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항아리라는 출판사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김원중 교수님 번역의 ‘ 논어(2013)’도 이 출판사에서 나왔고, 태평양 군도에서 바라 본 근대를 조망한 ‘군도의 역사사회학(2017)’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책에서 이은혜 편집장이 언급했다시피 글항아리의 약 50%정도가 번역서이고 상당 수의 번역서가 유럽이나 미국보다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서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독서를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고, 책 한권 기획하기 위해 편집자가 스스로 준비해야 하고 독서에 투자해야 하는 양이 상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꼭 내야 하는 책과 책 판매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측면이 있고, 천권 정도밖에 팔 수 없지만 500-600쪽을 넘어가는 두꺼운 책을 출간하는 건 출판사 편집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번역을 위해 인용된 서적들을 모두 찿아보고 일본이나 중국에서 번역된 서양 서적의 경우 교차검증도 해야하는 일이니 만만한 작업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이 일은 외서기획자라는 전문가와 함께 하는 일이지만 노력에 비해 알아주는 일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한국에서 신간들이 너무 빨리 절판(絕版)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현재 출판계에서 신간의 수명을 5년으로 보고 있고 출판 후 팔리지 않는 책들은 더 빨리 절판된다고 하니 책들이 빨리 사라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대중적 논픽션이 이러니 학술서나 연구서는 수명이 더 짧겠죠.

사실 1990년대 말에 나온 책들도 신간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역사서나 경제서도 교과서를 제외하고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 부득불 헌책방에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있는 고 손정목 교수님의 일제시대 도시발달사 같은 책들은 길어봐야 40년 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현재 헌책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도시사를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지만 절판이후 희귀본 취급을 받습니다.


영미권과 비교가 불가피한데, 아마존에서 보면 1960년대 출판된 책들이 아직도 신간으로(물론 복간이 된 책이지만) 출판되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두껍고 각주 잔뜩 달린 책들이 인기가 있을 수 없지만 이런 책과 연구가 없으면 어떤 대중적 논픽션도 생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면이 큽니다.

영미권의 학자들이 쓴 책들이 100쪽 이상의 참고문헌과 색인 그리고 후주를 포함하고 본문만 최소 400쪽에서 700쪽에 이르는 경우를 봅니다. 특히 역사책의 경우 분야를 막론하고 두께가 상당합니다. 역사적 인물의 평전의 경우 2-3권 분량의 시리즈인 경우도 흔하고 1000쪽을 넘는 경우도 흔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책들이 대학출판부 뿐만 아니라 대형상업출판사에서도 나옵니다.
솔직히 장사가 될까 싶지만 꾸준히 이런 책들이 나오는 걸 보면 놀랍습니다.
요새 인공지능 이야기하고 머신러닝 이야기 하지만 이건 지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인공지능이 학습할 컨텐츠가 없다면 기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논픽션 전문 출판이 수익성을 떠나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최대의 영어사전을 출판하는 옥스퍼드대학이 세계최대의 영어사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전을 편찬할 수 있는 나라가 몇 나라 밖에 없는 것도 모든 것이 전자화되고 데이터베이스화된 현재의 어두운 면입니다.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관심이 있을 책입니다.
독자가 독서를 지속하다 저자가 된다는 말에 공감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책의 출판에 편집장의 개인적 취향과 독서 편력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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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리지 - 서울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 궤적을 찾아서 서울 택리지 1
노주석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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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300여쪽 내외의 작은 책으로 신문기자인 저자가 서울의 공간(空間) 변천의 추이를 역사적, 인문지리적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총 21개의 장으로 구성되었고, 조선이래 구한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개발연대를 지나 최근까지 그 시기가 상당히 넓습니다.

신문독자를 상대로 하다보니 각 장이 모두 짧고 압축적인 글입니다.

서울의 근현대 도시사(都市史)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2022년 현재 책이 절판되어 새책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도시에 접근하는 방법은 건축이나 도시계획같은 큰 틀의 ‘공학적 접근’도 가능하지만 이책에서 접근하는 것처럼 지리적 접근방식도 가능합니다.

서울이 언제부터 기원했는가를 따져봐야 하니 한국의 역사를 둘러볼 수 밖에 없고 중세와 근세시기인 고려말과 조선 초에 한 나라의 도성(都城)을 정하는 일이었으므로 풍수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선 초기 정도전을 비롯한 신흥 유림세력들이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북악( 北岳)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법궁인 경복궁(景福宮)을 세웠으나 풍수론의 입장과 전란(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따라 법궁이 경복궁에서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으로 옮겨지고, 일제 강점이후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이 유원지로 바뀌는 수치를 당합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창경원 동물원과 유원지에 놀러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는 그 공원을 일제가 만들었다는 걸 전혀 몰랐지만 말입니다.

이후 경복궁에서 명성황후 민씨가 일본 자객들에게 살해 된후 고종은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대피에 정사를 보고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이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법궁은 경운궁(慶運宮)으로 현재는 덕수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전개에 따라 왕이 정사를 보는 궁궐의
위치도 달라졌고 이에 따라 초기 조선의 중심이었던 육조대로(六曹大路)는 명칭이 세종로로 바뀌고 육조건물도 생겼다 사라지며 관청건물들이 들어섰고일제가 만들어놓은 일본인 거주지역인 남촌과 용산지역을 연결하고 남산 아래의 일본인 거주지역과 직접 연결하기 위해 지은 태평로(太平路)를 건설해 조선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던 사대문 안의 공간구조가 변형되었습니다.

일제는 북악산 아래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 ( 서울시청)애서 남대문을 지나 남산 아래 경성신사까지 이어지는 자신들의 축선(軸線)을 식민도시인 경성에 구축하려 핬다고 설명합니다.

이책의 다른 한 시기인 개발연대의 강남 개발과 경부고속도로 개통 그리고 한강개발계획, 여의도 개발 등은 더 자세하게 해당 주제를 설명한 책을 보시면 됩니다.

한마디로 군인들이 불도저처럼 무분별하게 개발을 한 것이 사실이고 박정희 정권이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해서 무리하게 계획을 집행했던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계획을 집행한 인물들이 모두 일제에 의해 교육을 받았거나 만주국애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던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집행했던 경제개발계획에 미군정( 美軍政, USAMGIK,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과 일제시대 관료로 일했던 당시 엘리트들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서구에서 200여년 걸릴 사업을 40여년 만에 끝내니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겁니다.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이런 시각은 독재자가 총탄에 쓰러진 뒤 4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한국의
엘리트들의 의식 속에 살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조선시대 최고의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의 영향을 받은 책입니다.
이 책이 조선 최고의 지리서이자 풍수학의 명저라고 저자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李重煥)이 살기 좋은 곳을 찿기 위해 이 대작을 썼다고 하니 장소에 대한 고찰로서 어쩌면 이 책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저자가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서지목록은 상당히 인상적인데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시립대 서울학 연구소 등에서 나온 저작들이 많습니다. 두 기관은 서울의 경관과 공간 그리고 생활사 등 연구에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판이 되고 구하기 어려운 책들이라서 아쉽습니다.
정부간행물의 경우 너무 절판시기기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책들은 서울의 공간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보아야 할 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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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감각 - 파리 서울 두 도시 이야기
이나라.티에리 베제쿠르 지음, 류은소라 옮김 / 제3의공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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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공부한 여성 영화학자와 그의 프랑스인 남편이 서울과 파리라는 두 도시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점을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300여쪽에 달하는 책으로 분석보다는 ‘장소(place)’에 대한 감각과 인상 그리고 저자들의 생각이 주로 담긴 글들의 모음입니다.

전반부는 프랑스인인 남편 티에리 배제쿠르씨가 썼고, 후반부는 아내인 이나라씨가 썼습니다. 특히 후반부는 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한 글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서울과 한국의 도시에 흩어진 각종 근대건축’유산(legacy)’에 대한 미시적 관찰기 혹은 분석기 그리고 왜 그 건물이 세워졌을까에 대한 의문에 답을 하던 책이라면, 이 책은 서울과 파리에서 접하는 일상적인 도시의 환경과 장소에 대한 두 저자의 느낌입니다.

프랑스인인 남편은 파리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한국 ‘카페’의 편리함에 대한 소감을 적었고, 빠르게 진행되는 웨딩홀의 놀라운 결혼식 진행속도와 서구의 영향을 받은 괴이한 건물형태에 대해 썼습니다.

관악산 등산기에서는 파리에서는 볼 수 없는 큰 바위산이 서울 근처에 있고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등산문화에 대해 외국인의 시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매일 철거되고 새로 올라가는 서울을 경관에 따라 마음대로 건물을 짓거나 철거될 수 없는 파리와 비교해 ‘재조립되는’도시로 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서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유럽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너무도 달라 보였던 겁니다.

후반부 이나라씨의 글은 특정한 지역이나 건물과는 자체보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서 장소를 다룹니다.

예를 들어 파리에 살고 있는 거주자로서 한국사람들이 ‘파리(Paris)’라는 도시에 대한 판타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파리여행에 대한 이런 판타지가 만들어진 판타지 공간, 즉 테마파크와 비슷한 모방이 아닌지 묻습니다.

해외의 도시에 사는 것과 같은 도시를 예를 들어 2주 일정으로 여행가는 건 분명 다른 상황입니다. 떠날 수 없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는 그 자체가 벌써 현지의 삶에 들어오는 과정으로 파리건 서울이건 사람 사는 방식이 어디나 비슷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 책에서 프랑스적이어서 마음에 드는 장면은 국가가 노동자의 쉴 권리를 인정해 연간 유급 15일 휴가를 보장해 주었다는 점. 그리고 법으로 해변을 국가소유로 정해 모든 국민들이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해변을 즐길 수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이웃나라인 이태리만 해도 일광욕을 즐기기 위한 파라솔을 임대하지 않고는 해변에서 즐길 방법이 없다는 걸 보면 프랑스의 해변 국유화는 지극히 프랑스적입니다.

장소와 공간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이 책을 하나의 ‘휴식’으로 읽었습니다.

사는 곳이 서울이니 서울이 제일 관심이 많이 가고 다른 한국의 도시들도 관심이 가지만 파리는 제가 오래전에 방문했던 곳이라 관심이 갔습니다.

파리처럼 오래된 유럽의 도시는 도시 규모도 서울보다 작고 아직도 오래된 골목과 좁은 길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최소 제가 본 파리의 중심가애서 에펠탑을 제외하고 큰 고층 빌딩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여행자의 눈으로 봤을 때 파리의 인상은 잘 ‘보존’된 도시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만 잘 보존된 것이 아니라 일반사람들 사는 건물들도 잘 보존된 도시라는 것입니다.

이건 분명 ‘첨단’을 위해 ‘철거’도 서슴지 않는 서울과 다른 점입니다.

현재 서울 도심에서 외국의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있는 ‘정동’지역만이 구한말 이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건물의 역사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한때 서울의 극장개봉관으로 이름을 날리던 최초의 극장인 ‘단성사(團成社)’가 없어졌고 명동의 중앙극장도 사라졌습니다.

힙지로라고 부르는 ‘을지로’는 현재 수많은 고층건물이 올라가고 과거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을지로가 힙한 이유는 을지로의 오래된 식당들과 오래된 건물들이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지 그 장소 옆에 생긴 최첨단 고층빌딩 덕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십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화상 중국집과 냉면집, 그리고 호프집과 을지로 공구상가가 을지로의 분위기를 만드는 주요 장소입니다. 여기에 을지로 개발과 함께 들어온 청년사업가등이 을지로 본래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힙한 가게를 낸 것도 큰 몫을 했지요.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시간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빈티지 인테리어를 시공하는 것은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중요한 차이입니다.

하지만 일제시대부터 ‘황금정 (黃金町)’으로 불린 이 곳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각 시대의 흔적이 겹겹으로 남아 있지만 최근에 또 재개발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과거 세대의 흔적을 일부만이라도 남겨 놓는 것이 그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의 형태와 구역 내 건물의 모습을 이미 모든 지역이 철거되고 재개발되면 오직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요행이도 사진으로 남겨진 경우에만 볼 수 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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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00여쪽 분량의 이 책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2010년에 나온 책이고 미술사와 건축을 공부하신 두 분 저자께서 함께 쓴 책입니다.

근대시기(1883-1945)에 지어진 건축물 중 문화재청이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관청, 은행, 세관,영사관, 학교, 병원,성당, 교회와 국영회사(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소위 ‘주요 건축물’위주의 답사기입니다.

전국에 산재한 근대 건축물이 망라되어서 서울 뿐만 아니라 개항지인 인천, 부산,군산, 목포를 비롯해서 대구와 강화도, 김제, 영산포, 구룡포, 그리고 강경까지 국토 곳곳에 남겨진 개항기-일제강점기 당시의 건축물을 살펴봅니다.

대구와 영산포, 구룡포 등지의 일부 적산가옥 (敵産家屋)을 제외하고 이책에서 다루는 건축물들은 근대시기에 살았던 일반 국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은 아닙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한정되지만 이런 오래된 보통의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는 문헌학자이신 김시덕 선생의 도시 답사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쓰기 전 잠시 이 책의 평을 보니 일제가 남긴 건축물을 답사했다고 친일답사기라고 평하시는 독자가 계신 걸 보고 놀랐습니다.

일제의 통치가 억울하고 분하면 그들이 남긴 흔적을 악착같이 보존하면서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극단적으로 말해 그들이 조선을 착취한 ‘증거’로 남겨진 것이 건축물입니다. 일본인 지주들이 조선 땅의 쌀을 일본우로 가져가 얼마나 부유하게 살았는지 그가 살던 집이 있어야 그걸보고 당시 일반 조선인들의 생활과 비교를 해야 얼마나 착취를 했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호불호를 떠나 한국의 근대건축가들은 일본을 통해 건축을 배웠습니다.
역사적 사실이죠.

현재 서울대 공대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공)에서교육받은 소수의 조선인들이 최초의 조선인 근대건축가들입니다.
일본인들이 경성고공의 학생이었고, 조선인들은 한두명 밖에 없던 시절입니다. 이 학교를 졸업한 조선인들은 처음 일을 한 곳은 대체로 조선총독부입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일본의 민간건설회사는 일본인만 뽑고 조선인은 뽑지도 않았죠.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친일을 한 근대 건축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시 서양식 건축물을 조선에 지을 수 있는 건축가는 경성고공 출신 조선인 또는 일본인 건축가이거나 일본에서 교육받은 일본인 또는 조선인 건축가이거나 아예 유럽이나 미국 출신 건축가들 뿐입니다.

실제로 구한말인 19세기 말 지어진 경운궁의 서양식 건물이나 성공회 서울 대성당, 러시아 영사관과 같은 건물들은 모두 서양인들이 지었습니다.

따라서 근대건축가들이 지은 건축물이 모두 친일건축물이라고 재단하는 건 지나칩니다.

이책이 발행된 지 10여년이 지나 솔직히 사진에서 보이는 건축물 중 아직까지 남아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경복궁 옆 기무사 건물은 이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개관했고 기무사로 사용되기 전 서울의대 부속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하더군요. 화신백화점을 설계했던 최초의 조선인 근대건축가 박길룡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건축관련 책마다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재개발구역에 대한 개발압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것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니 말이죠.

도시계획사나 도시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는 건 오래된 건축물이나 생활지역을 보존하는 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세계 어느 도시를 가나 볼 수 있는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형태의 건물 안에 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 매장이 입점해 있는 걸 ‘발전’이라고 부르는 건 민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유의 분위기와 장소의 고유성이 없어진 상태로 덩그라니 최신의 하드웨어만 남은 곳에서 어떻게 발전이 일어나고 문화의 감각이 생길 수 있을까요?

생활의 편리도 무시할 수 없으니 다시 건물을 올리거나 리노베이션을 할 수는 있지만 최소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힙하다는 을지로나 익선동이 왜 지금 사랑받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세월의 흔적이 남은 건물과 그 분위기는 빈티지 인테리어를 시공한 건물과는 다릅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래된 건물을 답사하거나 이런 답사기를 읽는 건 삶의 공간과 장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애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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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작가의 첫책으로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한 글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근대 건축사에 대한 책이 상당히 드문데, 이 책은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약하신 건축가들의 작업과 생애를 조망해 볼 수 있는 독특하지만 귀한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평전이나 인물론이 그다지 인기있는 분야도 아니고 기술자로 저평가되어 온 건축가들의 이야기는 논문을 찿지 않는 한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는 조선의 최초이자 최고 건축가로 알려진 박길룡부터 시인으로 알려진 모더니스트 이상 그리고 집장사로 폄훼되온 건양사의 정세권, 그리고 조선에서 활동한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 (中村 與資平)까지 다양한 건측가들의 일과 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건축가들이 대부분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 경성고공) 출신이라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들이 조선총독부 (朝鮮總督府) 등 일제의 관청소속 건축가였다는 점입니다.

일제 강점기 대부분의 건축공사는 총독부가 진행한 관급공사이거나 일본인이 발주한 공사가 대부분이고 일본인들의 조선인 차별이 극심해 조선인 건축가의 경우 별다른 직업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일제가 추구한 고전적인 서양식 건축에 익숙해진 이 당시 건축가들의 건축작업이 당연히 일제 강점기 이전에 행해지던 전통적인 한옥건축은 쇠퇴할 수 밖에 없었지만 1930년대 정세권의 건양사는 개량한옥단지를 조성해서 판매한 부동산개발업자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전통건축을 하던 목수들도 개량한옥을 지으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최근 정세권과 건양사에 대한 별도의 연구서가 나왔습니다. 아파트 시대 이전 한국의 주거환경에 대한 전사(前史)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서울대 김경민 교수가 지은 아래의 책입니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이마,2017)


근대 건축가들의 일제 관청 경력은 이들이 친일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소개된 건축가 중 남만주철회사(南滿洲鐵道會社,만철)에서 근무했던 경성고공의 수재라고 알려진 이천승(李天承)의 경우가 친일로 의심할 만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당시 일본인도 들어가기 힘들었던 만주국의 만철에 조선인으로 입사했고, 만철은 철도회사일 뿐만 아니라 일제의 침략정책을 수행하고 수립하는 싱크탱크 역할도 했기 때문에 이런의심이 더욱 들게 죕니다.
더구나 항일무장투쟁의 중심지였던 만주에서 8년동안이나 조선인들과 접촉이 없었다고 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당시 생소하던 도시계획을 실무에서 경험해 보았던 이 근대건축가는 만주국의 수도 신경(新京:지금의 長春)의 도시계획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해방 후 한국의 도시계획연구를 선도했던 분이고 지금의 강남개발의 모태가 된 ‘남서울도시계획’을 입안한 분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이책을 통해 알게된 사실 하나는 건축(建築)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어이고 영어,architecture 를 일본인들이 번역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근대 이전 한국에서는 건축이라는 말 대신 영건(營建)이나 조영(造營)이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8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일본이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은 알게 모르게 가까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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