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0여쪽 분량의 이 책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2010년에 나온 책이고 미술사와 건축을 공부하신 두 분 저자께서 함께 쓴 책입니다.

근대시기(1883-1945)에 지어진 건축물 중 문화재청이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관청, 은행, 세관,영사관, 학교, 병원,성당, 교회와 국영회사(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소위 ‘주요 건축물’위주의 답사기입니다.

전국에 산재한 근대 건축물이 망라되어서 서울 뿐만 아니라 개항지인 인천, 부산,군산, 목포를 비롯해서 대구와 강화도, 김제, 영산포, 구룡포, 그리고 강경까지 국토 곳곳에 남겨진 개항기-일제강점기 당시의 건축물을 살펴봅니다.

대구와 영산포, 구룡포 등지의 일부 적산가옥 (敵産家屋)을 제외하고 이책에서 다루는 건축물들은 근대시기에 살았던 일반 국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은 아닙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한정되지만 이런 오래된 보통의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는 문헌학자이신 김시덕 선생의 도시 답사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쓰기 전 잠시 이 책의 평을 보니 일제가 남긴 건축물을 답사했다고 친일답사기라고 평하시는 독자가 계신 걸 보고 놀랐습니다.

일제의 통치가 억울하고 분하면 그들이 남긴 흔적을 악착같이 보존하면서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극단적으로 말해 그들이 조선을 착취한 ‘증거’로 남겨진 것이 건축물입니다. 일본인 지주들이 조선 땅의 쌀을 일본우로 가져가 얼마나 부유하게 살았는지 그가 살던 집이 있어야 그걸보고 당시 일반 조선인들의 생활과 비교를 해야 얼마나 착취를 했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호불호를 떠나 한국의 근대건축가들은 일본을 통해 건축을 배웠습니다.
역사적 사실이죠.

현재 서울대 공대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공)에서교육받은 소수의 조선인들이 최초의 조선인 근대건축가들입니다.
일본인들이 경성고공의 학생이었고, 조선인들은 한두명 밖에 없던 시절입니다. 이 학교를 졸업한 조선인들은 처음 일을 한 곳은 대체로 조선총독부입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일본의 민간건설회사는 일본인만 뽑고 조선인은 뽑지도 않았죠.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친일을 한 근대 건축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시 서양식 건축물을 조선에 지을 수 있는 건축가는 경성고공 출신 조선인 또는 일본인 건축가이거나 일본에서 교육받은 일본인 또는 조선인 건축가이거나 아예 유럽이나 미국 출신 건축가들 뿐입니다.

실제로 구한말인 19세기 말 지어진 경운궁의 서양식 건물이나 성공회 서울 대성당, 러시아 영사관과 같은 건물들은 모두 서양인들이 지었습니다.

따라서 근대건축가들이 지은 건축물이 모두 친일건축물이라고 재단하는 건 지나칩니다.

이책이 발행된 지 10여년이 지나 솔직히 사진에서 보이는 건축물 중 아직까지 남아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경복궁 옆 기무사 건물은 이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개관했고 기무사로 사용되기 전 서울의대 부속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하더군요. 화신백화점을 설계했던 최초의 조선인 근대건축가 박길룡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건축관련 책마다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재개발구역에 대한 개발압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것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니 말이죠.

도시계획사나 도시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는 건 오래된 건축물이나 생활지역을 보존하는 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세계 어느 도시를 가나 볼 수 있는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형태의 건물 안에 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 매장이 입점해 있는 걸 ‘발전’이라고 부르는 건 민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유의 분위기와 장소의 고유성이 없어진 상태로 덩그라니 최신의 하드웨어만 남은 곳에서 어떻게 발전이 일어나고 문화의 감각이 생길 수 있을까요?

생활의 편리도 무시할 수 없으니 다시 건물을 올리거나 리노베이션을 할 수는 있지만 최소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힙하다는 을지로나 익선동이 왜 지금 사랑받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세월의 흔적이 남은 건물과 그 분위기는 빈티지 인테리어를 시공한 건물과는 다릅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래된 건물을 답사하거나 이런 답사기를 읽는 건 삶의 공간과 장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애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소연 작가의 첫책으로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한 글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근대 건축사에 대한 책이 상당히 드문데, 이 책은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약하신 건축가들의 작업과 생애를 조망해 볼 수 있는 독특하지만 귀한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평전이나 인물론이 그다지 인기있는 분야도 아니고 기술자로 저평가되어 온 건축가들의 이야기는 논문을 찿지 않는 한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는 조선의 최초이자 최고 건축가로 알려진 박길룡부터 시인으로 알려진 모더니스트 이상 그리고 집장사로 폄훼되온 건양사의 정세권, 그리고 조선에서 활동한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 (中村 與資平)까지 다양한 건측가들의 일과 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건축가들이 대부분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 경성고공) 출신이라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들이 조선총독부 (朝鮮總督府) 등 일제의 관청소속 건축가였다는 점입니다.

일제 강점기 대부분의 건축공사는 총독부가 진행한 관급공사이거나 일본인이 발주한 공사가 대부분이고 일본인들의 조선인 차별이 극심해 조선인 건축가의 경우 별다른 직업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일제가 추구한 고전적인 서양식 건축에 익숙해진 이 당시 건축가들의 건축작업이 당연히 일제 강점기 이전에 행해지던 전통적인 한옥건축은 쇠퇴할 수 밖에 없었지만 1930년대 정세권의 건양사는 개량한옥단지를 조성해서 판매한 부동산개발업자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전통건축을 하던 목수들도 개량한옥을 지으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최근 정세권과 건양사에 대한 별도의 연구서가 나왔습니다. 아파트 시대 이전 한국의 주거환경에 대한 전사(前史)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서울대 김경민 교수가 지은 아래의 책입니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이마,2017)


근대 건축가들의 일제 관청 경력은 이들이 친일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소개된 건축가 중 남만주철회사(南滿洲鐵道會社,만철)에서 근무했던 경성고공의 수재라고 알려진 이천승(李天承)의 경우가 친일로 의심할 만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당시 일본인도 들어가기 힘들었던 만주국의 만철에 조선인으로 입사했고, 만철은 철도회사일 뿐만 아니라 일제의 침략정책을 수행하고 수립하는 싱크탱크 역할도 했기 때문에 이런의심이 더욱 들게 죕니다.
더구나 항일무장투쟁의 중심지였던 만주에서 8년동안이나 조선인들과 접촉이 없었다고 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당시 생소하던 도시계획을 실무에서 경험해 보았던 이 근대건축가는 만주국의 수도 신경(新京:지금의 長春)의 도시계획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해방 후 한국의 도시계획연구를 선도했던 분이고 지금의 강남개발의 모태가 된 ‘남서울도시계획’을 입안한 분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이책을 통해 알게된 사실 하나는 건축(建築)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어이고 영어,architecture 를 일본인들이 번역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근대 이전 한국에서는 건축이라는 말 대신 영건(營建)이나 조영(造營)이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8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일본이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은 알게 모르게 가까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씁쓸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정동 교수의 근대건축기행
김정동 지음 / 푸른역사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목원대 김정동 교수님께서 1999년에 펴내신 책입니다.
잡지 기고문을 모아내신 책이고, 대중적인 책이다보니 아무래도 내용이 일관되지는 않지만 서울에 현존하고 있는 근대 건축물의 이면(裏面)과 내력을 알 수 있어 입문용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책입니다.

아쉽게도 현재는 절판이 되서 헌책방에서나 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푸른역사 출판사에서 초창기에 출판했던 책이고 20여년 전에는 근대사적 관점에서 조망한 건측이나 도시의 내력에 대해 해설하는 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꽤 신선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글에 소개된 건물 중 명동의 국립극장은 처음에 메이지좌 (明治座)라는 극장으로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남촌에 가까운 지역의 특성 상 일본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일본영화 상영관으로 개관했고 해방 이후 국립극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이 극장은 증권사 사무실로 사용되었고 제 부모님 뻘 되는 어르신들은 이 극장을 시공관(市公館)으로 불르기도 했습니다. 서울시 공공극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명칭은 해방후 국립극장이 되기 전 명칭이라고 합니다.

이 극장은 다행히 보전이 되어서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 성공회 대성당도 얼마전 성당 앞을 가리던 건물이 철거되어 그 모습을 태평로에 내보였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종로2가 보신각 건너편에 있었던 화신 백화점이 사라진 것입니다.

회신의 박흥식이 새운 최초의 백화점으로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종로2가 앞 사거리를 ‘화신 앞’으로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흔적도 없이 건물이 사라지고 삼성에서 고층빌딩을 지어놓아 현재 아무도 그 장소에 화신백화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조선사람이 만든 화신백화점은 없어지고 미스코시(三越) 경성점이던 신세계백화점과 조지야 (丁字屋)백화점이었던 미도파백화점은 사라졌지만 롯데영플라자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전에 쓴 글에서도 문화유산이 왜 꼭 조선시대 지배층이 살던 건물이어야 하는지 의문을 표시한 적이 있는데, 같은 의문과 근대적 건축물의 보전을 김교수께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주장해 오셨네요.

근대의 역사가 일제 강점기와 중첩되어 있어 경원시되는 대상이라고 해도 바로 현재를 이루고 있는 기반이라고 볼 수 있고, 일제의 조선 강점도 그들이 남기고 간 ‘증거’로서 건축물이 눈앞에 있어야 비판을 하든 긍정을 하든 할 수 있지만 돈만을 쫓고 편리함만 쫓는 세태는 그 흔적을 너무나 손쉽게 없애버립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이전에 너무 과격하게 일제의 흔적을 없애버리려는 사람들은 혹시 과거의 친일행적을 없애기 위해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도시가 여러시대의 삶이 지층처럼 겹겹이 쌓여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어야 한다면 이미 지나가 돌이킬 수 없는 일제강점기 역시 그이전 조선과 같이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소가 있어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것이죠. 기록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 반쪽밖에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또한 책에서 조선 최초의 엘리트 건축가 박길룡에 대해 소개해 주셨는데 처음 알게된 분이고, 화신백화점의 설계를 담당하셨던 분이라고 하셔서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건축을 전문적으로 배워도 조선총독부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처지도 그렇고 자신의 이름으로 건축설계를 하기 위해 건축사무소를 새운 일화도 모두 아무도 끌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최초의 인물이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이 아닌가 싶네요.

이 책은 건축의 역사에 관한 책이지만 이 분야가 경제사와도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대구 삼성상회 사옥 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그룹이 초기 대구에서 제분업(製粉業)과 제면업 (製麵業)을 하기 위해 사옥 겸 공장을 지었는데 1930년대 말 대공황 시기 부족한 식량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이 비지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삼성의 창립자 이병철씨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도쿄와 그 인근 지역의 경제 사정을 둘러보면서 사업에 적당한 업종을 찿는 모습도 같이 소개됩니다.

저자는 이런 과거의 기록들이 모두 한국 재벌 역사의 아주 초창기부분에 해당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업들이 일제강점기와 미군정의 거치면서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을까가 궁금하긴 하지만 의외로 이 주제를 다룬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자본주의의 기원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어딘가 기록이 있고 연구서가 있겠지만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1970년대 이후 국가의 개입으로 현재의 거대기업군이 형성된 것은 분명하지만 제가 궁금한 건 그 전사(前史)입니다.

정말 실력으로 그 거대기업의 터전울 마련했을지 그 시대의 운이 작용되었을지 궁금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오래된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강준만 교수님의 강남에 관한 책,’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인물과사상사,2006)’을 읽는 가운데 인용된 책 중에 이 책이 있었습니다.

2002년 11월 출간된 책이니 내년이면 출간된지 20년 되는 책입니다.

서울의 공간과 강남개발 등을 말할 때 위의 강준만 교수의 책은 언론학교수가 쓴 사회학적 입장에서 쓴 책임에도 상당히 자주 인용되는 책이고, 형식 상 도시기행 에세이인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의 도시계획에 관여를 해오시고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와 서울역사박물관을 이끄셨던 강홍빈 교수와 사진작가 주명덕 작가께서 쓰신 책이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재가 보기에 이전에 소개해드렸던 서울대 김시덕 교수의 서울답사기, ‘서울선언(열린책들,2018)’의 길잡이 비슷한 역할을 한 책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200쪽도 안되는 작은 책이지만 2002년 당시의 서울의 도시풍경을 담은 사진도 지금 시점에서는 기록으로 가치가 있고 강홍빈 교수께서 각 글 꼭지마다 충실하게 인용문헌을 표시해 두셨습니다.

서울의 도시계획과 그 역사적 전개과정에 대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손정목 교수님의 영향력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과 수도권 각 자역의 도시개발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들이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지나 1960-70년대 개발연대에 이르기까지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특히 도시나 건축에 대한 역사는 한국에서 볼모지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은 과거가 현재의 토대인데도 특히 과학 기술교육이 기술습득에만 치우친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기술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의미와 맥락을 모르는 ‘영혼없는’ 기술자가 되는 것이죠.

기술자들의 사회에 대한 몰이해는 사회 전체에 큰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일이 이치에 맞아야 하는데 아무데서나 정확성, 경제성을 따질 수는 없으니 말이죠.

세종로에서 태평로, 소공동을 거쳐 명동과 남대문 시장을 지나 이태원과 용산 미군기지, 해방촌을 지나 반포대교를 건너 반포와 서초동을 지나 예술의 전당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 종단길이 이 책에서 이야기는 장소입니다.

군사정권이 1970년대 들어 강남개발을 시작하면서 공유수면매립과 토지구획정사업을 통해 군소 건설업체들이 재벌로 도약할 기회를 주었고, 의도적으로 강북의 개발을 억제하고 강남개발촉진을 위해 아파트만 지을수 있는 아파트 지구를 설정한 사실 등은 서울의 도시개발이 즉흥적인 대처에 따라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해줍니다.

군사정권은 ‘안보’를 빌미로 강북에 거주하던 인구를 당시 허허벌판이던 당시 경기도 광주군(강남)으로 유인하기 위해 강북의 경기고를 비롯한 명문고등학교를 이전시켰습니다. 군가쿠데타에 동참했던 군인출신 서울시장은 군사작전하듯 무자비하게 일을 추진했습니다. 이후 1980년 들어 택지로 구획되지 못했던 반포 인근 근린공원용지에 법원과 검찰청을 이전시켰고, 전두환 신군부는 문화창달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서울에서 접근이 어려운 우면산 아래에 예술종합공연장인 예술의 전당을 한꺼번에 지었습니다.

도시계획의 틀안에서 행해진 장기적으로 유기적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가 아니고 이 모든 하드웨어 건설을 그 당시의 여건에 따라 개별적으로 행해져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책의 결론에서 한국사회가 아직도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관료들이 하드웨어 건설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지적한 점은 2021년 현재에도 유효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부족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자영업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바탕으로 방역체계가 세워졌으며 대형민간병원은 영리를 이유로 전염병 예방에 동참하지 않고 있으며 2년이 지나가고 있는 현 시점에도 감염병 전문병원이나 공공병원 확충은 없습니다. 의료인력 충원도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부채는 계속 증가하는 반면 국가부채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입니다.

산업화시대를 지나는 동안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하은데도 사실상 책임을 방기해 왔는데 이 세기적 재난을 맞이해서도 정부는 아직도 그 역할을 더욱 더 방기하고 있습니다.

첫 단추는 1970년대 군사정권 당시 잘못 끼워졌고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현재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는 고위 관료층이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와 현재 진행되는 팬데믹이 국가의 역할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있는데도 한국정부는 이런 면에서 너무 무력합니다.

사회안전망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가 조장되는 측면이 있는데도 관료들이 자신의 주택가격이 올라가니 그냥 사회안전망 시스템 도입을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절판된 줄 알았는데 아직 출판되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 일본이 감추고 싶은 비밀들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50쪽 가까이 되는 메이지유신관련 정치경제사 책입니다.

역사가가 쓴 책이 아니라 언론인 출신 작가가 쓴 책이고 일본사료를 주로 인용했지만 각주나 인용형식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그리고 참고문헌에는 나오지 않고 본문에서만 인용된 책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서술하고 주장하고 있지만 솔직히 출처를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단점이 존재합니다.

출판사에서 아셔야 할 것이 이책과 같은 일본 근대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이 부실한 각주와 인용이 있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각주와 인용이 없기를 바라면 소설을 읽어야지 뭐하러 역사서같은 논픽션을 찿아 읽겠습니까?

이상이 이 책의 형식적인 측면이고 내용에 대해서는 두가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첫번째는 장기지속의 관점에서 메이지유신을 본 것입니다.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나온 규슈 (九州)의 사쓰마 (薩摩), 와 사가(佐賀) 그리고 혼슈(本州)와 규슈를 연결하는 조슈(長州)지역이 16세기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에 가장 많은 병사를 보낸지역이며 이미 15세기부터 아시아에 교역을 하러 나타난 포르투갈 상인과 교역을 시작하고 이미 임진왜란 이전부터 총포를 포르투갈에서 도입하고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후 카톨릭 포교를 강제하는 포르투갈과 관계를 정리한 후 네덜란드와 사가의 나가사키(長崎)를 거점으로 교역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츠마에서 포르투갈 소총을 처음 도입하게 되고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와 교역하면서 근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각종 의술과 전쟁에 관련된 기술, 항해술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17-18세기 규슈를 중심으로 난학(蘭學)이 발전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사쓰마와 사가지역은 에도시대 중심인 현재의 도쿄에서 멀리떨어진 변방이라 중앙 바쿠후(幕府)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한 영향도 있고, 지리상 위치가 중국의 남부해안지역과 한반도 남단 그리고 류큐(琉球), 타이완(臺灣) 등과도 멀지 않아 일찍부터 대외교역(또는 해적)활동을 많이 해온 관계로 해외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덜했던 걸로 보입니다.

현재 야마구치현(山口県)에 해당하는 조슈지역은 혼슈남부지역으로 간몬해협(關門海峽)을 사이에 두고 규슈와 연락됩니다.
오래전에 후쿠오카(福岡)-고쿠라(小倉)- 모지(門司)- 시모노세키(下關)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철도로 3-4시간내에 갈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까지도 기차로 2 시간 정도면 갈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고 나가사키 바로 옆에 미군기지가 있는 사세보(佐世保)항이 있습니다.

나가사키 글로버 저택이 위치한 언덕에 서면 미쓰비시의 나가사키조선소가 보입니다. 과거 군함을 건조하던 곳입니다.

현재도 부산-시모노세키간 관부연락선( 關釜連絡船)이 오고가던 곳으로 한반도의 영향이 지대한 지역 중 한곳입니다.
가깝게는 얼마전 퇴임한 일본 총리 아베신조(安倍晋三), 그리고 그의 외할아버지로 쇼와의 요괴(昭和の妖怪)로 불리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을사늑약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이 모두 죠슈 출신입니다.

역대 조슈지역 출신 총리들은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메이지유신이래 한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총리가 ‘대대로’나온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기지속의 역사로 매이지유신를 살피면서 저자가 주목한 또 한 부분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던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이 이후 일본경제에 미친 영향입니다.

사실 도자기가 임진왜란 포로들에 의해 일본에 도입된 사실은 알아도 누구도 경제적 영향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서 일단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진실을 찾아내는 노력은 주목할만 합니다.

서쓰마와 사가 그리고 조슈 모두 조선에서 건너온 도자기 장인들이 일본의 도자문화의 시조가 되었으며, 이들은 일본에서 살기 위해 에도막부시절부터 각 번의 영주들에게 도자기를 납품하였습니다. 수출품이 별로 없던 당시 일본에서 각 본 지도자들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 상인들에게 도자기를 수출하게 됩니다. 이렇게 도자기를 팔아 만들어진 재원으로 군사력을 키우고 네덜란드와 영국으로부터 각종 상선과 중기선, 그리고 전함을 사들이고, 화포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유럽으로 수출한 도자기가 분명 국가재정에 큰 보탬이 된 것 같지만 설명 자체는 비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영국에 수출한 도자기가 일본의 전체 수출액 중 얼마를 차지했는지 보여주고 추이를 알려주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책에서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도자기관련 부분을 읽으면서 정치경제사인지 도자사인지 좀헷갈렸습나다.

다음으로 매이지유신은 결국 영국이 후견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러시아의 동진을 계속 주시하고 있던 입장이라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영국의 경제력은 이미 1840년 아편전쟁이후 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메이지 유신 당시인 19세기 중반 나가사키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무기상인 글로버가 규슈 전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자딘 메디슨의 나가사키 지사인 글로버상회에서 일한 글로버는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井上馨) 등 조슈출신 번사들의 영국유학을 알선한 장본인이고, 사쓰마와 조슈에 매이지 유신을 위한 무기를 공급해준 사람이었고, 미쓰비시 재벌(三菱財閥)을 만든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彌太郞)의 동업자였고 이후 글로버상회가 파산한 후 미쓰비시의 고문으로 일하게 됩니다.

영국은 무기상인 글로버를 통해 일본을 후원했고 대륙세력인 러시아의 영향력 저지를 위한 큰 밑그림이 있었습니다.

미국도 입장이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1905년 러일전쟁 직후 일본 외무대신 가쓰라 다로(桂太郎)와 미국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간 가쓰라 태프트 각서를 체결해 일본의 조선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합니다.

이협약으로 미국은 일본의 조선지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영미권 업무처리의 특징이 철저하게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이고 이익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상업적 마인드라면 이들은 약 160여년 전에도 일본과의 비지니스애서도 철저하게 그러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조슈번의 유신을 이끈 정치인들의 출신에 대한 사항입니다. 놀랍게도 여기에서 메이지천황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하고 있습니다.

조슈번 출신 유신 정치가들이 대부분 조선인의 피가 섞인 이들이라는 점과 매이지 천황이 조선인 부락 출신의 천민과 바뀌었다는 주장입니다.

이 부분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주장이지만 저자의 글과 일본에서 출간된 책의 어주 간략한 인용밖에 없어 솔직히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놀라우면서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이 되죠. 당혹스럽기도 하고.

인용한 책의 출판년도도 1970년이니 이미 50년전에 나온 책인데 좀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후에 유사한 내용으로 추가적인 연구발표가 있었는지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자료가 더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내용은 책의 마지막 정인 6장 후반부에 주로 나옵니다.

과문한 저로서는 조슈지방에 임진왜란 당시 끌려갔던 도자기 장인들의 후손들과 여러 임란 당시 포로들이 과연 조슈번에서 일대를 풍미했던 정한론(征韓論)과 관련이 있는지 주장하는 건 좀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연성과 인과관계를 찿았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