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nshots: How to Nurture the Crazy Ideas That Win Wars, Cure Diseases, and Transform Industries (Paperback) - '룬샷' 원서
Safi Bahcall / St. Martin's Press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쓰기에 앞서 저자의 독특한 이력과 이 책이 철저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시작할까 합니다.

저자는 2대째 ( the second generation) 물리학자 집안 출신으로 역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물리학계를 떠나 민간 산업계(business)로 뛰어들자 부모들이 매우 걱정했다고 합니다. 컨설팅 회사 메킨지를 거쳐 현재 암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테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의 이력은 때로 그가 왜 이 책을 지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이 책에 왜 물리학 개념이 차용되었는지도 설명해 줍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전혀 다른분야에 적용해 보는 방법은 이미 검증된 ‘새로운 설명’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또 한가지, 이 책은 철저한 미국식 ‘혁신’에 대한 글입니다. 당장 한국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일례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압도적인 군사기술력에 놀라 새로운 군사기술의 혁신없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평가를 하고 군부 내에 새로운 군사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개념의 무기와 군사장비 체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학계의 황당하고 실현불가능할 것 같은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예상대로 관료주의에 찌들린 군부 최고위층은 이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군인들은 시기가 언제이든 나라가 어디든 대체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 루즈벨트(FDR)는 학계출신인 이 프로그램의 제안자를 지지해 일을 실현시키고 결국 전쟁에서 이깁니다.

MIT 교수 출신인 바네바 부시 (Vannevar Bush)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런 에피소드가 한국에서 가능할까요? 저는 냉정하게 봤을 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제목인 룬샷 (Loonshot)은 그 사전적 의미가 무시된 프로젝트( a neglected project)라는 말입니다. 이 의미는 ‘황당해서 무시된 프로젝트 ‘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흔히 황당한 생각을 하면 ‘몽상가’라느니 현실감각 없다느니하는 핀잔을 듣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모든 선구자들은 거의 대부분 당대에 ‘바보’취급당했습니다.

하늘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Geocentric theory)이 ‘정설’이던 중세 말 유럽에서 지구가 괘도를 따라 돈다는 지동설(Heliocentric theory)를 주장하는 천문학자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받았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그의 생전 발표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발표된 것은 이론 이유였습니다.

한국의 조직이나 업무체계가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황당한 하지만 창의적이고 여태본적 없는 발명이나 프로젝트를 지지할 수 있는 환경인가 그리고 저자가 강조하듯 한국의 여타 조직의 체계(structure)가 이런 룬샷을 포용할 수 있는가라곶 묻는다면 제 대답은 ‘No’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조직은 제가 경험한 바로는 ‘튀는 사람’을 반기지 않습니다.

참모라고 들어가서 ‘yes man’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이런 환경과 조직 구조에서 일종의 농담처럼 한 말이 실제로 실현이 된다거나 조직 상부에서 ‘실패해도 좋으니 한번 시도해 보라’는 지시를 할 수 있을까요? 예산까지 주면서 말이죠.
전 못한다고 봅니다.

위의 룬샷의 정의에서 ‘무시된 프로젝트’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런 케이스는 황당해서 버려졌거나 서가에 처박혀 있던 아이디어를 되살린다는 의미입니다.

최초 아이디어가 공개될 당시 황당했지만 시간이 지나 실현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저자는 이런 경우를 ‘False Fail’ 즉 실패로 보이지만 실패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즉 과거 황당했던 프로젝트를 ‘재활용’하는 경우입니다.

아무튼 이 책 내용을 다 언급할 필요는 없고 다만 몇가지 포인트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황당한 프로젝트(loonshot)은 P-type/ S-type 두 종류입니다. P-type은 Product와 관련되고 S-type은 Strategy와 관련됩니다. 전자는 기술혁신이나 신기술과 관련이 있고 후자는 기존 기술에 전략만 바뀌면 된다는 것입니다. 전자에 매몰되어 결국 사업이 망한 경우로 미국의 항공사 Pan Am이 소개되고, 후자는 현재도 살아있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입니다. 기술자 출신 회장과 전문경영자 출신 회장의 극명한 경영방식 차이를 보여주죠.

저자는 흔히 언급되는 기존 제품에 대한 꾸준한 혁신( sustainable innovation)과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버리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혁신( disruptive innovation )을 구분하기 어렵고 이론적 주장이라고 언급하는데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 책은 물리학의 상전이(phase transition, 相轉移)개념을 경영조직에 적용한 경우로 즉 물질의 구성요소가 전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온도가 낮아지면 물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다시 물이 되는 것처럼 조직도 동일한 사람과 동일한 CEO가 있어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발조직은 동료들간의 평가를 우선순위로 놓고 각각의 프로젝트 별로 횡적 조직을 이루어야 하며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은 좀더 수직적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타이트한 컨트롤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개발자 조직(loonshot) 과 기존 제품 생산판매조직( franchise)는 분리되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중재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물리학적 개념을 조직론에 차용하는 발상 자체가 일단 놀랍지만 일견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가 문화보다 조직 채계(structure)를 강조하는 건 그래서 이해가 됩니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흥미있는 책입니다.

다만 현대적인 사례뿐만 아니라 상당히 오래된 과학사의 사례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언급된 ‘The Needham Question’은 경제사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쉽지 않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은 유럽인들이 ‘ 중국이 수천년간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종이 화약 나침반 등을 먼저 발명하고도 어떻게 과학혁명은 변방인 서유럽에서 시작되었나?’라는 질문입니다.

일견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서유럽 중심주의가 저변에 깔린 질문으로 경제사적으로는 ‘왜 산업혁명이 서유럽 특히 변방인 영국에서 최초 시작되었나?’ 라는 질문으로 연결되고 결국 ‘왜 서유럽은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고 다른 지역은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집니다.

위의 질문에 나름의 답을 구하는 책들은 아마존에서 검색하면 숱하게 나옵니다.

이 질문은 서양의 19세기 이래의 제국주의적 발전에 대한 ‘우회적 답변’일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외 지역이 정말 발전하지 않은 것이 맞나?’ 라는 또다른 질문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아무튼 꽤 흥미로운 조직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혁신을 위해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흥미로운 ‘미국’의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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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포함 270여쪽에 불과한 작은 책이지만 생태적 관점에서 독도와 일본 시마네현 (島根縣) 오키 제도(隠岐諸島)간의 장기적 역사관계를 조망한 책입니다.

보통의 독도관련서가 국제법적 해양법적 관점에서 국가간의 경계와 그에 따른 분쟁에 촛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독도에 서식하던 독도 강치(Zalophus japonicus, 학명 일본강치)의 멸종과 이를 초래한 일본의 남획과 그에 따른 분쟁과 그 흔적을 따라갑니다.

시간대가 고대 중세 근세 근대를 아우르는데다 한반도 독도의 지방사와 시마네현 오키 제도의 지방사를 아우르는 등 정치사에 가려져 있던 미시사와 구술사가 서술의 일부를 차지합니다.

이 모든 점을 떠나서 황당한 것은 시마네현이라는 일본의 일개 지방 혹은 막부 시대 소국이 자신들 편의대로 ‘자의적으로’ 독도를 자신들의 관할로 정하고 자신들 판단대로 도항 및 어업허가를 내주며 기록을 만들어간 점입니다.

이미 조선시대 안용복이 일본에서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를 주장하고 있고 한반도에서 울릉도 독도의 거리가 더 가깝고 을릉도에서 육안관찰이 가능한데도 조선이 취해온 공도정책 (空島政策)을 빌미로 빈 섬에 일본인들이 먼저 들어가서 살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정황 상 오키의 어민들은 어족자원이 고갈되어 독도 인근에서 조업을 했을 따름이지만 이들은 과거의 자신들의 행적을 근거로 지속적으로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주장합니다.

막부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성립했던 여러 왕조들과 조선으로부터 을릉도 독도 연안의 조업과 무단 상륙에 대한 경고, 그리고 일본 정치가들이 스스로 을릉도 독도 연안에서 조업을 하지 말도록 금지를 했는데도 동해에 가까운 시마네현은 10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끊임없이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나오는 건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이후 더 노골적이고 의도적으로 독도를 병합시킨 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은 저자 주강현 교수가 이전에 지은 ‘환동해 문명사(돌베게,2015)’를 추가로 읽어야 그 전체적인 맥락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가 드물게도 한국에서 ‘해양사(Maritime History)분야를 연구해 오신 분이라 책의 관점을 눈여겨 봐야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환동해 지역은 일본 열도의 북쪽 한반도 동쪽에서 러시아의 오오츠크 해에 이르는 지역으로 짐작되는데 이 지역은 일본의 강치 남획뿐만 아니라 19세기 당시 미국과 일본의 포경업자들이 고래잡이를 하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한국사람들에게 북쪽의 시베리아와 연해주, 홋가이도와 러시아의 경계지역인 사할린과 그 위쪽 캄차카 반도와 배링해협 그리고 이와 연결된 알래스카 지역은 미지의 땅입니다.

러시아 바이칼호 연안이나 알타이 산맥 부근과 몽골지역 그리고 여하를 중심으로 하는 요동지역 등에 대해서는 연구서들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그 이외 다른 북쪽 지방, 북극을 포함해서 전혀 연구가 이루어진 것 같지 않습니다.

‘경계’지역 또는 소위 주변부라고 생각되는 지역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이 정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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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관계사 전문가인 김영수 교수의 책으로는 두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후기 포함 310쪽 가량되는 책이고 뒤에 약 60쪽에 걸친 각주 목록이 있습니다. 참고도서 서지를 마지막에 정리하지 않은 것은 유감입니다.

이책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인 1896년 명성황후 민씨의 외척이자 고종의 심복인 민영환을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의 모스크바 대관식에 러시아 특명전권공사로 파견됩니다. 민영환을 보좌하기 위해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윤치호, 러시아 국적의 김도일, 조선사절단의 사행기록을 위해 유학자 김도련, 그리고 주한러시아공사관 소속 외교관 쉬떼인, 그리고 손희영을 파견합니다.

여기까지는 공식사절단이고 명목상 니콜라이2세의 대관식에 조선사절로 참석하는 것입니다.

고종은 이외 한러비밀교섭을 위해 비공식 비밀 사절단을 파견하는데 이 사절단은 성기운, 주석면, 민경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러시아로 가기 위해 인천, 상하이, 요코하마, 도쿄,밴쿠버, 몬트리올, 뉴욕,리버풀, 런던,베를린, 바르샤바를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합니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 배와 기차로 하는 고된 여행이었죠.

민영환이 모스크바에 온 이유는 고종의 ‘신변보장’을 위해 러시아의 병력 파견을 위한 것과 러시아의 무관을 파견하여 조선군대를 근대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시점에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해서 러시아와 더 밀착한 이후 고종은 러시아의 힘을 빌어 조선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견제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민영환의 러시아 파견은 그 이전에 일어났던 을미사변(乙未事變,1895) 그리고 같은해 일어난 아관파천(1896)과 연속성 상에 있습니다.

을미사변에 관해서는 저자의 ‘미젤의 시기(경인문화사,2012)’를 보시면 됩니다. 일본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대되던 시기에 이전 연구가 일본 측 사료에 근거했던 것과 다르게 러시아 측 사료를 많이 인용했습니다. 러시아의 건축가 사바찐은 건천궁에서 황후가 시행될 당시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서양인이었습니다.

고종이 외세에 의탁해 국가를 안정시키려 했던 사실은 조선 말 19세기 100여년간의 세도정치 (勢道政治) 시기부터 생겨난 지배층의 수탈과 부패 그리고 빈약했던 병력이 원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19세기는 14세기 정도전이 생각했던 이상적 유교정치가 얼마나 왕권의 약화를 초래하고 국력을 피폐하게 할 수 있는지 유교적 관료정치의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1860년대 유신 이후 부지런히 프로이센의 현대적 군사제도를 배우는 동안 조선은 대의명분론에 사로잡혀 사실상 군사재도에 손을 넣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고 조선을 침략하려 하고 동시에 류큐(琉球)와 애조치(蝦夷地)를 복속시키는 와중이어서 고종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전에 읽었던 신용하교수님의 ‘한국개화사상과 개화운동의 지성사(지식산업사,2010)’에서 척족인 민씨 세력 모두 단순히 수구파라고 주당하는지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대한제국은 엄연히 군주국이고, 주권이 군주에게 있기 때문에 군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군주의 ‘신변보장’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더구나 바로 전해 일본인들에게 경복궁에서 황후가 살해되는 참변이 있었기 때문에 군주의 신변보장은 국가의 안보상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 때 대한제국 신하들은 일본의 조선침략을 불가피한 사안으로 생각해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데 협조 내지 방조한 이들과 민영환처럼 고종의 신변보호를 위해 러시아 사행길에 오르고 을사늑약이후 스스로 자결한 신하가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현대의 시각, 즉 민주주의 체제인 2021년 기준으로 민영환과 민씨 척족들의 일들을 단순히 수구파로 매도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권력구조에서 북촌을 장악했던 세도가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 같은데 아직까지 정치사적 측면에서 정밀한 해부를 시도한 책은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정조 사후 63년(창비,2011)이 유일합니다. 이 책은 정조시대와 그 이후 언관(言官)제도의 변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어떻게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규장각 각신이던 김조순(金祖淳)초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일단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민영환의 러시아행 조선사절단의 사행록에 대해 언급할 차례입니다.

위에서 설명했듯 이들의 사행일지는 김득련이 꼼곰히 작성했습니다. ‘환구일록 (環璆日錄,1896)’이라는 글이 말하자면 이 책의 저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득련은 한학자답게 사행을 하며 느낀 감상을 한시로 남겼는데, 이 시집은 ‘환구음초 (環璆唫艸,1896)’라고 합니다.

그리고 같이 사행을 했던 윤치호도 ‘윤치호 일기’라는 방대한 일기를 남겼습니다. 그의 일기는 현재도 국역이 되어 출판된 것으로 압니다.
초기 기독교인으로 미국유학과 파리유학을 경험한 윤치호는 이후 친일로 돌아서는 데, 이미 이 러시아 사행에서도 그 징조가 보입니다. 이 문제적 인물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영환이 김득련의 ‘환구일록’을 기반으로 고쳐 쓴 ‘해천주범(海天秋帆,1896)’ 이 있습니다. 김교수에 따르면 이 두책은 내용이 거의 똑같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메이지 초기 있었던 구미사절단의 행적을 기록한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特命全權大使 米歐回覽實記,1878)’과 비교될만한 이런 기록이 왜 번역되고 연구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난후 19세기 말 조선이 처한 난처한 상황과 한편으로 전근대적인 고종의 시각과 바깥세상의 변화에 관심이 없었던 당시의 정황을 더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7-18세기 중국 사행을 통해 일부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던 조선은 정조 이후 세도정치기에 서학을 탄압하고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한 반면, 일본은 16세기 이후 포르투갈과 이후 네덜란드와 나가사키를 통해 교류를 지속한 것이 일단 눈에 띄게 다른 두 나라의 외세에 대한 입장으로 보입니다.

조선이 16세기 병자호란 이후에도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을 유지하고 내부 정치투쟁에 매몰되었던 사실은 매우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결과적으로 군사제도의 근본인 농민들을 수탈하기만 할 뿐 그 어떤 제대로된 군사력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외세를 맞아 결국 20세기 들어 나라를 일본이 빼앗기게 됩니다.

따라서 척족세력이었던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가문들이 아직도 명문이라고 칭송받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선의 멸망에 일정한 부분 지분이 있습니다. 소위 이들 명문가문들은 말이죠. 자신의 이익만 챙겼는데 왜 존경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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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 - 식민지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의 탈향, 망향, 귀향의 서사
차은정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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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출간한 책으로 ‘한국 출신’일본인들의 ‘일본이주 ‘와 패전이후 이들이 기억하던 ‘식민지 조선’이 1965년 한일정상화 이후의 한국을 통해 어떻게 인식되어지는지 인터뷰와 동창회지, 한국 출신 일본인들의 회고록, 이들과 동창 관계에 있던 소수의 조선인 동창과의 교류를 살펴 봅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식민지 조선에서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 살 때 인식하지 못했던 ‘식민자 ‘로서의 자각을 일본의 패망이후 일본으로 다시 이주한후 일본에서 살아온 일본인들이 자신들을 또 다른 존재로 바라 보았을 때 비로소 느꼈다고 고백한 점입니다.

흔히 일제 강점기를 볼 때 억압받는 조선인들의 입장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분히 민족주의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인데 비해 당시 일본 본토( 내지, 內地라고 불리던)에서 조선으로 ‘이주’해온 재조 일본인에 주목한 점은 그래서 참신합니다.

인터뷰를 한 한국 출신 일본인들 중 이미 고령으로 고인이 된 분이 많다는 점에서 일제 강점기 1920-1940년대 이들의 식민지 조선에서의 삶과 경험담, 그리고 당시 조선인들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민족지(ethnography)적’ 기록의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1930년대 말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기에 이들이 경험했던 학교 생활과 조선인들과의 생활경험은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대략침략과 그들의 군사물자 동원 , 식량 증산계획 등을 숫자가 아닌 일차적 경험으로 알려주는 것이기에 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케이스 스터디에 해당하는 경성사범학교 출신들의 경험담과 경성중학교 출신의 경험담은 시대의 차이를 두며 약간 다른 양상을 띄지만 이미 일제는 1930년대부터 사범학교 출신 국민학교 교원들을 조선 각지의 농촌에 발령내고 이들을 통해 식량 중산을 꾀했고 이들을 통해 지역을 조선총독부 정책 실행의 최전선에 앞세운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 경희궁 자리에 있었던 경성중학교는 설립 당시 이미. 조선총독부 자녀들만을 위한 일본인 학교였으며 아주 소수의’양반가 ‘ 조선인이나 사업가 자제들만이 이 학교에 입학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두산 그룹을 세운 박승직 상점가 장남 박두병이나 한은 초대총재 구용서, 서울대학교 총장 윤일선 등이 경성중학교 출신인 것은 흥미롭습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국가정책에 일본의 영향력이 상당했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던 계층은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었고, 일제가 아무리 조선을 일본화하려 해도 조선의 촌부들이 일본어를 잘 할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농촌에 발령받은 경성사범 출신 일본인들은 학교에서 배운 조선어로 의사소통 할 수 밖에 없다고 회고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당시 졸속으로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의 막후 접촉을 위해 일본의 자민당 간사장 출신 정치인이 청와대를 방문하고 비밀협상을 한일 양측 모두 ‘일본어’로 진행했다는 후일담이 나왔을 때 매우 놀랐고 경악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는 일제시대를 산 인물들이라 일본과 관계가 긴밀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 딸까지 일본에게 어쩔줄 몰라하다니. 부녀가 일본에게 한국을 얕잡아볼 기회를 제대로 주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때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식민지 시대에 교육받은 소위 한국사회의 ‘원로’라는 집단을 통해 한국에 분명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물며 1960년대는 한국 전쟁이 끝난지 10여년 해방이 된지 20여년 밖에 되지 않은 때로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던 엘리트들이 넘쳐나던 시대였습니다.

위의 경성중학교 인터뷰 내용을 보면 한국 출신 일본인들이 자신의 동기 동창들이 한국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하고 젊었을 때 하던 것처럼 ‘요정’에서 술을 마시고 즐기는 모습까지 나옵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알던 산업화 세대가 은퇴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1960-70년대 처럼 일본이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는 하기 어려울 것으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래도 지난 40여년간 일본에서 한국을 어떻게 보았을까를 생각하면 몹시 불편한 기분입니다.

또 한가지 이들의 인터뷰에서 불편했던 점은 한국 출신 일본인들이 1930-40년대 당시 조선인들과 ‘잘 지냈다’는 이유로 식민자와 피식민자 사이에 명시적으로 드러났던 차별을 은폐하려 했던 경향이나 일본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에 대한 수탈이 본격화되었는데도 본인들의 경험으로 자신들이 농촌 부락의 생산성 증대에 기여했다는 식으로 무마하고 자신들이 총독부 정책을 충실히 집행한 책임자였다는 사실을 회피하는 듯 했습니다.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에 대해 아무런 반성이나 청산이 없이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현재까지 이어온 한국이나 일본모두 그래서 애매하게 상황을 마무리짓고 어물쩡 넘어가려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륙의 공산주의 세력을 막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태평양 해양 세력으로 떠오른 미국이 러시어와 중국의 힘을 압박하기 위해 일본과 한국 모두 일제 강점기 상황을 그대로 놔둔 체 ‘현상유지 (status quo)’를 채택해 온 것이 해방이후 70여년이 넘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현재의 경희궁과 서울역사박물관 자리에 있었던 경성중학교 자리는 일제가 한일병합이후 경복궁 에 조선총독부를 1925년 완공해 입주한 이후 일본에서 건너온 관료들을 위해 관사를 만들고 또 이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만든 것이 시작입니다. 사유지를 피하기 위해 경희궁이라는 조선의 궁궐 자리에 학교를 지은 것도 사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19세기 말 경성에 진출한 당시에 모여살던 현재 명동과 충무로 일대에서 점차 양반들이 모여살던 북촌으로 거주지를 확장하기 시작했는데 경성중학교 자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립된 것입니다. 종로와 북촌일대에서 많이 모여살던 조선인들 사이에서 일본인들이 침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성에서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따로 모여 살았는지 같이 섞여 살았는지는 연구서들마다 약간씩 견해 차이를 보입니다. 하지만 일제강점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섞여 산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는 대체로 일본인들이 독점해 일본인과 조선인과의 빈부격차는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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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려고 했던 책 중에 ‘유럽과 역사가 없는사람들 (Europe and the People without Histor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2010)’이라는 오리엔탈리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저작이 있습니다. 아마존의 책소개에 따르면 책의 기본 개념과 용어 자체가 다분히 서구 중심적(Eurocentric)으로 유럽과 그 외의 지역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비서구를 ‘몰역사적(ahistorical)’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 정적으로 존재하는 변화없는 보여지는 존재가 바로 서구가 비서구를 바라보는 시각(perspective)입니다. 나름 진보적이라는 뉴욕시립대 (CUNY) 교수의 저작 제목이 이럴정도라면 다른 보수적 교수들의 저작은 굳이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위에 소개한 책은 기회가 되면 다시 리뷰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반면 오늘 소개할 강인욱 교수의 책은 위의 책과 정반대를 지향합니다.

역사는 승자가 집필한 기록으로 이해되고 ‘주류(mainstream)’들의 생각과 기록만이 남기 때문에 역사에 기록된 것만을 가지고 당시의 사회상을 제대로 재구성하기가어려운 현실 속에 소위 역사학의 인접학문인 고고학과 인류학 등이 이 기록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과거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은 단순한 문서기록뿐만 아니라 지나간 삶의 생활흔적을 보고 당시의 생활을 재구성(reconstruction)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사와 비슷한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소위 세계 4대 문명이라는 것도 19세기 제국주의가 극에 달했을 당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서구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자랑하는 박물관은 사실 이들이 식민지에서 “약탈”해온 것들입니다.

고고학자인 저자의 고백처럼 고고학은 제국주의를 위해 철저히 봉사한 일종의 관학(官學)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국주의(imperialism)의 내러티브는 언제나 근대화된 ‘문명국’이 ‘미개한’ 식민지에 ‘문명’을 가져다 준다는 주장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과 오키나와와 에조치(蝦夷地, 현재 홋가이도 ), 대만과 만주를 침략할때 앵무새처럼 같은 주장을 펼쳤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본인들의 기원이 유럽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주장했다고 저자는 전합니다.
탈아입구에 목마른 건 알겠는데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똑같은 주장을 지구 반대편의 스페인이 마야제국을 파괴하고 마야인이 미개인이며 이교도라고 학살하면서 했던 주장입니다.

하지만 정작 파리의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에서 직접 이들이 약탈해온 유물과 본국의 유물을 비교해서 보면 유물이나 미술에 문외한인 저의 눈에도 서구유럽의 ‘선진적 문화’가 과연 있기는 한건지 의심이 든 경험이 있습니다. 서양공예의 조잡한 형태를 보면서 이들이 왜 중국도자기에 열광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

제 개인적으로 1990년대 말 대영박물관에서 캄보디아의 이름모를 고대왕국의 섬세하고 복잡한 도자기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후진국이라고 배웠고 동남아시아나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에 무지했던 20대 후반의 사회초년생이 몰락한 제국의 수도에서 그 진가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학술적인 성격이 전혀 없지 않으면서도 대중서의 성격을 가진 이 책은 저자가 한겨레에 연재한 글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저자후기에 썼습니다. 저도 이 책의 글중 몇편은 안터넷으로 접한 기억이 있습니다.

300쪽이 조금 넘는 작은 책이지만 각 글에서 인용한 필수 참고문헌을 충실히 실어 다른 한국의 논픽션류와 다른 차별성을 보입니다.

저는 소설이나 문학작품이 아닌 모든 논픽션, 사회과학, 자연과학서 그리고 역사서들은 반드시 참고문헌과 각주와 찿아보기가 뒤에 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누구든 이를 제공하지 않는 책을 믿지 않습니다. 책을 머리말부터 후기까지 모두 읽는 저는 한국의 저자들이 대체로 자신의 저작에 기여한 이들을 드러내는데 안색하고 이런 좋지 않은 관습이 책 내용을 심각하게 저하시킨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책 내용으로 잠시 돌아가서 이 책이 ‘미지의 땅’에 사는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삼다보니 동아시아에서 ‘화이사상(華夷思想)’의 지배 속에 오랑캐로 치부되었던 돌궐, 말갈, 흉노, 소그드인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고 지금도 여전히 베일에 싸인 극동 시베리아의 동쪽 끝 오오츠크해와 배링해의 애스키모 민족들, 일본 본토에서 살다 홋가이도까지 쫓겨 올라간 아이누인들과 막부시대 청과 일본에 복속했던 류큐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베링해협을 통해 북아메리카에 건너갔을 가능성도 이야기 되고 있고 마야문명과 중국문명과의 관련성도 이야기됩니다.

글을 읽다보면 아메리카 대륙이 15세기에 ‘발견’되었다는 건 서구 유럽에서 그들의 시각애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문명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유럽문명울 신대륙에 ‘이식’한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영문도 모른체 서구인들에 의해 ‘아메리카 인디언 ‘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영화에서 백인들에게 못된짓을 하는 야만인으로 묘사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아메리카 원주민은 영상 속 ‘이미지’일 뿐 그 실체가 아니고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는 것이 우리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끝으로 저는 강인욱 교수 책을 처음 읽어 보았는데, 이야기 자체가 설득력도 있고 쉽게 쓰여 좋았고 보기 드문 시베리아 고고학을 전공한 저자의 책이어서 이 지역에 관심이 있다면 개론서로 읽어도 좋을 듯 합니다.

이 책에서 신라를 다루면서 언급한 흉노족에 대한 국내 저자의 책은 현재 없습니다. 다만 10여년 전 나온 ‘흉노제국이야기(아이필드,2010)’이 거의 유일합니다. 중국학자가 쓴 책을 번역한 책입니다.
흉노가 현재 터키를 이룬 튀르크족의 조상이라고 하고 서양 고대 시대를 끝낸 게르만 족의 대이동을 촉발한 훈족(The Huns)라고 믿어지는데도 국내 저자가 쓴 책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학계가 한반도 북쪽인 평안도 지역과 함경도 지역에 대한 연구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전에 말한 적 있는데,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으면 바로 마주치는 ‘오랑캐’들이 바로 흉노와 여진, 돌궐 등 유목민족이었을텐데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비난은 하면서도 이들 유목민족과 이 초원지역에 대해 거의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어찌된 일일까요?

혹시 학계가 아직도 ‘소중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서구중심주의니 해서 비판을 했지만 서구의 보수적 학자들이 연구하는 걸 보면 무섭습니다.

서술경향을 떠나 한 전문연구자가 특정주제에 대해 1000쪽 저작을 내는 경우는 흔하고 역사학자나 정치학자가 단독 저서로 약 2000쪽에 달하는 책을 저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 저자의 같은 사례를 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영미권 학자들은 그렇게 하더군요.

책의 두께가 필요충분조건은 안되더라도 필요조건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컨텐츠란 쌓여야 축적되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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