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공부하신 방통대 일본학과 강상규 교수의 조선정치사 연구서입니다.

종장을 포함해 총 7장 598쪽의 벽돌책입니다.

조선건국부터 고종 재위당시 갑신정변 (甲申政變,1884)까지의 시기를 다루는 이 책은 전에 읽었던 ‘고종의 미관파천 시도와 한미관계( 경인문화사,2021)’의 참고도서 중 한권이었습니다.

특정한 시기, 즉 19세기 고종 재위시기를 좁게 다루지 않고 조선 건국기와 조선 중. 후기를 다룬 이유는 조선정치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때문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유교적 예(禮)를 중시하고 다분히 윤리적 기반위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조선의 전통적 성리학 기반의 정치는 왕권이 신권에 의해 제약당하는 정치였으며 당시 식자인 유생(儒生)들이 공론정치(公論政治)라는 제도하에서 국왕의 결정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국왕의 통치가 쉽지 않았습니다.

윤리적 유가철학(儒家哲學)만을 공부한 선비와 학자관료들은 유연하기보다 완고하며 세상사에 무관심하였고, 국방과 기술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매우 독선적인데다가 편협하기까지 해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격변의 19세기에 잘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유가를 배운 자신들만이 문명인이고 통상을 요구하러 조선과 접촉온 서양인들은 양이(攘夷)라고 배척하고 세상에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서양인들은 조선인을 야민인으로 생각하고 교화의 대상으로 삼았고, 조선의 양반과 지배층들은 유교를 배우지 못한 서양인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해 금수(禽獸 )와 같다고 했습니다.

중국 중원이 만주에 살던 여진족(女眞族)으로 통치권력이 넘어간 이후 조선만이 중화문화(中華 文化 )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 조선중화(朝鮮中華)주의가 뿌리깊게 박혀 있어 성리학적 유교 이외의 사상에 대해 포용력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중기이후 정권을 잡아온 노론 벽파(老論僻派) 선비들이 특히 완고했습니다. 고종이 즉위한 이후 수렴첨정을 하던 조대비(趙大妃)가 흥선대원군( 興宣大院君) 과 손을 잡고 당시 서학교도들을 학살한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유교국가의 완고함을 보여준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인박해로 프랑스인 신부가 순교하고 천주교도들이 죽자 앙스는 이에 대한 복수를 위해 병인양요(丙寅洋擾)를
일으키고 대원군은 프랑스군을 격퇴합니다. 이일을 계기로 조선의 쇄국정책은 더욱 강고해집니다.

격변기인 19세기 중엽 조선의 통치자였던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통치를 전부 다룬다는 건 물리적으로불가능하고 다만 병인박해의 사례처럼 조선의 근본주의성리학이 너무 유연하지 못하고 뜬구름잡는 주장을 반복해 격변의 시기 변화의 바을 타지 못하게 한 것이 원인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같은 시기 일본이 재빨리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인 건 일본이라는 무사위주의 분권적 사회에 상대적으로 성리학의 영향력이 조선보다 덜한 면도 있었고, 막말부터 일본의 살길은 서양열강보다 먼저 아시아 대륙을 침략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의 영향때문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근대사에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두번의 양요(洋擾), 즉 프랑스와 싸운 병인양요(丙寅洋擾,1866)와 미국과 싸운 신미양요(辛未洋擾,1871) 그리고 청국의 개입을 불러와 최초로 외세개입을 촉발하는 임오군란(壬午軍亂,1882)이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도 전문적으로 이를 다룬 글이나 책을 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논문을 읽어보지 않아 제가 모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대원군의 사실상 (de facto)의 섭정(攝政)이 끝나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고 개화를 하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1860-1880년대의 이 시기는 일본이 조선과 중국 대륙을 탐하고 있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정책을 세워 실행하기 전이었고, 서양의 문호개방에 대해 대처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조선의 운명이 갈릴 수 있었던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조선후기인 18세기 경부터 청나라를 왕래하며 서양의 여러 문물을 접해왔을텐데 19세기 후반까지 양반과 학자관료들이 고집스럽게 근본주의 성리학에만 매달리고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책이나 국방력 강화정책을 쓰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회가 폐쇄적이어도 외교관들이 청국으로 사행을 다녀오면 지식층에라도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쳤을탠데 갑신정변이후까지도 유생들이 경전만을 인용하며 왕의 부국강병책에 반대 상소를 올리는 광경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이렇게 현실을 모른 체 허황된 주장만을 내세워 유교가 아닌 모든 것들을 야만으로 간주하는 무모함이 현실적인 부국강병책 실행을 불가능하게 하고 결국 외세를 끌어들이게 되는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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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The Great Recession) 여파로 수많은 미국인들이 중산층으로 살지 못하고 하위로 내려갔다는 사실은 많은 책에서 극히 일부 건조하게 사실을 나열했을 뿐 각 개개인이 이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 글이 없었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미국 사회에서 하루아침에 부동산 가격 폭락과 경기침체로 집과 직업을 잃은 수많은 미국인들이 어떻게 자동차에서 생활하며 아마존의 창고일과 무료 캠핑장을 찿아다니며 살게 되었는지, 저자가 무려 3년을 추적하고 이들과 교감하며 쓴 글입니다.

자신들의 개인적인 아픔을 저자에게 털어놓아 책이 완성된 사실도 놀랍지만 이들이 나름 어떻게해서든 삶을 지탱해가려는 노력은 매우 눈물겹습니다.

대부분 60-80대 노인들로 복지제도가 허약한 미국 자본주의체제 하에 무방비로 해고된데다가 2008년 금융위기로 집까지 잃게 되자 이들은 어쩔수 없이 RV또는 트레일러같은 차량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홈리스(homeless)라고 불리워지는 걸 두려워하면서 ‘벤에 사는 사람들 (vandwellers)로 불리길 자청하고 온라인상 스스로를 돕는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십시일반으로 서로 돕습니다.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이나 기득권층이 세상에 보이기 싫어하는 미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실체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하기 좋은 보기 드문 저널리스트의 심층취재기이지만 또한 매우 미국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책에서 보듯, 사회보장지원금( social security)이 부족해 노인들이 어려운 삶을 살수 밖에 없는 현실은 미국의 경제체제를 남김없이 복사해 적용해온 한국사회에도 이런 유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합니다.

정치권에서 복지를 무슨 ‘시혜’처럼 생각하고 복지제도가 커지면 일을 안한다는 둥 헛소리는 좀 그만 했으면 합니다.

국가의 역할이 국가의 구성원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것이지 구성원의 한 부분인 기업의 이윤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국가가 거대은행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금융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세금을 쓰면서 잘못을 저지른 거대은행은 살려준 반면 (bail out), 은행의 영업으로 모기지를 설정하고 집을 샀던 일반 중산층들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게 된게 2008년 금융위기의 결과입니다.

여파는 아직도 계속됩니다. 30여년간 지속된 저금리 정책으로 금융정책(monetary policy)을 쓰지 못하게 되자 미국 금융당국은 돈을 푸는 양적완화정책(Quantitative Easing;QE)을 시행합니다. 이렇게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울 유발하면서 동시에 경기를 자극합니다. 미 금융당국은 미국이 경기침체에서 벗어난 것 같은 신호를 받으면서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두어들이면서 금리 인상을 시작합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금리인상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게 아닙니다. 일차적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양적완화이고, 역사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면서 지속적으로 유지된 ‘비정상적인’저금리’때문입니다.
QE와 금융정책이 어떻게 무용지물이 되었는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중앙은행이 과연 유효한 정책을 펼수 있는 정책기관인지 여부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별도로 다룰 예정입니다. 금리는 화폐의 가치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국가의 국력과 경제력을 나타내기도 하고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와도 밀접해 여기서는 간략하게만 짚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이책은 이전에 소개한 경제학자 조셉 스티그리츠 박사의 ‘불평의 대가(열린책들,2013)’의 현장보고서 같은 책입니다.

같이 읽으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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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4 - 약소국의 생존 전략 춘추전국이야기 4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11권이나 되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역사서를 읽는다는게 쉽지는 않습니다. 저의 경우 2021년 ‘춘추전국이야기 ‘ 1권에서 3권까지 읽은 후 2022년에는 결국 읽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가 궁금했지만 시간이 없어 도리가 없었죠.

본론으로 넘어와서 이 책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춘추시대 말기 약소국인 정나라의 재상이었던 자산(子産)의 정치적 평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춘추시대 말 두 강국, 즉 북쪽의 진(晉)나라와 남쪽의 강자 초(楚)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여야 했던 약소국 정나라의 상황은 2023년 현재 미국과 일본이라는 해양세력과 중국과 러시아라는 대륙세력 사이에 끼어서 섣불리 행동하기 어려운 한국의 현재 상황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한국이 세계6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해도 위에서 언급한 지정학적인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비록 19세기 말보다 상황이 나아졌다고 해도 국제조약체제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 한국은 국력에 비해 아직 목소리가 너무 작습니다.

자신이 가진 패도 재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단순히 고대 중국의 정치사/ 전쟁사로 치부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책에서 자산이라는 고대 중국 정치가를 통해 본 약소국 정치가가 갖추어야 할 자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해야 합니다. 일관되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강대국의 어느 한쪽 편을 들면 안된다는 말이지요.

둘째, 비판적인 언론을 용인합니다. 독재자들은 예외없이 여론을 배제하고 탄압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소국의 정치를 이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셋째, 전문가들의 조언을 수없이 경청하고 결코 즉흥적으로 외교무대에서 발언해서는 안됩니다. 죽 모든 행위는 계획에 의한 일종의 연기로 강대국에게 빈틈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이책의 제10장에 위의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2,500년도 전에 일어난 중국 역사의 한토막이지만 2023년의 한국정치와 비교해 한국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정치외교를 위의 세 잣대로 평가하면, 한국은 현재 어떤 외교원칙이 있는지 불분명해 보입니다. 임기응변으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지 의심이 됩니다. 한국은 현재 철저히 일본과 미국편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건가요?
현재 한국의 언론은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죠. 비판을 용인하지 않는 것은 독재국가애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정부의 나팔수로서의 언론만 용인하는 것도 독재 정치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샛째, 현재 한국정치애서 전문가의 발언이 실종되었습니다. 전문가의 소견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범죄화하고 있습니다.
종편의 심사에 참여했던 언론학 교수들이 고발되고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대낮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약소국의 정치가가 가져야 할 그 어느것도 현재 한국 정치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현상황에 대한 우려는 단순히 마음에 안들어서가 아닙니다. 이건 국가의 전략(Strategy) 부재로 보이기 때문에 우려스러운겁니다.

잊지 말아야 할 또 한가지는 정나라의 자산은 지극히 현실주의적 정치가이고 필요하면 편법도 쓰고 술수도 쓸 줄아는 정치가였다는 사실입니다. 출신도 왕족인데다가 보수적인 완고한 원칙주의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 위의 세가지 잣대로 정치를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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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감상부터 써야할 것 같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광기(狂氣)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연구서였습니다. 이 책에 나온 특히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라는 황도주의 언론인이자 정치가는 솔직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노골적인 일본 황실우선주의자이자 전제정치주의자로 일본의 군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선동했던 호전적인 인물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현재 일본에서 매이지, 다이쇼, 쇼와시대를 대표하는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일제의 식민사학을 비판하기 위해 출간된 이책은 시리즈의 첫번째로 이미 두번째 권은 소개한적이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식민주의 ( 사회평론 아카데미,2022)

두번째 책이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를 찿기 위한 일제 관변사학자들의 유물발굴과 박물관에서의 유물전시, 의도적으로 궁궐의 전각을 박물관으로 사용하면서 궁궐을 훼손한 사례들을 설명했다면, 첫번째 권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라는 막말 사상가의 ‘주변국 선점론’이 어떻게 ‘동양사’라는 개념으로 발전되었고, 도쿠토미 소호의 ‘황도 파시즘’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줍니다.

요시다 쇼인이라는 일본 막말의 인물을 처음 인지한 건 얼마전 유세도중 피격되어 사망한 전 일본총리 아베신조(安倍晋三)관련 외신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일본의 극우상향 정치가는 공공연히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고, 그 이후 여러 정보를 접하면서 그가 한국에 잘 알려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스승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어베신조의 선조들의 고향은 야마구치현(山口県)으로 막말의 조슈번(長州藩)입니다. 이곳은 메이지 시대 국가주의적 일제의 통치체제를 완성한 호전적인 군국주의자들의 고향인 곳입니다.

아베 전총리가 일본 재무장에 열을 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요시다 쇼인이 주장한 ‘주변국 선점론’이란 간단히 말해 서구 제국주의 열강보다 먼저 일본의 주변국 즉, 중국과 일본 그리고 여러 아시아 지역을 선점해 일본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냥 봐도 침략주의 (侵略主義) 주장입니다.

그를 존경하던 메이지 시대 군국주의자들이나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이자는 인물 상당수가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는 건 그래서 매우 일관적입니다.

다음은 동양(東洋)이라는 지명의 유래입니다. 지금은 너무나 일반적으로 사용해 별다른 함의(含意)가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매우 충격을 받은 말이 바로 이 ‘동양’이라는 용어입니다.

나카 미치요(那珂通世)라는 일본의 학자는 1890년 메이지일본이 ‘교육칙어 (教育勅語)’를 발표해 천황제에 기초한 교육방침을 공고히 한 후 천황을 신격화하고 군국주의를 강화하기 시작한 가운데 당시 본방사(本邦史), 지나사 (支那史), 외국사 (外國史)로 편제되어있던 역사교과를 지금처럼 일본사, 동양사, 서양사로 편제를 한 것으로 그의 제안이 문부성에 받아들여서 생긴 변화입니다.

나카 미치요가 정립한 ‘동양’이라는 용어는 쉽게 말해 일본의 천황이 통치하는 지리적 영역을 모두 포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의 중원인 화북지방 뿐만 아니라 만주 몽골 그리고 동남아시아까지 포괄하는 모든 지리적 공간에 대한 역사를 모두 동양사에 집어 넣었습니다. 1890년대 나카 미치요가 제안한 동양사의 지리적 범위는 놀랍게도 제국일본이 1945년까지 침략을 진행했던 모든 지역과 일치합니다.

제국 일본은 치밀한 계획하에 조직적으로 아시아를 침탈한 것입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동양사와 관련해 또 하나 경악할만한 사안은 통념과 달리 조선의 역사가 동양사가 아닌 일본사애 편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제국 일본은 교육칙어를 반포한 이후 조선을 이미 사실상 일본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었고 교과서에 그 내용을 실었습니다. 당시는 청일전쟁을 하고 있었고 러일전쟁을 하기 이전입니다.

하지만 메이지 시대 지식인들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진구황후(神功皇后)의 신라 정벌을 사실로 받아들여 조선은 이미 고대에 일본에 복속된 땅으로 조선은 일본의
복속에 이탈해 잘못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본이 조선을 침탈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일본의 ‘침략성’을 이 주장보다 더 명확히 드러낸 경유는 아나 없는 것 같습니다.

즉 제국 일본은 메이지 시대부터 서양으로부터 최신 군사기술과 무기를 받아들이고 선진문물을 배운 이유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목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일본은 민주주의와 인권사상을 받아들였지만 천황제 파시즘 이러는 국가주의에 매몰되어 스스로 민주주의를 벌이고 군국주의로 나간 국가입니다.

일본은 제1차세계대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가해 당시 제국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중국의 이익이 걸린 당시 독일의 조차지가 있던 산동반도의 칭타오를 공격하고 독일의 식민지였던 남양군도를 점령합니다.

중국 중원 진출을 추진하던 군부 세력은 랴오둥 반도로 출병해 끝내 만주사변 (満州事変,1931)을 일으키고 중일전쟁(中日戦争,1937)을 일으킵니다.

앞에서 언급한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는 광신적으로 황도(皇道)파시즘 이데올로그로서 결국 일본제국의 신민(臣民)은 모두 몸과 목숨을 바쳐 천황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군국주의적이고 전제주의적 파시즘의 극단을 주장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적인 일본이 아시아를 넘어 서양까지도 진출할 수 있다고 독려한 그는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Pearl Harbor)를 공격하고, 말레이 반도의 싱가폴(Singapore)을 공격해 영국군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광기가 메이지 시대부터 지속되어 결국 동아시아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과 이를 준동하고 사실상 독전(督戰)울 위한 글을 발표한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에 대해 한국인들이 잘 모른다는 건 사실 충격입니다. 그는 1910년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이후 초대 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을 도와 조선의 언론계 전체를 감독하며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를 확립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과거의 일제시대를 설명하고 있지만 2023년 현재 일본이 메이지 시대보다 한치라도 변한게 있는지 의문입니다.

서두에서 말했듯 아베신조 전 총리를 비롯한 제2차세계대전 전범(war criminal; 戰犯)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가며 정치를 하는 나라가 일본이고, 이 책에서 보았듯이 애초 민주주의라는 대의 정치제도가 발붙일 역사적 토양이 없는 나라입니다.

호전성은 바뀌지 않았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틈을 타 다시 재무장을 하려고 합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당시 패전국이었고 미국도 일본과의 전투에서 인명 피해를 많이 입어 일본을 무장해제 시키고 동아시아를 봉쇄하기 위해 주일미군의 주둔시켰지만 상황이 바뀌어 미국은 일본을 재무장시켜 위협이 되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은 과거에 아직도 얽매어 있는 오래된(archaic)전제 왕국일 뿐입니다.

끝으로 책의 저자이신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의 다른 저작을 소개합니다. 아마 대한제국기 고종의 통치에 대해 거의 최초로 긍정적 시각으로 집필된 연구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2000)

일본 편향적인 학자들이 무능한 군주라고 설명해온 고종의 통치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한 것으로 오래전에 출간되었지만 이책과 정반대의 시각을 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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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논픽션 작가 에릭 라슨 (Erik Larson)이 쓴 책으로 저로서는 두번째 작가의 책을 보았습니다.

첫책이 작가의 출세작 ‘The Devil in the White City (Vintage,2003)’로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에서 열렸던 박람회를 배경으로 활약했던 연쇄살인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분히 미국적이고 호러소설을 보는 듯한 글이었습니다.

우연하게 보게 된 작가의 최신작인 이 책은 나치 독일의 영국 대공습에 대한 이야기로 촛점은 공습 당시 영국 수상이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과 그의 가족, 그의 개인비서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시 전쟁을 지휘하는 영국 수상의 이야기이지만 정치적 측면과 더불어 영국 수상이 일을 하는 다우닝가 10번지( 10 Downing Street)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엿보는 형식으로 글이 전개됩니다.

작가도 언급했듯 이 책은 유명한 영국 수상 처칠의 한 일면만큼 보여준 것일 뿐이기에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수많은 그의 전기(biography)나 그가 직접 쓴 책을 보는 수 밖에 없겠죠.

저는 Wiilam Collins에서 나온 영국판으로 이 책을 읽었지만 이미 한국어 번역본도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폭격기의 달이 뜨면 (생각의 힘,2021)

개인적으로 한국어판의 제목은 글의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영국 대공습 당시 나치 독일 공군(Luftwaffe)는 야간공습을 실시했고, 달이 환하게 뜬 밤이 공습의 최적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책에 관해 간략하게 정리를 아래와 같이 해 보았습니다.

첫째, 이 책이 다루는 기간은 1940-1941년 약 2년간으로 처칠의 수상재임 초기에 해당됩니다.

나치 독일은 처칠이 수상이 될 무렵 이미 프랑스를 함락시키고, 프랑스는 독일에게 항복(Surrender)했으며, 나치 독일에 협력적인 비시 프랑스(Vichy France)가 들어선 시기였습니다.

프랑스의 항복이후 나치는 영국 본토에 대한 대대적 공습을 시작합니다.

이미 이 공습 이전 영국군들은 던케르트(Dunkirk)에서 대대적인 철수를 했습니다. 2017년 개봉한 영국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의 동명 영화도 이 철수 작전을 영화로 만든 것이죠.

처칠의 경우 영국의 해군장관(First Lord of Admiralty)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고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동맹이었던 오스만 터키를 공격해 갈리폴리(Gallipoli)전투를 벌였는데,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전략적 요충지 다르다넬스 (Dardanelles )해전에서 패배하고 퇴각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처칠 개인으로서도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결전을 치룰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한국오판 책 제목이 보여주듯이, 나치의 공습은 야간에 진행되었고, 특히 보름달이 뜬 환한 밤이 공중 폭격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독일이 야간에 공격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확보된 반면 영국공군 (Royal Air Force aka RAF)은 야간 작전수행이 붕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책의 다른 한 이야기는 영국이 독일의 야간공습을 기술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셋째, 1940-1941년 초까지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특유의 고립주의(isolationism)외교정책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은 전쟁 초 유럽의 전쟁터에 미군을 보낼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처칠은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 한 유럽 전장 (European Theater)에서 나치 독일에 이길 방법이 없다고 보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를 설득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난하게 진행합니다.

결국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던 일제가 진주만(Pearl Harbor)를 공격하면서 미국도 참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국은 독일의 영국대공습을 미국의 참전 없이 막아냅니다.
책 484쪽에 영국이 나치 공습으로 입은 인명 피해 상황이 나옵니다. 총 44,562명이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 중 5,626명은 어린이였습니다.

영국은 런던이 폭격 당하면 , 베를린을 폭격하는 식으로 나치 독일에 정면으로 대항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결국 보급 싸움이고 영국은 끊임없이 미국에 보급과 식량 지원 요청을 합니다.

넷째, 이 책은 철저히 영미권 주류의 시각에서 저술된 책입니다. 책을 보면 아시겠지만 특히 영국의 수상 처칠은 대영제국( British Empire)이라는 말로 영국을 지칭할 만큼 숨길 수 없는 제국주의자적 면모를 보입니다. 따라서 처칠의 입장에서 그리고 대영제국 입장에서 그 수도인 런던이 폭격 당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하던 영국이고 처칠 자신이 해군장관 출신이기 때문에 그는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항복한 이후 프랑스 해군의 군함이 독일 수중에 들어가는 걸 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칠은 북아프리카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 함대에 전함을 보내 영국에 프랑스 군함을 맡기도록 하던지 아니면 프랑스 전함을 침몰시키도록 명령합니다. 프랑스 군함은 결국 영국 전함의 함포사격으로 침몰됩니다.

처칠 자신이 제2차세계대전 종전을 위한 협상인 얄타회담(Yalta conference)와 포츠담 회담(Potsdam conference)의 주역이었기 때문에 그가 제국주의자라는 평가가 생경해 보일 수 있으나 그는 분명 대영제국의 이익을 위해 제국주의적 힘을 휘두르던 영국의 거물정치인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영국의 귀족출신이었고 단 한번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적이 없다는 발언은 다른 아닌 그의 부인 클레멘타인(Clementine Churchill)에서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정치가인 건 분명하고 그에 대한 전기가 영어권에 엄청나게 출간되는 것도 그런 연유라고 추정합니다.

다섯째, 저자의 저술동기가 흥미롭습니다. 저자가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뒤 뉴요커들이 2002년 9/11테러 이후 겪은 그들의 경험을 그 이전에 느까지 못했고 그래서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로부터 공습을 받은 영국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가 궁금해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어권 사람들의 한계이기 때문에 결국 찿는 다른 사례가 영국의 경우이고 이건 미국이 진주만 공습이후 최초로 본토공격을 받은 사례가 9/11테러라고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이들은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서울 용산에 얼마나 많은 폭탄들이 투하했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미 추정컨테 그들에게 ‘잊혀진 전쟁 (the forgotten war)’인 한국 전쟁은 관심사항이 아닐겁니다.

한국 독자가 어떻게 느끼던, 일단 서론에서 밝힌 저자의 집필동기는 대부분의 미국 지식인 혹은 주류에 속하는 미국인들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어권 이외의 새계에 대부분 관심이 없고 따라서 매우 적은 수의 미국인과 유럽인들이 아시아와 중국 등에 관심을 가진다고 추정합니다.

끝으로 책의 분량에 대한 것입니다.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본문이 총 10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국의 여타 장르 소설들처럼 아주 짤막한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총 507쪽이니까 분량은 상당한 편이지만 내용이 재미있어 잘 읽히는 편입니다. 상당한 영국영어가 포함된 건 당연합니다.

마지막에 저자는 특히 어떤 책들과 아카이브가 특히 유용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처칠의 개인비서가 쓴 회고록이 특히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애서 전시에 어떤 식으로 운영되었는지 살펴보는데 유용했다고 했습니다.

전쟁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영국수상 처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영국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이면의 이야기이기도하며 명 연설가 (orator)로 유명한 처칠이 행한 연설과 미국과 영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 물자와 병력 파견에 대한 외교비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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