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 - 인종주의는 역사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나인호 지음 / 역사비평사 / 2019년 4월
평점 :
한글로 쓰여진 드문 ‘인종주의’ 담론에 관한 책입니다.
유럽 중에서도 서유럽 국가인 독일, 프랑스, 영국의 인종주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으며 책의 대부분은 독일의 인종주의 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지은이 나인호 대구대 교수가 독일에서 공부하신 분이고,
두번째로 독일이 20세기 들어 타인종에 대한 혐오를 대규모 유태인 인종학살( Genocide)인 홀로코스트( The Holocaust)를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이론적 기반이 없을 것이라는 선입관과 다르게 서구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인종인 백인종, 그중에서도 독일과 영국 등 지역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게르만 인종이 우수하고 문명적 인종이라는 ‘사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려 100여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상당히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인데도, 게르만 인종이 다른 인종, 즉 가까이는 슬라브인, 라틴계 그리고 같은 백인 계통의
이슬람인 셈족 계통의 유태인을 ‘열등’인종이라고 폄하해 왔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건 이들의 주장이 일종의 ‘상상’으로 하얀피부에 금발 그리고 푸른 눈을 가진 백인종의 지능이 흔히 말하는 비 백인들 , 즉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 그리고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들보다 낫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같은 백인종끼리도 서로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상대를 폄하하니 아프리카의 흑인이나 아시아의 중국인 일본인들은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에 건너가 미국횡단철도의 서부구간을 건설하는데 동원되었던 중국인들은 쿨리(Cooley)라고 불리며 짐승취급 받던일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박람회를 열어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시베리아 극지방의 에스키모를 전시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야만적인 일을 서슴없이 했던 사람들이 백인들입니다.
미국이 1960년대까지 흑인들을 차별해 화장실과 급수대 등을 흑인용을 따로 만들었던 나라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나라가 ‘민주주의’종주국을 자처한다는 사실은 매우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위선적이죠.
그리고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출발한 나라라는 걸 생각하면 이 나라 백인들의 인종적 편견의 뿌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었던 점은 서구유럽과 미국에서 생각보다 슬라브인에 대해서도 인종적 편견이 심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구유럽과 미국 기준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이념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알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러시아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걸로 보입니다.
서구인들의 뿌리깊은 오만( arrogance)이 보이는 지점이죠.
미국은 민주주의를 이식한다며 이라크를 침략했지만 특별히 얻은 것 없이 흐지브지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한번도 러시아의 통치를 받아본 적 없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이를 복속하려고 하자 전 유럽과 미국이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고 군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내용은 모르겠지만 이 책에 서구 유럽인들이 러시아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에 대한 일부 인종적 설명이 나옵니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와 흑해연안 그리고 모스크바 지역까지 13세기 몽골의 침략을 받았던 지역이고 심지어 몽골의 칸국 (Khanate)이 세워졌던 지역으로 최소 18-19세기 서구 유럽인들은 슬라브인들이 몽골인들과의 혼혈로 더럽혀졌다고 인식한 겁니다.
몽골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이 이런 인식을 하게 된 동기라고도 생각됩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흑해 연안 국가들이 없었으면 서유럽 전체가 몽골기병의 습격으로 초토화되었을텐데 이걸 정반대로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유럽의 화약고인 흑해연안 지역과 발칸반도는 서구유럽 기독교권과 문화적 인종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발칸반도 지역은 상당한 기간동안 현재 터키인 오스만 투르크제국( The Ottoman Empire)의 지배를 받던 지역입니다. 대부분이 그리스 정교나 기독교를 믿어왔던 사람들이 이슬람제국인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었으니 충돌의 불씨가 항상 있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황태자 암살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도, 동유럽의 한 나라인 유고슬라비아가 소련의 해체이후 갈라져 코소보 내전이 일어난 것도 이 지역에서 인종청소( ethnic cleansing)가 일어나게 된 이유도 같은 이유입니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현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19세기 중반 벌어졌던 전쟁이 크리미아 전쟁( Crimean War,1853-1856)입니다. 흑해의 요충지이자 부동항인 세바스토폴을 차지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오스만 투르크 연합군이 러시아를 상대한 전쟁입니다.
영국군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지기 위해 참전했지만 같이 싸워야하는 오스만 군대를 인종적으로 폄하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스만 군이 미개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어이없게도 말이죠.
올해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러시아는 그들이 전략적 요충이라고 여겼던 크리미아 반도를 이미 2014년 복속시켰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왜 나치 독일이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크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인종혐오의 뿌리를 찿는데 있지만 이 과정에서 서구의 계몽주의( the enlightenment)가 인종주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영국의 찰스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설를 비롯한 적자생존의 원리와 진화론 그리고 이어 나타난 사회적 다윈주의( Social Darwinism)과 독일의 관념적 역사철학들이 서구의 서구중심적(Eurocentric) 내지는 게르만 인종 우월적 인종주의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보여줍니다.
19세기 독일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니체와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가 인종주의에 끼친 영향도 주목할 만 합니다.
애초에 제국주의라는 서구 중심적 식민지확장 정책과 함께 발맞추어 발전되었던 인류학 ( anthropology) 역시 서구 인종주의의 발전과 함께 발달하게 됩니다.
19세기 서구에서 유럽인종의 우수성을 밝히기 위해 세계각국의 비서구인들의 머리를 측정하고 두개골의 용적을 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19세기 말 조선을 찿는 서구 학자들과 일본인들이 머리를 측정하고 전신사진을 찍어놓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이비과학으로 취급받는 골상학 (Phrenology)이 바로 두개골 측정을 통해 인종간 우열을 가릴 수 있다는 학문 분파로 서구 제국주의 극성기인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된 분파였습니다.
각 인종간의 우열을 가리겠다는 이야기는 우열에 따른 인정간의 불평등을 그대로 용인하겠다는 주장에 다름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람과 짐승같은 사람이 있으면 후자는 짐승취급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인종간의 차별이 당연시 되면 짐승같은 인종에 대한 혐오도 당연시됩니다. 19세기이후 자행된 서구인들의 이슬람 차별, 중국인 멸시 , 흑인에 대한 테러가 자행된 이유는 이들이 100여년간 발전시켜온 백인우월주의의 이론과 생각이 이들의 무의식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와 그에 따른 갈라치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차별과 혐오는 대단히 정치적이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자를 만드는 굉장히 악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독일문헌이 인용되었고 이 자료의 출판시기도 18세기부터 20세기 초인 것이 대부분이라 가독성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480쪽 가까이 되는 본문도 쉽게 읽기 어려운 분량입니다. 하지만 국내 저자가 쓴 본격적 서유럽 인종주의 이론 개론서라 일독할 가치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는 포드 자동차의 헨리 포드가 적극적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과 나치독일의 히틀러가 포드를 상당히 존경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