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학자이신 김시덕 작가의 글을 좋아합니다. 임진왜란을 ‘근세 일본’의 시각에서 바라본 그의 글은 신선했고 그래서 그의 다른 저서도 더 읽고 싶었습니다.
김 작가가 쓴 ‘그들이 본 임진왜란 (학고재,2012)’의 일독을 권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조선 중기에 발생한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전쟁사보다는 서울의 현대도시개발사를 더 주력으로 읽고 있는데 ‘서울선언 ( 열린책들, 2018)’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서울 답사기’입니다. 현대 서울이 답사할 곳이 어디있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그건 이 분들이 자신들이 매일 보는 풍경에 무관심해서 하는 질문일 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기본적으로 저자와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저자가 4장에서 언급한 대로 저 역시 ‘ 백년 전 망한 조선왕조의 유적을 복원하자고 근현대 서울의 유산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합니다.
10여년 전 부터 사진 찍으러 서울 시내를 다니면서 ‘서울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느꼈고, 왜 모든 건물들과 경관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것’에 집착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가 우스운 것이 일상의 경험이 묻어있는 소소한 공간이나 사람들이 살아왔던 골목길의 살림집은 ‘보전 가치’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왕조 시대 양반들의 흔적은 가치가 있고 서울에 사는 보통 사람의 인생의 흔적은 부정하는 것으로 보여 황당했습니다.
오세훈 시장 시절 사진 찍으러 다니며 보았던 청진동 골목길과 피맛골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황당하고 허망했습니다.
재개발의 민낯을 처음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이제 일제시대 이후로 내려오던 청진동의 분위기는 다 사라져 버리고 어디에나 있는 고층 빌딩으로 구역 자체가 변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일반 서울시민들이 살아온 건물들과 구역들이 돈을 쫓아 무지막지하게 재개발 되는 것도, 일제시대와 해방구 현대 한국의 모습을 증언하는 옛 콘크리트 건물들이 ‘조선시대 유적’을 복원한다는 명분아래 파괴되는 것도 반대합니다.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책의 3장 ‘1925년 을축년 대홍수의 문화사’와 4장 ‘최초의 강남을 걷다: 영등포에서 흑석동까지’ 두 글입니다.
우선 ‘을축년 대홍수’에 대해 여러 책에서 언급되는 경우를 봤지만 별도의 장으로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한 글은 이 글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글은 이 대홍수가 영등포의 공단지역과 잠실섬 주변과 현재 강남의 한강변 그리고 현재 이촌동 지역에 얼마나 피해를 입혔는지 당시의 기록과 피해상황을 담은 지도를 가지고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저는 단행본 한권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을축년 대홍수’에 대한 저서가 없다는 점은 정말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4장의 ‘최초의 강남 ‘에 대한 글로 식민지 시대 현재의 영등포 공단지역과 노량진, 흑석동 일대를 일제가 최초의 ‘강남’으로 건설한 내력이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노량진과 흑석동 일대는 일제에 의해 개발된 유원지였고 당시 조성된 전원도시와 베드타운이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아는 현대의 강남이 왜 개발 초기 ‘영동’즉 영등포의 동쪽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연원을 알 수 있습니다.
을축년 대홍수로 수 많은 이재민들이 생기자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마포 일대에 일제는 신시가지를 조성했고, 용산지역도 일제가 조성한 신시가지 였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용산에 미군이 들어오기 전 일본군이 주둔했었고 일제는 청계천의 남쪽인 명동에서부터 남산 주변의 용산과 이촌동 주변을 개발했고 경인 지역과 연계해서 영등포 지역을 공단지역으로 조성했습니다.
이 책이 답사기이지만 특히 강남 개발 이전 서울의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고 설명해 준다는 점이 강점인 것 같습니다.
건축적입자이나 도시계획을 입장이 아닌 근현대 역사가의 입장 또는 문헌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설명 내용 역시 신선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서울 사대문 밖’에서 살아온 서울시민들을 대변해서 하신 주장을 소개하려 합니다.
저 역시 여지껏 사대문 안에서 살아온 경험이 없어 저자의 입장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서울시민 대다수는 조선시대 한양인 <사대문 안> 보다 사대문 밖에서 살고 있고 따라서 현재 <대서울> 즉 서울의 생활권인 서울 외곽지역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 대한 삶과 그 흔적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현실은 이 지역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사대문 안의 흔적과 유적만 보전하는 실정이며 <사대문 밖>의 유물과 유적에 대해 보존과 기록보다무관심으로 일관하며 편의적으로 기억을 없애거나 조작해 역사왜곡에 이르는 위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찌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도 있는 그대로 보전하고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있었던 사실을 일단 그대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빙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소위 엘리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자의적 판단으로 기록 자체를 삭제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것이라는 점를 지적하고 싶네요.
이책의 후속편 ‘갈등 도시(열린책들,2019)’도 조만간 읽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