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하는 인간의 탄생 - 인종주의는 역사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나인호 지음 / 역사비평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글로 쓰여진 드문 ‘인종주의’ 담론에 관한 책입니다.

유럽 중에서도 서유럽 국가인 독일, 프랑스, 영국의 인종주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으며 책의 대부분은 독일의 인종주의 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지은이 나인호 대구대 교수가 독일에서 공부하신 분이고,

두번째로 독일이 20세기 들어 타인종에 대한 혐오를 대규모 유태인 인종학살( Genocide)인 홀로코스트( The Holocaust)를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이론적 기반이 없을 것이라는 선입관과 다르게 서구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인종인 백인종, 그중에서도 독일과 영국 등 지역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게르만 인종이 우수하고 문명적 인종이라는 ‘사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려 100여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상당히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인데도, 게르만 인종이 다른 인종, 즉 가까이는 슬라브인, 라틴계 그리고 같은 백인 계통의
이슬람인 셈족 계통의 유태인을 ‘열등’인종이라고 폄하해 왔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건 이들의 주장이 일종의 ‘상상’으로 하얀피부에 금발 그리고 푸른 눈을 가진 백인종의 지능이 흔히 말하는 비 백인들 , 즉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 그리고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들보다 낫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같은 백인종끼리도 서로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상대를 폄하하니 아프리카의 흑인이나 아시아의 중국인 일본인들은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에 건너가 미국횡단철도의 서부구간을 건설하는데 동원되었던 중국인들은 쿨리(Cooley)라고 불리며 짐승취급 받던일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박람회를 열어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시베리아 극지방의 에스키모를 전시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야만적인 일을 서슴없이 했던 사람들이 백인들입니다.


미국이 1960년대까지 흑인들을 차별해 화장실과 급수대 등을 흑인용을 따로 만들었던 나라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나라가 ‘민주주의’종주국을 자처한다는 사실은 매우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위선적이죠.

그리고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출발한 나라라는 걸 생각하면 이 나라 백인들의 인종적 편견의 뿌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었던 점은 서구유럽과 미국에서 생각보다 슬라브인에 대해서도 인종적 편견이 심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구유럽과 미국 기준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이념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알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러시아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걸로 보입니다.

서구인들의 뿌리깊은 오만( arrogance)이 보이는 지점이죠.

미국은 민주주의를 이식한다며 이라크를 침략했지만 특별히 얻은 것 없이 흐지브지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한번도 러시아의 통치를 받아본 적 없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이를 복속하려고 하자 전 유럽과 미국이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고 군비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내용은 모르겠지만 이 책에 서구 유럽인들이 러시아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에 대한 일부 인종적 설명이 나옵니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와 흑해연안 그리고 모스크바 지역까지 13세기 몽골의 침략을 받았던 지역이고 심지어 몽골의 칸국 (Khanate)이 세워졌던 지역으로 최소 18-19세기 서구 유럽인들은 슬라브인들이 몽골인들과의 혼혈로 더럽혀졌다고 인식한 겁니다.

몽골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이 이런 인식을 하게 된 동기라고도 생각됩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흑해 연안 국가들이 없었으면 서유럽 전체가 몽골기병의 습격으로 초토화되었을텐데 이걸 정반대로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유럽의 화약고인 흑해연안 지역과 발칸반도는 서구유럽 기독교권과 문화적 인종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발칸반도 지역은 상당한 기간동안 현재 터키인 오스만 투르크제국( The Ottoman Empire)의 지배를 받던 지역입니다. 대부분이 그리스 정교나 기독교를 믿어왔던 사람들이 이슬람제국인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었으니 충돌의 불씨가 항상 있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황태자 암살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도, 동유럽의 한 나라인 유고슬라비아가 소련의 해체이후 갈라져 코소보 내전이 일어난 것도 이 지역에서 인종청소( ethnic cleansing)가 일어나게 된 이유도 같은 이유입니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현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19세기 중반 벌어졌던 전쟁이 크리미아 전쟁( Crimean War,1853-1856)입니다. 흑해의 요충지이자 부동항인 세바스토폴을 차지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오스만 투르크 연합군이 러시아를 상대한 전쟁입니다.

영국군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지기 위해 참전했지만 같이 싸워야하는 오스만 군대를 인종적으로 폄하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스만 군이 미개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어이없게도 말이죠.

올해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러시아는 그들이 전략적 요충이라고 여겼던 크리미아 반도를 이미 2014년 복속시켰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왜 나치 독일이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크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인종혐오의 뿌리를 찿는데 있지만 이 과정에서 서구의 계몽주의( the enlightenment)가 인종주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영국의 찰스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설를 비롯한 적자생존의 원리와 진화론 그리고 이어 나타난 사회적 다윈주의( Social Darwinism)과 독일의 관념적 역사철학들이 서구의 서구중심적(Eurocentric) 내지는 게르만 인종 우월적 인종주의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보여줍니다.

19세기 독일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니체와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가 인종주의에 끼친 영향도 주목할 만 합니다.

애초에 제국주의라는 서구 중심적 식민지확장 정책과 함께 발맞추어 발전되었던 인류학 ( anthropology) 역시 서구 인종주의의 발전과 함께 발달하게 됩니다.

19세기 서구에서 유럽인종의 우수성을 밝히기 위해 세계각국의 비서구인들의 머리를 측정하고 두개골의 용적을 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19세기 말 조선을 찿는 서구 학자들과 일본인들이 머리를 측정하고 전신사진을 찍어놓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이비과학으로 취급받는 골상학 (Phrenology)이 바로 두개골 측정을 통해 인종간 우열을 가릴 수 있다는 학문 분파로 서구 제국주의 극성기인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된 분파였습니다.

각 인종간의 우열을 가리겠다는 이야기는 우열에 따른 인정간의 불평등을 그대로 용인하겠다는 주장에 다름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람과 짐승같은 사람이 있으면 후자는 짐승취급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인종간의 차별이 당연시 되면 짐승같은 인종에 대한 혐오도 당연시됩니다. 19세기이후 자행된 서구인들의 이슬람 차별, 중국인 멸시 , 흑인에 대한 테러가 자행된 이유는 이들이 100여년간 발전시켜온 백인우월주의의 이론과 생각이 이들의 무의식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와 그에 따른 갈라치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차별과 혐오는 대단히 정치적이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자를 만드는 굉장히 악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독일문헌이 인용되었고 이 자료의 출판시기도 18세기부터 20세기 초인 것이 대부분이라 가독성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480쪽 가까이 되는 본문도 쉽게 읽기 어려운 분량입니다. 하지만 국내 저자가 쓴 본격적 서유럽 인종주의 이론 개론서라 일독할 가치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는 포드 자동차의 헨리 포드가 적극적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과 나치독일의 히틀러가 포드를 상당히 존경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덧붙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이징 이야기 이산의 책 20
린위탕 지음, 김정희 옮김 / 이산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활의 발견’이라는 수필로 유명한 중국의 문학가 린위탕(林語堂)선생이 쓰신 베이징의 문화 예술 역사에 대한 책입니다.

번역의 저본으로 삼은 ‘Imperial Peking(1961)’이 1960년대 나온 저작이고 이 번역판도 2001년 출판되었으니 상당히 오래전에 출판된 책입니다.

번역된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 절판되지 않고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중국과 서양문헌에 따른 베이징의 문화와 지리 등에 대해 나름 신빙성 있는 고증을 했고 또 비판적으로 사료비판을 해서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이 책의 부록으로 베이징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수도로 성립되면서 변해온 도시의 경계와 성곽에 관한 고증을 원나라부터 요, 금나라 그리고 명청 시대의 중국 기록과 당시 중국에 선교를 하기 위해 온 서양인들의 기록을 비교 고찰해 근대 이전 베이징의 외곽 경계가 어떠했는지 고찰한 부분입니다.

문학가로서 중국의 고서적과 독일과 미국에 유학했던 지식인으로 서양의 문헌들을 비교 고찰한 면이 이 책의 장점이자 린위탕이라는 저자의 강점일 수 있습니다.

번역자께서 베이징의 문물과 관련된 별도의 부록도 만들어 주셔서 인상적이었고 더 충실하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용과 별도로 이 책에 사용된 훌륭한 도판이 글과 같이 가지 않고 산재해 있어 읽는데 매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글과 도판의 재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편집이 안이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베이징의 예술을 이야기하면서 수많은 회화 조각 도자 건축 등의 사례가 광범위하게 나오는데 다른 곳에 있는 도판을 보려면 책을 이리 저리 다시 넘겨야 합니다. 특이한 경우지요.

실제로 다시 고쳐진 판본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단점이 추후 보완이 된다면 가독성이 훨씬 높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카고 만국박람회(1893)와 당시 시카고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마 혹은 사이코패스( Psychopath)에 관한 논픽션입니다.

마치 소설처럼 느겨지는 이 책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데 이 책을 읽는 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작가 에릭 라슨(Eric Larson) 의 출세작으로 2003년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출간 당시 책을 읽으려고 사 두었다가 이제서야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최근 번역된 영국에 대한 나찌의 공습에 대한 책( The Splendid and the Vile, William Collins,2021)도 관심이 가지만 일단 초기작을 먼저 읽었습니다.

이 책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건설과 설계의 총책임을 맡은 시카고 출신 건축가 다니엘 번햄 (Daniel Burnham(1846-1912)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19세기 말 시카고와 뉴욕 , 보스턴 등 동부 출신 건축가들 사이에서 만국박람회장 건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을 다룹니다.

당연히 현대 고층건물 건설에 영향을 미친 시카고 출신 건축가들의 업적과 알력 등 현대 도시계획에 영향을 미친 건축가들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오고 당시 시카고가 육류가공을 하는 중부의 축산도시애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뉴욕을 앞서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묘사됩니다.

도시에 사는 문명인이라고 자각하는 건축가들은 자신들의 현대적 건축방식이 뉴욕이나 유럽의 건축양식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인식시키려고 했습니다.

동부에 자리를 잡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던 당시 많은 건축가들은 번햄으로 상징되는 시카고 건축가들을 한 수 아래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번햄은 시카고 만국박람회장을 건설하기 위한 설계를 상당수 동부의 유력 건축가들애게 맡기고 그 결과가 현대 건축이 아닌 고전주의적 건축으로 나오자 시카고 출신 현대 건축가들애게 건축을 퇴보시켰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사이코패스( Psychopath) 닥터 홀름스(Dr.Holms)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천성적으로 공감능력도 없고 말을 지어내길 잘하는 홀름스는 내과의사(Physician)로 훈련받은 사람입니다.

잘 생기고 깊고 푸른 눈을 가졌고, 여자들에게 잘 대해주는 것으로 보여, 여성 편력이 심했고, 그와 사귀었거나 결혼을 약속했거나 그의 부인이 되었던 여성들, 그리고 그의 가게에서 일을 했던 여성들 중 상당수가 그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는 시카고 만국박람회장과 가까웠던 자신의 호텔에 시체를 태우기 위한 보일러를 준비하고 가스실을 이용해 희생자를 죽이고 시체를 인체골격표본으로 만들어 의과대학의 해부학 교실 등에 팔았습니다.

이 사람 주변에서 젊은 여자들이 자꾸 사라지자 미 경찰당국은 배테랑 탐정을 고용해 그의 흔적을 쫓습니다.

그가 잡힌 계기는 어란이 살해에 대한 피의자로 몰렸기 때문인데 솔직히 그가 살해한 어린이들에 대한 묘사는 이 자리에서 하기 어려울 정도 입니다.

이 책 말미에 나온 이 부분은 저자가 이 사건을 쫓은 탐정의 회고록(Memoir)와 당시 사건 기록을 연구해 재구성한 것으로 매우 똑똑하지만 공감능력은 없고, 거짓말을 밥먹듯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희생자를 유인해 살해하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게 재연합니다.

확인된 여성 희생자만 9명에 검거에 계기가 된 어린이 살해만 3건 거기다 시카고 박람회를 전후해서 이 사람 주변에서 사라진 젊은 여성들이 많게는 100-200여명에 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희대의 살인마는 끝까지 자신이 미국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사체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콘크리트 관에 콘크리트를 부어 밀봉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책에서 저자가 사이코패스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유명한 책을 하나 소개했습니다.

‘Mask of Sanity(1941)’입니다. 우리말로는 ‘멀쩡해보이는 가면’이라는 뜻이니 멀쩡해 보이는 외면에 감추어진 악마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사이코패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합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정신적 장애(mental disorder)가 있는 사이코패스는 마스크 뒤에 이를 숨긴다는 말입니다.


사이코패스인 사람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고 겉보기에 정상으로 보이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비즈니스라고 생각해 사람을 죽여 사체로 골격표본을 만들어 의사들과 의과대학에 팔았다는 사실은 시간이 백년 넘게 지나고 장소가 미국 시카고여도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잔혹함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은 책은 ‘世界一周の誕生 グロ―バリズムの起源 (文藝春秋社 文春新書,2003)’입니다.

부제가 ‘글로벌리즘의 기원’으로 현재 전세계적인 항로교통망과 전신망(해저 케이블)이 언제부터 기원했는지 그 역사적 연원을 추적한 책입니다.

글로벌리즘이 국가간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물품과 사람의 이동이 확대되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국제무역의 활성화와 우편통신망의 발달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 책은 이런 국제교역로의 확장과 통신망의 물질적 확장의 시각에서 역사를 조망합니다.

19세기 중엽이후 증기선 항로가 개척되고 영국 리버풀에서 미국 뉴욕을 잇는 대서양 항로의 개설되었고, 파나마 운하 개통으로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항로는 크게 단축되었습니다. 파나마운하 개통을 계기로 미국은 본격적으로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대서양쪽의 영국은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개통을 통해 식민지인 인도를 향한 접근성을 강화했고 인도양과 동양항로 개척을 통해 동양으로 동진을 계속합니다.

영국이 19세시 중엽 러시아 크리미아 반도애서 러시아와 부딪친 크리미아전쟁 (Crimean War ,1853-1856)도 러시아의 남진정책과 영국의 동진정책으로 일어난 전쟁이고, 구한말 한반도에서 일어난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1887)도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위해 영국이 조선의 거문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했던 사건입니다.

영국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이책의 상당부분이 영국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증기기관이 처음 만들어진 지역이 영국이고 석탄을 채굴해야하고 보관하는 광산업이 발달할 수 없었던 이유도 역시 기계의 동력원이 석탄이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습니다. 따라서 중기기관을 이용한 증기선도 처음 상용화된 곳이 영국이고 이런 증기선 우편선과 전함을 보유한 영국은 19세기 최강의 해군력 (naval power)을 보유한 국가였습니다.

솔직히 증기선 시대의 교통과 통신에 관한 책을 본적이 없는데 매우 시각이 신선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는 미국의 서진과 함께 미국 대륙횡단철도가 건설되었고 그 이전 영국에서는 맨체스터와 리버플 간의 철도개통을 계기로 철도망이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자동차가 나오기 전이지만 철도와 증기선 운송은 셰계의 거리를 축소시켜 전 지구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든 것은 분명합니다.

증기선은 처음에 범선을 대체하기 시작하며 나타나서 주로 국제우편을 위해서 이용됩니다.

영국의 경우 처음에 운수성이 우편업무를 관장하다 이후 전쟁성으로 우편업무가 넘어갑니다. 이유는 평상시 우편업무에 임하던 우편선이 전쟁시 전함으로 전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영국 전쟁성으로 우편업무가 넘어간 이후 우편선의 무장이 허용되고 함포가 설치되기 시작됩니다.

이 책이 다루는 19세기 중엽부터 말엽까지는 일본의 명치유신이 이루어진 시기이며 그 이전 미국의 페리제독이 흑선을 타고 일본에 개항요구를 한 시기입니다.

세계의 정세는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를 할양받고, 프랑스와 전쟁이후 루이지에나를 할양받고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구입하는 등 점차 미시시피강 서안으로 서진을 계속해 영국에게 종속적이던 대서양 시대를 넘어 태평양으로 진출해 새로운 해양 세력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19세기에 영토확장과 함께 산업혁명을 진행한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에 접한 양안국가로 힘을 기르게 됩니다.

이 책은 주로 영국의 동양 진출을 수에즈 운하 개통과 함께 아덴만의 석탄수급기지가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인도양으로 진출한 영국은 아덴에서 석탄을 수급받은 후 인도 봄베이로 향하고 이후 말라카의 싱가포르로 진출하고 마카오와 홍콩을 자나 일본의 나가사키에 진출하고 세토내해를 거쳐 요코하마까지 이릅니다.

19세기 이미 영국 리버플애서 요코하마에 이하는 정기 증기선 항로가 개설되었고 미국에서는 뉴욕에서 파나마 운하를 지나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룰루를 경유해 요코하마에 이르는 증기선 항로 역시 개설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개항된 항구가 상해와 홍콩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코로나 발발로 현재는 빛을 잃었지만 이 책이 쓰여진 2003년만해도 이책이 다르는 ‘글로벌리즘의 기원’이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시의적절한 주제였습니다.
이 책의 집필 당시는 2003년으로 국경이 없는 글로벌한 세계가 당연시되는 세계였고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이라 자유경제시장체제에 대해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던 때였습니다. 1970년대 말 이후 세계를 장악했던 신자유주의가 아직 힘이 있던 때라 글로벌리즘의 기원을 추적해 보는 건 해봄직한 작업이었음은 틀림없습니다.

당시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외국과의 교류는 피할 수 없었고 이 책은 현재 글로벌리즘의 기원을 1850년대 증기선의 발달과 함께 촉발된 대서양횡단항로와 태평양횡단항로 개설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해양의 역사 특히 19세기 증기선의 발달과정을 다룬 한국어책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갈증이 일부 플렸네요.
기계적 물질문명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시작인 산업혁명과 증기기관의 발달을 다시 한번 고찰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 일본만해도 해양의 역사나 어업의 역사 그리고 해군사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것 같은데 한국은 삼면이 바다라면서도 이 부문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진한 것 같습니다.

해양사쪽에서 생각나는 국내학자는 주강현 선생 말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분야의 더 많은 국내저작을 보실 원합니다.

끝으로 이 책의 체제를 말씀드립니다.

문춘신서라는 일본 문예춘추사애서 나온문고본 입니다.
겨우 200여쪽에 달하지만 일본어로 쓰여진 영국과 미국이야기는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화된 영어를 알아듣기는 쉬운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일본저서에 비해 영어문헌을 많이 참조했는데도 쉽지 않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글항아리라는 출판사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김원중 교수님 번역의 ‘ 논어(2013)’도 이 출판사에서 나왔고, 태평양 군도에서 바라 본 근대를 조망한 ‘군도의 역사사회학(2017)’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책에서 이은혜 편집장이 언급했다시피 글항아리의 약 50%정도가 번역서이고 상당 수의 번역서가 유럽이나 미국보다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서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독서를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고, 책 한권 기획하기 위해 편집자가 스스로 준비해야 하고 독서에 투자해야 하는 양이 상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꼭 내야 하는 책과 책 판매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측면이 있고, 천권 정도밖에 팔 수 없지만 500-600쪽을 넘어가는 두꺼운 책을 출간하는 건 출판사 편집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번역을 위해 인용된 서적들을 모두 찿아보고 일본이나 중국에서 번역된 서양 서적의 경우 교차검증도 해야하는 일이니 만만한 작업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이 일은 외서기획자라는 전문가와 함께 하는 일이지만 노력에 비해 알아주는 일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한국에서 신간들이 너무 빨리 절판(絕版)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현재 출판계에서 신간의 수명을 5년으로 보고 있고 출판 후 팔리지 않는 책들은 더 빨리 절판된다고 하니 책들이 빨리 사라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대중적 논픽션이 이러니 학술서나 연구서는 수명이 더 짧겠죠.

사실 1990년대 말에 나온 책들도 신간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역사서나 경제서도 교과서를 제외하고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 부득불 헌책방에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있는 고 손정목 교수님의 일제시대 도시발달사 같은 책들은 길어봐야 40년 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현재 헌책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도시사를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지만 절판이후 희귀본 취급을 받습니다.


영미권과 비교가 불가피한데, 아마존에서 보면 1960년대 출판된 책들이 아직도 신간으로(물론 복간이 된 책이지만) 출판되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두껍고 각주 잔뜩 달린 책들이 인기가 있을 수 없지만 이런 책과 연구가 없으면 어떤 대중적 논픽션도 생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면이 큽니다.

영미권의 학자들이 쓴 책들이 100쪽 이상의 참고문헌과 색인 그리고 후주를 포함하고 본문만 최소 400쪽에서 700쪽에 이르는 경우를 봅니다. 특히 역사책의 경우 분야를 막론하고 두께가 상당합니다. 역사적 인물의 평전의 경우 2-3권 분량의 시리즈인 경우도 흔하고 1000쪽을 넘는 경우도 흔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책들이 대학출판부 뿐만 아니라 대형상업출판사에서도 나옵니다.
솔직히 장사가 될까 싶지만 꾸준히 이런 책들이 나오는 걸 보면 놀랍습니다.
요새 인공지능 이야기하고 머신러닝 이야기 하지만 이건 지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인공지능이 학습할 컨텐츠가 없다면 기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논픽션 전문 출판이 수익성을 떠나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최대의 영어사전을 출판하는 옥스퍼드대학이 세계최대의 영어사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전을 편찬할 수 있는 나라가 몇 나라 밖에 없는 것도 모든 것이 전자화되고 데이터베이스화된 현재의 어두운 면입니다.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관심이 있을 책입니다.
독자가 독서를 지속하다 저자가 된다는 말에 공감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책의 출판에 편집장의 개인적 취향과 독서 편력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