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에서 한국현대사를 연구하시는 정병준 교수님의 최신작입니다.

2023년 12월 출간된 책이고 이책에 대해서는 역사학자 심용환 선생님의 방송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본문 425쪽으로 전체 4장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언론에는 ‘아무도 아닌 자‘인 미국인들이 미군정 치하에서 어떻게 한국의 정치과정에 개입했는지를 최초 발굴했다고 소개되었고, 실제 1945년 9월 미군의 남한 진주이후 통역과 문고리권력의 등장에 대해 이 책 2장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책의 내용 중 1장의 미군 진주 전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총독부의 공작에 대한 내용은 전에 소개해드린 다른 책에서도 상당부분 내용이 겹칩니다. 즉 일제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한 이후 권력의 진공 상태에서 유일하게 정권인수를 준비하던 리더가 여운형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패망이후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습격할까봐 두려워 치안대책을 여운형과 논의하려 했습니다. 이 당시 친일세력이던 한민당과 우파는 패전이후 친일행적에 대한 처단이 두려워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해방 후 첫 26일동안의 행적을 그린 르포로 한겨레 길윤형 기자가 아래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길윤형 지음, 26일 동안의 광복 (서해문집,2020)

이 책은 8월 15일 해방이후 미군이 진주하기 직전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고 사실상 한국이 일제 패망이후 실질적인 해방을 만끽했던 짧은 26일간의 이야기입니다.

1945년 9월 미군정이 시작되고 야전군인 출신으로 행정과 정치경력이 전무한 하지 중장 (General Hodge)가 미군정을 위해 남한 땅에 들어옵니다.

이미 카이로회담, 테헤란 회담 그리고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은 연합군( 미 영 중 소)측과 패전국에 대한 전후처리를 합의한 바 있고, 그 원칙은 어느 특정세력에게 권력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한국의 경우 신탁통치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에 진주한 미24군단장 하지는 미국 국무부 전쟁부 및 도쿄에 주재하는 맥아더 장군의 명령에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한국의 전후 정치와 정부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미국이 독일과 일본의 전후처리에 골몰해 한국에 대한 훈령을 내리지 않고 방치하면서 이런 월권행위를 일으킨 겁니다.

통념과 달리 미군정의 하지장군은 미국의 전후처리 방침인 한국의 신탁통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과거 친일전력이 있는 한민당 세력과 김구의 중경임시정부 세력을 간판으로 활용하여 과도정부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현재 국우진영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이승만은 귀국조차 하지 않던 시점이었습니다.

통념과는 다르게 1945년 후반기까지 이승만은 조선에서도 미국에서도 모두 잊힌 인물이었고, 미국조야와 사이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승만을 과도정부 수반으로 세우려고 했던 건 하지장군의 독단적 결정에 불과한 것이죠.

미군정은 조선총독부로부터 사실상 행정권을 회수하여 서울과 지방에서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던 건준과 인민위원회를 ‘공산주의’로 몰아 사실상 배제한체 일제시대 친일을 했던 한민당 세력과 구한말부터 한국에서 교육사업을 했던 개신교 선교사 세력을 우대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보수주의적 과도정부를 독자적으로 수립하고자 한 겁니다.

일제시대 미국에 유학할 정도면 조선총독부와 관계가 원만했을 것이고 또한 집안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군정 초기 고위직을 차지했던 대부분 인사들은 미션스쿨( 연희전문, 숭실전문)출신에 미국 유학파로 영어에 능통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장군의 전담통역이던 이묘묵(李卯默)은 연희전문 출신 미국 유학파로 일제말기 유명한 친일파였습니다.

하지만 미국 일리노이 출신 야전군인인 하지는 그의
이력따위는 관심없었고 덕분에 이묘묵은 통역이자 문고리 권력으로 일제시대 이후에도 권력을 누렸습니다.

이묘묵을 포함한 초기 미군정 고위직들은 대체로 미션스쿨출신의 미국 유학파였고 지역적으로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서북지역( 평안도) 출신으로 이들은 반공주의로 무장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책을 보면서 인지하게 된 사실은 현재 기득권의 일부가 된 보수 기독교 세력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반공주의의 산실이 된 영락교회도 신의주 출신 한경직 목사가 미군정의 후원으로 세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1945년 이후 서북출신 보수 기독교의 원류를 찿아보는 건 정치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로 보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아무것도 아닌 자’로 영향력을 행사한 윌리엄스가 일제하 조선에 거주했던 기독교 선교사 출신 자손이라면 하지장군의 정치고문이던 버치는 미군 하급장교이지만 해방정국 막후에서 활약한 인물입니다.

버치가 남긴 문서에 대해서 이 책은 말미에 약간 언급하고 있지만 버치문서에 대해서도 별도의 책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박태균 지음, 버치문서와 해방정국 (역사비평사,2021)

영관급도 아닌 일개 위관급 미군장교가 해방이후 남한정국에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단점을 하나 말하려고 합니다.

역사서가 대체로 사료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시기가 겹치는 경우 동일한 설명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좀 더 간명하게 설명되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느낀 건 미군정 시기가 전문 연구자 이외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체 보수세력들의 설명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대중에 유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장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고 이 책에서 언급했다시피 아직도 미군정에 대해서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남은 불완전한 시기라는 점입니다. 친일세력이 일부러 당대의 역사를 왜곡시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시기는 좀 더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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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잘못 없다 - 신민재 건축가의 얇은 집 탐사
신민재 지음 / 집(도서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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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남아있는 작고 비정상적으로 잘린 필지에 들어선 얇은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건축가이신 신민재 작가가 서울의 이런 특이한 건축물을 답사하고 쓰신 연재물을 책으로 엮어내신 결과물입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건물이 들어설수 없을 것 같은 작은 필지( 대체로 삼각형모양으로 잘리거나 지나치게 얇고 좁게 남은 자투리 필지) 에 지어진 건축물을 보고 작가께서 그
건축물이 그 자리에 들어선 사연을 옛지도와 건축물 대장을 토대로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건축물이 들어설 공간의 자연지리적 환경과 경제적 입지가 건물 자체만큼 중요하지만 쉽게 중요성이 간과되곤 해서 설명이 생략되거나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는데 이 책은 건물을 둘러싼 여러 환경적 요인들을 설명해주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책에 소개된 이런 작은 필지들은 대체로 복개된 옛하천의 지형에 영향을 받았거나 옛시가지의 길이 새로 나거나 확장되면서 기존의 건물들이 헐리면서 생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이책에 소개된 건물들 자체의 특이한 외관에 일차적 관심이 쏠리지만 결국 그 건물의 입지와 필지에 대한 추적이 이어지면서 지난 시간동안 서울에서 일어난 도시계획과 개발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됩니다.

조선사대 이래 서울의 각 입지의 경관이 변해온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는 각각의 건물들이 왜 현재의 상태로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건축에 대한 이야기의 상당수가 아파트, 재개발, 부동산 등 주택시장에 대한 담론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주거생활이나 공간 자체의 역사적 맥락, 그리고 한말이후 일제를 거쳐 이루어진 서울의 도시개발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답사지역을 중심으로 설명한 게 이 책의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 서울이라는 공간의 변화요인에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겠지만 경제적 요인만으로 공간변화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니다.

도시는 이전 시대의 흔적을 이 책에서 소개한 이런 좁고 기형적인 필지와 건물형태를 통해 남기고 있는 것이죠.

저자가 책이름을 ‘땅은 잘못없다’라고 지으신 건 그래서 이런 정상적이라고 볼수 없는 작고 좁은 팔지들의 입장을 대변한 센스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가 있었던 파트는 서울에 흐르던 작은 하천들이 복개되어있는 지역들을 소개한 ‘물길의 흔적’입니다.

현재 한강의 지류로 탄천이나 중랑천 그리고 얼마전 인공적으로 복원된 청계천 정도만 알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용산과 마포, 서대문 등에도 한강의 지류인 만초천과 후임천(용산) 그리고 홍제천과 세교천( 마포), 월곡천( 강북)주변과 복개후 달라진 도심의 이야기는 처음 접해본 이야기라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 동네에 있던 개울가가 복개되어 도로로 변하던 모습을 목격했던 터라 이 책에 보이는 여러 하천들이 도시개발을 이유로 모습을 감춘 이유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아 알수가 없었다고 해야겠죠.

서울은 지난 40여년간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이 급격하게 변화해 과거의 흔적을 거의 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보통 사람들이 살던 일반적인 주거형태의 흔적을 찿기는 더 어렵습니다.

일제시대 지어졌던 적산가옥부터 1960-70년대 지어졌던 수많은 양옥집들이 대부분 없어지고 초기 서울개발 당시 지어졌던 자층 아파트들이 헐린 자리에 위압적인 20-30층 짜리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것도 경기침체( recession)과 고물가 시대를 맞아 과연 아파트만 주택으로 지어서 공급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증폭되는 상황입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그리고 아파트 살 사람도 없는데 건설사가 PF끼고 고분양가를 내걸고 후분양 장사를 하는지 맞냐는 겁니다.

초기 아파트는 서울에 인구가 폭증하고 주택문제가 심각했을 때 고육지책으로 나온 정책으로 압니다.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 가정에 아이들이 최소 2명에서 3명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자녀가 1명이거나 아이가 없는 딩크족도 많고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 1인 가족도 많습니다.

인구감소로 주택수요가 줄었는데 건설사가 예전 사업방식을 고수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개발시대 주택건설모델은 이제 시장에서 더이상 통용될 수가 없다고 보는데 답답합니다.

물론 이 책이 가정집에 국한된 건축물을 보는 건 아니었지만 상당수 주택가에서 도시개발이후 남은 자투리 땅에 지은 건물이라는 점이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시간의 흔적을 모두 밀어버리고 그저 새것만을 쫓아 크고 비싼 건물만 지으려는 풍토는 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물러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도시의 건축물들에 대한 그리고 도시계획에 대한 다양한 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너무 조선왕조에만 매몰되어 있는 건축문화유산에 대한 관리는 바뀌어야 합니다.

눈앞에 남아있는 우리 당대의 멀지않은 과거 ( 예를 들어 1980년대)의 건축물이 없으면 지금 세대들은 그 당시의 삶을 직접적으로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망한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건축물보다 일제가 이땅에 세운 건축물이 더 중요하고, 그보다 개발시기 한국의 건축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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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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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집어든 책입니다.
그리고 요새 젊은 여성들이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읽었습니다.

고백부터 하자면 사실 인스타그램이라는 SNS는 저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매체라서 20-30대 여성들이 ‘인생샷’이라는 스타일의 사진을 올리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남성입장에서 낯선 이런 시간투자는 한편 젊은 여성들에게 ‘외모’가 무시못할 자산이고 한편으로 사회생활의 방편이면서 성차별을 보여주는 기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당혹스러웠습니다.

어플로 보정된 사진이 자신의 또다른 ‘디지털 자아’를 대변한다는 인식도 그렇고 예전과 다르게 가족들만이 보는 전통적 사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전시’한다는 인식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책의 상당부분이 인생샷과 관련된 다양한 여성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경험상 인터뷰를 통한 연구가 생각보다 품이 많이들고 어렵습니다.

2010년대 이후의 새로운 사회현상이고, 사진 자체도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해지고 카페들도 이에 맞춰 인테리어를 바꾸는 마당이니 아마 인스타그램 인생샷의 경우 인터뷰말고 다른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웠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사회와 도시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이책에서 논의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민감한 주제이고 섣부를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끝으로 책에 대해 소개를 덧붙이면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본문 329쪽입니다.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역사와 정치, 경제관련서를 많이 읽는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여성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보려면 별도로 여성에 대한 책이나 인류학 관련 책을 찿아야 봐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책의 여성주의 입장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여성들이 안전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결국 자연스럽게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생긴 일일 수 있다고 봅니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고 나의 어머니도 나의 딸도 여성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삶이 결국 여성들이 지향하는 삶이 아닌지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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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에서 빈곤을 연구하시는 인류학자 조문영 교수의 책입니다. 총 9장으로 본문 398쪽인 이 연구서는 저자의 지난 20여년간의 빈곤 연구의 중간결산 같은 성격의 책입니다.

한국과 중국의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서 관찰하고 인터뷰한 연구로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취약계층에 대한 관찰기이기도 합니다.

보통 빈곤과 불평등 문제는 사회학이나 경제학 영역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인류학자가 빈곤의 현장에서 빈곤의 역사성과 관계성에 주목해 빈곤문제를 잘 설명해 준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의존(dependency)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에 맞서 사실 이 세상의 누구도 상대방에 대한 의존없이 살기 힘들다는 지극한 명제를 상기시켜주는 대목은 인상적이었습니다(p64).

개인이 가족에 의존하거나 속한 공동체에 의존하는 건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경제개발이 시작된 한국에서 스스로 살수 없는 사람들을 무능력하다고 ‘낙인(烙印)을 찍고 경멸해 온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마지막 9장은 코로나 19 팬데믹과 기후위기로 서구의 학자들이 개념화하기 시작한 인류세 (Anthropocene, 人類世)시대에서의 빈곤에 대한 담론으로 단순히 인간사이에서의 빈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주장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빈곤활동가들이 현장에서 같이 살며 삶을 살아가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계몽이 아니라 활동가들이 사회의
일부에서 그 변화를 일으키고 스스로도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해봅니다.

경제현상과 경제정책의 역사, 정부와 정치의 역할, 민주주의가 어떻게 왜곡되어왔는지, 디지털 생태계가 사회와 경제구조를 어떻게 바꿔왔는지에 주로 주목을 한 반면 최근에 읽은 빈곤에 대한 이 책과 대한민국 초기 정치적 혼란으로 국내에서 난민으로서 삶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에서의 난민 을 다룬 연구서 , <난민, 경계의 삶, 역사비평사,2023>은 먹고 사는 문제와 사회와의 관계 그리고 정치권력의 통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으로 생각합니다.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은 생각보다 매우 가까이 있는 분야고 둘다 사회구성원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밀접한 분야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사회정책을 너무 등한시하는 건 국가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세금 낸 만큼 국가가 국민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특히 인류학(anthropology)은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경영을 위한 통치방식의 하나로 비서구사회를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온 서구학문인데, 그 방법론을 가지고 한국사회의 복지구조와 관료와 복지수급의 관계를 살핀다던지, 중국 선전(Shenzhen深圳)의 폭스콘 노동자의 삶을 추적해 노동자로서의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중국에 관심이 많은 독자로서 그리고 저자 자신도 중국학을 하는 정체성이 있어서 그런지 옆나라 중국의 사회에 대한 글은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국 하얼빈(哈尔滨)을 배경으로 하얼빈에 자리잡은 여러 한국인들의 다양한 삶의 양태와 중국과 한국의 수교이후 한국에서 돈을 벌어 신흥 부자가 된 소위 ’신조선족‘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조선족‘의 이미지와 매우 달라 매우 전복적입니다. 영화에서 보던 거친 조선족이 아니라 중국인으로서 하얼빈에 새로정착한 ‘찌질한’한국인의 서사가 소개됩니다. 이런 개별적 사례는 조선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립니다.

연구서이고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학자들의 빈곤담론과 인류학자들의 연구인용(citation)으로 가볍게 읽기는 분명 어려운 책입니다. 하지만 사회를 접근하는 다양한 시각을 보고 인류학자들이 심층인터뷰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연구하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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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경계의삶 - 1945~60년대 농촌정착사업으로 본 한국 사회 역비한국학연구총서 42
김아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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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한림대학교에서 한국현대사회사를 연구하시는 김아람 교수의 신작입니다.

2023년 3월 출판된 책으로 이 시리즈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또한 2023년을 대표하는 연구서로 선정된 바 있는 책입니다.

이책은 우리가 흔히 부모세대와 조부모세대 어르신들에게 들었던 피난민(避難民)에 대한 이야기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피난민이라고 하면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등지고 공산사회를 피해 월남(越南)한 북한출신 주민들을 이야기합니다.

이책에서 다루는 난민 중에는 물론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난민 그리고 월남민도 있지만 한국전쟁이전 미군정 당시의 제주도 4.3 사건으로 인한 난민 그리고 여순반란 사건과 뒤이은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들도 포함됩니다.

모두 민간인들이 심각한 국가폭력(國家暴力)에 노출되어 삶의 터전을 벗어나 생존을 위해 고난을 감내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 당시 정부는 발생한 난민들을 전쟁의 장애물로 인식했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해서 이렇게 발생한 난민을 감소시키는데 정책적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해방이후 만주와 일본에서 들어온 난민이나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내부난민 모두 체제 변동으로 발생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부는 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고아 부랑인 등을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방책으로 정착사업을 시행한 측면이 큽니다.

이렇게 체제형 난민이든 사회형 난민( 부랑아 깡패 고아 등)은 최초에 사회정책의 하나로 난민을 구호하기 위해 실시했던 농촌정착사업을 점차 농촌의 생산력향상을 도모하는 경제정책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러한 난민의 농촌정착사업의 정책주체인 정부의 목적은 1> 난민을 정착시켜 난민을 줄이는 것으로 이는 난민의 자발적 노력으로 실시한다(?)는 원칙입니다. 2> 농촌정착사업은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역할에 의존한다는 겁니다.

이상한건 중앙정부 관료들이 정책을 입안하면서 본인들의 책임을 모두 난민과 지방정부 지역사회에 전가시켰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그때도 고위관료들은 무책임하고 영혼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1960년대에 사회형 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농촌정착사업은 도시에 있던 고아 부랑아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간척사업과 농지개발사업에 투입하고 지방정부 그리고 심지어 중앙정보부까지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던 ‘동원’된 사업이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이렇게 몰상식하게 사람을 동원하고 노예처럼 강제노동을 시키는 정착사업이 성공할리가 없습니다. 이런 사례는 1960년대 이후 군사정부에서 국민을 상대로 폭력과 인권유린을 한 ‘범죄’지요.

웃픈 건 이런 농촌정착사업장에 부랑아들과 짝을 맺어주기 위해 도시에 있던 윤락여성들과 ‘합동결혼’을 시킨 사례까지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강제로 한 결혼생활이 원만할리가 없었지만 이 모든 게 정부가 정책으로 추진한 것이라는 데 그 ‘후진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당시 공무원들이 사회하층민들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볼 수 있는거죠. 사회악으로 척결대상인 부랑인들은 고위관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도시에서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였고, 이들의 노동력을 험하고 어려운 간척사업이나 농지개량사업에 활용하고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 마찬가지로 척결대상인 윤락여성들과 짝을 먖어주자는 기막힌 발상입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사람을 노동력으로만 보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으로 심지어 매우 계급지향적이기까지 합니다( 하류는 하류들끼리…). 이런 권력지향적 관료들이 추진한 정책이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건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아무튼 책에 실린 당시 간척사업 참가자들의 구술을 보면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들을 아무데나 묻고 장례식도 치루지 않은 경우가 많고, 식량도 충분히 주지 않아 허기진 상태에서 노역을 했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간척사업의 경우 간척이후 토지분배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애초 사업의 목적이 간척지를 농지로 만들어 간척에 참여한 난민들에게 토지를 무상분배하고 그 땅에 정착시키려는 의도였는데 문제는 간척이 끝나고 난민들에게 토지무상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겁니다. 농지에 대한 소유권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근거를 갖추지 못해 소유권 분쟁이 일어난 경우도 있고, 간척 후에 지주가 나타나 사유지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경우에도 한국정부와 사법당국은 마찬가지로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간척지에 대한 모든 부담을 난민들에게 돌리거나 지주의 손을 들어줍니다.

1960년대에 끝난 간척사업지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30여년을 끌어오다 1990년대에 마무리된다든지, 2010년대까지도 분쟁이 지속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개척한 간척지에서 자신 소유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소작을 하는 경우가 나타나거나 결국 농지를 유상매입하는 경우까지 나타납니다.

에 책은 해방과 4.3 사건, 여순반란 그리고 한국전쟁같은 격동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내전으로 황폐화한 땅에서 북한을 떠나 온 난민들, 해방이후 해외에서 들어온 난민들을 어떻게 정착시키고 먹고 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정책과 당시를 경험한 난민들의 삶을 추적한 기록입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농업생산력을 올려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출발점에서 시작한 사업이고 자본과 자원이 없었던 당시 미군정의 무상원조를 통한 잉여생산물이 일단 그 시작이었습니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기 이전이라 최초 사회정책적 측면이 강하고 구호사업의 측면이 강했지만 1960년대 이후 점차 경제정책적 측면이 부각되긴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고된노동에 비해 소유권 보장도 되지 않고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난민 출신 정착민들은 살기 위해 다시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따라서 생각한만큼 성과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체계가 잡혀있지 않던 전쟁이후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알 수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무책임’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특히 관료들의 무책임을 방기하는 듯한 정부의 조직문화는 심각하게 국격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관료들은 본인들이 국민의 머슴( civil servant)이라는 생각을 안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봉급이 세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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