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 작가의 ‘대서울 답사기’ 두번째 편입니다.

작가님의 포인트는 명확합니다: 사대문 안의 남성 지배층 즉 왕족과 양반들의 유물과 유적만 역사기록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근세와 근대 시기를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인 평민, 노비들의 유물 유적도 삶의 기록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학계와 의사결정 계층에서 아직도 ‘조선시대 양반 중심적 사고’를 가진 분들이 지난 100여년간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들을 너무나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식민지 시대의 주택들, 일식 가옥이나 개량한옥들이 단지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식민지 잔재라는 이유로 파괴되는 것은 지난 100여년간 대서울 지역에서 살아온 평범한 이들의 삶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답사도 사대문 안보다 사대문 밖의 대서울 경계지역과 수도권의 경기도 도시들을 포함합니다. 현재도 대부분 서울과 연관되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사대문 밖에 살고 있고 100여년 전에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편인 ‘ 서울선언(2018)’에서 1936년 출판된 ‘대경성부대관(大京城府大觀)’을 소개하고 영등포와 명동, 용산과 노량진, 흑석동 등 식민지 시대에 일제가 만든 신도시를 소개했는데, 이 지역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1970년대 ‘영동개발’하기 이전 현대 서울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책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식민지 시대의 신도시 답사기가 실려 있습니다.

또 제가 관심이 가는 지역은 길음동에서 창동까지 이어지는 서울 동북부 지역입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서울 도심의 철거민들이 동소문 밖으로 이주시켜 만들어진 지역인 미아동, 삼양동 등 삼각산 아래 동네는 제가 유년시절을 보낸 지역이기도 해서 더 관심이 갔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상계동 중계동 지역은 제가 중학생이던 1980년대 중반만 해도 확연한 농촌지역으로 끝없이 펼쳐졌던 논밭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시절 1988년 올림픽 이전까지 재개발되어 현재의 아파트단지가 되었습니다. 대학시절까지 창동역 인근의 아파트단지애서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 도심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지역이고 특별한 산업기능이 없어 현재는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사는 주거지역이라는 점이 이 지역의 특징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삼양동과 장위동 지역은 제가 어렸을 때 본 바로는 엄청나게 큰 달동네 지역이었습니다. 장위동 지역은 산동네 전체가 재개발되었습니다.

영등포는 일제 시대부터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대였으나 공장들이 구로 부평 등 서울 외곽지역으로 이전되고 공장부지들이 모두 고층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되었습니다.

노량진과 흑석동도 아직 식민지 시대의 도시개발계획에 따른 길과 구획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아직도 현대의 서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현대 서울의 공간은 사실상 조선의 영향보다 식민지 시대의 도시계획에 더 큰 영향을 받았고 따라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라는 이유로 현재 서민들의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을 밀어버리고 순전히 경제적인 판단으로 일률적인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아파트만 짓는다면 한국인들은 그냥 역사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될 뿐입니다.

따라서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식민지 시대와 광복 이후 지어진 옛 건물들을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에 문제가 있거나 주거 또는 상업적 용도로 쓰기가 곤란할 경우가 아니라면 시간의 흔적이 있는 건물들을 잘 관리해서 쓰면 되는데 국민 모두가 토건 산업의 논리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울의 역사가’이천여년’이나 되었다고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에서 ‘서울2천년사’라고 관찬 역사서까지 펴내고 있지만 서울에서 1500여년 전인 한성백제의 유적지는 거의 찿아볼 수 없습니다.

삼성동 토성은 1970년대 ‘영동개발’로 흔적만 남기고 파괴되었고, 풍납토성도 일부 유실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전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식민지 시대부터 서민들이 살던 일식 가옥과 개량한옥들이 무수하게 없어졌습니다.

편협한 조선시대 중심 사고 방식에 갖혀 스스로 현대에 살아온 역사의 흔적을 파괴해 왔다는 점에서 이 나라의 위정자들과 의사결정권자들은 자신들의 결정에 책임을 저야하고 앞으로 이런 무자비한 일들은 줄어들어야 합니다.

유럽의 나라에 다녀와서 그 나라 사람들이 옛 건물을 고쳐살고 있는 걸 보고왔다면 한국에서 그런 방식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텐데, 편리한 새 아파트가 좋다고 그 이전 세대들이 살던 주거지를 밀어버리고 재개발을 하면서 ‘서울에 유적이 없’느니 하는 주장을 하는 건 ‘분열적’ 사고방식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작가님께서 책에서 언급하신대로 서울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예전 서울 거리에 사진을 찍으러 나가면 늘 가던 공간의 풍경이 너무 자주 바뀌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놓지 않으면 그 풍경은 영영 볼 수 없을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서울은 전례가 없이 빨리 도시화가 되고 도시지역이 팽창된 지역이고 지가 급등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속도를 기록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거주지를 투자와 교환가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거주지의 원래 목적인 이용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몇년전 어렸을 때 살았던 단독 주택을 찿아가 본적이 있는데 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이 재개발로 헐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만 머물러 살 수는 없지만 고향집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생각보다 상실감이 컸습니다.

‘발전’과 ‘선진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유명한 곳을 찿아가는 답사가 아니고 지난 100여년간 대서울에서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흔적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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