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에 앞서 저자의 독특한 이력과 이 책이 철저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시작할까 합니다.
저자는 2대째 ( the second generation) 물리학자 집안 출신으로 역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물리학계를 떠나 민간 산업계(business)로 뛰어들자 부모들이 매우 걱정했다고 합니다. 컨설팅 회사 메킨지를 거쳐 현재 암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테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의 이력은 때로 그가 왜 이 책을 지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이 책에 왜 물리학 개념이 차용되었는지도 설명해 줍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전혀 다른분야에 적용해 보는 방법은 이미 검증된 ‘새로운 설명’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또 한가지, 이 책은 철저한 미국식 ‘혁신’에 대한 글입니다. 당장 한국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일례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압도적인 군사기술력에 놀라 새로운 군사기술의 혁신없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평가를 하고 군부 내에 새로운 군사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개념의 무기와 군사장비 체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학계의 황당하고 실현불가능할 것 같은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예상대로 관료주의에 찌들린 군부 최고위층은 이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군인들은 시기가 언제이든 나라가 어디든 대체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 루즈벨트(FDR)는 학계출신인 이 프로그램의 제안자를 지지해 일을 실현시키고 결국 전쟁에서 이깁니다.
MIT 교수 출신인 바네바 부시 (Vannevar Bush)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런 에피소드가 한국에서 가능할까요? 저는 냉정하게 봤을 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제목인 룬샷 (Loonshot)은 그 사전적 의미가 무시된 프로젝트( a neglected project)라는 말입니다. 이 의미는 ‘황당해서 무시된 프로젝트 ‘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흔히 황당한 생각을 하면 ‘몽상가’라느니 현실감각 없다느니하는 핀잔을 듣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모든 선구자들은 거의 대부분 당대에 ‘바보’취급당했습니다.
하늘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Geocentric theory)이 ‘정설’이던 중세 말 유럽에서 지구가 괘도를 따라 돈다는 지동설(Heliocentric theory)를 주장하는 천문학자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받았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그의 생전 발표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발표된 것은 이론 이유였습니다.
한국의 조직이나 업무체계가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황당한 하지만 창의적이고 여태본적 없는 발명이나 프로젝트를 지지할 수 있는 환경인가 그리고 저자가 강조하듯 한국의 여타 조직의 체계(structure)가 이런 룬샷을 포용할 수 있는가라곶 묻는다면 제 대답은 ‘No’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조직은 제가 경험한 바로는 ‘튀는 사람’을 반기지 않습니다.
참모라고 들어가서 ‘yes man’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이런 환경과 조직 구조에서 일종의 농담처럼 한 말이 실제로 실현이 된다거나 조직 상부에서 ‘실패해도 좋으니 한번 시도해 보라’는 지시를 할 수 있을까요? 예산까지 주면서 말이죠.
전 못한다고 봅니다.
위의 룬샷의 정의에서 ‘무시된 프로젝트’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런 케이스는 황당해서 버려졌거나 서가에 처박혀 있던 아이디어를 되살린다는 의미입니다.
최초 아이디어가 공개될 당시 황당했지만 시간이 지나 실현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저자는 이런 경우를 ‘False Fail’ 즉 실패로 보이지만 실패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즉 과거 황당했던 프로젝트를 ‘재활용’하는 경우입니다.
아무튼 이 책 내용을 다 언급할 필요는 없고 다만 몇가지 포인트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황당한 프로젝트(loonshot)은 P-type/ S-type 두 종류입니다. P-type은 Product와 관련되고 S-type은 Strategy와 관련됩니다. 전자는 기술혁신이나 신기술과 관련이 있고 후자는 기존 기술에 전략만 바뀌면 된다는 것입니다. 전자에 매몰되어 결국 사업이 망한 경우로 미국의 항공사 Pan Am이 소개되고, 후자는 현재도 살아있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입니다. 기술자 출신 회장과 전문경영자 출신 회장의 극명한 경영방식 차이를 보여주죠.
저자는 흔히 언급되는 기존 제품에 대한 꾸준한 혁신( sustainable innovation)과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버리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혁신( disruptive innovation )을 구분하기 어렵고 이론적 주장이라고 언급하는데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 책은 물리학의 상전이(phase transition, 相轉移)개념을 경영조직에 적용한 경우로 즉 물질의 구성요소가 전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온도가 낮아지면 물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다시 물이 되는 것처럼 조직도 동일한 사람과 동일한 CEO가 있어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발조직은 동료들간의 평가를 우선순위로 놓고 각각의 프로젝트 별로 횡적 조직을 이루어야 하며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은 좀더 수직적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타이트한 컨트롤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개발자 조직(loonshot) 과 기존 제품 생산판매조직( franchise)는 분리되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중재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물리학적 개념을 조직론에 차용하는 발상 자체가 일단 놀랍지만 일견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가 문화보다 조직 채계(structure)를 강조하는 건 그래서 이해가 됩니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흥미있는 책입니다.
다만 현대적인 사례뿐만 아니라 상당히 오래된 과학사의 사례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언급된 ‘The Needham Question’은 경제사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쉽지 않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은 유럽인들이 ‘ 중국이 수천년간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종이 화약 나침반 등을 먼저 발명하고도 어떻게 과학혁명은 변방인 서유럽에서 시작되었나?’라는 질문입니다.
일견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서유럽 중심주의가 저변에 깔린 질문으로 경제사적으로는 ‘왜 산업혁명이 서유럽 특히 변방인 영국에서 최초 시작되었나?’ 라는 질문으로 연결되고 결국 ‘왜 서유럽은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고 다른 지역은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집니다.
위의 질문에 나름의 답을 구하는 책들은 아마존에서 검색하면 숱하게 나옵니다.
이 질문은 서양의 19세기 이래의 제국주의적 발전에 대한 ‘우회적 답변’일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외 지역이 정말 발전하지 않은 것이 맞나?’ 라는 또다른 질문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아무튼 꽤 흥미로운 조직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혁신을 위해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흥미로운 ‘미국’의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