신 주장을 소개하려 합니다.

저 역시 여지껏 사대문 안에서 살아온 경험이 없어 저자의 입장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서울시민 대다수는 조선시대 한양인 <사대문 안> 보다 사대문 밖에서 살고 있고 따라서 현재 <대서울> 즉 서울의 생활권인 서울 외곽지역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 대한 삶과 그 흔적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현실은 이 지역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사대문 안의 흔적과 유적만 보전하는 실정이며 <사대문 밖>의 유물과 유적에 대해 보존과 기록보다무관심으로 일관하며 편의적으로 기억을 없애거나 조작해 역사왜곡에 이르는 위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찌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도 있는 그대로 보전하고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있었던 사실을 일단 그대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빙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소위 엘리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자의적 판단으로 기록 자체를 삭제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것이라는 점를 지적하고 싶네요.

이책의 후속편 ‘갈등 도시(열린책들,2019)’도 조만간 읽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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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루이스 (Michael Lewis)라는 작가는 런던정경대 (LSE)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월가에서 채권 세일즈맨 ( Bond Salesman)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 경제관련 논픽션 전문작가입니다.

따라서 그가 쓴 모든 작품에 경제적인 시각이 들어가는 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브레드 피트 주연의 영화 ‘ Moneyball (2011)’ 을 보고 나서 원작을 한번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다분히 미국적인 시각이 다분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이클 루이스라는 작가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게 본 영화 원작이기도 해서 가볍게 읽기 시작한 책이지만 조직운영의 관점에서나 경제적인 관점에서나 주제 자체가 결코 가볍지는 않습니다.

내용이야 영화를 보시면 되니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고,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와 관련하여 몇가지 인상적인 면을 언급하고 조직운영과 조직원들의 성과에 대한 몇가지 시사점을 살피고자 합니다.

첫째, 이 이야기는 미 메이저리그 구단의 이야기이지만 상당 부분 야구통계 ( baseball statistics or sabermetrics)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오랜기간 프로야구 선수들의 성과( performance)가 정확한 통계에 의하지 않고 단지 관전(watching)에 의한 것이므로 잘못된 것이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빌 제임스( Bill James)의 주장이 4장 전체를 차지합니다.

야구팀이 득점을 하기위해 가장 필요한 지표는 OPS (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 +장타율)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따라서 공격력이 다른 어떤 요소보다 우선시되는 필승전략이 되는 것이죠.

둘째, 이 이야기는 전통적 야구단 경영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구단을 운영해서 성공한 이야기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의 프로야구 버전으로 보시면 됩니다. 야구단 구단주들이 프로야구 선수들의 성과 (performance) 에 대한 정확한 평가없이 엄청난 거금을 들여 스카우트 하고 팀 성적과 관련 없는 경기결과에 대한 수치를 이야기해서 결국 효율적 구단 운영이 불가능해지고 이는 성적부진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가지고 있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되고 같은 성과를 올리는 선수라면 더 싼 선수를 쓰게 됩니다. 오클랜드의 총감독 (General Manager) 빌리 빈 (Billy Beane)은 효율적인 구단 운영으로 팀을2000년 91승, 2001년 102승을 올리게 하고 두해 모두 플레이 오프에 진출시킵니다.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 와 같은 부자구단은 스타 선수를 스카우트하는데 거액을 뿌릴 여력이 되지만 오클랜드와 같은 구단은 한창 때의 스타선수를 스카우트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때 스타였으나 나이가 많은 선수를 싼 값에 데려오거나 아마추어 대학 선수들 중 기록이 좋은 선수들을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습니다.

나이가 중요한 요소인 미 프로야구에서 스카우터들은 대체로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고교 졸업 선수들을 전통적으로 선호해왔지만 빌리 빈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미 대학 선수들 중 좋은 선수들을 뽑습니다. 따라서 프로 야구 관계자 중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던 숨은 제목들이 나중에 거포로 자라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셋째, 결국 사람이 하는 프로야구는 ‘어떤 선수를 뽑을 것인가?’ 라는 문제와 ‘선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구단 운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선수를 어떻게 알아볼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는데 그 기준은 결국 OPS 라는 말입니다.

프로야구단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해서 위의 시가지를 언급했지만 특히 마지막의 인재등용과 평가문제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첨예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그 인재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고 보상할 시스템을 사용자는 가지고 있는가는 영리든 비영리든 모든 조직이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이 책에서 보듯 야구선수의 성과를 나타내는 통계가 잘못 사용 또는 오용되어 팀의 승수와 별 상관없는 ‘슬러거의 힘’ 이나 ‘도루 능력’이 고평가되어 있는 반면 ‘출루율’ 과 같은 지표는 저평가되어 있는 경우가 다른 분야도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10여년 저술된 책이고 이 책 발간 이후 야구계가 변해 성과지표가 책에 나온 20여년 전 상황과 지금 다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야구를 떠나 모든 전문 영역에서 자신들이 한 일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그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받았는지는 ‘노사관계 ‘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것 만으로도 이 작은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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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의 오랜 독자로서 읽어본 이 책은 2006년 출판된 오래된 책이지만 서울 강남지역을 본격적으로 고찰한 책으로 의의가 있습니다.

‘강남개발사 (江南開發史)’를 이야기할 때 이 책은 도시계획, 도시경제학, 도시사회학, 지리학 등 관련학자들이 글을 쓸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필독도서이기도 합니다.

강준만 교수께서 지난 30여년간 언론학자로서는 독특하게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사회비평과 정치비평을 해오시고 한국 근현대사관련 저술도 해오셔서 이런 저서도 출간하지 않으셨나 추정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강준만 교수의 초기 저서 중 기억에 남는 정치비평서 ‘ 김대중 죽이기 (개마고원,1995)’입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전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주장한 책으로 당시로서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강남 개발의 역사를 거의 처음 단독으로 다루어서 이후 나온 연구서들의 촉매제가 된 책으로 제가 이전에 다루었던 ‘ 강남의 탄생(미지북스,2016)’도 저자들이 직접 이책의 ‘도시계획적 관점’을 보완하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고, 논문집인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가기( 동녘, 2017)’도 수록된 논문이 거의 모두 이 책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강남 개발 당시에 언론에서 바라본 강남 개발의 모습이 수많은 신문, 잡지 기사들을 인용해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피상적이고 단편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신문기사는 현대사 연구의 일차적 사료라는 점에서 출처가 인용되지 않은 다른 저서보다 일단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제7장 2004-2006년 강남 죽이기 논쟁’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소위 보수 언론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이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 상당히 자세한 기사인용을 가지고 다루어져 있습니다.

이들 언론들은 당시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의 일환으로 강남을 목표로 한 것에 대해 ‘강남북 편가르기’ 니 ‘강남 죽이기’라며 과도하고 악의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논란을 자초한 데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권 인사들의 거친 발언도 한몫 한 것이 분명하지만 보수 일간지 사설과 기사에서도 악의적 팩트 왜곡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통계왜곡 논쟁’으로 당시 정부가 국내 상위 1% 국민이 전체 국토의 60%이상을 소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일간지들이 이 통계가 과장 왜곡되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 당시 대기업들이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집해 사회문제가 된 전력이 있는데다 땅부자들이 차명이나 미성년자들에게 본인의 부동산을 등기하는 관행으로 미루엎보아 통계가 현실을 왜곡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1990년대 말 IMF 구제 금융 시기를 거치며 한국은 더이상 계층 상승 이동이 불가능한 일종의 ‘계급사회’로 굳어진 마당에 1%의 땅부자들이 국토 6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정부 통계발표가 어떻게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숨기고 싶은 사실을 드러나자 호들갑 떨며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소위 보수 언론들이 노무현 정권이 강남을 적대적으로 대하고 ‘편가르기’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별짓기’와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강남 주민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참여정부가 편가르기를 주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황당한 주장입니다.

2020년 현재도 상황이 별로 바뀌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책이 집필될 2005-2006년 당시에 이미 건설교통부 고위관료의 44%가 강남에 거주하고 있고 강남의 아파트 평균가격이 이미 강북지역의 2배가 넘는 상황인데도 역시 강남 거주자일 것으로 추정되는 보수 일간지 논설의원은 노무현 정부가 강남과 강북,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나누어 국민을 분열시킨다고 주장하는데, 제가 보기에 이들의 주장은 ‘불안하니 있는 사실을 덮자’라는 것으로 들립니다.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하기’ 전략이라고 할까요?

보수언론인들의 저의를 의심하는 이유는 이들이 ‘부동산 투기’에 연루된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부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분양 당시부터 ‘특혜분양’스캔들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현대건설 사원용으로 건설된 일부 물량에 대해 정부 고위관료, 국회의원,군인, 공공기관 임원 그리고 상당수의 언론인들이 특혜분양을 받았고 이들의 명단을 언론에 공표합니다. 이 때가 1978년 6월 30일입니다. 총 600여명의 연루 ‘사회지도층 인사’ 중 언론인이 34명입니다(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p69-71)

유신 말기니까 너무 옛날 사례라고 할 수 있지만 2020년 현재 MBN같은 종편은 부동산 임대업을 하기 위한 법인 분할로 시끄럽고 다른 언론사들도 부동산 이권과 무관하지 않은 마당에 이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이전에 읽은 강남 관련 논문에서 강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강남이라는 지역과 사회를 굉장히 좁게 인식하고 ( 예를 들어 강남구만 강남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강남 내에서도 테헤란로 북쪽 비역과 남쪽지역을 나누어 구별하고, 강남사회를 자신과 일상을 공유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규정하여, 그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 ‘강남’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강남의 심상규모와 경계짓기의 논리, 이향아 & 이동헌).

이 논문에 따르면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히 ‘구별짓기’ 성향이 강하고 따라서 굳이 편가르기를 누가 주도하는가를 말한다면 강남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 정권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압축성장과 압축도시화는 강남이라는 계획도시를 단 30여년 만에 만들어 놓았고, 투기적 도시성을 특징으로 하는 특유의 아파트 대단지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군사주의적 효율성을 모토로 이촌향도로 늘어나는 서울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파트라는 표준적인 공동거주공간을 만들고, 인구 분산수용이라는 안보적 이유와 자신들을 지지하는 계층을 의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아파트의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왜곡해 분양가를 낮춰 시가의 차액의 보전을 허용합니다. 이 차액으로 인해 강남불패의 부동산 폭등이 시작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지 40년이 넘은 지금도 이 매카니즘은 기본적으로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산업화의 시대가 끝났지만 부동산 시장은 아직도 산업화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죠.

분명히 주거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부동산 시장도 바뀌어야 할텐데 변화보다 충격이 먼저 오지 않을까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아직도 일제 시대를 살았던 원로들이 생존해 있고 이들이 일본식 제도를 이식해 넣은 상황에서 주택 시장이 일본의 버블 붕괴처럼 작동하지 않으리란 장담을 누구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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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황정은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습니다.

출간된지 10년이나 된 소설을 이제야 읽었는데 내용을 떠나 문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독서가 대부분 논픽션이나 역사, 경제 관련이다 보니 소설을 상대적으로 덜 읽게 되는데 적당한 길이에 간결하지만 힘있는 문체를 경험하게 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각각의 소설들은 단문으로 현실을 묘사하고 대화를 이어가는데 군더더기가 없어 좋았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글은 97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오무사’ 입니다.
구도심의 사십여년 된 오래된 전자상가에서 전구를 팔고 있는 노인과 그 가게의 이미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전구를 판매하는 가게였으나 가게를 밝히는 전구라고는 벽에걸린 노랗고 푸른 알전구 다발뿐이었다.

빽빽하다.

라는 말을 사전에서 만든다면 아마 그런 광경일 것

이 틀림 없었다.

그야말로 빽빽하다.

라고 생각한 뒤엔 아무런 말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눈앞

이 빽빽했다

- p102


최근에 읽은 어떤 글보다 정확하고 명징한 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무대가 구도심에 자리한 오래된 전자상가이고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에 따라 그 장소의 역사적 두께와 지층이 같이 사라져버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처연하기도 하고 ‘개발’의 이름으로 역사와 삶을 밀어버리는 무식한 짓을 군사독재자가 죽은지 40여년이 지나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냉면집이 있는 을지로의 파헤쳐진 공사장이 생각났고, 소설에 묘사된 전자상가를 보며 종로의 낙원상가와 세운상가가 겹쳐보이기도 했습니다.

읽어보니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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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황두진 건축가가 제안하는 대안 건축 유형으로 매스컴에서 소개해 화제가 되었던 ‘무지개떡 건축 ‘ 유형에 대한 일종의 이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서라고 언급한 이유는 이 책이 ‘무지개떡 건축 ‘이라는 대안적 건축 유형에 대한 개념과 그 대안을 제시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무지개떡 건축’이란 주상복합 건축의 한 유형으로 저층, 중층, 상층부에 각각 다른 용도의 기능을 넣는 방식의 건축 방식을 말합니다. 복합이라는 개념은 주거와 짝을 이루는 다른 기능, 즉 상업 기능이나 공공시설 같은 가능이 한 건축물 안에 공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주인구와 유동인구를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고 대부분 저층부에 위치한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상업 시설을 통해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현재 단일 용도로 구획지어진 현재 서울의 도시 형태는 결국 도시의 팽창 ( urban sprawl)을 유발해 도시 주변의 환경을 파괴하고 이런 수평적 팽창으로 에너지 비효율과 교통비용 증가, 그리고 출퇴근 시간의 증가로 삶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서울의 도시형태를 바꾸기 위해 본격적 주상복합건축물인 무지개떡 건축을 통해 도시의 밀도를 높이고 수평적 팽창이 아닌 수직적 팽창을 통해 적은 대지를 사용해 결국 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 편견일 수도 있고 사실( fact) 와 전혀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역사적 관점에서 서울이 어떻게 ‘수평적 팽창’- 강남으로 잠실로 그리고 목동과 상계동으로-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서울이 어떻게 세계에서 유래를 찿을 수 없이 빠르게 도시화되면서 ‘아파트 숲’이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준 것이라면, 이 책은 서울의 수평적 팽창을 막으면서 아파트의 대안으로 주상복합건축의 한 유형을 제안하는데 있습니다.

실제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그 제안 자체로서 출발점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책의 도입부에 한국에서 잘못 이해되고 있는 주상복합의 개념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즉 한국에서는 건축회사의 돈벌이 수단으로 ‘주상복합’건축물이 지어지고 이름과 다르게 거주공간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책의 자매편인 ‘도시적인 삶(2017)’을 곧 읽을 예정이며, 고밀도의 도시가 더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을 담은 Edward Glaeser의 ‘Triumph of the City (2012)’도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흔히 한국의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발전을 한국의 특징으로 자랑스러워 하는데 저는 시각을 조금 달리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거의 200년 가까이 걸린 도시화를 한세대, 즉 약 30여년에 걸쳐 이룬 것이 과연 자랑할만한 것인지 의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군사독재정권이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여 수용소처럼 주거지를 찍어낸 것이 서울의 도시화였고 이를 위해 농업을 버렸습나다. 모든 가치가 ‘속도’에만 집중된 상황은 절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효율적으로 건축물 짓는 방법을 몰라서 오랜 시간 도시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삶을 생각하고 각기 다른 건축물의 개성을 생각한다면 결코 ‘속도’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현 여부를 떠나 건축 전문가들이 획일적인 도시 경관을 바꿀 대안을 찿기 시작한다는 점에서는 일단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주근접(職住近接)에 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 책에서 언급한 직주근접, 즉 직장과 거주지가 가까워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은 코로나라는 돌발 변수로 인해 의외로 우리에게 빨리 다가왔습니다. 직주근접의 한 방식으로 거론된 ‘재택근무’는 코로나 발발을 계기로 꽤 심각하게 대안적 업무방식으로 거론되고 있고 주택의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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