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작가의 첫책으로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한 글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근대 건축사에 대한 책이 상당히 드문데, 이 책은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약하신 건축가들의 작업과 생애를 조망해 볼 수 있는 독특하지만 귀한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평전이나 인물론이 그다지 인기있는 분야도 아니고 기술자로 저평가되어 온 건축가들의 이야기는 논문을 찿지 않는 한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는 조선의 최초이자 최고 건축가로 알려진 박길룡부터 시인으로 알려진 모더니스트 이상 그리고 집장사로 폄훼되온 건양사의 정세권, 그리고 조선에서 활동한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 (中村 與資平)까지 다양한 건측가들의 일과 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건축가들이 대부분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 경성고공) 출신이라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들이 조선총독부 (朝鮮總督府) 등 일제의 관청소속 건축가였다는 점입니다.
일제 강점기 대부분의 건축공사는 총독부가 진행한 관급공사이거나 일본인이 발주한 공사가 대부분이고 일본인들의 조선인 차별이 극심해 조선인 건축가의 경우 별다른 직업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일제가 추구한 고전적인 서양식 건축에 익숙해진 이 당시 건축가들의 건축작업이 당연히 일제 강점기 이전에 행해지던 전통적인 한옥건축은 쇠퇴할 수 밖에 없었지만 1930년대 정세권의 건양사는 개량한옥단지를 조성해서 판매한 부동산개발업자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전통건축을 하던 목수들도 개량한옥을 지으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최근 정세권과 건양사에 대한 별도의 연구서가 나왔습니다. 아파트 시대 이전 한국의 주거환경에 대한 전사(前史)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서울대 김경민 교수가 지은 아래의 책입니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이마,2017)
근대 건축가들의 일제 관청 경력은 이들이 친일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소개된 건축가 중 남만주철회사(南滿洲鐵道會社,만철)에서 근무했던 경성고공의 수재라고 알려진 이천승(李天承)의 경우가 친일로 의심할 만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당시 일본인도 들어가기 힘들었던 만주국의 만철에 조선인으로 입사했고, 만철은 철도회사일 뿐만 아니라 일제의 침략정책을 수행하고 수립하는 싱크탱크 역할도 했기 때문에 이런의심이 더욱 들게 죕니다.
더구나 항일무장투쟁의 중심지였던 만주에서 8년동안이나 조선인들과 접촉이 없었다고 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당시 생소하던 도시계획을 실무에서 경험해 보았던 이 근대건축가는 만주국의 수도 신경(新京:지금의 長春)의 도시계획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해방 후 한국의 도시계획연구를 선도했던 분이고 지금의 강남개발의 모태가 된 ‘남서울도시계획’을 입안한 분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이책을 통해 알게된 사실 하나는 건축(建築)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어이고 영어,architecture 를 일본인들이 번역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근대 이전 한국에서는 건축이라는 말 대신 영건(營建)이나 조영(造營)이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8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일본이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은 알게 모르게 가까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씁쓸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